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94
이브가 내 옆자리에 앉아있었다. 오늘은 지금까지 열심히 내 대리로 일해준 시에리 대신 이브가 내 옆에서 업무 보조를 해주고 있었다. 시에리는 쉬는 것보다는 나랑 같이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듯했지만, 그래도 억지로 쉬게끔 했다.
“내가 아카데미 교사로 갈 수 있다네?”
“좆됐네.”
이브는 고민도 하지 않고 말했다. 그녀로선 내가 아카데미에 교사로 들어가는 게 파괴적인 활동과 비스름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서류를 보면서 내 아카데미 교사 생활을 ‘좆됐음’으로 요약해버리니, 나는 서운하기 그지없었다.
“야, 좆됐다니. 뭐가 좆됐다는 거야. 나만큼 교사랑 잘 어울리는 사람이 어딨어?”
“신랑. 아카데미 학생 손댔다가 걸리면 진짜 좆되는 거 알지?”
“알지. 안 건드릴 거야.”
아카데미 교사로 간다는 게 좋긴 했지만, 나도 여학생들을 건드릴 생각은 없었다. 아카데미에 있는 여학생을 건드리는 것은 포로로 잡힌 인어나, 기댈 곳 하나 없는 북부 영지의 미망인을 따먹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행동이었다.
에리나와의 추문은 에리나 본인이 따로 나한테 뭐라고 하지 않고 있고, 왕국 간에 서로 쉬쉬하고 있었으니 큰 문제로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아카데미의 학생을 하나 건드린다? 그래서 여학생이 임신하거나 다른 사람들한테 나랑 관계한 사실을 떠벌린다? 이 사소한 행동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쌓아온 업보가 펑펑 터져서 진짜로 인생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
아카데미에 있는 학생들은 정말 나라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는 인재들이었다. 나는 그래서 아카데미에 있는 학생들은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 리스크는 큰데 리턴은 너무 적었다. 차라리 선생을 따먹는다면 몰라도.
“……진짜로?”
하지만 이브는 내 다짐을 믿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내가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했음에도 의심스러운지 다시 한번 캐물었다.
“응. 진짜로.”
내가 다시 한번 다짐을 하자 이브는 더 이 문제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똑. 똑. 똑.
“누구세요?”
“아, 영주님. 시, 시에리에요. 혹시 일을 도와드릴 게 없나 싶어서……. 혼자만 쉬니까 너무 그…….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브랑 나는 문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시에리의 목소리를 듣고 씩 웃었다. 서로 눈을 마주치고 이브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고갯짓으로 문을 가리켰다.
“그냥 같이하자. 저렇게 일하고 싶어하는 데.”
“시에리. 들어오세요.”
시에리는 들어와서 일하라는 말에 프리스비를 들고나온 주인님을 본 강아지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그녀는 애써 민망한 표정을 짓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지만, 입꼬리가 히죽히죽 올라가고 있었고 몸을 배배 꼬면서 한껏 기쁨을 표출했다. 아마 그녀가 수인이었다면 꼬리가 세차게 흔들리지 않았을까. 이브가 낄낄 웃으면서 말했다.
“아, 표정 봐. 진짜.”
“정말……. 이브 씨. 너무 놀리지 마세요.”
“귀여워서 그래. 귀여워서.”
이브가 내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었으니 나는 이 흐름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시에리 귀여워요.”
“시에리 귀엽네.”
내가 이브랑 같이 실실 웃으면서 ‘시에리 귀엽다.’를 연발하니 시에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몸을 비비 꼬며 방구석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녀가 얼굴을 붉힌 채 우리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너무하세요.”
아, 존나 귀여워.
***
일주일이 지났다. 로잘린 유바 영애는 일주일간의 영지 관광을 마치고 무사히 수도로 돌아갔다. 그녀는 영지에 처음 왔을 때 생긴 사고에도 불구하고 페타 영지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은 것 같았다. 로빈은 로잘린 유바 영애가 사라지자마자 근엄한 표정을 풀고 평소의 아저씨로 되돌아왔다.
“로빈. 기운이 없네요? 로잘린 유바 영애가 떠난 게 그렇게 서운한가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표정은 우울한걸요.”
“솔직히 말하면 조금 그렇습니다. 그래서 요즘 양돈장에서 돼지들을 보며 심란한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로빈 나름대로 원거리 연애에 대한 해법을 찾은 것 같아서, 나는 그에게 참견하지 않기로 했다.
아카데미에서 온다는 안내자는 그날 저녁 늦게 영지에 도착했다. 그는 안경을 낀 빼빼 마른 학자였다. 동그란 안경 너머로 유약한 심성이 엿보였다. 그는 늦게 온 것이 죄송하다는 듯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연신 내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늦고 말았습니다.”
“당일 도착했으니 됐어요. 오늘은 쉬시고 내일 이야기하시죠.”
그렇게 우리가 제대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나는 아카데미 교사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 궁금했기 때문에 그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많았다. 학자는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듯 [아카데미 교육법전]을 책상에 둔 채 앉아있었다.
“그래서, 왜 하필이면 저죠?”
나는 일단 가장 신경 쓰였던 부분에 대해 물었다. 막말로 내 이미지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아카데미 교사가 된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했지만, 이 새끼들이 대체 무슨 기준으로 날 선정한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엘프 왕국의 공주랑 불륜하는 인어박이 수간충 사제장보단 마왕을 물리치고 엘프 공주랑 결혼한 에이에이가 더 교사로 적합한 인물 아닌가?
왜 나를 골랐지? 아카데미에도 인어 애호가가 있나?
“아, 혹시 아카데미 일일 교사가 마음에 안 드시는지…….”
학자는 내 질문에 불안한 기색을 드러내며 되물었다. 그는 내가 거절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아니요. 매우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런데, 그 어떤 기준에서 제가 선정된 것인지 궁금해서요. 이걸 알아야 아카데미에서 제게 어떤 걸 기대하는지 이해하기 쉬울 것 같거든요.”
“아, 기준 말씀입니까. 페타 루시우스 사제장께서는 아카데미에서 실시한 ‘일일 교사로 와줬으면 하는 인물’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셨습니다.”
“왜죠?”
“네?”
이유를 듣고 나니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공부만 하다 보니 아카데미 학생들이 미쳐버린 건가? 나를 일일 교사로 부르고 싶다고? 왜지? 반장 선거에서 장난삼아서 모자란 애를 뽑았다가 걔가 당선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인가? 나는 학자가 대답하기 난감해하는 걸 보고 서둘러서 질문을 바꿨다. 더 깊게 파고들어 봐야 좋아질 게 없는 질문이었다.
“아니에요. 제가 그런 조사에서 1등을 차지했다니까. 기쁘기 그지없네요. 그럼 수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알고 싶은데요.”
“아, 네. 수업은 이 주간에 월요일과 금요일 잡혀있습니다.”
학자는 자신이 가져온 달력에서 날짜를 짚어주며 수업 일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학자가 품속에서 꺼낸 달력에는 교육 일정이 빼곡하게 잡혀있었다. 워낙 글씨가 작게 쓰여 있어서 내가 눈을 찌푸려도 읽기 힘들 지경이었다. 희미하게 ‘일일 교사’라는 글자만 알아볼 수 있었다.
“월요일과 금요일이요? 일일 교사인데 두 번 하나 보네요.”
“중등부랑 고등부 일일 교사를 맡으실 겁니다.”
“초등부는 하지 않나 보네요?”
“부모님들께서 격렬하게 반대한 터라…….”
괜히 물어봤네. 학자는 자신이 대답하고도 내 눈치를 살폈다. 분위기가 다시 어색해졌다. 나는 이 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다른 질문을 던졌다.
“여학교 남학교를 전부 도는 건가요? 수도 아카데미는 남녀가 분리되어 있다고 알고 있거든요.”
나는 게임에서 봤던 기억을 더듬어가며 질문을 던졌다. 게임에서는 남자반 여자반이 따로 분리되어 있었고, 남자반에서는 괜찮은 성능의 장비템을, 여자반에서는 히로인을 한 명을 얻을 수 있었다.
“아, 그게…….”
학자는 내 질문에 난색을 보였다. 뭐지? 씨발 이번에는 또 뭐가 문제지? 왜 내가 질문을 하는 것마다 이 학자는 난감한 표정을 짓는 걸까?
“왜 그러세요?”
“여학생 아카데미는 현재 남자가 출입금지기 때문에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그래요? 어쩔 수 없네요.”
원작에서도 남녀 분반이었고, 아카데미 여자반에는 남학생이 못 들어갔다. 외부인인 내가 못 들어간다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라는 뜻이었다. ‘남자’ 출입금지라는 게 좀 이상하게 들리긴 했지만.
“수업은 마왕을 물리치셨을 때 이야기나 북부 아인들을 쓰러트린 토벌 이야기들을 중점으로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학생 대부분이 그런 무용담을 듣고 싶어서 사제장님을 일일 교사로 원한 것이기 때문에.”
학자는 갑자기 교육 내용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말투가 빨라지고 허둥대는 게 꼭 주제를 돌리려는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간단한 일이네요.”
다행히 아카데미 학생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내 섹스 경험담이 아니라 마왕 토벌과 북부 아인 섬멸전에 관한 이야기였다. 못 해줄 것도 없는 이야기였고 해주기 그리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라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학자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한숨을 푹 내쉬며 얼굴에 흐른 땀을 닦아냈다.
아무래도 나랑 이야기한다는 사실 자체가 학자에게는 부담이었던 모양이었다. 학자는 내게 물었다.
“더 궁금한 점은 없으십니까?”
“궁금한 점이라……. 아, 보수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잘하는 건 공짜로 해주면 안 된다. 학자는 내가 보수에 관해 이야기하자 조금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말했다.
“보수는 저희가 아카데미 예산을 따로 편성해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사제장님께서 원하시는 금액의 적성 선은 얼마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많이 드릴 수는 없지만,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
“아니요. 돈은 됐고, 그……. 혹시 교복으로 주실 수 있나요?”
“남학생 교복 말씀입니까?”
“여학생 교복이요 사이즈 다르게 해서 맞춤형 5벌.”
“…..어디다 쓰실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제 아내한테 쓸 겁니다.”
“…..안될 것 같습니다. 아카데미의 교복은 그런 목적으로 쓰는 물건이 아니므로…….”
“섹스 안 하고 패션쇼만 할 거니까. 주시면 안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