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04
벨릭스 카린이 문을 두드리며 꺼낸 안건이 너무나 뜬금없었기 때문에, 이브와 시에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고개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카린은 여전히 기품있게 웨이브 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부터 숙여 보였다. 시에리는 기사가 자신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사실에 오묘한 거북함을 느꼈다. 거북함을 느끼는 건 이브도 마찬가지인 듯 꺼림칙한 표정으로 카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우선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건임에도 이렇게 손을 빌리게 되는 점 죄송합니다. 저희 조사단원들과의 협의 결과 저희끼리 조사를 하는 것보다 여기서 협조를 구하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일인데?”
“우선 이 문서를 봐주시겠습니까?”
카린이 꺼내든 문서는 델몬 영주에 대한 사건 보고서였다. 시에리가 보고서를 보고 입을 틀어막고 놀랐고, 이브는 눈을 찌푸렸다. 보고서 안에는 델몬 영주가 저지른 패악질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와, 대단한 새끼네. 그래서, 얘를 어떻게 할 건데?”
“원래 계획은 바로 영주 저택으로 쳐들어가서, 기사단원과 경비병들을 제압한 후 델몬 영지의 영주 신병을 확보하여 수도로 복귀하는 것입니다만, 델몬 영지의 크기가 제법 크고 도주의 위험이 매우 컸기에 보다 확실한 방법을 쓰자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뭔데?”
카린이 작전 계획서를 꺼내 들었다. 시에리와 이브의 시선이 종이로 향했다.
“씨발.”
이브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무도회장에 모인 사람들은 그녀의 중얼거림보다는 외양과 행동에 더 주목하는 듯했다. 이브 옆에 서 있는 엘시는 자신이 입은 연미복이 불편한지 자꾸 벗으려고 했다. 이브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벗지 마. 신랑 앞이 아니면 안 벗는다며.”
“그렇지만 이 옷은 너무 불편하다. 안에 옷 입었으니까 벗고 싶다.”
“조금만 참아.”
이브와 엘시는 지금 델몬 영주의 저택에 있었다. 이브는 자신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시선들과, 쑥덕거리는 잡담에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엘시는 자신에게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뒷말 나오는 걸 가만둔 적이 없던 이브에게 이 환경은 너무나 참기 힘든 것이었다.
“씨발 진짜, 첫 무도회는 신랑이랑 같이 가고 싶었는데.”
“나랑 와서 싫은 건가?”
“너랑 와서 싫은게 아니라 일 때문에 와서 싫은 거야. 씨발 내 생에 첫 무도회를 이딴 일에 쓴다고? 좆같네.”
이브가 투덜거렸다. 그녀는 며칠 전 벨릭스 카린이 제안한 작전을 떠올리고 있었다. 벨릭스 카린이 내민 작전 계획은 이랬다.
1.저택 정문으로 기사단이 돌입하여 영주를 체포하는 건 매우 쉬운 일이지만, 이 경우 영주가 문을 걸어 잠그고 농성하거나 증거인멸이나 도주를 시도할 수가 있다. 기사단 내부 조사 결과 영주는 마틸다 외에 다른 아동들에게도 마수를 뻗친 정황이 포착되어 이를 확실하게 조사해야 하는데, 영주가 저택 내부에 있을 증거를 인멸하면 이게 힘들어진다.
2. 따라서 기사단원들이 증거를 수집하는 동안 내부에서 저택 인원들을 묶어줄 사람들이 필요한데,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선, 강한 완력을 가졌고, 소수 정예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기사단 내부 회의 결과 페타 영지에 협조를 구하자는 결론이 나왔다.
3. 델몬 영지에서 이번에 친목을 다지는 겸 영지 내 유지들과의 무도회를 개최한다고 하니 이 무도회에 참가해서 영주와 그 식솔들의 움직임을 묶어줬으면 좋겠다.
이상의 작전 계획에 따라 가장 효율적으로 따를 수 있는 건 이브와 엘시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브는 질색했고, 엘시는 무도회에 흥미가 가득한 기색이었다. 카린의 간곡한 부탁과 이번 일로 벌어지는 모든 ‘사고’는 문제 삼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나서야 이브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영주는 이브와 엘시가 참여했다는 사실이 제법 흡족한 듯했다. 이 흡족함이라는 게 남부 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인어 혼혈과 수인을 관음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흡족함인지, 페타 영지의 영주 부인이 참가했다는 권력적 측면에서의 흡족함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는 파티 자체보다 파티에 참여한 어린 사용인들을 희롱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이브가 보기에도 참 이상한 파티인 게, 사용인들이 죄다 어린아이들이었다. 영주는 가끔 사용인들이 음료수나 포도주를 가져다주면, 참 잘했다며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 주면서 돌려보냈다.
“더럽네 진짜.”
이브는 이 역겨운 광경과 더불어 자신을 향한 동물원에 온 동물을 감상하는 듯한 그 좆같은 시선을 느꼈다.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흠칫하고, 영주에게 가서 뭔가 질문하는 일련의 과정이 수차례 반복되는 모습에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했다.
“씨발. 다 죽여버릴까?”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 기사가 죽이면 안 된다고 했다. 참아라.”
“영주 식솔들만 살아있으면 되는 거 아니야. 저 나쁜 놈들이 지금 우릴 무슨 동물원 짐승 보듯이 하고 있다니까? 화 안 나?”
“별 감흥 없다. 그보다 인어. 이걸 봐라. 파이에 고기가 들어가 있다. 파이도 맛있고 고기도 맛있는데, 맛있는 걸 합쳐서 엄청난 걸 만들었다. 이건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건가?”
엘시는 실시간으로 스트레스를 쌓고 있는 이브와 다르게 무도회에서 일어나는 온갖 관음적 행위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관심은 미트 파이에 쏠려있었다.
“돌아가면 요리사한테 가끔 미트 파이 해달라고 해둘게. 기사단원들한테는 소식 없어?”
엘시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없다.”
“씨발.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야. 이 새끼들 오는 거 맞아?”
“기다려야 된다. 인어.”
“좆같네.”
이브는 식탁에 기댄 채 와인을 홀짝거렸다. 고급품을 사용해서 그런지 부드럽게 넘어갔다. 몇몇 지역 유지가 이브에게 말을 걸고 싶어서 몸을 배배 꼬며 발을 조금씩 내밀고 있었다. 이브가 그쪽으로 시선을 주자, 머리가 반쯤 벗어진 중년 사내가 말했다.
“어이고, 페타 부인 아니십니까.”
“아 네 안녕하세요. 그쪽은?”
이브는 공손한 말투와 삐딱한 자세를 유지하며 사내를 훑어보고 있었다. 지역 유지는 그녀의 불손한 태도도 상관없다는 듯이 이를 드러내며 씩 웃어 보였다. 이브는 이 남자가 대체 뭘 원하는 건지 알 수 없어서 눈꼬리를 치켜세우며 노려봤다.
“아, 저는 델몬 영지의 상단주 모리스라고 합니다. 그냥 인사라도 하고자 왔습니다.”
“아, 그렇군요. 네 반갑습니다.”
이브는 엘시를 쳐다봤다. 엘시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브는 엘시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불꽃놀이를 하는 걸까? 작은 불꽃이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었다. 날아오른 불꽃이 하늘에서 펑 터지며 폭음을 울렸다.
“신호다.”
엘시가 말했다. 모리스가 사업 이야기를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혹시 페타 부인께서는 이번에 저희가 새롭게 출시하는…….”
“좆까.”
“네?”
모리스는 당황한 얼굴로 이브를 바라봤다. 이브의 손이 모리스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영주는 오늘 기분이 좋았다. 페타 영지에서 손님도 찾아왔고, 자신이 후원하는 아이가 드디어 마음을 열어줬기 때문이었다. 영주는 자신의 동생에게 말했다.
“그래서, 드디어 마틸다가 내 마음을 이해해준 것 같다.”
“이야, 다행입니다. 형님. 장가가시겠군요.”
“그러니까 말이야. 이번에 교복을 5벌이나 만들고 싶다지 뭐냐? 그것도 사이즈도 다 다르게 해서 말이다. 나를 지극정성으로 모시겠다는 뜻이지. 나이를 먹어도 먹어도 나에게 변치 않는 애정을 주겠다는 뜻이고. 바로 대금 결제해서 보냈다.”
“하지만 형님. 형님은 열여섯살이 넘으면 전부 차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많이 준비할 필요가…….”
“어허, 굳이 그런 말을 해서 우리 마틸다를 속상하게 해야겠어? 사랑은 불꽃과 같아서 아주 짧은 시간 뜨겁게 불타오르는 법이야. 동생아. 나는 지금 그 누구보다 뜨거운 사랑을 하고 있다.”
“허허, 그렇군요. 저도 이번에 작업 치는 애가 있는데 곧 넘어올 거 같습니다. 형님도 이참에 대금업으로 전향하시죠. 빚대신 애를 달라고 하면 부모들이 아주 껌뻑 죽습니다.”
“너는 사랑을 몰라. 그런 식으로 했다간…….”
쾅!
“우아아아악!”
영주가 갑작스러운 굉음에 비명을 지르며 몸을 숙였다. 무도회장 한구석이 대포를 맞은 것처럼 푹 파여있었다. 부서진 파편 너머로 부르르 떨리는 다리가 보였다. 영주가 당황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이, 이게 무슨…….”
“씨이발, 지금부터 뒤지기 싫으면 다 저쪽 구석으로 가라. 알았어?”
이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직 사태파악을 못 한 사람들이 슬금슬금 무도회 출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저택 무도회의 문은 단 하나뿐이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한 사내가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문손잡이를 잡으려던 그 손은 갑작스레 기괴한 각도로 꺾여나갔다.
“우아아아악!”
남자가 바닥에 쓰러져서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문 앞에 선 엘시가 손을 털며 이브에게 말했다.
“어떻게 하지?”
“걔는 이쪽으로 던지고, 그 문 넘어가려는 사람은 다 죽여버려.”
“죽이는 건 너무 과하다. 그냥 대충 기절만 시키겠다.”
엘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해.”
“이게 무슨 짓입니까 페타 부인! 남의 영지에서 행패를 부리다니!”
영주가 이브의 행동에 대해 항의했다. 영주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뭉쳤고, 그의 호위 역으로 참가한 기사단장이 칼을 빼 들고 근엄한 얼굴로 이브를 노려봤다. 이브는 가운뎃손가락을 추켜올리며 대꾸했다.
“좆까 더러운 아동성범죄자 새끼야.”
“뭐, 뭣?”
영주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색이 변했다. 그는 자신이 범죄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는 무도회에서 이브가 난동을 부렸다는 사실보다 자신을 모욕했다는 사실에 더 분노했다.
“기사단장! 당장 저 더러운 물고기를 죽여버려라!”
“씨발 물고기?”
이브가 인상을 찌푸렸다. 기사단장은 묵직한 대검을 들고 이브에게 달려들었다. 육중한 갑옷만큼이나 거대한 덩치를 가진 기사단장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도회의 무너진 탁자와 음식들이 쿵쿵 흔들렸다.
“우아아아아!”
기합성과 함께 대검이 이브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브는 고개를 살짝 비틀더니 입을 쩍 벌리고 대검의 날을 향해 달려들었다.
캉!
대검과 사람의 머리가 맞부딪혔다기에는 너무도 강렬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불꽃이 피어오르며 기사단장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이브는 대검의 날을 이로 붙잡은 채, 주변을 쓱 돌아봤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있었다. 기사단장은 이브의 머리를 그대로 잘라내고 싶은 듯했지만, 아무리 힘을 줘도 자신만 밀려날 뿐 이브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