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03
“담아줘?”
“됐거든.”
“헤흐.”
이브는 셀루한테 혀를 쭉 내밀어 보이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저택 정문에 서 있는 병사들이 이 쪽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브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고개를 돌리고 열심히 경계서는 척을 했다. 하루가 멀다고 운동장에서 엘시와 이브가 대련했기 때문에, 익숙한 일이었다. 시에리가 수건을 가져다줬다. 이브는 목덜미와 얼굴을 닦아내고 다시 한번 옷을 털었다.
“나 혹시 뒤에 묻었어?”
“아, 다 털었어요. 이따가 들어가서 한 번 더 털면 될 것 같아요. 옷 주실래요?”
“야야, 이런 건 아이라 시켜. 왜 네가 하려고 그래 응?”
“네? 하, 하지만…….”
“너 영주 부인이라니까?”
이브와 시에리가 투덕거리는 것도 일상이었다. 이브는 항상 유약하게 구는 시에리가 걱정인 동시에, 시에리가 강하게 나가서 맛이 가는 걸 경계하고 있었다. 이브에게서 옷을 빼앗으려는 시에리와 자기가 직접 하인들에게 주겠다는 이브가 약간의 신경전을 벌였다. 결국, 지는 건 시에리였다. 그녀는 뾰로통한 얼굴로 이브에게 중얼거렸다.
“언제는 평소처럼 지내라고 하셨으면서…….”
“아니 씨발 영주 부인다운 평소가 있을 거 아니야. 아니면 좀 가서 기도라도 해. 너 종교인이잖아. 기도하면 얼마나 좋아? 네가 나를 이렇게 보조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널 내 아랫사람으로 본다니까?”
“그렇지만…….”
“넌 부인이야. 알았지?”
“그래도 도움이 되고 싶은걸요.”
“씨발. 진짜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이브는 고개를 흔들며 투덜거렸다. 그녀의 말처럼, 뭐라고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러다가 시에리가 또 강하게 나가보겠다며 이상한 짓이라도 시작하면 뒷감당이 안 됐기 때문이었다. 이브는 혀를 차며 집무실로 올라갔다.
“그래서, 오늘 처리할 일은 뭐야?”
“수도에서 청구서가 날아왔어요.”
“청구서?”
“네.”
집무실에 도착한 이브가 청구서의 봉투를 뜯어서 확인했다. 반지 4개. 그리고 란제리 한 벌. 이브는 입꼬리가 실실 올라가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반지라는 데?”
“반지요?”
시에리도 반지라는 말에 기분이 좋은 듯 얼굴을 붉히며 이브에게 달라 붙어왔다. 이브를 슬슬 밀어내다시피 하며 편지를 확인했다. 란제리라는 문구는 두 사람이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이브가 말했다.
“반지가 4개면, 너, 나, 그리고 아이라. 이렇게 해도 한 명이 남는데?”
“그, 용사분 아닐까요?”
“아닐 거 같은데.”
이브는 에이에이가 루시우스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루시우스는 여자를 좋아하긴 했지만,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러면 루시우스가 또 반지를 주는 사람이 이 영지에 있다는 이야기인데…….
“인어. 마법사가 수리하려면 청구서라는 게 필요하다고 한다. 청구서 만들어줘라.”
문이 벌컥 열리고 엘시가 들어왔다. 탱크톱 차림의 그녀는 육감적인 몸매를 뽐내고 있었다. 이브는 언제나 노출도 높은 그 복장에 기가 찬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택 안에서는 제대로 입고 다니라니까? 아주 벗고 다니지 그러냐? 어?”
“벗는 건, 성직자 앞에서만 할 거다.”
“그래, 그건 아주 잘……. 가만 있어 봐.”
이브는 엘시를 쳐다봤다. 시에리도 엘시와 편지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이브에게 물었다.
“혹시 엘시 씨에게?”
“그런가 본데?”
이브는 다시 엘시의 손가락을 바라봤다. 수인인 그녀의 손은 사람보다는 고양이와 좀 비슷해서, 반지가 들어가기 힘든 크기였다. 이브는 청구서를 보며 시에리에게 물었다.
“반지 가격이, 하나만 유난히 싸지?”
“다른 재질로 만들었나 봐요.”
“뭘 그렇게 쑥덕거리나. 인어. 각반 고쳐야 한다. 청구서 내놔라.”
“야, 너 장신구 좋아하냐?”
이브가 엘시에게 물었다. 엘시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물었다.
“장신구? 뼈 목걸이 같은 거 말하는 건가?”
“어, 그런 거.”
“좋아하진 않는다. 싸울 때 거추장스럽다.”
“그래? 신랑이 네 것도 사 오는 모양인데 필요 없겠네?”
엘시는 루시우스가 장신구를 사 온다는 말에 어깨를 들썩이더니 고개를 기울이며 꼬리를 살랑살랑 움직였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서 이브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엘시에게 눌린 시에리가 이브와 엘시 사이에서 몸을 뺐다. 엘시는 편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인어. 읽어줘라.”
“이걸? 이거 그냥 청구서인데.”
“청구서? 액세서리를 사는데도 청구서가 필요한 건가?”
“어, 귀족들은 다 그래 돈을 들고 다니면 강도 들거나 도둑맞을 수 있으니까, 그냥 영지로 청구서를 보내서 그쪽에서 계산하게 하거든. 우리 신랑은 졸라 쌔서 그럴 필요가 없을 거 같은데, 꼭 청구서를 쓰더라.”
“그럼, 성직자가 내 장신구를 산 건가?”
“아마도? 확실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네거 아닐까?”
“그런가.”
엘시의 꼬리와 귀가 살랑살랑 움직이고 있었다. 이브는 저 꼬리를 물속에 담그고 있으면 대어를 낚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브가 물었다.
“그렇게 좋아?”
“하나도 좋지 않다. 장신구는 싸울 때 방해만 된다. 성직자가 불필요한 짓을 하는 게 분명하다.”
“그럼 주문 취소할까?”
“그, 그럴 필요는 없다! 불필요하지만! 성직자가 사줬으니까, 차야 한다!”
이브가 슬쩍 간을 보자 엘시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이브는 엘시가 언성을 높이는 게 신선한 듯 낄낄 웃으며 말했다.
“귀엽네.”
“귀엽다고 하지 마라.”
“시에리.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이브가 시에리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엘시가 눈을 살짝 찌푸리고 시에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옆에서는 이브가 실실 웃으면서 시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황한 시에리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허둥대며 말했다.
“아, 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재미없게.”
“인어가 나쁘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웅다웅하던 것도 잊고 이브가 말했다.
“들어와.”
기사단원이었다. 그는 방 안에 세 사람이 전부 모여있는 걸 보고 흠칫하더니, 헛기침하며 말했다.
“실례 했습니다. 왕궁에서 찾아오신 귀빈이 있습니다.”
“귀빈? 누군데?”
“벨릭스 카린 기사님이십니다.”
“갑자기 왜 왔대? 신랑이 잘못한 일 있나?”
벨릭스 카린이 사랑교 관련 업무를 위해 내려왔다가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런 그녀가 다시 이쪽으로 내려온다고 하니 이브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 직접 만나 뵙고, 이야기를 드린다고 하여서, 일단은 1층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올라오라고 해.”
“네.”
기사단원이 사라지자 엘시가 물었다.
“인어. 나도 다른 곳에 가 있으면 되는 건가?”
“아니, 너는 여기 있어. 다 같이 듣는 게 낫지.”
“그럼 엄마 인어를 데리고 올까?”
“그건 괜찮네. 우리 엄마 좀 데리고 와주라.”
이브는 집무실의 응접용 의자를 세팅했다. 시에리가 이 일을 돕지 못하도록 강제로 앉혀놓았다. 이브가 시에리에게 물었다.
“아이라는?”
“1층에서 청소 중이에요. 부를까요?”
“아니 됐어.”
카린이 올라온 건 이브가 마지막 의자를 세팅했을 때였다. 이브는 의자를 놓고, 집무실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허리를 쭉 폈다. 노크 소리와 함께 카린의 무뚝뚝한 음색이 들려왔다.
“왕국 기사단원 벨릭스 카린입니다. 델몬 영지 건으로 협조를 구하기 위해 이렇게 방문하였습니다. 들어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여도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