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
벌써부터 이 년을 붙잡아 조리돌림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는 나였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추론과 심증만으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예상한 상황이 모두 들어맞고 사람들이 전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준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지금 내가 아이라를 잡는 일도 그랬다. 나는 아이라가 최대한 빨리 수상한 짓을 해서 내게 증거를 내보이는 걸 원했다.
하지만 아이라가 사기꾼이라는 증거는 상태창 뿐이었다. 실제로 아이라가 무언가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아이라를 조리돌림 하는 건 아직 요원한 일이었다. 내가 아이라에게 ‘너 사기꾼이지!’라고 말한들 아이라가 ‘예! 그렇습니다!’ 라고 곱게 대답해줄리 없으니까.
막무가내로 그녀가 사기꾼이 아니냐고 밀고나가면 오히려 의심을 사서 역효과를 부를 수도 있었다. 내부에 잠입한 사기꾼은 잡기 쉽지만, 한 번 도둑으로 변해버리면 잡기 귀찮아졌다.
게임 내에서 아이라가 루시우스를 통수치는 건 용사 일행이 오기 직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되어 몇가지 알아본 결과 아이라는 최근에 저택에서 일하게 된 메이드이며 그 업무 능력이 좋아서 영주의 시중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지. 아무리 루시우스가 호구라도 갑자기 모르는 메이드한테 회계 업무를 맡기지는 않았을테니까.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아이라는 영주 옆에서 일하며 신임을 받았던 게 틀림없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정확히 지금이 게임 내에서 어느 순간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현재 내게 주어진 가장 급한 일은 세가지 정도가 있는데 하나가 아이라 조지기. 다른 하나가 NTR충 원천차단,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왕 퇴치였다.
이 세가지는 서로 엮여있는데, 시에리가 NTR충과 강제 결혼하는 이벤트는 용사 일행이 오기 대략 한달 전 ~ 일주일 전에 일어나는 이벤트고, 돈먹고 도주하는 이벤트 역시 대략 일주일 전 쯤 시기에 일어난다.
마지막으로 마왕 부활은 평균적인 4인 파티 용사 일행이 루시우스 영지에 온 시점에서 절반 정도 완성된다.
왜 평균적인 4인 파티 기준으로 마왕 부활이 절반쯤 완성되는 거냐고? [히로인 전설]은 파티원의 숫자로 게임의 난이도가 정해지는 게임이었다. 동료를 영입할 때 마다 제법 긴 이벤트를 봐야해서 게임 상의 날짜가 쭉쭉 지나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인공이 아무 이벤트도 안보고 아무 동료도 영입하지 않고 곧장 마왕성으로 달리면, 마왕이 부활은 커녕 이제 막 마왕 부활 의식에 필요한 제물을 모으려던 참에 주인공이 들이닥쳐서 흑막이고 뭐고 다 죽여버린다.
역으로 주인공이 온갖 동료들을 전부 퀘스트를 해결해서 모은 뒤에 가면, 그 사이에 힘을 기른 헬창 마왕과 피튀기는 혈전을 벌여야 한다.
따라서 적당한 수준의 파티로 마왕을 무찌를 것이냐, 아니면 최대한 여유를 부리다가 진짜 이악물고 싸워서 이길것이냐로 갈리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가 독자적으로 조사해본 결과, 아직 용사를 지명하는 예언은 나오지도 않았으며 히로인 중 한 명으로서 성에서 마왕을 잡기 위해 가출한 뒤 용사와 만나는 엘프 공주도 자기 숲에서 멀쩡히 잘 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따라서 아이라가 통수치는 것이나 NTR 충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것이나 제법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는 건데, 이럴거면 내가 마왕을 직접 잡아도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에 생각이 미친것이다.
왜냐면 용사가 아무 이벤트 없이 단독으로 흑막의 저택에 들어가면 레벨이 20 정도가 되는 데, 흑막은 그냥 야심을 가진 영주에 불과하기 때문에 칼질 한방에 사지가 분해된다.
20레벨인데도. 최종보스를 원킬 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근데 루시우스는 현재 36레벨이고, 심지어 직업도 마왕 퇴치 전문인 사제고, 나는 게임을 해봤기 때문에 흑막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다. 심지어 이 흑막의 영지는 정상적으로 플레이하면 간부들 때문에 막혀서 그렇지 루시우스의 영지와 존나 가까웠다.
말타고 달리면 왕복으로 일주일 정도? 가기 쉽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가기 어려운 수준도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 용사를 지명하는 예언이 안나왔으니, 마왕 부활의 준비는 커녕 그럴 낌새도 없다는 뜻이고 내가 다짜고짜 흑막의 집에 쳐들어가서 일가족을 참살하면 그건 그냥 미치광이 살인마로 낙인찍힌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루시우스가 인망이 높다고 해도 이런 짓을 벌이면 이 인망은 ‘그럴 사람으론 보이지 않았어요.’라고 주민들이 인터뷰할 때 써먹힐 뿐 내 행동에 변호가 되진 않는다. 영주라도 남의 영지민을 함부로 죽이면 당장 영지전이나 재판이 걸리는 사안이었다. 재판이 걸리면 여러모로 골치아파졌다.
정리하자면 이랬다. 내가 시간 내로 해결해야할 일들은 아이라 조리돌림, NTR충 차단, 마왕 퇴치인데. 마왕 퇴치를 하려면 멀리 나가야 한다. 그리고 마왕 퇴치를 시작하려면 아직 시간이 있으니 일단 내부의 불안 요소인 아이라를 증거를 잡아서 족친다.
왜 그냥 안자르냐고? 이런 애들을 자르면 다음에는 변장한 도둑으로 달려든다. 그럼 괜히 신경쓰이니까 확실하게 증거를 잡아서 저택 내에서 붙잡은 다음. 실컷 괴롭혀줄 생각이었다.
가슴도 크고 얼굴도 예쁘잖아. 야겜에 들어왔으면 그런 애랑 뭘해야겠어?
그래서 나는 아이라를 조질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저 쪽에서 낌새를 내비치지 않는다면 내가 억지로 이끌어내는 수 밖에 없었다. 아이라가 진짜로 사기를 칠 때까지 넋놓고 기다릴 시간도, 이유도 없었다.
계획에 앞서 나는 아이라의 행동 패턴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분홍머리에 주근깨가 인상적인 아이라는 매일 아침 6시에 기상해서 내 안부를 묻고 갈아입을 옷을 챙겨준다. 그 뒤 다른 메이드들과 함께 건물 내 이곳저곳을 청소한 뒤 영지 내 기사단 인원들이 훈련 후 나온 부산물들을 청소한다.
참고로 기사단들은 루시우스의 아버지인 시리우스 때 부터 충성을 바치던 애들이라 믿을만한 애들이다. 게임에서도 ‘루시우스 영주’에 대한 걱정이나 충성심을 표현하는 말 말고는 일체 다른 말을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훈련 부산물 청소까지 끝나면 점심시간. 아이라는 다른 메이드들과 함께 점심을 먹은 뒤 곧바로 영주의 업무를 보조한다. 영지 크기 자체가 작다보니 사업을 벌리는 것도 없고, 큰 돈 들어갈 일도 없어서 내 일은 널널했다.
오히려 내가 일할 때 옆에 서있는 아이라가 더 힘들어보였다. 아이라는 영주의 업무 시간 동안 옆에 서있었으며 내가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가져다 줬다.
“물 좀 떠와 주겠어요?”
“네.”
대충 내 업무 시간까지 아이라의 업무를 감시한 감상을 말하자면, 아이라 정말 빡세게 일했다. 업무 시간이 끝나면 저녁 식사 후 저녁 청소 시간 동안 다시 한 번 저택을 청소하고, 밤 중에는 하인과 메이드들이 순번을 정해서 저택을 한 번씩 순찰했다.
그리고 다시 6시에 기상해서 일과 반복. 일과가 아침 6시 부터 시작되는데 불침번도 있는 미친 직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영주의 저택이니만큼 월급은 제법 잘 주는 편이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상당히 힘든 근무 조건이 너무 빡빡했다. 혹시 아이라는 원래부터 사기꾼이었던게 아니라 가혹한 노동 조건에 못이겨서 탈출할 결심을 한게 아닐까?
“아이라. 일은 힘들지 않나요?”
“네?”
그래서 내가 아이라를 떠보듯 물어보면,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더니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눈가에 피로가 가득했지만 내색할 생각은 없는 듯 했다. 그 놀란 연기며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다급하게 고개를 젓는 폼이 정말 연기일까 싶을 정도로 기가 막혔다.
그리고 그녀가 고개를 저을 때 마다 흔들리는 가슴도 기가 막혔다. 빨간머리 앤처럼 묶어내린 분홍색 머리도 같이 흔들렸는 데, 저 머리스타일 때문인지 순수한 시골처녀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영주님. 영주님에게 더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제가 부족해서……”
물론 아이라의 신들린 연기는, 저 지나친 아부 한 방에 가면이 벗겨졌다. 이 가혹한 근무 조건에서 저런 말을 뱉는 인간은 머리에 총을 맞은 놈이거나 무엇인가 목적이 있는 놈이 틀림없다. ‘괜찮습니다.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로 끝냈어야지. 지나친 아부는 의심을 사기 마련이었다.
그 날 저녁. 나는 본격적으로 아이라의 뒤를 캐기 시작했다.
뒤를 캐는 일은 내가 총애하고 게임에서도 루시우스에게 충성을 다 바치는 기사단장 로빈에게 맡기기로 했다. 기사단장한테 너무 귀찮은 일을 맡기는 거 아니냐고? 이 조그만한 영지에 기사가 다해봐야 10명 뿐이라 기사단장은 영지에서 정말 한가한 직책이었다.
덕분에 기사단장 로빈이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메이드나 시종들은 아 로빈이 또 ‘로빈’하는 구나. 하는 반응일 뿐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기사단장으로서 이런 이미지가 맞나 싶었지만 나름대로 일을 할 때는 열심히 하는 인간이었기에 터치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로빈에게 아이라 감시 업무를 맡긴지 일주일. 로빈의 보고서가 한 장 책상 위로 날아들어왔다. 로빈은 매우 눈치 빠르게도 옆에 아이라가 있다는 걸 의식하여 ‘기사단 정기 순찰 보고서’라고 말하며 종이를 건넸고 나 역시 매우 태연하게 아이라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물 좀 떠와줄래요?”
아이라의 업무 중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 바로 이 물 떠오기라 할 수 있었다. 이 세계관에 정수기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1층 부엌에서 물을 떠와야 했는데, 내 집무실은 3층에 있었다.
아이라가 사라진 뒤 나는 로빈에게 말했다.
“보고하세요.”
“네. 메이드 아이라는 현재, 주변에 자신이 회계 업무에 능통하다는 사실을 꾸준히 알리고 있으며, 메이드장에게 자신의 능력이 영주님께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주기적으로 꺼내고 있다고 합니다.”
예상 가능한 범위 내의 일이었다. 지금 당장 회계 장부를 맡는 건 어렵겠지만, 저렇게 꾸준히 어필하면서 성실함을 보여주다보면 그 깐깐한 메이드장도 내게 아이라에게 회계 업무를 시키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물어오겠지.
그렇게 회계 업무를 맡게되면, 조금씩 큰 돈 만질일이 생기고 그렇게 하나하나 장악하다 보면 어느 순간 거금을 들고 도망치기 쉬웠다. 나는 그렇게 오래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경비병 카를과 만남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그래요?”
이거, 잘하면 재밌는 계획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애초에 아이라가 처녀든 아니든 신경쓰지 않았다. 근본이 사기꾼인 년인데 어디서든 헤프게 썼겠지.
“로빈. 계획이 하나 있어요.”
“말씀하시죠. 영주님.”
나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느꼈다.
아이라는 요즘 페타 루시우스가 참 이상하다고 느꼈다. 원래 이상한 사람이라고 느꼈지만 요즘들어서 더욱 그랬다. 원래 페타 루시우스가 비정상적이라서 이상한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페타 루시우스는 다소 정상적으로 변하고 있기에 이상했다.
그녀가 알고있던 페타 루시우스는 하늘에서 성인(聖人)이란 존재를 그대로 똑 떼서 만들어놓은 듯한 인간이었다. 물욕에 일체 관심이 없었으며, 집에서 하는 일이라곤 기도와 미사, 그리고 영지 업무 뿐이었다.
이건 최근 두달 동안 루시우스와 함께 일했던 아이라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는 사람이라기엔 지나치게 정결한 인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뜯어먹기 좋았지만.
하지만 최근 루시우스의 행동은 조금 이상했다. 흐트러진 모습을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그가 옷을 조금 비뚤게 입거나, 헝클어진 헤어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한 채 업무를 보는 모습이 계속해서 목격되고 있었다.
여기에다가 생전 한 번도 묻지 않던 안부까지 자신에게 물어보니 아이라는 이 영주가 드디어 미친건가 싶을 지경이었다. 아니면 드디어 제정신으로 돌아왔거나.
“일이 힘들진 않나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영주님. 영주님에게 더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제가 부족해서……”
뭔가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다. 20살 평생을 사기만 쳐왔던 아이라의 직감이, 지금 루시우스는 아주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쫑긋한 귀도 붉고 투명한 눈동자도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도 전부 그대로였지만, 지금 루시우스는 어딘가 이상했다. 자신을 훑어보는 눈동자도 이상했고, 일하는 중간중간 멍하니 공상에 빠지는 모습도 수상했다.
“뭐 이상할게 있겠어? 너한테 반한거 아니야?”
경비병 카를은 이런 이야기를 전한 아이라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호언장담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봐온 루시우스는 그 누구보다 호구였으며 앞으로도 호구일거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빚쟁이인 자신을 거둬주었던 영주에 대한 고마움은 조금도 없는 뻔뻔한 모습이었다.
“아니야. 진짜 느낌이 이상하단 말이야. 그 새끼 눈치깐거 아니야?”
“에이. 절대 모른다니까? 애초에 네가 루시우스한테 회계 업무 맡겨달라는 이야기 꺼낸 적 있어?”
“메이드장한테만. 회계업무 맡겨달라고는 안했고 자신있다고만 했어.”
“봐봐. 네가 수상하다고 생각했으면 그냥 다른 업무 맡기면 그만인데 왜 붙잡고 있겠어?”
“그런가?”
아이라는 카를의 낙관론을 긍정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병사 카를. 도박빚 2골드 때문에 영주를 팔아먹자고 제안한 부패한 병사. 카를은 아이라에게 자신과 함께 멀리 도망치자며 구혼했지만 아이라는 영주의 돈만 빼먹고 혼자 도망칠 계획이었다. 도박에 빠진 인간은 사기꾼보다 더 신뢰할 수 없다. 특히 월급이 10실버인데 도박빚이 2골드인 인간은 더 신뢰할 수 없었다.
“우리, 신혼집은 어디에 차릴까? 통크게 수도로 갈까?”
“그것도 괜찮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