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72
이브는 조금도 괜찮지 않은 표정이었다. 나는 마부에게 말해서 마차를 잠시 세우도록 했고, 이브는 마차가 멈춰서자마자 내려서 아름드리 나무로 다가갔다. 그리고 허리춤에 찬 곡도를 뽑아들어서 단칼에 잘라서 넘어트렸다. 말끔하게 잘려나간 밑둥을 발로 털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참 터프한 멀미 해소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조심해야 돼. 엘프들은 숲을 헤치는 거에 민감하거든.”
“뭐야, 그럼 이거 내가 실수한거야?”
“아직 안들어와서 상관없어.”
엘프의 숲과 그냥 숲은 분명하게 구분되었다. 나도 어떤 기준으로 구분하는 건진 알 수 없었지만, 엘프의 숲 앞에 도착하면 엘프들이 나와서 친절한 말투로 여기가 엘프의 숲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아직까지 엘프 문지기나 정찰병들이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우리가 여기서 불을 지르든 나무에 두부를 쳐박고 오입질을 하든 상관없었다.
이브는 아직도 멀미가 가시지 않았는 지 머리를 문지르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이브가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시에리는 괜찮을까?”
“괜찮을거야.”
이야기하고 오겠다던 이브가 ‘다 끝났어.’라고 말했을 때는 내가 얼마나 놀랐는 지 모른다. 어딘지 개운한 표정으로 활짝 웃고 있길래 나도 모르게 ‘죽였어요?’라고 물었기 때문이었다. 이브가 그 말에 화는 안내고 울적한 얼굴로 고개를 젓기에 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분명히 괜찮지.”
이브는 혼자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는 지는 나한테는 절대 안알려주고 자기들끼리만 시시덕대고 있으니 찝찝하긴 했지만, 아무튼 괜찮다니까 넘어가는 수 밖에 없었다.
“일어날까? 괜찮아졌어?”
“응. 이제 괜찮아.”
이브가 내가 내민 손을 붙잡고 일어났다. 다시 마차에 올라타니 마부가 담배를 피우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씩 웃으며 물었다.
“나으리. 출발하면 되겠습니까?”
“네. 그런데, 마부 당신은 괜찮나요? 멀미 안나세요?”
“산지에서 마차를 모는 건 익숙합니다. 북부 사람이지 않습니까.”
마부는 자신이 북부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에 묘한 자부심이 있는 것 같았다. ‘북부 사람’이라는 표현을 은근히 강조하며 어깨를 으쓱으쓱 흔들었다. 그 모습이 재밌어서 나는 씩 웃고 말았다. 이브는 마차에서 창문을 내다보고 있었다. 창 너머로 나무들이 줄지어서 지나갔다.
“신랑.”
산의 정경을 바라보던 이브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나무들이 지나가는 걸 보는 게 즐거운 듯 했다. 나는 이브에게 대답했다.
“왜?”
“엘프들은 성격이 어때?”
“우리 공주님 만나봤잖아.”
“……다 그런 병신들이라고?”
“나도 엘프인데?”
“그럼 병신에 싸이코 밖에 없어? 존나 무서운 곳이네.”
이브는 고개를 휘적휘적 저으며 질색을 했다. 나는 이브의 머릿 속에서 대체 내 이미지가 어떻게 박혀있는 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얘는 내가 얼마나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다 좋은 사람들이야. 엘프들은 성격이 좋아.”
진짜였다. 풀만 먹고 자라는 놈들은 전부 성격이 사납다는 속설이 있는데 엘프들은 풀만 먹고 사는 놈들 중에서는 가장 성격이 좋았다. 당장 내가 빙의한 루시우스도 엄청 착하고 성실한 하프엘프로 소문이 자자했고, 엘프 왕국의 공주인 에리나도 철이 덜들어서 싸가지가 없을 뿐 근본적으로 성격이 아주 나쁜 건 아니었다.
거기다 엑스트라로 등장하는 엘프들 중에서도 악역은 하나도 없었으니, 야겜 치고 이 정도면 엘프들에게 매우 우호적인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지!”
마부가 말을 멈췄다. 갑작스럽게 마차가 멈춰서자 이브가 손을 뻗어서 균형을 잡았다. 나 역시 창틀을 붙잡고 버텨냈다. 창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자 귀가 뾰족하고 장신인 두 사내가 창을 들고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이렇게보니 엘프의 숲이 왜 다른 숲들과 구분되는 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다른 숲들이 나뭇잎의 색깔도 조금 누리끼리하고 바닥에는 낙엽이 즐비하며, 퇴비나 장작으로 쓰일법한 삭정이가 가득했다면. 엘프의 숲은 거대한 나무들이 군인들처럼 늘어서있는 규칙적이고 단단한 숲이었다. 바닥에는 푸른색 풀들이 파릇파릇하게 솟아 있었고 나무들은 목책에 풀들이 자라난듯이 두껍고 단단했다.
사내들은 문지기스러운 갑옷을 입고 있었다. 중요한 부위를 단단한 강철을 덧대서 보오하고 있었고, 남은 부위를 질긴 가죽으로 만든 옷으로 가리고 있었다. 마치 라이더 슈트나 사이클링 슈트를 입은 것 같이 부담스러운 그 모습에 나는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누구냐? 여기서 부터는 엘프의 숲이다. 허가받지 않은 민간인은 그 어떤 경우에도 들어올 수 없다.”
마부가 설명하기 전에 내가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페타 가문의 페타 루시우스입니다. 엘프 왕국과 인간 왕국 사이의 협의를 통해 정식으로 출입을 허가받았습니다.”
“페타 루시우스?”
엘프들은 내 이름을 듣고 크게 당황한듯 서로 쳐다보고 수근거리더니, 다시 나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들여보내기 싫다는 굳건한 의지를 내비치며 그들은 옆으로 비켜섰다.
“그 페타 루시우스가 맞나? 페타 시리우스의 아들?”
“네. 맞습니다.”
“그대는 아버지의 이름 아래 부끄럽지 않은가?”
내가 문지기 새끼한테 훈계 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들은 신분이나 관례에 대해 조금 초월적인 감성을 지니고 있는 듯 했다. 나는 되물었다.
“뭐가 말인가요?”
“그대가 부인이 있음에도 우리 엘프 왕국의 공주님과 그런….. 행위를 하는 사이라는 소문이 쫙 퍼졌다. 공주님이 불쌍하지는 않은가?”
축하해요. 에리나 공주님. 소원대로 왕국 최고의 걸레라는 소문이 퍼지셨군요.
“…..누가 어떻게 한건지 어떻게알고 공주님이 불쌍하시다는 거죠.”
“당연히 네가 협박을 하거나 잔악한 술수를 사용한게 틀림없다! 우리 불쌍하고 순수하신 에리나 공주님은, 네 잔악한 수에 넘어가서 그만…..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음란한 행위를 하신 것이다!”
“섹스요?”
“으아아아아아! 입을 다물어라! 페타 루시우스! 천국에 계신 네 아버지가 지금 이 모습을 보면 대체 어떻게 생각할 것 같으냐!”
이 친구는 아무래도 에리나 공주님의 열렬한 팬인것 같았다. 나는 이런 피곤한 유형을 더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마부에게 말했다.
“가시죠.”
하지만 마차가 출발하기 전에 다시 엘프 경비대원이 출발을 막았다. 그는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머, 멈춰라! 내 이야기를 더 들어라! 내 질문에 대답해라! 조상님이 보기에 부끄럽지 않느냐!”
“뭐가 부끄럽다는 건가요?”
“그건…..”
엘프가 얼굴을 붉혔다. 나는 남정네가 얼굴을 붉히는 기분나쁜 광경을 왜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말했다.
“뭐요. 성인 남녀가 합의 하에 섹스 좀 할수도 있지. 씨발.”
“뭐, 뭣?”
“씨발 너 몇살이야?”
“이, 이익….! 함부로 말하지 마라! 나는 자랑스러운 엘프 경비대원으로서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힐데른 왕국을 지켜왔다! 너는 페타 가문의 이름을 등에 업고도…..”
“뭐래 씨발 300년 동안 아다였던 새끼가.”
“이, 이 놈!”
진짜로 아다였던 모양이었다. 엘프 경비대원은 내 말 한마디에 분기탱천하여 청을 붕붕 휘두르며 화를 냈다. 나는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다른 엘프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 자리에 있는 건 고작 두 명. 엘프 경비대원 1과 엘프 경비대원 2 뿐이었다. 나는 숲 너머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엇! 저게 뭐지?”
내 손가락질에 두 엘프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 순간 빠르게 손을 움직여서 내 갈길을 붙잡고 있던 엘프 새끼의 대가리를 수도로 내려찍었다.
빡!
엘프 경비대원의 눈이 쭉 풀리더니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저번 무도회에서 사람 하나를 백치로 만든 것보다 조금 약하게 때렸으니 아마 이번에는 병신이 되지 않을 것이다. 시야를 잠깐 돌리는 사이에 동료가 쓰러진 모습을 보고 경비대원이 흠칫 놀라는 게 보였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안했어요.”
“아, 네.”
“믿어주시는 거죠?”
“네. 당연합니다.”
“그럼 가볼게요?”
“네 살펴가십시오.”
눈치가 빠른 놈이었다. 다른 엘프 경비대원 하나는 쓰러진 동료를 옆으로 끌어다놓고 그를 깨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나와 이브를 실은 마차는 엘프 경비대원의 노고를 치하하며 그렇게 엘프의 숲으로 들어왔다. 이브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래?”
“아니, 엘프한테도 가차없구나 싶어서.”
“좆같이 굴면 맞아야지. 너도 여기서 누가 너한테 무례하게 군다 싶으면 ‘나한테’ 말해. 네가 죽이면 이번엔 그냥 재판으로 안끝나고 진짜 큰일아니까 꼭 참아야 된다?”
“……나라고 다 죽이는 건 아니거든.”
이브는 내 말에 조금 화가 난 듯이 고개를 획 돌리며 그렇게 말했다. 뭐지? 왜 화가 난거지? 알수 없는 의문 속에서 마차는 숲을 가로질러 도시로 향하고 있었다.
숲 너머에서 아힐데른 왕국의 성이 보였다. 나는 그 성을 보면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아힐데른 성. 에리나 공주와 에이에이가 가위치기를 하는 곳. 내 아이를 임신한 에리나 공주를 본인 방에서 따먹을 수 있는 곳. 그리고 에리나 공주만큼 미인인 아힐데른 샐리나 여왕님이 계신 곳.
“…..신랑. 무슨 생각해?”
“응? 아, 아니야.”
“페타 루시우스.”
아힐데른 샐리나의 근엄한 목소리가 알현실 내부를 울렸다. 근위병들이 새하얀 갑옷을 입고 죽일듯한 시선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이브는 살기를 맞받아칠듯 눈을 찌푸렸다가 다시 혀를 차며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