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95
“안됩니다.”
“제가 입을게요. 한 벌만 주세요.”
“……”
“왜요 사람이 여장 좀 할 수도 있지.”
학자는 끝끝내 내 요구사항을 거절했다. 쪼잔한 새끼.
끝끝내 내게 교복을 내줄 수 없다고 말한 학자의 표현을 따르자면 이랬다. 아카데미는 왕국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장소고, 아카데미의 교복은 곧 아카데미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아카데미의 교복을 외부인에게 반출할 수 없다. 아카데미의 교복이 음란하거나 어떤 종류의 음습한 유흥에 엮인다면 아카데미의 명예도 같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판타지 세상에서 살게 됐는데, 판타지 세상 속 아카데미 교복 섹스를 할 수 없다고? 나는 그런 일 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학자가 안내한 사항에 따르면, 아직 한 달 정도 여유 기간이 남아있었다. 수도까지 가는 데 대략 보름 정도가 걸리니 내게는 보름의 여유 시간이 있는 셈이었다.
이대로 교복 섹스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교복을 구해줄 수 없다면 내가 만들면 된다. 수도에는 솜씨 좋은 재단사들이 많고, 나에겐 훌륭한 두 눈이 있으니까. 아카데미에서 여학생들의 교복을 두 눈으로 관찰하고, 재단사한테 웃돈을 불러주면 옷 한 벌 정도는 몰래 만들어주겠지.
“씨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면 되지. 안 그래?”
“신랑. 그래서, 여기다가 치수를 적으라고?”
이브가 내 앞에서 펜을 들고 자신의 신체 치수를 옮겨 적고 있었다. 영주 부인 드레스는 주문 제작으로 맞춰 입기 때문에 이브는 자기 신체 치수 종이를 가지고 있었다. 최근에 내가 직접 옷을 주문했던 시에리 같은 경우에는 아예 내 수첩에 신체 치수가 적혀 있었다. 그녀는 상당히 찝찝한 표정이었다. 나는 물었다.
“이브. 왜 그래?”
“아니, 그……. 이거 진짜 괜찮은 거지? 그렇지?”
“당연히 괜찮지. 디자인은 적당히 다르게 할 거야. 아카데미에서도 뭐라고 못한다니까?”
“교복에 이렇게까지 집착을 하는 게 이해가 안 되네. 신랑 혹시 어린 애들 따먹고 싶고 뭐 그런 거 있어? 가서 뭐 초등부 여자애를 새 신부라고 데려오고 그러는 거 아니지?”
이브 옆에서 신체 치수를 같이 적고 있던 아이라는 이브의 질문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라의 경우, 전문 재단사를 불러와서 신체 치수를 재서 양식을 만들어뒀기에 그걸 따로 옮겨적기만 하면 됐다. 그나저나 얘들은 나를 뭐로 보는 거지. 암만 내가 수인이든 인어든 섹스 상대를 구분하지 않는다지만 선이란 게 있었다. 미성년자는 내 수비 범위 밖이었다.
“난 미성년자는 안 건드려.”
“……그럼 됐어.”
이브는 내 발언을 믿어줬다. 믿었다기보다는 믿어줬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만큼 뒷맛이 찝찝했다. 아이라는 이브보다는 살짝 못 미더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이라에게 물었다.
“아이라. 다 썼어요?”
“아, 네! 네 여기 있어요.”
나는 아이라와 이브에게서 종이를 받아서 내 가방에 집어넣었다. 이제 이 저택에서 사이즈를 받을 사람은 셀루와 엘시, 그리고 소야 뿐이었다. 소야랑 엘시는 재단사에게 맡겼지만, 셀루는 내가 직접 치수를 잴 생각이었다. 나는 우선 수영장으로 나가서 셀루에게 신체 치수를 물어보기로 했다. 펜과 종이를 들고 수영장에 가보니 셀루가 일광욕을 하며 수영장 가장자리에 늘어져 있었다.
파닥거리는 꼬리가 마치 수산시장 맨바닥에 던져놓은 광어를 보는 듯했다. 나는 셀루의 뒤로 가서 그녀의 꼬리를 쿡쿡 찔렀다. 셀루는 감은 눈을 살짝 뜨고 나를 보더니 씩 웃었다.
“헤흐.”
“뭐 하고 있었어요?”
“일광욕.”
“북어가 되려고요?”
“북어가 뭐야?”
나는 햇빛에 비쩍 마른 셀루를 상상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셀루의 호기심은 북어에서 내가 들고 있는 펜과 종이로 옮겨갔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고 내 손에 든 펜과 종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건 뭐야?”
“이거요? 셀루. 당신의 신체 치수를 적을 종이요.”
“내 신체 치수? 그건 왜?”
“단체복을 하나 주문하려고 하거든요.”
“인어는 옷 안 입어.”
셀루는 자신의 군살 없는 몸매를 과시하며 말했다. 바닥에 꼬리를 늘어트린 채 허리를 위로 쭉 뻗어 올리자 가슴이 출렁거렸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맞아요. 인어는 원래 옷 안입죠. 그런데 셀루 당신한테 예쁜 옷을 하나 입혀주고 싶어요.”
“난 평소에 물속에 있으니까 많이 입지도 못해.”
셀루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서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이유는 현실적이었으나 난 셀루한테도 아카데미 교복을 입히고 싶었다. 이유는 별 거 없었다. 교복입은 인어를 따먹고 싶었으니까. 나는 말했다.
“상관없어요. 맨날 그 옷만 입을 필요도 없고요. 그러니까, 이건 결혼반지 같은 선물이에요. 특별히 실용성도 없고, 공간만 차지하고 걸리적거리지만, 제가 선물해준 옷을 보면 셀루도 제 사랑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아시겠어요? 셀루에 대한 제 사랑을 표현하는 거예요.”
“헤흐, 나보다는 이브를 더 많이 사랑해줘. 이브가 말은 거칠어도 항상 널 사랑하고 있으니까.”
셀루는 내 말에 기분이 좋은 지 활짝 웃었지만, 그러면서도 이브를 신경 써주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펜과 종이를 내밀었다.
“당연히 제가 제일 사랑하는 건 이브죠. 셀루는 그다음이에요.”
“그건 그거대로 느낌이 이상하네.”
“그럼 셀루를 1순위로 놓는 게 맞을까요?”
“모르겠어. 그것도 그것대로 기분이 이상해.”
셀루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웃는 모습에서 약간의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말했다.
“셀루. 몸 치수 재본 적 있어요?”
“없어. 재 줘.”
셀루가 팔을 활짝 발렸다. 그녀가 내 쪽으로 몸을 돌리자 머리카락으로 가려졌던 분홍빛 유두가 살짝 모습을 보였다. 그 아래로 탄탄한 11자 복근과 매끈한 허리선이 드러났다. 내는 준비했던 줄자를 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축축하게 젖은 머리카락에서 수영장 냄새가 났다.
나는 펜과 종이가 젖지 않게 한쪽에 밀어두고 그녀를 등 뒤에서 끌어안았다. 줄자가 그녀의 가슴 위를 살짝 압박하자 셀루가 불편한 듯 앓는 소리를 냈다. 나는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가만히 있어요. 셀루. 움직이면 치수가 달라지니까.”
“이런 거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드물게도 솔직한 감상이었다. 잠시 마실 나왔던 기사단원이 내가 셀루를 끌어안고 있는 걸 보고 헛기침을 하며 돌아갔다. 셀루가 내게 말했다.
“방금 기사단원 한 명이 우리를 보고 도망갔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름다운 커플이라고 생각했겠죠.”
“영주님이 이젠 야외에서 인어에게 박는구나. 라고 생각했을 거 같아.”
“셀루. 지나친 자기 비하는 좋지 않아요.”
나는 셀루의 허리 치수를 재다 말고 줄자를 꽉 조였다. 허리에 줄자가 조여들자 셀루가 놀라서 발버둥을 쳤다. 꼬리가 내 허벅지를 때리며 팔딱팔딱 움직였다.
“헤흑, 너, 너무 조이지 마.”
“벌이에요. 당신은 영주의 장모라고요. 장모답게 당당해야죠.”
“나도 그러고 싶어.”
셀루가 말했다. 장난기 없는 목소리에 묘한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애써 울적한 기분을 참으려는 듯한 목소리였다. 나는 허리에 감았던 줄자를 풀어내고 셀루를 쳐다봤다. 셀루는 여전히 혀를 쭉 빼물고 웃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나는 이 저택에 필요한 존재인 걸까?”
“당연하죠. 이브도 셀루도 제겐 정말 필요해요.”
“네 이미지가 나빠지는 데 우리가 일조하고 있잖아. 저택에 오는 외부인마다 모두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페타 루시우스는 정말로 인어랑 섹스하려고 인어를 사육한다고.”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해요? 찾아서 얼굴을 부숴줄게요.”
“그건 악순환이야. 알잖아? 처음엔 인간들이 우리를 공격하니까 내가 반격했어. 그런데 내가 인간을 죽이니까, 더 강한 인간들이 몰려왔지. 이걸 반복하다 보니까 어느새 살인에 무감각해지고 만 거야. 너도 그래. 인간에게 인어랑 교미한다는 사실은 모욕에 가까워. 알고 있잖아? 너도 그 말만 들으면 놀라서 발작하곤 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잖아. 어느새 험담에 무감각해지고 만 거야.”
“그게 뭐 어때서요? 저는 북부에서 아인들을 물리쳤고, 용사와 함께 마왕도 잡았죠. 지금은 에반젤린을 쫓는 작업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고요. 어떤 추문도 저를 무너트릴 수 없어요. 제 인생에 간섭하지 못하는 험담은 그냥 패배자들이 개 짖는 소리를 모사하는 거나 다름없죠.”
예전에는 세간에서 인어박이나 수간충 같은 이야기를 떠든다면 짜증부터 났지만, 요즘에는 그러지 않았다. 누가 그렇게 떠들든 이미 이 왕국에서 내 위치는 굳건했기 때문이었다. 대놓고 이브를 ‘물고기’라고 부르거나 내 성생활에 대해 빈정거리는 인간들 대가리만 깨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셀루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굴면, 이브는 영원히 인어로만 남을 거야. 난 이브가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이브는 스스로도 자신이 인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인어는 아니지.”
셀루는 항상 이브가 인어냐 아니냐의 문제에서 선을 그었다. 이브는 사람이고 인어는 셀루 자신으로 충분하다는 듯, 항상 이브를 사람이라고 우겼다. 이제 내 줄자는 셀루의 팔 치수를 재고 있었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확실하게 결론을 낼 필요를 느꼈다. 나는 입을 열었다.
“셀루. 이브나 당신은 잔혹한 전과 때문에 경계 받는 거에요. 인어가 아니더라도 이건 똑같고요. 제가 정갈한 인간이 된다고 해도, 셀루 당신이 우리 저택에서 제 발로 나간다고 해도 이브를 다른 인간들이 받아들일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이브는 제 오점이 될 뿐이겠죠.”
셀루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저택의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브는 살인 강간범이기 때문에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인종 문제를 떠나서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었다. 복수라는 이름 아래 이브도 셀루도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다. 원래 교수형 당해 매달렸을 두 사람을, 내가 마왕을 물리친 특권까지 사용해서 살려놓고 있다.
이건 셀루가 이브를 인간이라고 우기더라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이브는 이미 인간들의 영역에 발을 들이기엔 너무 먼 길을 와버렸다.
“셀루. 현실을 직시해야 해요. 이브가 자신을 인어라고 주장하는 건, 인간들에게 버림받았고, 당신이 이브를 거둬줬기 때문이잖아요. 당신마저도 이브가 인어가 아니라고 말하면, 이브는 대체 누구죠? 인간들은 이브를 인어라고 부르고, 당신은 이브가 인간이라고 말하면 이브는 누구를 의지해야 하죠?”
셀루는 나를 쳐다봤다. 그녀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셀루의 이런 얼굴을 처음 봤다. 그녀는 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 말이 맞아. 하지만 난 이브가 인간이었으면 좋겠어. 나는 옷도 입지 않아. 이브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줄 수도 없고, 이브랑 취미 생활을 공유할 수도 없어. 다른 무리한테 이브랑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해줄 수도 없어. 이브는 인어가 아니니까. 이브는 인어처럼 노래를 부를 수도 없고, 음식을 날로 먹는 것보단 익혀 먹는 걸 좋아해. 나는 그러니까. 이브가 인간이었으면 좋겠어. 말도 안 되는 욕심이지만, 이브가 인간이었으면 좋겠어.”
나는 셀루의 등을 꼭 끌어안고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 이브는 인어인가 사람인가? 재판장에서 나는 이브가 인간이라는 판결을 얻어냈지만, 사람이라는 건 판결문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닌 듯 했다. 내가 이브를 사람이라고 불러주고, 우리 영지 사람들이 이브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걸로 충분한걸까? 셀루의 바람처럼 이브가 ‘사람’이 되기 위해선 대체 뭐가 필요한 걸까? 셀루가 원하는 인간이란 건 대체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이룰 수 있는 걸까?
“셀루는 욕심이 많네요.”
머릿 속이 복잡했다. 옷 치수를 재면서 결론 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농담으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헤흐, 네가 이렇게 만든거야. 나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