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4
순진무구한 시에리가 나에 대한 호감도가 높고, 그 누구도 저택을 털려고 하지 않는 이 시간.
동네에 들끓는 도적단들이 유난히 조용한 이 시간.
시에리를 공략하기 최적의 시간이었다.
시에리는 아직도 아무것도 모른단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씩 웃으면 그 웃음에 몸둘바를 모르며 몸을 돌렸다. 입가에 걸린 미소가 귀여웠고, 그 미소와 상태창에서 봤던 ‘순진무구함’ 특성이 오버랩되며 꼴림에 박차를 가했다.
나는 시에리의 어깨를 붙잡았다. 시에리가 살짝 놀라서 서류 몇장을 떨어트렸다.
“아, 죄송합니다. 영주님.”
“시에리.”
“네. 영주님.”
“루시우스라고 불러줘요.”
아무것도 안했지만 시에리의 호감도는 현재 89 이 정도면 슬슬 서로 말 놓을 때도 되지 않았을까? 시에리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 저, 정말 그래도 되나요?”
“물론이죠.”
“루, 루시우스…..”
시에리가 빨갛게 얼굴을 달군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내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이게 바로 아빠 미소인가?
“영주님!”
우리 저택에서 가장 꿀빠는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기사단장 로빈이, 헐레벌떡 내게 달려왔다. 그가 이렇게 달려올 때는 뭔가 급박한 일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로빈은 평소해는 맹인 안내견처럼 얌전하게 지내다가도, 뭔가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거나, 힘을 써야 하는 일이 생기면 프리스비를 쫓아가는 보더콜리같이 행동했다. 나는 시에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왜 그러죠. 로빈?”
“경비대가 도적 일당을 붙잡았습니다.”
“도적을요?”
이 영지에서 유일하게 내게 대적하는 존재가 있다면 바로 도적들이라 할 수 있었다. 이 놈들은 목숨을 어디 전당포에 맡겨놓기라도 한 것인지 영지 경계에 수시로 나타나서 사람들을 괴롭혀 댔는데, 그 약탈 수위가 제법 심각해서 루시우스는 수시로 경비대를 불러 순찰을 돌게했다.
최근 들어서는 제법 조용했는데, 갑자기 또 이렇게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정말 목숨을 몇 개씩 쟁여놓고 사는 놈들이 틀림 없었다. 루시우스가 한 번씩 살려줬던가.
“경비대는 몇명이나 죽었어요?”
인원이 적은 이 곳에선 사람 한 명 한 명이 재산이었다. 이번 도적들과의 전투로 애들이 죽었으면 그것만큼 치명적인게 없었다. 배상비도 물어줘야 하고 장례식도 치러줘야 했으니까. 이런 일로 사람이 죽으면 그걸 충원하고 다시 교육하는 데 또 돈이 들어갔다. 돈 돈. 영주에게 있어서 영지민은 곧 돈이었다.
“아, 네…. 이번에는 따로 사망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도적단 놈들도 그리 강한 편이 아니라…..”
“도적들은 전원 생포한건가요?”
“아, 네. 마을로 내려왔던 도적단 분대를 경비병이 발견, 시가전에서 3명을 죽이고 항복한 5명을 데려왔습니다.”
“당시 지휘를 맡은 사람에게 상을 내리고, 그 도적들은 죄다 목을 잘라서 거리에 내거세요.”
“저, 저 영….루….영..영주님?”
내 말에 시에리가 치고 들어왔다. 그녀는 내 옷깃을 잡고 조심스러운 어조를 통해 내 안색을 살폈다. 영주로 불러야할까 루시우스라고 불어야 할까, 잠깐 사이에 많은 고민을 한 것이 어조에서 느껴졌다. 나는 그녀에게 웃어주며 물었다.
“왜 그래요. 시에리?”
“그….. 대천신교의 교리에서는 죄인도 용서하는 것이라 하여, 갱생에 더 초점을 맞춘 벌을 내리는 것이…..”
조금 잘대해주면, 이렇게 선을 넘기 마련이다. 시에리는 내가 대천신교의 가르침보다는 잔인한 형벌에 중점을 둔 것이 다소 불만인 듯 했다. 영주의 지시사항에 대해 선 넘지말라고 다그쳐야 옳은 행동이었지만, 내가 시에리의 호감도를 관리해야 하는 이상 그런 언행은 삼가야 했다.
일단 시에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내가 대천신교의 남부 사제장이고, 바로 며칠 전에 아이라를 속죄의 행군을 통해서 갱생시킨 전력이 있었고, 바로 며칠 전에 시에리에게 사람이 어째서 반성하고 갱생해야 하는 지 알려주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와서 도적들의 면면도, 죄목도 살피지 않고 목을 잘라버리라 하니 시에리 입장에서는 위화감이 느껴질 법도 했다. 아마 나 말고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도둑들과 아이라의 처우가 다른 문제에 대해 의문을 품을 게 분명했다. 나는 시에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했다.
사실, 속죄의 행군을 하려면 못할것도 없는데, 이 게임에서 도적 새끼들은 야겜들이 그렇듯 간부나 두목급이 아니라면 여캐를 기대해선 안됐다. 신출내기 도적들이라면 아마 얼굴도 제대로 안나오는 엑스트라 새끼들일게 뻔했고, 나는 그런 새끼들을 벗겨서 길거리에 돌아다니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범죄잖아. 그것도 아주 치명적이고 끔찍한 범죄.
“당신 말도 일리가 있네요. 시에리. 제가 마을 사람들을 괴롭힌 도적들에 대한 증오에 휩싸여, 눈을 가리고 말았군요. 우선 도적들을 만나서 재판을 하도록 하죠. 역시 저는 당신이 있어야 돼요.”
하지만 나는 시에리에게 그런식으로 변명하지 않았다. 종교에 미친 년을 따먹으려면 나 역시 종교에 미쳐야 하는 법. 골수 대천신교 신자를 따먹으려면 나 역시 모태신앙이 되어야 했다. 이럴 땐 시에리에게 맞장구를 쳐주는 게 제일이었다.
시에리는 내가 머리를 쓰다듬는 게 기분이 좋은 지 강아지 같은 소리를 내며 작게 웃었다. 보통 여자들 머리 쓰다듬는 게 금기라고 하던데, 펌도 없고 고데기도 없는 세상의 종교인이라 그런지 내가 머리를 망가트려도 별로 신경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시에리 머리를 쓰다듬으며 정전기나 만들수는 없는 법. 나는 기왕 시에리랑 무엇인가를 한다면 아기 만들기를 하고 싶었다. 아기 만들기를 위해선 일단 이 도적들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로빈. 기다리세요. 그래도 재판을 한 번 해봐야 맞겠죠.”
나는 시에리와 함께 도적들이 묶여있는 마당으로 나갔다. 본디 법적으로 도적들은 그 죄의 경중을 물어 팔을 자르거나, 사지를 자르거나, 목을 잘랐다. 물론 그 충격으로 죽는 건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에 도적들의 사인 대부분은 형 집행 도중 사망이었다.
도적들은 저택 마당 한복판에 일렬로 앉아있었다. 나는 맨 끝에 앉아있는 도적의 머리를 발로 까서 줄줄 넘어트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도적들은 서로 눈을 굴리며 누가 먼저 배신할지를 겨루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중 맏이로 보이는 놈은 내가 나타나자 마자 머리를 박으며 외쳤다.
“영주님! 죄송합니다!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본디 배운 거 없고 무식한 놈이라 돈을 어떻게 버는 지 몰라서 도적질을 일삼고 말았습니다! 풀어주신다면,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군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런데, 당신은 정말 반성하고 있나요?”
“네! 영주님! 정말 반성하고 있습니다!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네. 로빈. 저 친구의 손을 자르세요.”
로빈이 기다렸다는 듯이 맏이를 끌고 나갔다. 맏이가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쳤지만, 로빈을 이길수는 없었다. 아무리 평소에 ‘로빈’하는 놈이라지만 영지 기사단장은 폼으로 딴게 아니라는 듯, 맏이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처럼 비명을 질러댔다.
“영주님! 영주니이이임!”
“저…..”
시에리가 내 옷깃을 붙잡자, 나는 시에리의 손을 꼭 붙잡아주며 말했다.
“시에리. 아이라는 그래도 미수에 그쳤잖아요. 하지만 저들은 지금까지 몇번이고 도적질을 한 도둑들이고, 또 단체로 활동하는 악랄한 범죄집단이죠. 무분별한 용서는 재범을 낳고 말아요. 우리가 종교인의 관점으로 세상에 접근한다고, 세상도 종교적으로 변하진 않아요. 아시겠나요?”
“영주님!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하겠습니다! 영주님!”
맏이의 비명이 마당 뒤편에서 울렸다. 나는 이제 남은 네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 중에서 서열이 두번째인듯한 놈을 골라서 물었다.
“당신은 반성하고 있나요?”
“반성한다고 해도, 손을 자르면 앞으로 뭘 먹고 살라는 겁니까?”
그는 말대꾸를 했다. 매우 건방진 새끼였다. 나는 옆에있는 다른 경비병에게 말했다.
“이 친구는 반성하지 않으니 사지를 자르세요. 반드시 반성할때까지 살아있어야 하니, 제가 옆에서 치료해주도록 하죠.”
“네?”
“뭐해요? 빨리 가서 톱 가져와요.”
“네, 네! 알겠습니다!”
둘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당당한척, 쫄지 않은 척을 하고 있었다. 시에리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들어보세요. 시에리. 죄를 저지른 사람은 그 죄의 무거움을 알아야 해요. 그래서 법이 있는거죠. 모든 사람을 신이 용서해줄 수 없기에, 왕이 법을 만들고, 우리가 법 아래에서 그들을 보살피는 거죠. 저 도적은 지금, 반성할 마지막 기회를 놓쳤으니 법대로 하는 겁니다.”
병사가 거대한 톱을 가져왔다. 시에리는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렸다. 이런 잔인한 광경을 보고 싶어하진 않는 것 같았다. 둘째는 이 시점에서 슬슬 자신이 버티는 게 무익하다고 느낀것 같았다. 그는 몸을 덜덜 떨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반성하고 있나요?”
“….네.”
둘째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지를 자르도록하죠.”
둘째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병사도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말했다.
“반성하셨으니까. 벌은 달게 받으셔야죠. 저택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는 건 좋지 않으니 재갈을 물리도록 하겠습니다.”
시에리가 고개를 돌린 채 눈을 질끈 감고 기도하고 있었다. 심약한 그녀의 심정으론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이 큰 어려움으로 다가올게 분명했다. 나는 시에리를 쳐다보다가 다시 말했다.
“뭐, 오늘만큼은 특별히 톱으로 써는 건 봐주도록 할게요.”
뒤에서 로빈이 다가왔다. 로빈은 갑옷에 묻은 피를 수건으로 닦아내고 있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내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팔을 자르는 중에 죽고 말았습니다.”
“신께서 데려가셨군요.”
둘째도, 남은 놈들도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다. 나는 시에리와 병사들의 모습을 한 번 살피고, 다시 말했다.
“그럼 이렇게하죠. 주동자가 죽었으니, 그 친구가 당신들의 모든 죄를 가지고 갔다고 치자구요. 한 사람의 죄인이 비참하게 죽었으니 여러분도 여러분이 어떤 죄를 저지르고 있었는 지 대충 깨달으셨을거라고 믿습니다.”
시에리가 그 말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내 결정에 다소 안도한 모습이었다. 그녀가 소꿉친구로 알고지내던 나는 이런 사람이었겠지. 하지만 나는 무책임한 선의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도적들이 들어온 적이 없어서 그런지, 내 자비로운 결정에 로빈도 병사들도 다소 안도한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도적들을 바라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