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49
바르바 후작은 내 인사에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고개를 삐딱하게 꺾은 채 입을 열었다.
“할 말은 편지로 했네만.”
문명인은 도끼로 머리가 쪼개질 일이 없기 때문에 야만인보다 무례하다고 했던가. 로잘린 바르바 후작은 자신이 결코 죽지 않을거라고 믿는 인간처럼 굴었다. 나는 그 믿음을 바르바 후작의 팔 다리와 함께 박살내주고 싶었지만, 한 번만 더 참아주기로 했다.
이건 내 개인 문제가 아니라 로빈의 결혼 문제였으니까. 인내심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었다.
“너무 단호한 내용이라 저도 읽으며 조금 놀랐습니다. 한 번만 더 생각을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더 할 이야기는 없네. 내 손녀를 어찌 그대같은 인간에게 줄 수 있단 말인가?”
그 말에 주변 귀족들이 소란스러워 졌다. 내가 이제 뚱녀 페티쉬까지 섭렵하려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바르바 후작님. 표현을 정확하게 해주시지요. 제 아내도 옆에 있는데, 제게 로잘린 유바 영애를 주신다니요. 저는 제 기사단장인 로빈과 로잘린 유바 영애의 혼인을 주선하고 싶은 겁니다.”
“그렇게 말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기사는 본디 주인의 성정을 닮는 법. 그대의 편력이며 경력이 그리 깨끗하지 못한 사실을 본인도 알고 있을텐데, 어찌 그런 요구를 하는가?”
바르바 후작이 내 여성 편력을 걸고 넘어졌다. 인어에다가 엘프, 남색에다가 수녀까지 다 따먹고 다니는 인간 밑에 있는 기사단장이 어디 멀쩡한 인간이겠냐는 의미였다. 나는 말했다.
“제 기사단장 로빈은 로잘린 유바 영애를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하고 있습니다.”
“말은 그렇게하면서 결국 이권을 챙기고 싶은 것이겠지. 지금껏 내 손녀에게 다가오는 짐승놈들은 전부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손녀 분이 참 아름다우십니다. 손녀 분이 참, 매력적이십니다. 내 유바 이전에 딸들을 시집보냈고, 손녀들을 시집보냈지만, 그 어느 누구도 내 손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했지.”
“제 기사단장은 저랑 다르게 아주 순박하고 순진한 사람입니다. 바르바 후작게서 원하시는 어떤 용맹함이나, 강인한 결단력을 갖추지는 못해도 로잘린 유바 영애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열정만큼은 풍부한 사내입니다.”
“이 이야기를 계속할텐가? 나는 영양가를 느낄수가 없군. 유바의 신랑으로는 명문가의 도련님이 제격이야. 내 손녀만큼은 내가 죽기 전에 가장 행복한 결혼생활을 만들어줄 생각이네.”
“그러면 역시 로빈이 제격입니다.”
“끝이 안나는 군……나는 그럼…..”
“바르바 후작님. 돈많고 지체높은 귀족 도련님이 정말 로잘린 유바 영애를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어할까요?”
바르바 후작이 눈을 찌푸렸다. 그는 주변을 한 번 슥 훑어보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내게 물었다.
“무슨 의미지?”
“말 그대로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어떻게 구분하실 겁니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로 증명할 수 있는거라면, 로빈도 얼마든지 로잘린 유바에게 세레나데를 불러줄겁니다. 돈을 사랑의 척도로 삼으실거라고는 믿지 않겠습니다. 바르바 후작. 최소한 로잘린 유바 영애 본인이 로빈을 만나보고서 결정하게 해주지 않겠습니까? 후작께서도 사랑을 해보셨을 겁니다. 불완전 연소된 사랑은 끊임없이 불씨가 일어서 사람을 괴롭히죠. 로빈이 타죽지 않게 한 번만 기회를 주시죠.”
“흥.”
바르바 후작이 코웃음을 쳤다. 나는 진짜 수도로 정수리를 한 방 갈겨버릴까 고민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신장 차이가 너무 커서 동작이 티가 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바르바 후작은 말했다.
“좋네.”
“네?”
“한 번만 만나볼 기회를 주지. 내 손녀를 어떻게 구슬릴지는 모르지만, 그대가 여기까지 와서 내게 간청하는 걸 봐서 한 번 기회를 주겠단 말일세. 하지만, 명심해두게 내 손녀의 입에서 좋다는 말이 나오지 않으면 끝이네. 두 번 다시 이 일로 나를 귀찮게 굴지 않는 걸세. 알겠나?”
“명심하겠습니다.”
“저번에 편지 보낸 주소로 따로 연락을 넣겠네. 그럼…..”
그렇게 그 날 무도회는 춤 한 번 추지 않고 끝났다. 시에리는 불안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정말 괜찮을까요?”
“괜찮을거에요.”
나는 다 계획이 있었다. 나는 바로 여관으로 돌아갔다. 로빈은 헤벌쭉한 얼굴로 꽃다발을 손에 들고 1층에 앉아있었다. 얼굴만 보면 로잘린 유바 영애를 보러 공연장에 간게 아니라 로잘린 유바 닮은 창녀랑 거하게 한 판 뒹굴고 온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로빈. 잠깐 저랑 이야기 좀 하죠.”
“네? 네 알겠습니다.”
로빈은 잠에서 막 일어난 사람처럼 고개를 휘적휘적 저으며 내 말에 대답했다. 나는 로빈을 끌고 2층으로 올라갔다. 남들이 듣지 않는 걸 확인하고 작은 목소리로 내 계획을 설명했다.
“그, 그런….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이게 최선이에요. 공연장에 가서 얼굴은 익혔죠?”
“오늘 처음가서, 아직 그….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계속 공연장에 가서 로잘린 유바 영애랑 친해지세요. 계획 부분은 저한테 맡기시고, 꼭 약속 장소에 나오시고요. 아시겠나요?”
“네, 네! 알겠습니다.”
대화가 끝나고 나서, 나는 시에리를 두고 숙소를 나섰다. 이제 막 술 한잔 하려는 마부를 호출하자 그는 물에 젖은 강아지처럼 몸을 축 늘어트린 채 마차에 올랐다.
“마부. 제가 안주 비싼거 사줄테니까 부탁할게요.”
“아이구, 여부가 있겠습니까.”
전에 고용했던 마부 새끼와 다르게 이번 마부는 술만 사준다고 하면 개처럼 나를 따랐다. 그래서 추가금이 살짝 더 들긴 했지만, 시간 외 잔업을 시키기 아주 유용했다. 내가 향한 곳은 에이에이와 에리나가 있는 숙소 였다.
특별히 초대받은 용사님과 엘프 공주의 숙소답게 으리으리한 자태를 자랑했다. 나는 대천신교 남부 사제장이라는 직함으로 가볍게 여관 앞 경비를 통과하고 에이에이와 면담을 요청했다.
1층에서 잠시 기다리자, 에이에이가 자신의 귀족복식을 가다듬으며 내려왔다. 그녀는 자신의 옷차림이 적응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가 식탁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걸 보자 흠칫하며 뒷걸음질 쳤다.
“아니 용사님 왜 두려워하시나요?”
“…..아니거든요.”
에이에이는 내 앞에 자연스럽게 앉았지만 나와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놀려주고 싶었지만, 당장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용사님. 도와줄 일이 있어요.”
“뭔가요?”
내가 진지한 어조로 말하자 에이에이도 표정을 바꾸고 진지하게 내 말을 경청했다. 아무리 얄미운 사람이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준다. 그게 그녀가 가진 최고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강도질 좀 안할래요?”
에이에이는 내 말에 일순간 당황하더니 약간 불쾌한 낯빛으로 표정을 물들였다. 그녀는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격하고 강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저를 뭘로 보시고 그런 제안을 하시는 거죠?”
듣자마자 좋아요 라고 말했으면 내가 먼저 에이에이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을거다. 이런 일에 아주 강직하게 대응하는 그녀기 때문에 나는 부탁을 한 것이었다. 나는 손을 저어서 에이에이를 다시 앉도록 만들었다.
“진정하세요 용사님. 제가 그…. 나쁜 범죄적인 제안을 하려는 게 아니니까요.”
“……사제님이 대체 뭘 생각하시는 지 모르겠어요.”
에이에이는 내 손짓에 마지못해 앉았다. 그래도 대천신교의 남부 사제장이라는 일말의 위명과 실낱같은 나의 도덕심에 조금이나마 희망을 건 모양이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아직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내 계획을 설명했다.
“네?”
에이에이가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외치는 소리에 식당에서 일하던 종업원이 부엌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우리를 쳐다봤다. 내가 손을 내젓자 종업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라졌다. 나는 다시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용사님 목소리가 너무 커요.”
“아니, 그…. 그런 작전이 먹힐까요?”
“확실하게 먹힌다고는 할 수 없어요. 그냥,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죠.”
에이에이는 불신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제안한 일은 무장강도 위장이었다. 구체적인 계획은 이랬다. 로빈은 계속해서 로잘린 유바의 공연에 참가하여 얼굴을 비춘다. 로잘린 유바가 로빈과 얼굴을 익혀서 익숙해졌을 때 쯤, 나와 용사가 강도로 위장해서 로잘린 유바를 습격한다. 그 때 적절하게 나타난 로빈이 나와 에이에이를 물리치고 로잘린 유바 영애를 구해준다.
그렇게 서로 호감을 쌓은 두 사람.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에 로빈과 로잘린 유바 영애는 맞선으로 서로 마주하게 되고,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구닥다리였지만, 구닥다리 세계관에서는 정통이라고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로잘린 유바 영애는 착하다고 소문이 자자했고, 바르바 후작의 뉘앙스를 보면 매번 싸고돌았으니 충분히 먹힐만 했다.
“정말 괜찮을까요?”
“저랑 용사님이 힘을 합치면 나라의 국고도 털 수 있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니, 그런 쪽으로 말고요. 일이 커지면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괜찮을거에요. 저만 믿으세요.”
커질 일도 없었다. 로잘린 유바 영애한테 시비를 걸다가, 로빈한테 대충 져주고 도망치면 끝이었으니까. 우리가 로잘린 유바 영애를 납치하는 것도 아니었고,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며 주의를 끌일도 없었다. 레벨 50이 넘는 사제랑 용사를 왕국 경비원이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에이에이는 영 이 작전이 못미더운 듯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에이에이와 눈을 마주친 채 씩 웃어줬다. 에이에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로빈 씨라면, 저도 전에 한 번 얼굴을 뵌 적이 있으니까요. 그 분의 연애 사업을 도와주고 싶으시다는 데, 저도 협력해야죠.”
“잘 생각하셨어요.”
내가 손을 내밀었다. 에이에이는 몸을 움찔하고 살짝 뒤로 물러났다. 나는 살짝 기분이 상한 듯 물었다.
“왜 그러세요? 저랑은 악수하기도 싫으신건가요?”
“아니, 그….. 그냥 악수만 하는 거죠?”
이 년은 내가 악수만 해도 상대를 임신시키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내가 아무 생각없이 손을 내밀었을 뿐인데, 에이에이는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얼굴을 붉히다가 마지못해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았다. 오랜 세월 칼을 잡아서 굳은 살이 박히고 거칠었다.
자세히보면 팔에도 근육의 윤곽이 유연하게 드러났다. 나는 팔부터 쇄골에 이르는 라인을 훑어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이에이가 말했다.
“그럼, 시작할 때 연락 주세요.”
“알겠어요. 참, 에리나 공주님은 잘 지내시나요?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싶은…..”
“안돼요!”
에이에이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소리를 빽 질렀다. 종업원이 다시 화들짝 놀라서 주방에서 고개를 내밀어 밖을 살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손을 내저었고 종업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에이에이는 본인이 소리지르고도 당황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더니 우물쭈물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제, 제 아내에요. 제 아내라구요. 제가 만일…. 사제님의 아내 분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한다면 어쩌실건가요?”
“이야기만 나누는 게 뭐가 문제죠?”
“아니, 그러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고! 제가 만일….그….이상한 짓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