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69
시에리가 내 손을 잡고 말리기 시작했다.
“여, 영주님. 이건 너무 가혹해요.”
“가혹해야 해요. 시에리. 아시겠어요? 영주의 자리에 올랐으면 가혹해져야 한다고요. 시에리. 매를 드세요. 남은 태형을 시에리 당신이 직접 체벌할테니까.”
“네?”
시에리의 동공이 흔들렸다. 나는 말했다.
“방금 제가 분명히 보여드렸죠. 이게 아주 중요해요. 제가 2대를 때렸으니 당신이 이 선임병을 38대만 때리면 되는 거에요. 쉽죠?”
“하, 하지만…..”
“시에리. 당신은 제 부인이잖아요. 그렇죠?”
“……네.”
“언젠가 당신도 잔혹한 결단을 내려야 할지도 몰라요. 나 아니면 남이 죽는 아주 잔혹한 결단이요. 그 때도 이렇게 망설일건가요? 이 저택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위험에 처해도 망설일건가요?”
“…..알겠어요.”
내가 이브를 쳐다보자, 이브가 옆에 있던 채찍을 집어서 내게 던져주었다.
선임병의 안색에 다시 평온함이 돌아오고 있었다. 시에리는 채찍을 든 채 아직도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는 영주 부인이 되었음에도 매일 매일 교회로 출근했고, 수수한 옷차림을 고집하는 여성이었다. 근본이 바뀌지 않는다는 건 참 좋은 일이지만, 나는 시에리가 변해야 한다고 느꼈다.
나라가 어지러운 만큼 시에리 본인도 항상 선량하게 살 수 없으니까.
시에리는 채찍을 팽팽하게 당기며 병사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병사들은 애처로운 얼굴로 시에리를 바라봤다. 그녀의 약한 심성을 알고 있기에 그녀의 마음에 구걸해보려는 속셈이 분명했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시에리를 재촉했다.
“시에리. 때리세요. 선임병은 38대 신병은 40대 입니다.”
“아, 아아…..”
시에리는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뒤에서 꼭 안아주며 말했다.
“시에리. 해야돼요. 아시겠어요? 이건 다 시에리 당신을 위한 일이에요. 그렇잖아요?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사람을 때려 본 적이…..”
“해주세요. 시에리. 저를 위해서. 태형을 해주세요.”
시에리는 채찍과 자신을 바라보는 두 병사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가시가 박힌 채찍의 끝자락은 사람의 살점을 뜯어내는 용도로 쓰였다. 이 채찍으로 사람을 후려치면, 이 두 병사는 고통에 울부짖으며 시에리에게 잘못했다고 빌 것이다.
그리고 시에리는 형벌이 가지는 무게감을 깨달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런 형벌의 무게감이나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항상 생명의 소중함을 당연시 해온 시에리에게 스스로 사람을 망가트리는 행위는 낯설고도 두려운 행위임이 분명했다.
“괜찮아요. 시에리.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나는 시에리의 등에 손을 올리고 블레스를 외웠다. 그녀의 몸에 힘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이를 어떤 종류의 고양감으로 받아들인 것일까. 시에리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나를 쳐다봤다. 떨리는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무엇인가 받아들인듯한 표정이었다.
눈물이 흐르는 얼굴에서 어떤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장난처럼 내기를 걸던 이브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나 역시 시에리의 굳은 표정을 보고 잠시 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 셀루는 이브의 품이 불편한지 벗어나려고 몸을 꿈틀거렸다.
“알겠어요.”
시에리가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채찍을 곧게 펴고 선임병을 바라봤다. 쫙 펴진 채찍에서 고무줄을 튕기는 듯한 소리가 났다. 병사들은 시에리 앞에 무릎 꿇은 채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시에리는 조심스레 채찍을 위로 올리고 있는 힘껏 선임병의 몸을 후려갈겼다.
“어윽!”
이 채찍은 SM 플레이를 하라고 만든 채찍이 아니었다. 진짜로 범죄자들을 고문하라고 만들어둔 잔인한 살인도구였다. 끝에는 가시들이 박혀있었으며 희귀한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몸체는 보통 성인 남성도 부담스러워할만큼 묵직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었다.
한 번 휘둘렀던 시에리는 어설프게 허리를 써서 다시 채찍을 휘둘렀다. 역으로 돌아온 채찍의 몸통이 선임병의 몸을 가볍게 쳤다. 나는 말했다.
“방금 건 카운트하지 않겠습니다.”
선임병은 말 없이 이를 악물었다. 시에리는 채찍을 주워서 다시 바닥에 내려놓더니 이번엔 반대 방향으로 크게 휘둘렀다. 채찍의 끝머리가 묵직하게 딸려 날아갔다.
“아악!”
몽둥이를 휘두르는 소리가 났다. 선임병의 몸이 춤을 추듯이 이리저리 뒤틀렸다. 단 두 방. 시에리는 채찍 두대를 때리고 힘에 겨워 숨을 헐떡거렸다. 선임병의 옷이 찢어져서 자잘한 생채기를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시에리는 숨을 들이쉬었다. 상처에 집중한 시선에 초점이 흔들리고 있었다.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걸 보며 시에리는 고개를 저었다. 눈을 감고 아찔한 듯이 머리를 짚거나 숨을 몰아내쉬기도 했다. 나는 물었다.
“시에리? 괜찮아요?”
“우아억!”
그리고 다시 시에리가 팔을 휘둘렀다. 채찍이 뱀처럼 몸을 휘어서 선임병의 팔뚝을 잔인하게 헤집었다. 살점 조금씩 뜯겨져 나가며, 선임병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시에리는 비명에 몸을 떨고 다시 바닥을 쳐다보았다. 아니, 그녀의 눈은 바닥을 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선임병의 터진 상처를 명확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시에리의 손이 조금씩 더 떨리기 시작했다.
“시에리?”
이상하다. 이상한 불안감이 내 마음을 채우고 있었다. 지금 당장 이 짓거리를 멈춰야 한다는 기묘한 불안감이 싹트고 있었다. 나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알수 없는 감정을 억눌렀다. 지금 그만두게 하는 건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시에리를 말리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불안감을 해소하려고 했다.
“아아아아악!”
내가 시에리의 이름을 부를 때 마다, 시에리는 말 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내가 이름을 부르는 것에 맞춰서 휘두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지나치게 채찍을 느리게 휘둘렀기에 우연치 않게도 맞아 떨어진 것 뿐이었다. 다시 한 번 채찍에 얻어맞은 선임병이 바닥을 굴렀다. 이제 4대. 선임병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하아….하아…..”
시에리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채찍과 선임병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갈피를 못잡고 메트로놈처럼 규칙적으로, 그리고 강박적으로 동공을 움직였다. 궤종시계의 금속판이 왔다갔다 하듯이 쓰러진 선임병과 자신의 채찍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브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나도 모르게 시에리를 말리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아아아악!”
다시 한 번 매몰차게 채찍이 꽂혔다. 나는 말리려던 손을 내리고 미간을 좁힐 수 밖에 없었다. 방금 전 채찍 솜씨는 아마추어의 그것이 아니었다. 선임병은 바닥에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그는 지금 명백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이미 신병은 바닥에 엎드린 채 눈물을 쏟아내며 뒤로 기어가고 있었다. 시에리는 부릅 뜬 눈으로 신병을 쳐다봤다.
“아, 아아…..”
“자세…. 똑바로 하셔야 하는 데.”
“아, 네! 알겠습니다!”
시에리의 발치에서 선임병이 몸을 움찔거렸다. 시에리의 눈이 선임병의 어깨로, 그리고 팔로, 팔에서 흐르는 피로 옮겨갔다. 선임병의 팔의 상처를 노리고 정확하게 채찍을 휘둘렀다. 완벽한 솜씨. 시에리는 채찍이 아니라 뱀을 기르는 것처럼 정확하게 상처들을 후려 갈기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팔의 상처를 움켜쥔 선임병이 바닥을 굴러다니며 비명을 질렀다.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시에리에게 채찍을 다루는 법은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이렇게 비이성적인 폭력을 구사할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시에리의 모습은 이미 체벌의 강도를 넘어선 폭력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나나 이브가 사람을 죽이거나 누군가에게 스트레스를 풀 때 보여주는 그런 비 이성적인 폭력성이 엿보였다. 이건 시에리에겐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몸을 떨면서 채찍을 손이 하얗게 질릴정도로 꼭 붙잡고 있었다. 나는 시에리에게 말했다.
“시에리. 너무 무리할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다시 한 번 채찍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한대가 아니었다. 아주 간결한 박자로 뱀처럼 허공으로 솟아오른 채찍이 독사가 먹이를 노리듯이 정확하게 선임병의 상처를 찔러들어갔다. 끝에 달린 가시가 독니가 되어 상처를 더욱 깊이 파냈다. 선임병은 살점을 파고드는 고통에 온몸을 비틀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악!”
시에리가 한걸음 발을 뒤로 빼며, 채찍을 크게 휘둘렀다. 한번. 다시 한번. 그리고 또 한 번. 시에리는 지금 춤을 추고 있었다. 아니, 선임병이 춤을 추게끔 만들고 있었다. 상처받은 부위를 얄궂게도 찔러가며, 시에리는 선임병이 울부짖으며 춤을 추게 만들었다.
바닥에 다시 엎드리려고 하면 허리를 후려쳐서 일어나게 만들고, 일어나서 도망가려고 하면 다리를 후려쳤다. 간결하고 빠른 왈츠를 추듯이 시에리는 선임병의 몸을 좀먹어가고 있었다. 시에리의 채찍이 한 번 스칠 때 마다, 선임병의 옷자락이 하늘로 치솟고 살점이 바닥에 떨어져 걸쭉한 핏덩이를 남겼다.
선임병을 양 팔을 휘적휘적 휘저으며 미친듯이 춤을 췄다.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비명을 질렀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사력을 다해 소리쳤다.
“아악! 억! 으윽! 아아아악! 영주님! 영주님! 살려주십시오! 죽을 것! 아윽!”
선임병이 내게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시에리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이브가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시에리를 향해 손을 뻗으며 내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이건 말려야한다.
더할나위 없이 일그러진 얼굴로, 시에리는 선임병을 피로 물들이고 있었다. 바닥에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 사방에 흩뿌려진 핏자국은 마치 꽃이나 불꽃놀이를 형상화한 추상화 같기도 했고, 잭슨 폴록의 그림을 어설프게 묘사해놓은 것 같기도 했다.
“아악! 아아악! 으아아악!”
40대는 이미 넘었으려나? 나는 어느 순간 내가 채찍 횟수를 카운트하지 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시에리는 이를 악물고 채찍으로 쓰러진 선임병을 마구잡이로 후려치고 있었다. 선임병은 머리를 웅크린 채 완전히 전의를 잃고 시에리의 무자비한 구타를 감당해내고 있었다. 나는 보다 못해서 시에리의 팔을 틀어쥐었다.
“시에리! 그만! 그만 하세요!”
“아…..”
시에리가 팔을 멈추었다. 선임병의 머리를 노린 채찍이 힘을 멈추자 병사의 정수리를 툭 건드리고 널부러졌다. 시에리는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신병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 질질 짜고 있었다. 현장은 최악의 분위기였다. 나는 시에리의 상태를 살폈다. 그녀는 여전히 떨고 있었다.
“시에리. 괜찮아요?”
“영주님…..”
시에리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빛에 깃들어있는 건 쓰러진 사람에 대한 안쓰러움이나 죄인을 처벌해야하는 현실에 대한 슬픔이 아니었다. 시에리의 얼굴은 일그러지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보인 것 뿐이었다.
“시에리?”
그녀는 슬퍼서 떨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몸을 덮친 흥분을 제어하지 못한 것일 뿐이었다.
“영주님…..저…..저……”
시에리는 채찍을 쥔 채 환한 미소를 띄우며 내게 말했다.
“저, 너무 즐거워요.”
나는 황급히 시에리가 들고있던 채찍을 빼앗았다. 이대로는 안된다. 이대로 시에리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면, 내 유일한 안식처가 사라졌다. 그리고 아직도 몸을 떨고있는 그녀를 다독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