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43
“정말 아름다운 목소리에요.”
“그러게요.”
로빈은 여전히 헤벌쭉한 얼굴로 로잘린 유바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노래를 듣다말고 내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영주님. 저 사랑에 빠진 것 같습니다.”
드디어 로빈이 유부녀에서 벗어나는 순간인가, 나는 마부에게 물었다.
“마부. 로잘린 유바 영애는 결혼을 했나요?”
“아니요. 아직 미혼입니다. 북부로 장가들겠다는 귀족들이 없었다더군요.”
로빈의 축처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습니까….”
나는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아니 씨발 로빈. 왜 아쉬워해요?”
“네? 아 아닙니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거 위험한 새끼였네. 진짜로.
이브는 우울하다. 루시우스가 무도회장에 간 이후 이브의 심기는 매우 불편했다. 저택의 모든 사람들이 이브가 저기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만큼 우울했다. 처음 저택에 올 때는 마치 잘 벼린 칼날 같아서 건드리기 힘들었던 그녀는, 최근 갈대같이 흐느적거리며 무기력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하…..”
이브는 오늘도 사무용 책상에 걸터앉은 채 펜대를 굴리고 있었다. 아이라가 그 모습을 보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시에리가 있었다면 집무실 책상에는 앉는 게 아니라고 한마디 했을테지만, 지금 이 저택에서는 이브를 막을 사람이 없었다.
“안좋은 일 있으세요?”
“아니.”
이브는 안좋은 일이 있다고 단언하는 얼굴을 한채 어설픈 거짓말을 했다. 사실 이브가 우울해할 이유는 없었다. 수도 무도회에 루시우스는 원래 갈 생각이 없었고, 무도회에 이브가 가면 안되는 이유를 스스로도 납득하고 있었고, 무도회에 갈 기회를 양보한 것도 자신이었으니까.
솔직히 이브는 무도회에서 누가 자신을 비웃는다면 참을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 누구보다 인내심많고 다정다감한 시에리가 루시우스와 함께 무도회에 가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이브는 혀를 차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 오늘은 끝인가요?”
누구보다 퇴근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라가 활기찬 얼굴로 물었다. 이브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남은 건 신랑이 돌아와서 하겠지.”
일을 대충 끝내고 밖으로 나와 수영장으로 향했다. 셀루가 수영장 속을 헤엄치다가 이브를 쳐다봤다. 셀루는 이브의 양어머니였다. 노예시장에서 탈출한 이후, 인어들이 사는 섬이 있다는 소문 하나만 믿고 달려왔던 그녀를 무리에 받아들여준 인어.
“요즘 표정이 안좋네.”
셀루가 말했다. 이브는 그 말에 눈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내심 찔렸던 것이 밖으로 튀어나와 날카로운 대응을 만들었다.
“씨발 보이는 사람마다 다 그 소리야. 내가 그렇게 죽상이야? 어? 나 평소에도 죽상 아니었어?”
“평소에는 누구 하나 죽이고 온 얼굴이었는 데, 요즘엔 누구 죽은 얼굴인걸.”
셀루는 이브가 이렇게 급발진 하는 것에 익숙한 듯, 말했다. 이브는 셀루의 그 여유로운 태도에 다시 화내는 걸 포기했다. 애초에 누구한테, 뭘 화내는 지도 헷갈렸다.
이브는 신발을 벗고 수영장에 발을 담갔다. 차가운 물 속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셀루는 부드럽게 물 속을 헤엄치며 가끔씩 인어들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콧노래를 불렀다.
“엄마는 꼭 오리같아.”
“오리?”
셀루가 물 속에서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물었다. 셀루도 오리가 뭔지는 알고 있었다. 배에 식량으로 오리고기나 닭고기들을 실은 경우가 자주 있었기 때문에 직접 본적은 없더라도 먹어본 경험은 많았다.
“갑자기 왜 오리가 나와? 배고파?”
“아니, 그냥.”
이브는 무릎을 문지르며 말했다. 원치않는 임신으로 태어나서 원치않는 삶을 살다가 바다로 내쫓기듯 도망쳐왔다. 사람들을 죽이다가 우연히 루시우스를 만나 결혼을 하고, 지금은 영주 부인이었다. 하지만 이브는 지금 자신이 정말 행복한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브는 셀루가 오리같다고 생각했다. 수영장에서 몸을 헤엄치며 여유롭게 살아가는 오리. 노예 시장 근처 공원에는 항상 호수 위를 헤엄치는 오리가 있었다. 인어였던 엄마는 이브에게 ‘인어들은 바다에서 저 오리만큼 자유롭게 헤엄친다’고 말했지만. 막상 오리들보다 자유롭게 사는 인어는 없었다.
모두 인간을 두려워하고, 매일매일 인간들을 피해다니는 삶의 연속이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자신에게 가해지는 시선까지도 느긋하게 넘겨버리며 증오조차 버린 것 같은 셀루의 모습이 이브에게는 오리처럼 보였다.
“엄마는 화 안나?”
“화?”
“엄마는 원래 인어섬의 우두머리였잖아. 인어들의 왕이었는데, 지금은 내 신랑한테 부인으로 제대로 불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행동에 자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엄마한테는 최악의 삶 아니야?”
셀루는 이브가 묻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혀를 쭉 내밀며 웃었다.
“헤흐. 그렇게 묻는 너는 나보다 더 불행해보이는 걸.”
“씨발. 말돌리지마. 엄마. 진지한 이야기중이잖아. 그리고 내가 왜 불행해? 나 존나 행복해. 우리 신랑이 나 사랑해주고, 영주부인도 됐고 사람들 죽인 것도 처벌 안받고. 존나 좋아.”
“그런데 무도회는 못가지.”
“씨발 또 또. 애….아니 좆같은 소리한다. 엄마. 내가 양보한거야. 어? 시에리가 가는 게 더 나으니까. 응?”
“그런데 가고 싶었잖아. 너 인어섬에 있을 때도 가끔씩 인간들 이야기를 했었어. 걔들은 맛있는 것도 먹고 춤도 화려하게 추고 논다는 데, 인어들은 왜 재미없게 노래만 부르냐고 그랬지.”
“왜 또 옛날 이야기를 하는데. 어?”
“왜 네가 무도회에 못가는 게 화가날까?”
셀루가 물었다. 이브는 셀루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셀루가 히죽히죽 웃으면서 이브의 볼을 콕 찔렀다.
“네가 인간이기 때문이야.”
“….난 인어야.”
“그러면 인간들에게 소외받는 걸로 화낼 이유가 없지. 엘프들이 널 배척한다고 화가나? 수인들이 널 무리에서 배척하면 분노할거 같아? 아니지. 납득하겠지. 하지만 넌 지금 인간들과 같이 무도회에 가고싶은거야 그렇지?”
“아니라니까?”
“그럼 뭔데?”
“씨발, 나는 그러니까, 그……”
이브가 쩔쩔맸다. 손으로 물길을 휘저으며 할말을 찾자 셀루가 더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며 물었다.
“그래서 뭔데?”
“아니 그러니까…..그….”
셀루가 이브의 무릎을 문지르며 물었다.
“뭘까?”
그리고 그 말에 이브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진짜! 신랑이랑 춤추고 싶었다 왜!”
그 말에 셀루가 씩 웃으며 말했다.
“헤흐.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엄마로서 기뻐.”
이브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씨발. 낯간지럽게 그러지마. 응?”
“네 남편은 나랑 섹스하면서 엄마라고 불러도 되냐고 묻던데.”
“….그 씨발놈이 진짜.”
이브는 루시우스가 무도회에서 돌아오면 이 문제에 대해 한 번 따져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인어 모녀가 이렇게 대화를 하는 중에, 엘시는 기사단원과 함께 마을 순찰을 돌고 있었다. 워낙 말이 없는데다가, 감정 표현도 적은 편인 엘시였기에 기사단원들은 엘시와 함께 순찰을 도는 걸 매우 부담스러워 했다. 무슨 말을 해도 단답이나 묵묵부답이었고, 일을 시키라고 말은 하는 데 표정변화가 없으니 일을 시켜도 되는 건가하는 의구심이 계속 솟아났기 때문이었다.
“오늘 날씨가 좋지요?”
오늘 엘시와 함께 순찰을 도는 기사단원은 일단 친해져볼 요량으로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엘시는 귀를 쫑긋 세우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것 같다. 비도 안올거고.”
“이야, 날씨를 맞추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대단하십니다.”
“별거아니다.”
엘시에게 지금 기사단원이 한 칭찬은 인간에게 ‘너는 손으로 물건을 집을 줄 아는 구나! 대단해!’라고 칭찬하는 느낌이었기에, 그녀는 별 감흥없이 대답했다. 한 편으로는 루시우스가 이런 재주에 대해 칭찬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빨래 말릴 때 편하시겠어요.”
“그렇다.”
기사당원은 다시 입을 다물기로 했다. 차라리 로빈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더 말을 잘했을텐데. 엘시는 기사단원이 입을 다무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이 몰린 지점을 가리키며 물었다.
“사람들이 모여있다.”
“가보죠.”
기사단원은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서둘러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하얗게 분을 칠한 사람들이 약병을 들고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