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02
두 사람은 일어났다. 아리스토는 아직 궁금한 게 많았다. 지금 이 세상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이 교수가 된다면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루시우스는 아리스토가 악인이라고 말했지만, 말 한마디로 믿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문에는 화려한 황금빛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아리스토가 물었다.
“제 이름표만 금빛이군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줬다고 하더라고요.”
“역시.”
루시우스는 아리스토가 ‘자발적’이라는 표현에 기분이 좋아서 싱글벙글 웃는 걸 보았다. 루시우스는 아리스토의 환상을 벌써 깰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교직원실 문이 열리자, 교사들이 마치 빛을 비춘 하수구 속 쥐들처럼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서류에 얼굴을 박고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논문에 집중하는 열정적인 부류도 있었고, 퀭한 얼굴로 졸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리스토는 이 사람들이 전부 자신의 대학원생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리스토가 들어오는 것에 한 박자 늦게 한 직원이 대표로 일어나서 인사했다.
“교, 교수님! 어쩐 일로 다시 오셨습니까?”
“아, 그, 그냥 와봤습니다.”
아리스토는 어색하게 말했다. 교사들은 아리스토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조금 놀랐다. 아리스토는 여전히 자신의 현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이 사람들이 전부 자신이 부리는 대학원생이라고? 이곳에 있는 학생들의 얼굴은 자신의 대학원 입학을 말리던 선배들과 똑 닮아 있었다.
“당신. 이름이, 뭡니까?”
아리스토는 가장 피곤해 보이는 대학원생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는 핼쑥한 얼굴로 아리스토를 쳐다보다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아, 아아……. 알리입니다. 오늘 졸업논문을 냈던…….”
“졸업논문?”
“으아아아아아!”
아리스토의 한마디에 알리가 울부짖으며 뛰쳐나갔다. 루시우스가 당황해서 알리를 잡으러 뛰어갔고, 이제 남은 건 아리스토뿐이었다. 이상하다. 뭔가 이상했다. 졸업논문을 받았다고 하는 데, 집무실 책상에는 졸업논문 같은 게 없었다. 그는 교직원실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가 앉자마자 교사들이 우르르 달려오더니, 한 명은 어깨를 주무르고, 한 명은 구두를 벗겨서 닦기 시작했다.
“뭐, 뭐하시는 겁니까?”
당황한 아리스토가 소리쳤다. 대학원생들은 씩 웃으면서 말했다.
“느, 늘 하시던 일과시지 않습니까 교수님. 항상 그 자리에 앉으시면 발이랑 어깨 마사지랑 구두닦이를 좀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다른 교수님들 제자는 다 해주는 데 그, 못 받아서 서운하셨다고…….”
“제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아리스토가 놀라서 묻자 대학원생이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아닙니다! 그런 말씀 하신 적 없습니다! 이건 다 저희가 자발적으로 하는 겁니다! 교수님! 제발 저를 내쫓는다곤 하지 말아 주십시오! 집에서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신단 말입니다…. 흐흑…….”
“내쫓지 않습니다. 진정하세요.”
“흐흐흑…. 흑…….”
아리스토는 머리가 멍했다. 대체 나는 어떤 인간이었던 거지? 얼마나 쓰레기 같은 교수였기에 대학원생들이 벌벌 떨고 있는 거지? 아리스토는 대학원생에게 물었다.
“당신, 몇 년 동안 다녔죠?”
“…..8년입니다.”
“8년이라니, 왜 8년 동안 졸업을…….”
“흐흑……. 흑…. 죄,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부족해서!”
8년이라니, 자기 때 아카데미 대학원 졸업은 길어야 3년이면 충분했다. 8년 동안 데리고 있었다는 건 두 가지 경우뿐이었다. 졸업을 못 했거나 졸업을 안 시켰거나. 후자가 명백해 보였다. 아리스토는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게 교수들을 혐오했던 내가, 교수들과 똑같은 인간이 되었다고?
아리스토는 이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다시 자신의 방으로 걸음을 돌렸다. 바삐 움직이는 발소리에 초조함이 깃들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문패가 보였다. 아리스토는 그 이름표를 만지작거리다가 루시우스 사제장이 한 말이 생각났다.
[“제 이름표만 금빛이군요.”“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줬다고 하더라고요.”]
“아아…….”
아리스토는 방문을 열었다. 휘황찬란한 장식들. 과도한 사치품들. 역사학자가 지녀야 할 자긍심이나 탐구심은 이미 금빛에 파묻혀서 잊힌 듯했다. 다리가 떨려왔다. 아리스토는 의자에 앉은 채 쓰레기통에 시선이 갔다. 슬쩍 고개를 내밀어서 안을 보니 종이 뭉치가 가득했다. 아리스토는 종이뭉치를 열어보았다.
“아아아아아아악!”
아리스토는 비명을 지르며 쓰레기통을 내던졌다. 자신은 자신이 혐오하던 그 어떤 교수들보다 더 끔찍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아리스토는 덜덜 떨며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이 악몽에서 깨어나고 싶었다.
“어땠나요?”
루시우스가 들어왔다. 아리스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 왜 이런 악몽을 보여주는 거죠? 이런 건 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죠? 제발, 제발 저를…….”
“아리스토 교수님. 아직 늦지 않았어요. 그렇죠?”
“느, 늦지 않았다니……. 무슨…….”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아카데미에 갇힌 대학원생들을 풀어주면 되잖아요. 그렇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그렇죠?”
“아, 아아…….”
아리스토 교수가 울기 시작했다. 루시우스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조용히 방에서 빠져나갔다.
***
다음 날. 아리스토 교수가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대학원 내를 떠돌았다. 루시우스와 만나고 난 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마치 대학원생들처럼 연구에 매진하기 시작했단 것이다. 졸업 년수를 재운 대학원생들을 전부 졸업시켜줬고, 아직 기간이 남은 대학원생들의 연구 여건을 최대한 보장해주겠다고 선언했다.
사건의 주인공인 루시우스에게는 대체 어떻게 해서 아리스토 교수를 그렇게 바꿔놨냐는 질문 세례가 쏟아졌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리스토 교수는 졸업논문을 찢어버렸던 알리 학생에게 사과하고, 그가 다시 같은 내용으로 논문을 작성해서 내준다면 최선을 다해 살펴볼 것을 약속한 것을 기점으로, 루시우스는 교사들 사이에서 신앙으로 자리 잡았다.
루시우스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감동 어린 시선들을 그냥 놓아둘 생각이 없었다. 그는 말했다.
“여러분. 여러분은 역사학과 선생님들이죠?”
“네!”
“네! 그렇습니다!”
교직원실. 이곳에 있는 교사들은 한때 루시우스를 증오했으나, 지금은 루시우스의 말이라면 죽으라고 해도 죽을 인간들이었다. 자신들을 노예 생활에서 해방해준 루시우스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은 대학원생 겸 교사가 아니었다. 당당히 역사학 박사 직함을 단 교사들이었다.
“여러분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뭡니까?”
“앞으로 수업을 가르칠 때, 수인과 인어 역시 사랑해야 하는 존재라는 내용을 조금씩 끼워 넣어주세요.”
“아, 그, 그건…….”
그리고 그런 교사들에게 루시우스가 내린 부탁은 간단했다.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인어와 수인들에게 호감을 느낄 수 있을 법한 내용으로 수업을 꾸며라. 어차피 아카데미 수업에 아리스토 교수는 관여하지 않으니까. 중등부와 고등부 학생들에게서 수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야 한다.
“티 나지 않게 하는 거 잘하시잖아요? 왜곡하라는 게 아니에요. 칭찬하라는 거죠.””
“그 정도라면 해드리겠습니다. 사제장님은 우리를 노예에서 구제해주셨습니다. 이 정도도 들어드리지 못한다면, 우리도 교수님과 똑같은 인간이 되고 마는 겁니다. 저는 앞으로 어업의 역사를 다룰 때, 어부와 인어들이 사랑을 나눈 이야기에 대해 언급하겠습니다!”
교사 한 명이 시동을 걸자, 다른 교사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저도 해드리겠습니다! 앞으로 근대사에 관해 이야기할 때, 수인들이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에 관한 이야기를 섞어 넣겠습니다!”
“저는 미술사에 관해 이야기할 때, 나체로 사람들을 유혹했던 수인 요부들에 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세계사에 남은 미인들에 관해 이야기할 때, 수인들과 인어의 미적 기준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루시우스는 아주 흡족하게 웃었다. 이제 돌아가면 셀루와 이브, 엘시한테 칭찬받을 일 만 남은 셈이었다.
“헤흐.”
“사제장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
“헤흐는 헤흐에요. 아시겠어요?”
“아, 네.”
루시우스는 허공에 딱밤을 날리며 생각했다. 아카데미에 교수가 총 몇명이지? 대학원생을 몇명이나 만들 수 있을까?
콧노래를 부르는 인어의 머리 위로 각반이 날아갔다. 허공에 붕 떠오른 쇠 각반이 수영장 속으로 퐁당 빠지며 파문이 일었다. 셀루는 물속으로 잠수해서 우그러진 쇠붙이를 꺼내 다시 운동장 방향으로 던졌다. 바닥에 쓰러진 엘시는 허공을 날아서 자기 머리 옆으로 튕겨 나간 각반을 쳐다봤다.
“그렇게 막 던지면 안 된다.”
“헤흐. 하지만 난 다리가 없는걸.”
엘시가 불만스럽게 말했지만, 셀루는 웃어넘겼다. 엘시가 손을 뻗어서 각반을 다시 살폈다. 마치 대형트럭에 깔린 것처럼 형편없이 우그러져 있었다. 시에리가 옆으로 다가와서 엘시의 다리에 힐을 걸어주고 있었다. 엘시의 건너편에는 이브가 주저앉아 있었다.
“씨발, 어떻게 날이 갈수록 강해지냐. 이러다가 지겠어.”
이브가 물병을 입에 대고 물을 들이켰다. 목덜미까지 젖어 들어가서 손으로 대충 물기를 닦아냈다. 꿈틀거리는 목 혈관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이브는 물병을 엘시에게 던졌다.
“인어도 강하다.”
“씨발, 이러다가 지면 다음번에는 물속에서 뜨자.”
엘시가 물병을 받아들자 이브가 농담을 던졌다. 엘시는 물을 홀짝거리다가 남은 물을 전부 머리에 뿌렸다. 시에리가 그 모습에 화들짝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이브는 시에리가 발을 동동 구르는 게 재밌어서 낄낄 웃었다. 저택의 일상은 항상 이와 같았다. 이브와 엘시가 수련하고, 시에리가 옆에서 구경했으며, 부서진 장비는 대장간에 맡기거나 소야가 보수했다.
이브는 다시 엘시가 던진 물병을 받아들고 입안으로 병을 탈탈 털었다. 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걸 보고 혀를 차고 셀루를 쳐다봤다. 셀루가 수영장 물을 가리키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