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62
앤의 비명소리가 하늘 높이 울렸다. 한 편, 대륙 어딘가에선 루시우스와 시에리를 태운 마차가 영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마차가 수도를 벗어난 시점에서 나는 머리를 쓸었다. 수도의 거대한 성문이 육중한 굉음을 내며 닫히는 게 보였다. 한 일은 많이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참 파란만장한 수도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로빈의 혼담도 성공했고, 시에리랑 미완성이긴 해도 여기사 플레이도 했으며, 수도 귀족가문들 사이에서 내가 불륜남이라는 좆같은 소문이 퍼졌다.
물론 아무도 나를 불륜남이라고 고발하지 않았으니, 이 건으로 탄핵되거나 어떤 처벌을 받을 일은 없었다. 하지만 영원히 내 편일줄 알았던 왕마저도 ‘사생활을 자중하라’라고 꼽줄 정도니, 왕도에서 내 이미지는 엘프 망나니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다.
에이에이와 에리나는 그 이후로 서로 원만하게 잘 해결한 모양이었다. 밤 중에 두 사람이 침대에서 뭘 했는 지는 내 알바 아니었지만, 두 사람이 서로의 성기를 애무해주는 광경을 상상만해도 나는 하반신에 힘이 들어갔다.
내 상상에 확실한 양념을 더하기 위해 돌아가기 전 에이에이랑 에리나에게 작별인사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둘 다 왕국으로 급히 돌아갔다고 하여 만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이유로 돌아갔는 지는 알 수 없었으나, 다음에 만날 때까지 몸조리나 잘하길 빌 뿐이었다.
내가 엘프 왕국 던전에 들어가는 이상 금방 만날테니까.
시에리는 어젯밤의 격렬한 정사의 여파로 내 옆에서 고개를 푹 숙인채 잠들어있었다. 나는 시에리의 무릎을 매만졌다. 시에리의 무릎은 말랑말랑하고 하얘서 만지는 재미가 있었다. 치마를 걷어올리고 만지다보면 어느새 빨갛게 물들거나 시에리가 깨서 나와 투닥거리곤 했다.
한참 동안 시에리의 무릎을 고무찰흙처럼 주물럭거리다가 나는 창 밖을 바라봤다. 창문 밖에는 로빈이 코미디 영화에 나오는 바보 캐릭터 처럼 헤실헤실 웃으면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로빈.”
“아, 네!”
로빈은 군기가 바짝 들어가게 대답하면서도 웃음꽃을 지우지 못했다. 나는 그런 로빈을 혼낼 생각이 없었다. 영지에 들어가서도 계속 이런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기분이 그렇게 좋나요?”
“네 좋습니다! 영주님께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다행이네요. 하지만, 제가 이렇게 노력한만큼, 로빈 당신도 페타 가문의 기사로서 최선을 다하셔야 됩니다. 아시겠나요?”
“네! 알겠습니다!”
로빈이 우렁차게 외쳤다. 로빈의 목소리가 멀리 멀리 퍼져나가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수도에서 돌아가는 길에는 아무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중간 중간 도적단이 등장해서 목을 내밀거나, 죽고싶어하는 노상강도가 내 메이스에 얼굴을 갖다대는 등의 사고가 있었지만, 그 외에 특별한 일은 없었다. 나는 매 사건마다 죽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시에리를 달래주고, 또 매 번 열심히 나의 전투 보조원 겸 호위로서 활약하는 로빈을 격려했다.
여정이 반 이상 지났을 무렵에는 나도, 로빈도 시에리도 몸이 달아서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법 오랜 시간 영지를 떠나 있었기에 하루 빨리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영지 하나 하나를 지날 때 마다 시에리는 발을 동동 굴러댔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영주님도 빨리 돌아가고 싶으시죠?”
“그럼요 시에리.”
나는 시에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시에리는 강아지처럼 내 몸에 파고들어서 가슴에 얼굴을 비벼댔다. 그러다가 나를 껴안고 조용히 잠들고, 나 역시 시에리에게 기댄채 깊이 잠들었다. 그리고.
“믿으으으으으으으음!!”
“뭐, 뭐야 씨발!”
어디선가 괴성이 들렸다. 길 한복판에서 들리는 게 분명했다. 마차가 멈추었고, 로빈이 다소 황당한 표정으로 시선을 정면에 두고 있었다. 시에리도 덩달아 잠에서 깬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로빈 무슨 일이죠?”
나는 잠에서 깬 짜증을 애써 억누르며 로빈에게 물었다. 로빈이 대답하려는 찰나 두번째 외침이 들려왔다.
“희마아아아아아아앙!!”
“아니, 씨발 뭐야.”
나는 참다 못해서 마차에서 내렸다. 로빈에게 설명을 듣기보다는 내가 직접 확인하는 게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마차에서 내린 내 눈 앞에 보이는 건 정말이지 괴상한 광경이었다. 한 대머리 사내를 수십명의 사람들이 둥글게 둘러싸고 있었고, 가운데 서 있는 사내는 사제복을 입은 채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사라아아아아아앙!!”
마지막 외침이 끝나자 사내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고 있던 사람들이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외치기 시작했다.
“믿음! 희망! 사랑! 믿음! 희망! 사랑! 믿음! 희망! 사랑!”
뭐지? 대체 무슨 개좆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지? 나는 고개를 돌려서 길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영지 경비병들이 매우 난처한 표정으로 창을 든 채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대충 봐도 우리 경비 초소는 아니었다. 나는 로빈에게 물었다.
“로빈.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죠?”
“델몬 영지 경계에 막 들어섰습니다.”
델몬 영지. 바로 우리 이웃되는 영지로서, 옛날에 금발 태닝 뚱보 영주가 있었던 곳이었다. 지금 우리는 그 초소 앞이었고, 그 앞에는 수십명의 사람들이 한 명의 사제를 위해 광신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사제복은 대천신교의 사제복이 아니었다. 복식 자체는 우리들이 입는 사제복과 비슷했지만, 그 색감이나 디자인이 심각하게 기괴했다. 온통 분홍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등판에는 빨간색 하트가 크게 그려져 있었다. 하트의 중심에는 LOVE 라고 적혀있어서 모텔에 세워놓은 입간판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저기,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그들의 중심에 있는 사제에게 말을 걸었다. 열광의 도가니 속에 빠져있는 다른 신도들은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머리 사제는 내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고개를 들었다. 그는 방금 전 광기의 설교를 한 적 없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내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형제님.”
“형제님이요?”
“대천신교의 사제님 아니십니까? 저희 사랑교는 대천신교의 형제 종교입니다.”
“그랬나요?”
동부에서 유명한 종교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 근본이 제법 깊은 종교인 모양이었다. 나는 물었다.
“그래서, 왜 여기서 이러고 계시는 거죠?”
“마침 사제님께서 와주셨으니 이야기가 편해지실 것 같군요. 믿으으으으음!”
“믿으으으으음!”
사제는 이야기하다 말고 손을 번쩍 들며 발작을 일으켰다. 군중들이 사제의 목소리에 맞춰서 소리질렀다. 나는 깜짝 놀라서 잠시 뒤로 물러나서 마차에 있는 메이스를 꺼내들었다. 사제는 내가 메이스를 꺼내들어도 위협을 느끼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두려워하지마세요 사제님. 우리는 믿음과 희망, 사랑으로 모든 걸 포용합니다. 우리는 노예제를 반대하는 사랑교의 일원으로서, 가장 모범적으로 노예제를 반대하고 계신 페타 루시우스 영주님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만, 델몬 영지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는 군요. 그래서 이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저희에게 길을 내려달라고 신에게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희마아아아아앙!”
“희마아아아앙!”
다시 한 번 사제가 손을 번쩍 들어서 소리를 질렀다. 나는 고민햇다. 얘들한테 내가 대천신교 남부 사제장 겸 페타 영지의 영주인 페타 루시우스라고 말하면, 신이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지랄 발광하지 않을까? 이 새끼들을 영지에 들일 바에는 여기서 그냥 깔끔하게 컷하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 나는 고민에 빠졌다.
“저희를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저희가 평화적인 사람들이라고 말해도 도저히 듣지를 않아서 말입니다.”
이 놈들이 비키지 않으면 우리도 못지나갔다. 지금 하는 모습을 보니 곱게 비켜줄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말했다.
“델몬 영지는 노예제를 적극적으로 운용하고 있으니, 사랑교의 출입을 거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냥 돌아가시지요.”
“저런, 하지만 저희는 인어와 수인마저도 폭 넓게 사랑하는 이종족의 구원자이자 박애주의자이신, 페타 루시우스 영주님을 꼭 만나야 합니다.”
나는 여기서 고민을 끝냈다. 차라리 나 혼자서 이 놈들이 지랄하는 걸 보는 게 낫다고 말이다. 이 놈들이 영지까지 가면 대체 무슨 소란이 일어날지 몰랐다. 나는 말했다.
“그러면 더더욱 가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바로 페타 루시우스니까요.”
“네?”
사제는 그제서야 내 엘프 특유의 표족한 귀와 마차의 문장을 알아본 것 같았다. 그는 눈을 크게 뜬 채 나와 로빈, 그리고 마차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자신을 둘러싼 군중들까지 한 번 쭉 둘러보았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외쳤다.
“사라아아아아아앙!”
“사라아아아아아앙!”
“신께서 우리의 기도를 이루어 주셨다! 믿으으으으으음!”
“믿으으으으으음!”
“진정하세요. 사제님. 그래서 무슨 일로 이렇게 오셨는 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사제의 스텟창을 확인했다. ‘광인’이나 ‘미치광이’ 같은 특성을 달고 있으면 바로 대가리를 깨버릴 생각이었다.
이름 : 알버트
소속 : 사랑교의 방랑사제
레벨: 20
스텟
힘: 34 (+25)
민첩: 36 (+26)
지능: 34 (+20)
행운 : 38 (+20)
특성
이단심문관
상대를 어둠, 악 속성으로 선언할 수 있습니다.
선언한 상대에게 2배의 피해를 입히고 절반의 피해만 받습니다.
광신
강렬한 믿음으로 인해 공포, 유혹, 암시에 면역을 가집니다.
마족의 하수인
이 인간은 마족의 휘하에 있습니다.
해당 마족의 스텟에 10% 만큼 스텟이 상승합니다.
“씨발?”
“왜 그러십니까?”
나는 다시 사제의 눈을 바라봤다. 나는 물었다.
“사제님. 어디 소속이라고 하셨죠?”
“사랑교 소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