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99
“음, 그래. 좋다. 그런데 루시우스?”
내가 인사를 마치고 대화를 마무리하려는 찰나 왕이 다시 한번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왕을 바라봤다. 왕은 헛기침을 한 번 한 뒤 내게 물었다.
“그 아이를 걱정해서, 내민 제안이겠지?”
왕의 표정은 아니꼽기 그지없었다. 나를 소아성애자랑 똑같은 취급을 하는 건가? 나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반발심을 억누르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폐하.”
“됐다. 그렇다면 왕국 기사단에게 따로 명령을 내리겠다. 루시우스 그대는 영지에 편지를 보내서 공조를 지시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알현이 끝났다. 마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나는 편지를 써서 영지로 보냈다. 이번 사건에 어떤 기사가 배정될지 알 수 없지만, 이제 델몬 영지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다음번에 부임할 영주는 대천신교 사제장의 옆집에 어울리는 착하고 성실한 인간이 들어오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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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워 보이십니다. 영주님.”
“당연하죠. 오늘은 제가 처음으로 아카데미 수업을 하는 날이잖아요?”
다음 날 아침.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처음으로 교단에 서는 날이었으니까. 긴장도 됐으나 즐거움이 먼저 내 머리를 지배했다. 여학교 아카데미가 아닌 게 아쉬웠지만, 어차피 손도 대지 못한다면 남학교에서 노는 게 나았다.
아카데미 입구에 멈춰선 마차는 어제와 똑같은 통과 검문을 받고, 울타리 내부로 들어섰다. 경비병이 마부가 경로를 벗어나지 않도록 마차의 고삐를 잡고 남학교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다. 남학교의 울타리 너머로 여학교의 폐쇄적인 풍경이 보였다. 창문은 전부 알록달록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차단되어 있었고, 담벼락은 높다 못해서 국경선을 만들 기세로 쌓아 올려둔 상태였다.
“담벼락이 높군요.”
“혈기 왕성한 기사 가문의 도련님들이 어지간한 담장은 뛰어 넘어버리기 때문에 높게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카데미라고 성욕 같은 면이 여타 학생들과 다른 건 없는 모양이었다. 여학교의 폐쇄적인 모습과 남학교의 자유분방한 모습은 벌써 대비되고 있었다. 남학교 마당 정원에는 수업 시간 임에도 낮잠을 자는 젊은 한량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탄 마차를 슬쩍 바라보더니 다시 관심 없다는 듯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저 아이들은 뭐죠?”
“저도 귀족 자제분들의 이름은 다 모르는지라 전부 설명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저기 누워계신 분은 아마 라이오닐 백작 가문의 제임스 님 일 겁니다.”
“라이오닐 제임스라. 라이오닐 가문은 어떤 곳이죠?”
“라이오닐 가문은 왕국 기사단을 배출하는 가문으로 유명하지요. 왕국 기사단의 단장님이신 라이오닐 알버스 님께서는 용사님이 등장하시기 전까진 북부 대공과 더불어 왕국 최강의 검객으로 불리셨습니다.”
좆밥이란 뜻이었다. 애초에 원작 게임에서 이름도 등장 안 했던 걸 보면 확실한 하수였다. 하지만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라이오닐 제임스의 모습은 순정만화 속 왕자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오뚝한 콧날과 타는 듯한 붉은 머리. 그리고 모델을 해도 될 법한 길쭉한 팔다리.
분명히 기숙사에 침대도 있을 텐데 풀밭에 누워 잠을 청하는 모습을 보니 미친놈이었다. 혼자서 로맨스 판타지 남자 주인공을 연기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난 괜히 기분이 역해졌다.
“빨리 가죠.”
“아, 네.”
나는 창문을 닫고 라이오닐인지 라이온인지에 대해 신경을 쓰지 말기로 했다. 지금 시간에 밖에 있는 걸 보면 나랑 만날 일도 없을 테니까.
첫 번째 수업은 고등부 수업이었다. 학자가 설명할 때 중등부, 고등부라고 설명해서 당연히 중등부가 먼저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반대로 진행되었다. 내가 의아한 얼굴로 안내하러 온 선생님을 쳐다보자, 그가 되려 당황하여 되물었다.
“아, 전에 연락 못 들으셨나요? 고등부 수업이 먼저 잡혀있어요.”
“아, 네. 사실 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똑같은 이야기만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정말 상관없었다. 수업은 오후에 있었으나 나는 추가적인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에 일찍 교직원실로 찾아갔다. 나는 아카데미 선생님들과 함께 내가 수업할 내용을 다시 검토하고 퇴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만일 아카데미 교육 이념과 반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바로 수정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이건 매우 중요한 과정이었다.
아무리 나라도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더럽게 했다는 소문은 듣기 싫었기 때문에 이번엔 정말 ‘교육적’인 원고를 준비했다. 내가 진짜 쓰고 싶은 이야기를 ‘북부 전쟁 – 아인이 조금만 예뻤다면.’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내가 아카데미에서 할 이야기는 ‘북부 전쟁 회고록 – 전쟁의 참상’이라고 요약할 수 있었다.
“루시우스 사제장님?”
퇴고 시작 5분 만에 한 선생님이 내 원고를 보다가 손을 들고 말을 건넸다. 매우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 그는 서류를 꼭 쥔 채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웃으면서 물었다.
“왜 그러시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거니까 가감 없는 발언 부탁드립니다.”
“기사들을 무장시키기 위해 아인 한 명의 가죽을 벗기고, 다시 힐을 사용해서 가죽을 재생하는 무한 공정을 실시한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 서술을 좀 순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카데미의 교사들답게 이 부분이 잔인하다는 감성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가장 중요한 부분 아닌가요? 북부인 중 그 누구도 제게 잔인하다고 비판하지 않았어요. 그만큼 아인들에 대한 증오가 쌓여있던 인간들이었죠. 그 뒷부분에 보면 나와 있지 않나요?
‘아인들에게 너무나도 야만적이고 잔인한 처사였으나 그 누구도 이에 놀라지 않았습니다. 북부 아인들이 사람들의 감성마저 집어삼킨 것이죠. 이렇듯 종족 간의 갈등이 깊어지면 결국 극단적인 해결책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북부 아인들을 섬멸한 전투는 위대한 정복 전쟁이 아니라, 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태워버린 비극이었어요.’
제가 굳이 그 부분을 적어놓은 이유는 북부 산맥 아인들과 죽고 죽이는 활동을 하면서 처절하게 싸워온 사람들을 돌아봐 줬으면 해서에요. 세상의 좋은 면만 보면 좋은 사람이 아니라 왜곡된 인간이 되고 말죠.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아인들이 다 뒤진 김에 이 문제로 이종 간의 다툼 문제에 대해 감성을 좀 팔아주면, 나중에 수인이나 인어 문제를 해결할 때 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써놓은 문장이었다. 이 주제를 효과적으로 어필하기 위해선, 앞에 가죽을 벗기는 장면이 꼭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교육했다는 게 알려지면 귀족분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거예요.”
“그렇게 잔인한 내용인가요?”
“아니요. 잔인하다는 뜻이 아니에요. 아인들에게 고문을 가하는 내용 뒤에, 아인들도 종족이고 우리와 갈등을 빚는 생명체다 같은 주장을 적으셨는데, 요즘 같이 이종 갈등이 심한 상황에서 이런 논리는 자칫 인어나 수인을 옹호하는 걸로 비춰질 수 있거든요. 다 쓰레기같은 놈들인데.”
나는 눈썹을 추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지? 아카데미에 처박혀 있다 보니까 나에 대해서 모르나? 주변의 다른 교사들이 조금 전 실언한 선생에게 눈치를 주고 있었으나, 그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내가 다시 물었다.
“인어나 수인을 옹호? 원래 그들은 다 죽어야 하는 대상인가요?”
“아, 그렇죠. 사실 전부 우리 땅이고 우리 바다인데 그놈들이 차지하고 있는 거잖아요. 아인들처럼 다 죽여버려야 하는데.”
“씨발 내 마누라가 누군지 알아요?”
“네?”
“내 아내가 인어 혼혈인데 지금 뒤지라고 한 거지?”
“으아아아악!”
선생이 당황해서 서류를 집어 던지고 바닥에 엎드렸다. 다른 선생들이 전부 시선을 돌렸고, 내게 반박했던 선생은 바닥에 엎드린 채 울부짖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저한테는 처자식이 있습니다!”
“……몰라서 그랬으니까, 한 번만 봐줄게요. 알겠어요?”
선생은 눈물을 흘리며 연거푸 소리쳤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씨발 앞으로 처신 잘해요. 저 사람처럼 되기 싫으면.”
나는 허공을 가리켰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 쪽을 향했다. 나는 시선이 돌아간 사이 선생의 대가리에 온 힘을 다해 딱밤을 후려갈겼다.
팡!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바닥에 엎드린 선생이 총맞은 개구리처럼 뒤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벽에 부딪힌 선생이 이상한 자세로 몸을 비틀고 엎어졌다. 훤히 드러난 이마가 손가락 모양으로 푹 파여 있었다. 큰 대자로 뻗은 선생의 눈코입에서 새빨간 액체가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손을 털면서 말했다.
“그래서, 여러분의 가감없는 의견은 어떠세요?”
“인어도 수인도 다 사람입니다!”
“아인들을 몰살한 북부의 광기가 너무 무섭습니다!”
“사제장님도 광기에 휘말린 희생자입니다!”
선생님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살인하고 나니 조금 냉정해진 나는, 침착하게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아카데미의 학생들한테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역효과만 날 가능성이 컸다. 원고를 쓸 당시에는 나름대로 재밌었는데, 이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너무 역공 받을 논리가 많았다.
“아니, 그래도 이런 내용을 강의하면 학생들도 반발할 수 있으니까 수정하죠.”
선생님들의 시선이 묘하게 변했다.
“왜요?”
“아, 아닙니다.”
원하는 대로 해준다는데 왜 지랄이지.
“이상으로 수업을 마칩니다. 질문 있으신 분 계시나요?”
대기실 너머로 수업하는 교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의실은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넓은 홀이었다. 음성 증폭 마법이라는 걸 사용해서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전달한다고 하는 데, 그 때문인지 강의실과 떨어진 이 대기실에서도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아카데미 사람들은 목소리를 잘 듣는 것은 중요하게 여기지만 방음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네. 학생 질문하세요.”
나는 강의 자료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나로서는 일단 이번 무용담이 인어들과 수인들도 똑같이 몰살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발언은 최대한 조심할 생각이었다. 만일 아카데미 학생들이 인어나 수인에게 나름대로 호의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그때 슬쩍 원래 계획대로 ‘종족 간의 갈등을 극단적인 폭력으로 해결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할 생각이었다.
“아까 교직원실 방향에서 사람이 한 명 실려 나가던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학생의 질문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학생들이 궁금하다는 웅성대는 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강의실의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교사가 당황하는 모습이 훤히 그려졌다.
“아, 사실은 역사 담당이신 헤밀튼 선생님이 그……. 계단에서 구르셔서 중태에 빠지셨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역사 과목은 헤밀튼 선생님 대신, 외부 역사학자를 초청하여 강의할 예정입니다.”
헤밀튼 선생은 운 좋게도 목숨이 붙어있었다. 딱밤 한 방에 이마가 쏙 들어가서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가 바닥에 쓰러진 헤밀튼에게 힐을 걸어주며 교사들에게 헤밀튼의 사고원인을 설명해주자, 교사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금방 이해해주었다.
중등부 고등부 교사들은 대부분 평민이었다. 진짜 중요한 검술이나 마법 등의 실기 과목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랬다. 아카데미의 학문 연구가 진행되는 곳은 ‘대학부’이고 중등부 고등부 교사는 이 대학부에서 연구와 수업을 병행하는 대학원생 정도의 신분이었다.
대학원생이라는 말은 귀족의 아내는 뒤져야 한다고 발언했을 때 내가 대가리를 깨버려도 편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뜻이었다. 사람 한 명의 희생으로 일주일간의 강사 일정 동안 내게 태클 걸 사람이 없어진다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