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9
시에리의 얼굴을 닦아주고 나서, 나는 아쉬움을 달래며 그녀를 보내줬다. 여러가지를 더 해보고싶었지만 아직은 첫날. 와인도 숙성해서 먹는 판국에 사람 하나 천천히 해 먹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였다.
그렇게 그 날 밤이 지나갔다. 나는 앞으로 시에리를 데리고 어떤 재밌는 일을 할까 생각을 하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아침부터 아이라는 저택 복도를 쓸고 닦고 있었다. 속죄의 행군 이후, 아이라는 저택 운동장을 나서는 것도 두려워하여 몸을 벌벌 떨어댔다. 그래서 그녀에게 맡긴 일이 저택 1층의 청소였다. 아이라는 청소가 천직인 사람처럼 열심히 1층을 쓸고 닦았고, 밤이 되면 창녀가 천직인 사람처럼 내게 봉사했다.
저택 내 시종들도 자기들이 할 일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해주니 불만도 없는 눈치였다. 애초에 ‘메이드’로 들어왔었으니 오히려 청소하는 그녀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느끼는 듯 했다. 처벌로서 청소는 아주 적합한 일거리기도 했으니까.
예상보다 훨씬 더 저택에 적응하고 있는 아이라의 모습은 내게 종교인으로서의 뿌듯함을 느끼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사기꾼이던 그녀가 이렇게 훌륭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거듭나지 않았던가. 오늘도 아이라는 청소를 마치면 집무실 책상 밑에서 나를 위해 ‘봉사’를 해줄 예정이었다.
“영주님.”
청소하고 있는 그녀의 뒷태를 감상하느라 잠시 복도 한가운데에 서있으니 로빈이 말을 걸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척 표정을 담담하게 고치고 로빈을 쳐다봤다.
“왜 그러나요 로빈?”
“보고 드릴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어제 저녁에 마을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 피의자에 대한 재판이 필요합니다.”
영주는 영지 내에 모든 걸 관할했다. 귀찮은 일들은 기사단이나 경비대 선에서 법령을 배포하여 적당히 처리시키지만, 살인 사건이나 도적단 같이 그 규모가 큰 건들은 영주가 직접 재판에 나섰다. 페타 영지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재판도 잘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런 영지 일수록 한 번 하번 재판에 신경을 써야하는 법이었다. 빈틈을 보이면 사람은 교활하게 파고드는 법이었으니.
나는 로빈 앞에서 귀찮다는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써야 했다. ‘루시우스’라면 이럴 때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이렇게 말하는 게 맞았다.
“안타깝네요. 살인이라니. 대체 누가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나요?”
“속죄의 행군 때 기억나십니까? 아이라 양의 속죄 행군을 방해하고 구타했던 남자가 있었습니다.”
“네. 알고 있어요.”
그런 놈이기에 시켰던 일이었다.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 놈이 살인을 저질렀다하니 나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이라를 팰 때도 사실 몇 번 아이라가 죽기 직전까지 갔었으니까. 내가 힐러가 아니었으면 분명히 죽였을거다. 덕분에 계획이 잘 되긴 했지만, 내 영지에 어울리는 인간은 아니었다.
“그 자가 자기 아내를 때리다가 결국 죽였다고 합니다.”
“안타깝네요. 평소에도 수시로 아내를 때린건가요?”
“네. 그 쪽으로 질이 좀 나쁜 인간이었는데…. 덕분에 주변 사람들과도 마찰이 잦았다고도 합니다.”
이 세계관의 경비병들은 남의 집안 사정을 제재할 권한이 없었다. 애초에 야겜 세계관이니까. 내가 시에리랑 결혼을 했다고 치면, 내가 시에리랑 항문 성교를 하든 sm 플레이를 하든 경비병들이 그걸 보고 꼴릴지언정 나보고 하지 말라고 말 할 권한이 없었다.
다른 예시로 내가 시에리를 죽도록 두들겨패더라도 시에리가 죽지 않는다면, 경비대가 출동해서 나를 체포할 권한이 없었다. 남편한테 아내가 맞아죽을 때까지 방치한 문제가 아니었다. 경비대 입장에서도 하지 말라고 ‘개인적인 경고’만 할 수 있는 법이 문제인 사건이었다.
“그럼, 준비는 다 되어 있나요?”
이런 시골 영지라 해도 재판에 구성은 필요했다. ‘죄인’과 형벌을 내리는 ‘영주’ 그리고 증언하는 증인들. 로빈은 말했다.
“벌써 범인의 죄에 대해 증언하고자 모인 사람들이 다섯명이나 됩니다.”
평소에도 문제를 일으켰다고 했으니 이번 기회에 아주 죽여버리려는 거겠지. 그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가죠.”
나는 로빈을 대동하고 저택을 나섰다. 벌써 현장은 시끌벅적했다. 영주에게 누가 먼저 증언할지를 놔두고 마을 사람들이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증인들을 컨트롤하는 의무가 있는 경비병이 좋게 좋게 타이르고 있었지만, 그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소란은 내가 현장에 와서야 겨우 잦아들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구석에는 아내를 살해한 살인범이 밧줄에 묶여서 훌쩍거리고 있었다.
[증인]이라는 팻말을 붙인 공터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이 재판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경비병들 내가 오자마자 인사를 하고 빠릿빠릿한 자세로 섰다. 나는 그들의 노고를 치하한 뒤 본격적인 재판을 해보기로 했다.“경비병. 사건을 설명하세요.”
“네 영주님! 어제 저녁. 마을에 살던 존이 경비대 마을 순찰 인원에게 달려와 ‘헨리의 집에서 비명소리가 난다. 사람이 죽은 것 같으니 같이 가달라.’라고 요청하여 경비대 인원 두 명이 무장을 한 채 헨리의 집으로 갔습니다. 현장에 갔더니 헨리의 아내는 이미 몽둥이에 맞아서 사망한 상태였고, 헨리는 술에 취해서 몽둥이를 쥔 채 자고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부인이 사망한건 확실한건가요?”
“그…. 시체의 모습을 보시면 영주님도 사망했다고 확신하실 수 있으실겁니다.”
덧붙여서 경비병이 말하는 그 시체는 지금 재판장 한쪽 구석에 증거품으로서 누워있었다. 멍석이 덮혀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경비병이 멍석을 살짝 들추며 내게 물었다.
“그, 혹시 보여드리면 되겠습니까?”
“시체를 발견한 다음에는 어떻게 했나요?”
“증인인 존과 범인인 헨리를 데리고 일단 경비대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추가적인 인원을 편성해서 현장을 정리하고, 시체를 수습했습니다.”
“따로 조사는 하지 않았나요? 현장에 어떤 범행에 대한 증거물이 남아있을수도 있을텐데.”
“그….. 헨리의 범행이 확실하다고 여겨서….그….”
“사건 내용에 대해 들어보니 경비대에서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은 헨리의 집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는 것과 ‘헨리가 몽둥이를 들고 쓰러져 있었다.’는 사실 뿐이네요. 존이라는 사람의 증언도 이 이상의 사실을 말해주진 못하고 있어요. 현재 제가 보고받은 내용 외에 헨리가 범인임을 확신한 다른 근거가 있는건가요?”
“그건…..”
경비병이 말끝을 흐렸다. 나는 지금 사건이 다소 날림으로 진행되고 있단 느낌을 받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부인이 언제 죽었냐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일단 시체를 확인하는 건 뒤로 미루고 헨리를 쳐다봤다.
헨리는 나를 보자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헨리에게 물었다.
“헨리. 당신이 아내를 죽였나요?”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구요?”
“제가 죽였는지, 어떻게된건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술을 먹다가 집에 들어가려고 한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부터는 통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거 전형적으로 누명쓰는 패턴이었다. 진짜로 헨리가 필름이 끊긴 상태로 아내를 때려죽였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반대로 누군가 헨리에게 누명을 씌웠을 가능성도 의심할 수 없었다. 당장 밤 중에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해 증언 하겠다고 달려드는 인간이 한 마을에서 5명이나 나올정도로 적이 많은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이 아내를 죽이는 것도 자연스러웠고, 이런 인간을 죽여버리기 위해 누명을 씌우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평소에 아내를 때렸다고 들었습니다.”
“….네.”
“주로 어떻게 때렸죠? 술병을 휘둘렀나요? 아니면 공구를 사용해서?”
“그….”
헨리는 입을 꾹 다물고 눈동자를 굴렸다. 차마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할 용기는 없어보였다. 내가 말했다.
“말하세요 헨리. 영주가 묻고 있습니다.”
“주로…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고….”
“왜 그랬죠? 아내를 죽이려고 그런건가요?”
“그… 너무 화가나서…. 그랬습니다. 직장을 잃고, 너무 그…. 되는 일이 없어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헨리를 가리켜 쓰레기같은 놈이나, 구제불능한 인간이라고 욕하는 말들도 들려왔다. 나는 말했다.
“재판정에서 한번만 더 잡음이 들린다면 발언자를 색출하여 경을 치겠습니다.”
그제서야 재판정이 정숙해졌다. 나는 다시 헨리를 쳐다봤다.
“직장을 잃었군요. 원래 무슨 일을 했었나요?”
“원래 목수였는데, 일을 하다가 부상을 당해서 일을 못하게 됐습니다.”
“무슨 부상이었죠?”
“팔을 다쳐서, 오른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망치질을 못해서…..”
“오른손잡이였군요.”
“네. 지금도 오른손을 주로 씁니다만, 무거운 걸 들거나 힘쓰는 일은 하지 못합니다.”
나는 다시 경비병을 쳐다봤다. 그리고 물었다.
“헨리가 손에 들고있었다던 몽둥이는 어느 손에 들려있었나요?”
“왼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경비병은 대답했다. 어제 일어난 사건이었으니 어느 쪽 손에 들려있었는 지 기억하기는 쉬웠다.
“그러니까, 경비병과 헨리. 그리고 존의 증언을 미루어 생각해보면, 헨리라는 인물은 수시로 아내를 때린 전과가 있고, 당일 날 행적이 불분명한데다가 본인도 기억을 못하고 있으며 비명 소리가 난 현장에 들이닥쳤을 때 헨리와 헨리의 부인말곤 사람이 없었군요. 이 상황에선 헨리가 부인을 때려 죽였다고 생각하겠죠.”
“네. 그렇습니다.”
경비병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헨리가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다. 부자연스럽다. 어딘가 매우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헨리에게 물었다.
“헨리. 아내를 때릴 때 왼손만 썼나요?”
“아마… 양손을 다 썼을 겁니다.”
“오른팔 부상으로 직장을 잃은 뒤에, 왼손으로 공구를 사용하기 위해 재활한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아내가 벌이가 있고, 그…. 술 마시느라 바빠서…..”
관객들이 입을 열고 싶어서 안달이난 얼굴로 재판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꾹 다문 입술과 불만가득한 표정이 빨리 헨리를 죽였으면하는 바램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 사건. 확실하게 이상했다.
술먹고 인사불성이 된 오른손잡이가, 그것도 왼손으로 재활훈련 한 번 한적없는 알코올중독자 오른손잡이가, 왼손이 더 강하게 때릴것이라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왼손으로 무기를 든다? 심지어 그걸로 아내를 때려죽이는데 성공한다?
뭔가 이상했다. 확실하게.
사실 주정뱅이 하나가 누명을 썼는지, 진짜로 살인을 했는지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영주인 나를 누군가 속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만일 여기서 내가 속아준다면 다음부턴 더 대담하고 도발적인 방법으로 누명을 씌울 것이고, 이게 반복된다면 나는 또다른 고통의 굴레에 빠질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