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32
“아, 네…..”
코끼리는 쥐를 무서워한다는 말이 있다. 코끼리 코 속으로 쥐가 들어가면 뒤지니까 무서워한다고들 하던데, 내가 볼때 그 놈들이 쥐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하나 밖에 없었다. 밟으면 뒤지니까. 지금 내 앞에는 2차전을 은근하게 요구하는 여자가 서 있었다. 내가 코끼리라면 저 여자는 쥐였다. 박으면 뒤지니까. 나는 의무방어전을 두려워하는 남편처럼 에밀리아의 요구를 슬금슬금 피했다.
“아, 그…. 저는 이제 가봐야 하거든요. 에밀리아 씨.”
“그, 또 오실거죠?”
“아, 그….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제가 일이 바쁘다보니…..”
“또 오세요. 은인이시잖아요.”
절대 올 생각 없었다. 설령 아티를 만나러 오더라도 그냥 쌩으로 북부를 가로지르고 말지. 이 성에 올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한 번 섹스에 맛들린 유부녀는 무섭다던데, 지금 에밀리아의 눈빛이 딱 그랬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그 창백한 얼굴로 씩 웃어보였다. 혈색이 살짝 돌아와서 너무도 매력적이었지만, 지금 이 여자와 한 번 더 몸을 섞었을 때, 나는 다시 살려낼 자신이 없었다.
“그럼 돌아가보겠습니다.”
“아, 마차를 내어드릴게요.”
“어유, 그, 그럼 감사하죠.”
그렇게 내게는 북부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마차가 배정되었다. 용사에게도 안해줬을 대접에 주변을 순찰하던 기사가 감탄하면서 농담을 던졌다.
“이야,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부인에게 이런 걸…..”
“제가 아인들을 물리친 공로가 크다고 선물해주시더군요.”
내가 원래 타고왔던 마차는 영주 성을 정비하던 중에 도적들이 부숴서 자재를 훔쳐갔다고 했다. 내가 혀를 차며 짜증을 냈지만, 마부 혼자서 도둑들을 막을 수 있을리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내가 이 전에 마지막으로 에밀리아를 보러왔을 때는 영주 성 상태가 말이 아니었으니까.
“마부는 어디갔습니까?”
“아, 그….. 그러니까, 그게…. 먼저 갔습니다.”
이 새끼들 진짜로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구나. 아무래도 마부는 그냥 돌려보낸게 분명했다. 마부 본인의 의사가 적극 반영된게 틀림 없으니 돌아가면 마부부터 족쳐버릴 생각이었다. 다행히 나의 충성스러운 마부 대신 에밀리아가 직접 고용한 더 충성스러운 마부가 현재 마차 앞에 붙어있었다.
그는 도적질에 대한 죄목을 사면받는 대가로 북부에서 내 영지까지 마부 일을 하기로 했다. 마부는 이가 3개 정도 빠지고 코가 산딸기 같이 생긴 비위생적인 인상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들을 다루는 솜씨는 보통이 아닌 듯, 고삐를 잡아 챌 때도 말들은 부드럽게 움직였다.
나는 그렇게 에밀리아와 기사들의 전송을 받으며 북부 영지를 떠났다. 영지를 떠나는 길에 나는 마부에게 물었다.
“마부 일을 잘하시는 데, 어쩌다가 도적이 됐었나요?”
“먹고살기 힘들어서 그랬습죠. 이 바닥에 마차를 써주는 사람이 없습디다.”
“그렇군요.”
확실히 다들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이 마부의 과거에 대해서 더 캐묻지 않기로 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마부와 나 사이에는 별 친분이 없었다. 그는 내게 있어서 셔틀 버스기사와 같은 존재였다. 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없으면 없을 수록 좋은 그런 존재.
그렇게 나와 마부는 사소한 잡담을 나누며 수도를 지나고, 다시 남부 영지까지 도착했다. 수도에서는 별다른 트러블이 없었다. 에이에이가 수도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은 모양인지, 카린도 그냥 무사히 돌아왔느냐는 이야기만 물었다. 나는 카린을 통해 북부의 아인들을 섬멸했다는 이야기를 대충 보고하고 영지를 향해 걸음에 박차를 더했다.
너무 오랜 시간 영지를 비워서 영지에서 기다리고 있을 내 여인들이 그리웠다. 영지 경계면에 서있던 병사들이 내 마차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북부 대공의 인장이 박혀있는 마차는 병사들에게 경계의 대상이었다. 병사 중 하나가 수하를 하기 위해 창을 내밀며 입을 움직였다.
나는 손을 흔들어서 그가 수하를 하지 않게 막았다. 내 메이스를 알아본 병사가 환호성을 질렀다.
“영주님! 무사하셨군요?”
그는 정말로 내가 귀환한게 기뻐보이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기특한 내 병사들을 가볍게 칭찬해주고 마부의 행방을 물었다. 그 쓰레기 새끼를 일단 족치고 봐야했기 때문이었다.
“네. 무사했습니다. 마부가 먼저 오지 않았나요?”
“아, 네! 한달 전 쯤에 먼저 와서, 영주님한테 큰 일이 생겼다고 말을 했는 데….”
“끌고오세요.”
“이미 죽었습니다. 영주 부인께서 목을 잘라버리셨죠.”
“잘됐네요.”
안그래도 마음에 안들었는 데, 이브가 잘 처리해준 모양이었다. 그렇게 병사 중 하나가 먼저 가서 내 귀환 소식을 알리고, 나는 마부와 함께 천천히 가도를 달렸다. 멀리 내 저택이 보였다. 저택 앞에는 벌써부터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내 귀환을 환영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과 활을 들고 서 있는 에리나의 모습이 보였다.
“뭐지?”
“엘프군요. 엘프들은 활을 들고 환영식을 합니까?”
마부가 물었다. 나도 그런 전통에 대해선 무지했기 때문에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축포를 쏘려는 건지 나한테 쏘려는 건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내 마차가 가까이 오자 에리나가 활을 겨누며 외쳤다.
“루시우스!”
나한테 겨누는 거네. 나는 황급히 마차에서 내렸다. 마부가 화들짝 놀라서 말을 세우고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에리나가 쏜 화살이 마차의 철판을 관통하고 가도를 가로질렀다. 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에리나를 쳐다보며 외쳤다.
“무슨 짓입니까 공주님!”
“이 천벌받아 마땅한 놈! 찢어죽일 놈!”
에리나가 다시 화살을 쏘려는 걸 이브와 엘시가 뜯어말렸다. 에리나는 광분하여 활을 통째로 나한테 집어던졌다. 나는 날아온 활대를 피하며 물었다.
“아니 씨발 왜 그러시는데요.”
“이 나쁜놈! 어찌 나한테 그런 영상을 보낼 수 있느냐!”
뭐가 나쁘다는 거지? 더블 피스가 나쁜 뜻인가?
“그게 뭐가 문제죠? 아니 저랑 용사님 사이에 그 정도도 못해요?”
“그, 그정도…! 이 쓰레기 같은 놈! 이 더러운 놈! 네가 정녕 짐승이지 사람이더냐!”
더블 피스하나가지고 왜 지랄이지? 대체 뭐가 문제지?
“아니 뭐 침대가 문제였어요? 그럴수도 있지. 잘 지냈다는 거 확인했으면 됐잖아요.”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죽여 버리겠다! 죽여버리겠어! 아아아아악!”
갑작스럽게 히스테리를 마주한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이브가 에리나를 꽉 붙잡은 채 눈짓으로 저택을 가리켰다. 나는 에리나를 무시하고 저택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나와 에리나의 싸움으로 인해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그 가운데서 에리나가 내 뒤통수에 대고 외쳤다.
“어찌 내 남편을 겁탈할 수가 있느냐! 이 짐승같은 놈아!”
아니 씨발 말을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오해하잖아.
“나, 남편을 겁탈해?”
“영주님이 남색까지 하시다니 아이고….아이고오….!”
“대천신교의 교리가 땅에 떨어졌구나!”
“씨발.”
해명을 해야했다. 빡세게.
“아니 공주님. 잠시만요.”
“이 쓰레기 같은 놈! 수인한테 박을 놈!”
그 말에 엘시가 귀를 축 늘어트리더니 이브한테 물었다.
“수인이랑 교미하면 나쁜 건가?”
“….너 씨발 복잡해지니까 입 좀 닥쳐봐.”
이브는 바둥거리는 에리나를 저택으로 질질 끌고 들어갔고 나는 저택 앞에 모인 사람들에게 해명을 준비했다. 헛기침을 하고 단상 위에 올라서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박수 몇 번에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절박한 신뢰가 담겨있었다. 나는 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지 알 것 같았다.
– 영주님. 남색은 아니죠? 그렇죠?
나는 그 신뢰에 답해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내 말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단상에 우르르 몰려들었다. 나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는 예수가 된 기분으로 내 남색 의혹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들어보세요. 여러분. 저는 에리나 공주님의 남편을 겁탈하지 않았습니다. 어디까지나 합의 하에 진행했으며….. 에리나 공주님의 남편은…. 그, 원래 남자였는 데, 지금은 남자가 아닙니다. 아시겠어요? 이제 여자라구요. 저랑 같이 여행을 다니다가 여자가….. 아니 씨발 이거 말이 좀 이상한데. 잠시만요.”
내가 말을 하면 할수록 군중들의 시선이 썩어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실시간으로 대학교 동기가 커밍아웃하는 걸 본 사람들 같다고 할까. 내 말 한마디가 이 사람들을 모조리 호모포비아로 만들어버린 듯, 영지민들은 우중충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해명을 하다보니 뭔가 이상했다. 이렇게 말하니까 내가 용사를 암컷으로 만들어버린 것 같잖아. 나는 다시 헛기침을 하고 메이스로 단상 바닥을 가볍게 두드리며 다시 주의를 끌었다. 사제 한 명이 이미 혼절해서 실려나갔고 몇몇 영지민들이 울고 있었다.
“아이고오….아이고…..”
아무래도 내가 동성애자라는 의혹이 인어를 따먹는 것보다 더 충격인 모양이었다. 내가 인어도 따먹는데다가 동성애자라서 충격을 받은 것일수도 있고, 나는 다시 한 번 정중하게 해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어찌됐든 지금 에리나 공주님의 남편인 용사 에이에이는 여자입니다. 몸도 마음도 다 여자인 분이에요. 저는 그 분과 어쩌다보니까.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었고 이 사안에 대해서 우리 공주님이 약간의 오해를 하신겁니다. 아시겠어요?”
아직도 영지민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제 내가 말 한마디로 의혹을 일축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게 아닐까. 나는 메이스로 바닥을 쿵쿵 두드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제가 해명했는데 더 불만 있으신 분?”
“저, 그…..”
영지민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나는 메이스로 그 사내를 가리키며 물었다.
“씨발 뭐요. 내가 남색가라고? 뒤질래요?”
“아, 아닙니다.”
“그럼 불만 없죠?”
나는 다시 한 번 영지민들을 쭉 훑어보았다. 한 번 정중하게 타이르고 나니까 불만 있는 놈들은 없었다. 나는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 이 쯤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분위기를 보니까 더 해명해도 믿어줄 거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저택으로 들어오면, 나를 위한 환영파티 대신 에리나의 욕설이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