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51
에이에이는 이 작전 자체가 부실하게 느껴지는 듯 했다. 지고지순하고 운명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그녀 입장에서는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강제로 돌리는 전략이 마음에 안들어보이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로빈과 로잘린 유바 영애가 서로 한눈에 반할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이건 유행이라고요. 용사님. 아시겠어요? 이런 방식으로 결혼한 사람들이 전부 입을 닫고 있어서 모르는 거지, 아주 전통적인 방식이에요.”
아무튼 창작물 속에서는 유행인 방식이었다. 사실 내 머릿속에서는 30대 아재인 로빈이 20대 파릇파릇 꽃다운 처녀인 로잘린 유바를 유혹할 방법이 이거 말고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로잘린 유바가 생긴게 돼지라고 취향도 좆같다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전통적인 방식이라니…… 알겠어요. 일단 해볼게요.”
“그래요. 그럼 여기서 대기하는 걸로 하고, 이제 자세한 사항은 다음에 다시 한 번 만나서 좀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 데, 어떠세요?”
“그러죠.”
에이에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와 에이에이는 후일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내가 돌아오자, 시에리가 책을 읽으며 의자에 앉아있었다. 숙소 내에 있는 흔들의자를 흔들면서 맨발로 책상을 받치고 있었다. 나는 시에리의 발을 콕 찌르며 물었다.
“시에리. 뭐해요?”
“꺅? 루, 루시우스. 놀랐잖아요.”
“그렇게 멍하니 있으면 누구든지 놀래키고 싶어질거에요. 그래서 뭐하고 있어요?”
“책을 읽고 있었어요. 용사님은 어떻게 잘 지내고 계시던가요?”
“네.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더라고요. 제 일을 도와주기로 합의했어요.”
“그런가요……”
시에리는 에이에이가 흔쾌히 도와주기로 했다는 말에 살짝 침울해져서는 고개를 축 늘어트렸다. 나는 시에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물었다.
“시에리. 왜 그래요?”
“제가 루시우스에게 더 도움이 되어야 하는 데… 저는 잘하는 게 없잖아요.”
아무래도 주변에 강자들만 있다보니 의기소침해진게 분명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시에리는 그냥 npc 중 한명일 뿐이었고, 다른 애들은 전부 주인공 동료로 설정된 강자들인데, 시에리가 에이에이나 나를 뛰어넘는 강자가 되는 건 아이라가 갑자기 마법을 각성해서 소야를 쓰러트리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시에리가 왜 잘하는 게 없어요. 항상 저를 웃게 만들어주잖아요.”
“제가요?”
“네. 시에리가 있으면 저는 웃게되고, 또 오늘 하루도 좋은 사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안식처가 되어주는 거죠. 시에리. 꼭 힘이 있어야만 도움이 되는 게 아니에요.”
시에리는 내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 몇마디 읊조리더니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죠…. 그렇네요! 루시우스. 제가 너무 의기소침해 있었나봐요.”
“그렇죠? 시에리. 항상 제 옆에서 저를 지켜줘야 돼요?”
“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로빈이 돌아왔다. 로빈은 오늘도 하얗게 탈색된 표정으로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최근 들어 로빈의 이런 표정만 보다보니 원래 로빈이 어떤 얼굴을 가지고 있었는 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꺼림칙함을 숨기고 씩 웃으며 로빈에게 물었다.
“로빈. 어땠나요?”
“오늘도 환상적이었습니다. 로잘린 유바 영애가 용사를 구하기 위해 천사로 변신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영주님도 직접 보셔야 할 겁니다. 그 장면의 감동은 제가 몇번이나 공연을 봐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로잘린 유바 영애와 말은 걸어봤나요?”
“아, 말은 걸어보지 못했습니다. 공연은 자주 보러 가서 제 얼굴을 기억해주시는 것 같긴 합니다만…..”
“얼굴을 기억해줬다고요?”
“네. 공연 시작 전에 제게 손을 흔들어 주셨습니다. 씩 웃으면서요. 헤헤….”
로빈은 멍청하게 웃으며 로잘린 유바 영애의 손이 얼마나 포동포동하고 매끄러운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남의 손에 대해 듣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의 말을 자르고 말했다.
“앞으로 며칠 동안은 계속 그렇게 공연장에 나가서 얼굴을 익히세요. 너무 무례한 짓은 하지 말고. 너무 티나는 짓도 하지 않는데, 대신 얼굴은 꾸준히 비춰주면서 로잘린 유바 영애를 좋아한다는 걸 어필하세요. 아시겠어요? 생전 처음보는 사람과는 사랑에 빠지지 않아요. 로빈은 일단 로잘린 유바 영애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구요.”
“명심하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로잘린 바르바 후작의 이름으로 편지가 도착했다. 앞으로 사흘 뒤 자신의 수도 저택에서 로빈과 로잘린 유바 영애가 만남을 가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사흘.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이틀 간 나는 로빈의 복장과 행동에 대해 코치를 하고, 남은 시간은 시에리와 뒹굴면서 보냈다. 시에리가 무도회에 참가하기에는 자신감을 많이 잃은 상태라 무도회에는 가지 않았다. 저녁에는 몰래 밖으로 나가서 로잘린 유바 영애의 귀가 루트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수도의 치안이 그리 나쁜 편이 아니기 때문에 로잘린 유바 영애도 귀가에 그리 큰 보안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았다. 완벽하게 로잘린 유바 영애의 귀환 루트를 분석하는 중에 로빈은 로잘린 유바 영애와 인사 한마디를 나눴다고 했다. 공연을 보러 맨 앞자리에 앉자 로잘린 유바 영애가 자신을 알아보고 ‘또 오셨네요.’ 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로빈은 자신이 너무 멍청하게 보이지는 않았는 지 걱정하고 있었다.
“괜찮을거에요. 로빈. 그보다 오늘 밤이에요. 내일 만남이 있으니, 적어도 오늘 밤에는 계획을 실행해야 한다구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순진무구한 영애를 속인다는 게 저는…..”
“이건 그…. 전통 같은거에요. 아시겠어요?”
“전통인겁니까?”
“아마도요?”
나는 갈등하는 로빈을 적당히 설득하고 계획에 나섰다. 약속 장소에 나오니 벌써 에이에이가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에 쓰던 검이 아니라 철물점의 싸구려 검을 두자루 차고 있었다. 그녀는 한자루를 내게 넘기며 말했다.
“일찍 오셨네요?”
“용사님도요. 그런데, 오늘따라 표정이 좋지 않으시네요 용사님.”
“그게…. 요즘 에리나가 표정이 좋지 않아서요. 무슨 일 있냐고 물어도 대답도 잘 안해주고, 좀 우울해보였어요. 자꾸 사랑해달라고 말해달라 하고, 원래 여자는 임신하면 우울해지나요?”
“저는 여자를 임신시켜본적 없어서 모르겠는걸요.”
에이에이는 내 발언에 할 말이 많아보였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다. 내 뒤를 따라서 로빈이 걸어왔다. 그는 멋들어진 갑옷을 입었고 머리는 과하다 싶을만큼 뒤로 넘겨서 스와핑하러 온 30대 서양인 같은 인상을 주고 있었다.
나는 복면을 쓰면서 다시 한 번 계획을 설명했다.
“자, 보세요. 저랑 용사님이 저 쪽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로빈은 여기, 좀 떨어진 이 곳에서 대기를 해주세요. 아마 마차가 좀 멀리서 올텐데, 우리가 습격해서 경호원들을 다 기절시키고 나면 로빈 당신이 나타나서 우리를 쓰러트려 주시면 돼요.”
“그….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잘 됐으면 좋겠네요.”
에이에이가 불안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뜻에서 에이에이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잘될거에요. 그럼 움직이죠.”
우리는 당초 계획한 대로 빠르게 흩어졌다. 나와 에이에이는 박스가 쌓여있는 뒷골목에 숨었고, 로빈은 우리가 보이는 상가 뒷골목에서 대기했다. 에이에이랑 바짝 붙어있으니 달콤한 향기가 느껴졌다.
나는 코로 깊게 숨을 들이쉬며, 칼을 바로 잡았다.
“오고 있어요.”
에이에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 에이에이는 조심스럽게 칼을 뽑아들고 골목에서 튀어나가려고 했다. 그 순간.
“으랴아아아!”
“우아아아악!”
어디선가 복면을 쓴 괴한 10 명 정도가 나타나서 마차를 습격하기 시작했다.
뭐야 씨발
“뭐죠?”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칼을 뽑아들던 에이에이도 나도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로빈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서 서로 얼굴을 마주볼 뿐이었다. 대체 누가 로잘린 에바 영애를 이 시간에 습격하는 거지?
로잘린 바르바 후작은 엄격한 태도와 강직한 성품으로 인해 적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수도에서 떼로 습격하는 건 선 넘은 행동 아닌가? 에이에이가 칼날을 바깥으로 살짝 빼며 내게 물었다.
“어떻게하죠?”
그녀 역시 이 상황이 혼란스러워 보였다. 로빈은 칼을 집어든 채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복면을 다시 제대로 쓰고 에이에이에게 복면을 쓰도록 했다. 일단은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호위병들은 이를 악물고 습격자들의 공격을 버텨내고 있었다. 병사들의 수준이 매우 높아서 그런지 수적으로 열세였음에도 잘 버텨내고 있었다. 하지만 중과부적이라는 말이 있듯, 점차 마차를 둘러싼 습격자들에 의해 구석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이름: 카를
직업: 랜돌프 가문의 병사
레벨: 12
스텟
힘: 15
민첩: 10
지능: 15
행운: 8
“응?”
이름: 마리아
직업: 랜돌프 가문의 기사
레벨: 28
스텟
힘: 30
민첩: 26
지능: 20
행운: 10
“랜돌프 가문?”
나는 습격자들의 상태창을 확인하던 중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습격하는 놈들은 암살자나 강도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전부 랜돌프 가문 소속의 병사와 기사들이었다. 뭐지? 대체 뭐지? 내가 칼을 들고 밖으로 나가려는 그 순간 어느 사내의 당당한 외침이 밤거리를 호령했다.
“아아! 로잘린 유바 영애! 위험에 처했구려!”
과장된 연극톤의 목소리와 함께 금발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훤칠한 키에 머리를 올백으로 빗어넘기고, 연미복을 입고 있었다. 손에는 레이피어를 들고 있었는데 살면서 단 한번도 검을 집어본 적이 없는 듯 폼이 어설프기 그지 없었다.
“대체 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