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7
“여기, 여기있습니다.”
나는 메이스 대신 클레방이 준 칼을 쥐었다. 마침 멀리서 도적 사총사가 걸어오고 있었다. 클레방이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천천히 다가왔다.
“다 팔았나?”
그는 여전히 도적단에 잔혹한 ‘토끼발’을 연기하고 있었다. 둘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서둘러서 몰래 파느라 제 값도 못받았지만…. 자, 여기…..”
그리고 클레방이 비도를 휘둘렀다. 둘째는 손을 내민 자세로 푹 쓰러졌다. 남은 세 명이 놀라서 소리를 지르기 전에, 내가 튀어나와 다섯째의 목을 잘라버렸다. 그리고 클레방이 남은 넷째에게 달려들었고, 그와 동시에 내 칼이 셋째의 심장을 꿰뚫었다.
4명의 도적이 모두 쓰러지자 나는 얼굴에 튄 피를 털어냈다. 클레방이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그럼… 저는….”
푹!
나는 클레방의 배때지에도 칼을 한 방 선물해주며 말했다.
“아, 네. 지금 경비대랑 기사단이 막사로 가고 있을거에요.”
“끄어어억….끄억….”
클레방은 피를 토하며 붉은 눈을 더욱 붉게 물들였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둘째의 전재산을 들고 영지 저택을 향해 걸었다. 내일 아침에 벌어질 일이 기대가 됐다.
아침부터 저택 주변이 시끄러웠다. 나는 이 소란의 사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경비병과 기사단들이 도적들을 붙잡아서 끌고온 것이었다. 전날 미리 도적단을 빠져나간 인원과, 체포 과정에서 죽은 인원을 제외하고 대략 8명 정도의 인원이 내 저택으로 끌려왔다. 이들은 나를 만나게 해달라며 악을 쓰고 있었다.
“약속과 다르지 않느냐 이 비겁한 놈아!”
“이 치사한 새끼! 네가 그러고도 성직자냐!”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 비열한 도적들은 내게 성직자의 정의를 논하며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음을 질타하고 있었다. 나는 이들의 방약무인한 태도를 그냥 좌시할 수 없었다. 내가 메이스를 들어올리자 도적들이 전부 입을 다물었다. 파블로프의 개라고 했던가. 종을 울리면 개가 침을 흘리듯, 내가 메이스를 들면 입을 다물게끔 학습된 것이다.
“로빈. 수고했어요.”
나는 다시 메이스를 내리고 공을 세운 로빈을 치하했다. 로빈은 생긴건 무뚝뚝한 시골 아재였지만, 칭찬받는 걸 아주 좋아했다. 로빈이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도적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클레방 형님은? 클레방 형님은 어떻게 됐느냐? 네가 죽였느냐?”
깡!
나는 제일 먼저 귀찮은 헛소리를 늘어놓으려는 도적의 머리를 후두려 깨버렸다. 투구를 쓰고있던 덕분에 단 한방에 프레스기에 짓눌린 참치캔 같은 몰골이 된 도적을 보고 도적들이 숨을 집어 삼켰다. 나는 메이스에 묻은 피를 털어내면서 말했다.
“도적단을 운영한 주제에 누구에게 옳다 그르다를 논하나요? 도적단을 운영하여 민간인에게 피해를 입힌 자는 국가의 법에 의해 사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 죄질이 심각하니 모두 죽여야 맞겠군요.”
“이 쓰레기 같은 놈아!”
도적들이 원통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병사들에게 칼을 뽑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더 떠들지도 못하게 단숨에 칼을 내리 그었다. 7명의 도적이 단숨에 입을 다물었다. 바닥에 널부러진 도적의 시체들에 병사들이 칼을 꽂아넣었다. 이 도적들 때문에 여간 골치가 아니었는 지 병사들은 몇번이고 시체를 난도질했다.
“거리에 시체들을 효수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나는 시에리를 만나러 갔다. 시에리가 있는 교회에 도착하면, 그녀는 아침부터 마당을 쓸고 있었다. 내가 시에리에게 손을 흔들자, 그녀는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허둥대다가 빗자루를 손에서 내려놓고 양손을 모아 배꼽 인사를 했다. 영주에게 인사하는 예법은 저게 맞긴 하다만, 빗자루를 놓치는 게 웃겨서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여, 영주님!”
“시에리. 어서와요. 요즘 그 도적 사형제는 어떻게 지내나요?”
“글쎄요. 저번에 교회에 나온 이후로 소식을 알 수가 없어서….. 나름대로 마을에 적응하려고 지내는 것 같았어요.”
나는 시에리의 손을 잡았다. 시에리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시에리를 내 쪽으로 끌어들이며 말했다.
“잠시 따라오겠어요? 오늘 기사단과 경비대가 도적단과 소요가 있었거든요.”
시에리는 그 말에 심각한 표정이 되어 나를 따랐다. 아무래도 부상자를 위한 기도나 구호활동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가 시에리에게 보여줄 것은 그런 귀여운 것들이 아니었다. 나는 시에리를 끌고 산 쪽으로 향했다. 누군가 떨어트린 동전 몇개와 정신없이 달려나간 흔적이 풀숲에 남아있었다. 점점 인적없는 곳으로 향하니 시에리는 다소 당황한 눈치였다.
“영주님?”
나는 시에리의 의문을 무시하고 그녀를 점점 더 깊은 곳으로 이끌었다. 풀이 우거진 곳을 지나다보면, 어느새 가느다란 흙길이 하나 보였다. 시에리는 그 흙길 너머에서 나는 비린내를 감지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시에리를 조금씩 끌고 앞으로 나갔다. 시에리는 불안함을 내비치며 내 옷을 잡았다.
“영주님.”
“괜찮아요. 시에리. 제가 있잖아요.”
여기서 루시우스라고 불러달라 그러면 좀 미친놈으로 보이겠지? 나는 시에리에게 최대한 좋은 인상을 남겨주기 위해 씩 웃어주며 그녀를 끌고갔다. 그녀는 발걸음을 조금씩 조금씩 떼어서 나를 따라가고 있었다. 가까이갈수록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시에리를 바닥에 널부러진 것들이 시체라는 걸 깨닫고, 내 뒤에 바짝 붙어서 덜덜 떨었다.
“영주님?”
“시에리. 여기 보세요.”
“영주님… 이게 무슨?”
시에리가 보고있는 것들은 시체였다. 얼마 전까지 마을에서 살던 네 사람의 시체. 그리고 거기에 더해 도적으로 추정되는 또다른 사내의 시체 하나. 전부 내가 만든 작품이었다. 나는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누군지 알겠어요?”
시에리는 두려움을 참고 그 시체들을 천천히 바라봤다. 그녀가 굳이 꼼꼼하게 보지 않아도, 시체들은 그 특징이 확연하게 드러나서 누군지 알기 쉬웠다. 내가 일부러 얼굴을 건드리지 않기도 했고, 심장만 뚫려서 죽은 셋째인지 넷째인지도 있으니 더욱 알아보기 쉬웠을 것이다. 퀭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둘째의 얼굴에 파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이를 보는 시에리의 표정이 두려움에서 놀람으로, 동시에 착잡함으로 바뀌었다.
“….그 사람들이군요. 어째서…. 도적들에게 보복을 당한건가요?”
“이들은 제 호의를 무시하고 제가 지원해준 밭과 집을 팔아서 다시 도적단으로 돌아가려고 했어요.”
“어째서….”
“제가 감시인에게 이 사실을 알고 달려왔을 때는, 이미 여기서 도적들에게 죽은 뒤였죠. 저는 저까지 입막으려고 죽이려드는 이 사내를 죽일 수 밖에 없었어요.”
“어째서… 이런…..”
시에리는 내가 말해준 이야기가 다소 충격적인듯 했다.
물론 다 구라지만. 처음부터 짜고친 조작이었다. 클레방을 시켜서 사총사를 협박하게 만들었고, 사총사들이 설령 죽을 각오를 하고 내게 밀고했다고 해도 지원해줄 생각이 없었다. 왜 굳이 이렇게 했냐고? 나는 시에리의 호감도 이전에 이 년이 사사건건 비인도적인 내 방식에 대해 태클 놓는 걸 막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시에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따라 어깨를 감싸며 이렇게 말했다.
“도적들이란 다 그런 존재니까요. 아시겠어요 시에리? 이 사람들은 우리와 사고방식이 달라요. 우리가 신을 위해 살듯, 이 사람들은 두목과 조직을 위해 살죠. 힘을 모아서 남의 것을 약탈하겠다는 인간들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리 없잖아요.”
“그래도, 그래도 힘을 모아서, 이해해야 한다고….”
“시에리. 만일 제가 조금만 더 약해서, 방금 그 도적에게 죽었다면 이 영지는 어떻게 되죠? 옆 영지에 살고 있는 친절한 영주분께서 대리로 맡지 않을까요?”
금발태닝 잠만보 이야기를 꺼내자 시에리가 어깨를 떨었다. 나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시에리에게 말했다.
“저는 종교인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기도 해요. 시에리. 대천신교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행동도 때때로는 해야한다는 거죠. 저는 시에리에게 이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전부 착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걸. 그래서 이런 멍청한 비극을 불러오기도 한다는 걸.”
“…..영주님은 다 알고 계셨던건가요?”
“이렇게까지 끔찍한 일이 일어날줄은 몰랐다고 해둘게요. 시에리. 저는 시에리에게 미움받기 싫어요.”
“네?”
“영지를 운영하면서, 저는 시에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잔인하게 굴어야 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렇게해야 영지를 지킬 수 있어요. 아시겠나요? 망설임없이 칼을 들줄 알아야 제 사람들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보셨잖아요. 우리는 종교인이지만, 교리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해요. 제가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사람들은 그걸 뜯어먹으려고 하죠.”
“그렇….군요.”
시에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 날아다니는 파리들이 왱왱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해가 떠오르며 지열에 의해 시체들이 조금씩 뭉그러졌다. 습한 흙냄새에 비린내가 뒤섞여서 악취를 발산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시에리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앞으로 제가 어떤 잔인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시에리가 절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네…..”
시에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말 한마디를 들으려고 얼마나 고생했던가. 내 일에 참견하지 말라고 윽박지를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간 시에리를 따먹을수가 없다. 어르고 달래서 내가 하는 일이 정당하고 설득해야만 시에리를 따먹을 수 있었다. 나는 시에리의 몸이 떨리는 걸 느꼈다. 이런 살풍경한 장소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그런듯 했다. 나는 시에리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럼 갈까요?”
“네. 영주님.”
“시에리.”
“네.”
“가끔씩은 응석을 부려도 될까요?”
“응석이요?”
“교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며 몸과 마음이 힘들면, 제게도 쉴 곳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럴 때 저와 교제해줄 수 있나요?”
“워, 원하신다면….”
시에리가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마을에 도착하지 않은 시점에 나는 말했다.
“루시우스라고 불러줄래요?”
“그….루, 루시우스…..”
“잘했어요.”
나는 시에리를 꼭 안아주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중간에 만난 경비병에게 시체를 회수해서 거리에 내걸라고 말했다. 다음날부터 사흘 동안 저잣거리에는 도적들과 사총사의 시신이 내걸렸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만큼 큰 도적 두목의 시체에는 [두목]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른 도적 일당에는 [마을을 도적 두목과 공모하여 털려고 한 죄]라고 적혀 있었다.
사총사의 시신은 한 쪽에 따로 내걸렸다. 그들의 앞에는 이런 팻말이 걸려있었다.
[이상의 4인은 페타 루시우스 영주가 특별히 사면하여 전답과 집을 내렸으나, 이를 매각하여 도적단으로 도주하는 중대한 배신 행위를 저질렀다. 이 과정 중에 재물을 노린 같은 도적들에게 살해당하였으니 이보다 우스운 일이 없다. 이 일을 교훈삼아서 페타 영지에선 더이상 도적들에 대한 사면이 없음을 알리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