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09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뭔가 알아냈느냐고 물었어요.”
이미지가 망가질 뻔 했다. 나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루비콘 대공의 우람한 덩치가 떠오르고 그 노인네가 ‘고문’ 하는 모습도 떠올랐다. 저도 모르게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갔다. 기사가 말했다.
“정말 대단한 정신력을 가진 악마였습니다. 우리를 끝까지 조롱했죠.”
“조롱했다면?”
“‘뭐든지 말하겠다! 하지만 말할 수 없어!’ 뭐 이런 식으로 말할 듯 말듯 우리들을 놀리는 걸 즐기는 악마였죠. 적이었지만 그 정신력에는 저도 감복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대공께서는 더욱 더 화가 나서 쇠몽둥이로 그 괴물을 두들겨 패셨죠.”
“아…..”
그거 걔 정신력 문제가 아닌거 같은데. 진심으로 말하고 싶어했던거 같은데. 조금만 어르고 달랬으면 대공 앞에서 알몸 도게자도 해줬을거 같은데.
“팔 다리가 전부 부러져도 괴물은 우리를 조롱하는 걸 멈추지 않았습니다. 말할 수 없다! 라고 끝까지 외쳐댔죠. 우는 시늉을 하면서도 입으로는 조롱을 멈추지 않아서, 우리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끔찍하군요.”
에반젤린의 금제가 무시무시한 도발 효과를 불러오고 말았다. 서큐버스 본인도 고문당하면서 에반젤린을 욕하지 않았을까? 나는 죽도록 고생하다가 죽은 처녀 서큐버스 러비안이 불쌍해졌다. 사천왕이라는 놈들이 고생해서 빛도 못보고 죄다 저승으로 가고 있었다.
라미아 여왕이랑 도플갱어는 살아 있을까?
“전선에 도착했습니다. 영주님.”
지평선에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나는 메이스를 뽑아들고 말의 속도를 높였다. 후방에는 쓰러진 병사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발톱에 가슴팍이 파여있거나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끔찍한 모습이 사방에 가득했다.
하늘에는 포식을 위해 날아든 까마귀들이 가득했다. 해는 아직 중천이건만 우중충한 날씨와 더불어 까마귀 떼의 울음소리가 하늘을 채웠다. 새까만 것들이 하늘을 뒤덮고 있으니 시각은 낮이였지만 그야말로 밤이었다.
시체들의 산을 지나면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는 야전 병원이 눈에 들어왔다. 병사들이 신음하고 있었다. 간호사부터 군의관들이 이를 악물고 치료에 힘쓰고 있었지만, 그들로는 역부족이었다. 부상자 중 한 명이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사제님….사제님이 오셨군요…..”
“힐.”
당장 죽어가던 몸에 힐을 부어주니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나는 동시에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힐은 상처가 클수록 내 체력을 더 많이 소모했다. 내가 암만 쩔어도 여기있는 사람들을 다 치료해주는 건 힘들었다. 단순 부상자들이 아니라 대부분이 곧 뒤지는 중상자들이었다. 나는 눈 마주친 두 세명 정도만 치료해주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디서 오신 분입니까?”
멀리서 대천신교의 다른 사제가 녹초가 된 얼굴로 쓰러져 있었다. 그는 나를 보고 매우 반갑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그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어디서 왔는 지를 묻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남부 사제장 페타 루시우스입니다. 그 쪽은?”
“아….그….인어랑……”
“인어랑?”
“……북부 사제장. 먼치 알론조입니다.”
인어박이 어쩌고 했으면 ‘자연사’ 해버리려고 했는데 알론조는 입을 다물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인어박이든 수인박이든 신경 쓸 문제가 아니었다.
“알론조. 상황이 많이 심각한가요?”
알론조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었다. 그는 주름진 턱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심각합니다. 부상자는 속출하고 있는데, 의사도 사제도 부족하지요. 제 부족한 능력으로는 하루에 5명 이상은 치료해주지 못합니다.”
사제장의 능력이 부족한게 아니었다. 여기 실려오는 병사들 숫자가 답도 없이 많은 것이었다. 중상자가 수십명씩 실려오고 있으면 사제장이 아니라 교황이라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럼, 그…. 여기서 치료 봉사를 하기 위해 오신겁니까?”
“치료는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부터 시작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네. 그렇지요.”
“물리 치료하러 왔습니다.”
나는 메이스를 꺼내고 전장으로 몸을 돌렸다. 일단 아인들을 족치는 게 우선이었다. 아직 본격적인 전장에 도착하지도 않았지만 벌써부터 비명소리가 들렸다.
“크아아아악!”
“우측을 막아! 뒤로 물러나!”
기사들의 고함소리와 아인들의 괴성, 그리고 병사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뒤엉켰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뒤로 물러나는 병사들과 앞에서 싸우고 있는 기사들, 그리고 그런 기사들을 밀어내는 아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게임에서만 봤던 아인들을 실제로 보니 나는 저절로 휘파람이 나왔다. 존나 멋있었으니까. 육중한 근육질 몸매와 온몸에 돋아있는 우둘투둘한 비늘. 파충류 특유의 매서운 눈빛과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단검을 연상하게 만들 정도로 흉악한 발톱까지. 아인들은 인간 병기 그 자체였다.
특히 길쭉한 주둥이를 쩍 벌리면서 포효하는 모습은 내 로망을 자극하고 있었다. 나는 선두에 있는 아인을 골라서 스텟을 확인했다. 대체 어떤 사기 특성을 가지고 있길래 병사들을 도축하고 다니는 지 궁금했다.
이름 : 타이럼플
종족: 아인
레벨 : 30
스텟
힘: 35
민첩 : 10
지능 : 48
행운 : 10
특성
견고한 비늘
자신의 힘스텟 이하의 힘 스텟을 가진 캐릭터의 공격을 무시합니다.
부패한 발톱
공격에 치명상을 입은 상대가 [맹독] 상태이상에 걸립니다.
공포
이 유닛은 공포에 질려있습니다.
존나 쌨다. 이러면 설명이 됐다. 힘스텟 30 이 개 좆밥같이 보이지만 기사 급이 아닌 이상 병사들은 아무리 높아봐야 10 중반 정도가 최선이었다. 즉, 아인 하나가 병사들 한가운데에 떨어지면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일방적인 도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저런 놈이 한 두 명도 아니고 수백명씩 몰려와서 난동을 피우고 있으니 병사고 기사고 다 쓸려나가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상한 점이 하나있다면 이 아인 놈들이 겁에 질려있다는 것이었다. 겁? 왜 겁에 질려있는 거지?
“으아아아악!”
기사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덕분에 전선에 일시적으로 공백이 생기고, 아인 하나가 공백을 파고들어 병사들과 내가 있는 후방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주, 죽여!”
병사들이 소리지르면서 아인에게 창을 휘둘렀다. 하지만 창에 맞은 아인은 몸을 움찔거리기만 할 뿐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아인이 자신에게 날아온 창대를 붙잡아 부러트린 다음 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너. 여자인가?”
“너는 여자냐 혹시?”
나는 메이스를 까딱이며 물었다. 이 새끼가 여자냐 아니냐에 따라서 아인종의 몰살이 결정된다. 여자들도 전부 이렇게 생겼으면 씹불가능이니까. 원작에서는 애들 성별도 안나오긴 했는데 그래도 씨발 종족이 암수는 구분하겠지. 아인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병사를 손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우린 그런 거 구분하지 않는다. 곱게 따라오는게 좋을거다. 우리는 강한 남자가 필요하니까.”
씹 가능충 종족이었다. 그냥 다 죽여버릴까? 나는 메이스를 허공에 붕붕 휘두르며 말했다.
“지랄하네.”
“따라오지 않으면 팔 하나를…..”
깡!
[돌격병의 효과가 적용되어 데미지가 2배로 들어갑니다]아인의 대가리가 시원하게 깨졌다. 비늘이 단단해서 그런지 타격감도 남달랐다. 단 한방에 아인 대가리를 박살내는 걸 보고 싸움에 집중하고 있던 기사가 입을 쩍 벌렸다. 아인이 바닥에 벌렁 넘어지는 걸 보고 다른 아인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강한 놈이왔다! 강한 놈이다! 도망쳐라!”
아주 조직적인 움직임이었다. 내가 아인 하나를 죽이자 마자 아인들은 일제히 도망가려고 했다.
“거기 한놈만 붙잡아봐요. 죽이지 말고.”
기사들이 그 말을 듣고 일제히 아인 한 명의 가죽을 붙잡아 늘어졌다. 아인이 발버둥치며 다른 동료들을 불러댔지만, 다른 놈들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으아아아아! 으아아아!”
발광하는 아인 앞에서 나는 메이스를 붕붕 휘둘렀다. 아인이 다급하게 외쳤다.
“멈춰라! 뭐든지 다 할테니까 멈춰!
“뭐든지?”
나는 메이스를 휘두르다가 멈추었다. 뭐든지 술술 분다는 건 듣던 중 참 반가운 소리였다. 그런데 내가 반색하는 걸 보고 이 새끼는 좀 다른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아인은 잠깐 머뭇거리더니 몸을 바들바들떨며 소리를 질렀다.
“서, 설마 나를 덮칠 생각이냐! 큿! 죽여라! 그것만은 안된다!”
“……뭐라는 거야.”
기사들은 말없이 나를 슬쩍 쳐다보다가 저마다 헛기침을 하며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 새끼들 다 죽여버릴까? 씨발 인어랑 이거랑 같냐고.
“영주님 혹시…. 그…. 자리를 좀 비켜드리면 되겠습니까?”
“닥치세요.”
이 씹새끼들은 정말 내가 아인을 따먹을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 바닥에 쓰러진 아인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인간들이 암만 타락했다지만! 우리 고귀한 드래고니안과 몸을 섞을 생각을 하다니! 너희들이 미친게 분명하구나! 이 징그러운 놈들! 네 놈들 꼴을 보아하니 염소나 인어한테도 박을 놈들이 틀림없다! 큿, 죽여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