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71
“그, 화, 화나셨던가요?”
“아니. 네가 방에서 안나와서 걱정하고 있던데. 너는 왜 웅크려 있던거야? 우리가 너한테, 그…. 이런 거 안해도 된다고 해서 화났어?”
시에리는 그 말에 입술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브는 자기가 시에리를 울렸을까봐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순수 인어였다면 꼬리를 팔딱거렸겠지만, 초조함은 발 끝에만 드러났다.
“”……제가 잘못한건가요?”
그리고 시에리가 질문을 던졌다.
“아냐. 아냐. 넌 잘못 없어. 응? 넌 항상 착하고, 그….. 아주 좋은 사람인데, 우리가 무리하게 시켜서! 그래 무리하게 시켜서 미안해서 그런거야!”
이브는 시에리를 달래기 위해 애썼다. 그러면서 스스로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그녀 인생에서 이런 식으로 남을 어르고 달래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브는 마음 속으로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이런 자신의 처지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시에리는 이브의 변명 비슷한 말에 조금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미안…..해서요?”
“응. 응. 그래. 미안해서.”
“하지만…..”
하지만 시에리는 이브의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여전히 불만이 담긴 표정으로 이브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브는 그 ‘하지만’ 다음에 올 말이 조금 두려웠다. 그래서 이브는 저도 모르게 시에리를 다그쳤다.
“하지만?”
“하, 하지만….. 그러면 저는 그냥, 그대로잖아요.”
“그대로라고?”
이브는 시에리의 발언이 예상 외라서 눈을 크게 뜨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젓고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설득을 해야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브가 입을 다물자 시에리는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잠시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이브는 물었다.
“뭐가 그대로라는 거야? 변하지 않으면 좋은 거 아니야? 너는 계속 좋은 사람이고 싶잖아. 신랑도 네가 항상 그대로길 바라고 있고.”
“하지만, 그러면 전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시에리의 말에 이브는 당혹스러울수 밖에 없었다. 왜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지? 시에리 스스로는 모르지만 루시우스는 시에리에게 많이 의존하고 있었다. 이브가 옆에서 보며 가끔씩 질투할 정도로, 마치 오아시스를 찾는 목마른 난민처럼 루시우스는 시에리의 순수함이나 선량한 모습 그 자체에서 휴양을 하고 있었다.
휴양. 이브는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루시우스가 시에리를 대하는 그 모습이 휴양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채워줄 수 없는 요소를 완벽하게 채워주는 휴양지. 그래서 이브는 더더욱 시에리가 이해가지 않았다. 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일까. 그런 그녀가 아무것도 아니라면, 지금까지 이 영지에서 민폐만 끼치고 있는 자신이나 셀루는 대체 무엇일까?
“대체 왜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야? 너는, 그러니까 너는 신랑한테 엄청 중요한 사람이야. 보면서 못느꼈어? 너를 볼 때나, 사소한 것 하나하나 너한테 맞춰주는 걸 볼 때도 아무것도 안느껴졌어? 왜 그렇게 비하를 하는 지 모르겠는데, 넌 지금 이 자체로도 충분히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야. 응?”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해요.”
“씹….대체 왜? 뭐가 부족한데?”
이브는 욕을 하려다가 겨우 참아냈다.계속 부족하다고 말하는 시에리의 모습에서 설명의 필요성을 느꼈다.
“제가, 제가 변하고 싶으니까요.”
“변하고 싶다고?”
“영주님은 마왕을 물리친 영웅이세요.”
시에리가 물었다. 이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용사와 함께 마왕을 물리친 영웅이자 대천신교의 사제장이며 북부의 아인들을 몰살시킨 희대의 명장. 사생활과 관련된 추문을 떼고 본다면 루시우스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이랬다.
“그리고, 이브 씨는 물 속에서는 엄청나게 빨리 헤엄치시고, 그, 또 강하시고…… 그러잖아요. 영주님이 말씀하실 때, 이제는 에반젤린이라는 아주 무서운 마법사를 잡아야 한다고 하는데, 분명 도움이 되실거에요.”
그것도 맞았다. 애초에 루시우스가 자신을 던전으로 데리고 가겠다는 것도 그런 걸 내포하고 있었으니까. 이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열거했다.
“엘시 씨는 수인이라서 아주 강하시고, 소니아 야이반 씨는 마법적 재능으로 이 영지를 보다 발전시켜주시고 계세요. 하지만 저는, 저는 어떻죠? 이대로 만일 에반젤린이 정말 강하고 무서운 적이라면, 그래서 제가 발목을 잡는다면……”
“그건 과장이야. 그렇지? 우리 신랑은 강하니까.”
이브는 시에리가 가진 불안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가 가진 걱정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대가 누구든 루시우스는 질 인간이 아니었다. 여차하면 용사를 방패막이로 내세워서라도 살아남고, 에반젤린 발 밑에 기더라도 끝까지 살아남을 인간이었다. 시에리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영주님의 발목을 잡아서 영주님이 죽을까봐 걱정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것 같아서 그러는 거에요. 아무것도 아닌 존재. 영주님이 저를 사랑해주는 건 알지만, 저를 버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저는 짐짝처럼 남겨지기 싫어요.”
시에리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저 노파심으로 치부하려던 이브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짐짝처럼 남겨지기 싫다는 말이 그녀의 가슴을 찔렀다. 왜인지 모르게도 이브는 시에리의 말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들춰보고 있었다.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속 대천신교의 수녀로서 지내도 영주님은 저를 부인으로 생각해주시고 저를 사랑해주실거에요. 하지만 같이 걸을 수는 없겠죠. 제가 계속 나약한 여인으로 남는다면, 영주님은 위험한 순간에 저를 찾으실까요? 저를 믿고 중책을 맡길 수 있을까요? 저는 제가 계속해서 영주님에게 중요한 사람으로 남길 원해요. 힘들때는 계속 제게 의지해주시고, 저를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브는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대공 아들을 죽인 자신을 위해 루시우스는 재판까지 끌고갔다. 자신이랑 결혼했다는 것 때문에 루시우스는 인어한테 박는 이상성욕자라는 악명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브 자신은 루시우스에게 무엇을 해줬지?
그녀는 강하다는 것 말고는 루시우스를 위해 제대로 해준 게 없었다. 오히려 루시우스 본인이 이브를 케어해주고 있었다. 혹시나 잘못된 사고를 치지나 않을까. 혹시나 다른 곳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당장 무도회 때도 루시우스는 분명히 말했다. 원래는 갈 생각이 없었다고.
이브는 루시우스의 부인임에도 무도회조차 따라갈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브는 다시 시에리를 쳐다봤다. 한 번 속내를 털어낸 시에리는 개운한 표정으로 이브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브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이렇게 말했다.
“영주님에게는 비밀이에요.”
이브는 입을 다물고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녀는 달라진게 없었다. 완벽하다고 느꼈던 시에리가 달라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다혈질이며 욕을 달고 살았으며 루시우스 마저 걱정하는 폭탄이었다.
“사실 말이야.”
이브가 입을 열었다. 평소의 껄렁껄렁한 톤이 아니었기에 시에리는 자세를 바로하고 이브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브는 손가락으로 시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네가 부러웠어. 왜냐면, 넌….. 그러니까 나한테 없는 걸 가지고 있잖아. 조신함. 수줍음. 선량함. 그런거 말이야.”
“아니에요 이브씨도 충분히…..”
시에리가 이브를 옹호하려고 하자 이브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쓰레기인건 나도 잘아니까 굳이 억지로 옹호하려고 하지마.”
“네…..”
이브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난 너를 정말 부러워했어. 질투도 했고. 솔직히 네가 무도회에 갈때는 나도 가고 싶었어.”
시에리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이브의 이야기에 어떤 말을 해줘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브는 시에리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바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너는 나한테는 엄청 완벽한 ‘신부’였던거지. 내가 너를 말렸던 건 다른 이유가 아니야. 그러니까, 이런 말로 설명하면 이해못하겠지만, 한 번 선을 넘은 사람들은 모든 일에 정도가 없어지거든.지금은 네가 채찍질로 만족하지만 한 번 폭력을 즐기게 되면 그 이상으로 가게 돼.”
이브는 뭔가를 잘라내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시에리는 이브가 모사하는 게 뭔지 이해하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돌렸다.
“변화는 좋아. 그렇지만, 네가 폭력적으로 변하는 건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아. 너에게도, 우리에게도. 신랑이 너한테 원했던 것. 잘못한 사람을 주저없이 때릴 수 있는 엄격함이지, 남을 때리는 걸 즐기는 게 아닐거거든.”
“그, 그렇지만 영주님은 남을 때릴 때 엄청 즐거워보이셔서…..”
“미친놈이라 그래. 너도 그렇게 미친 놈같이 될거야?”
시에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을 잠겼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자기 손으로 채찍을 때리는 시늉을 하더니 손가락을 살짝 떨며 이브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것도…..그러니까….그…..”
“씨발! 안된다면 안된다고 알았어?”
이브는 자꾸만 미련을 놓지 못하는 시에리를 다그쳤다. 시에리는 버럭 소리를 지르자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그러니까 알겠어? 네가 변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고 변하는 것도 좋은데. 지금 이 방향은 아니라고. 어? 나는 네가 나나 신랑같은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
시에리는 조금 침울해보였다. 이브는 화내는 걸 멈추고 조금 표정을 풀며 말했다.
“시에리. 신랑도 나도 너를 묶어두려는 게 아니야. 네 방향성이 잘못됐다는 거지.”
“이해했어요.”
시에리가 씩 웃었다. 고민을 털어낸 그녀의 얼굴은 조금 더 밝아져있었다. 이브는 시에리가 그늘을 덜어낸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네가 말하는 걸 들으면서 생각해봤는데. 역시 나도 바뀌어야겠어.”
“네?”
“그러니까, 좀 참아보려고. 왜냐면 나도 영주 부인이잖아. 너처럼. 네가 영주 부인 다워지고 싶어하는 만큼. 나도 제대로 된 영주부인이 되고 싶거든. 그러니까 좀 참아보려고.”
“이브 씨는 지금도 충분히 영주 부인 같으세요.”
“내가 영주 부인으로 보이면 너는 한 대공 부인쯤으로 보이겠다.”
이브는 시에리가 자신을 위로해주려는 그 태도가 재밌었다. 이브의 농담에 시에리가 웃었다. 같은 시각 루시우스는 이브가 제발 희소식을 가져오길 빌면서 다리를 떨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아이라가 열심히 서류를 옮기고 있었고, 루시우스는 편지 한 통을 읽고 있었다. 왕실의 직인이 찍힌 편지에는 대천신교의 남부 사제장 겸 페타 영지의 영주 페타 루시우스에게 전하는 메세지가 적혀 있었다.
내용은 단순했다.
– 엘프 왕국과의 협의로 페타 루시우스의 엘프 왕국 성지 출입을 허가되었음을 알린다.
이제 정말 갈 시간이었다.
엘프들이 사는 숲. 아힐데른 왕국은 왕국이라고 불리기에는 작았으나 도시라고 불리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했다. 수도 인근에 곁가지로 자라난 숲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북부 끝자락에 앙상한 숲이 있었고, 동쪽으로 길게 뻗은 숲은 수인들의 고향인 평야와 맞닿아 있었다.
남부로는 마치 큰 강줄기와 같이 거대한 수목림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페타영지에서 교역도시 에스타에 이르는 인간왕국의 영토를 제외하자면 남부 땅의 대부분은 숲이었다. 남부 영지들의 절반은 대천신교가 지배하고 있고, 나머지 절반은 엘프의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 말이 무색하지 않을만큼, 길고 긴 숲과 숲이 이어진 산길을 우리는 마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이브는 울퉁불퉁한 산길에서 마차를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가 파랗게 질리기를 반복했다.
나 역시 마차의 울퉁불퉁한 승차감에 지쳐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이브 괜찮아?”
“….어.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