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07
마부가 다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출장이 잦은 나로서는 마부와 잘 지내는 게 좋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마차 좌석에 올려놓은 반지와 란제리 박스를 톡톡 건드리며, 란제리를 누구에게 입힐지 고민했다.
밤이 되도록.
저녁이 되면 여관에 들러서 잠을 청했다. 굳이 야간 행군을 자처할 만큼 급한 여행길이 아니었기에 해가 지기 전에 가까운 마을에 들러서 반드시 잠을 청했다. 낮에는 마부와 잡담을 하며 길을 내려가고, 저녁에는 여관에 들러서 가볍게 맥주 한잔과 함께 잠을 청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영지 인근에 도착할 무렵의 아침. 기분 좋게 일어난 나는 마부에게 잘 잤냐는 인사를 건네기 위해 마차로 향했다. 하지만 마부석에 앉아있는 마부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듯 담요를 꼭 끌어안고 벌벌 떨고 있었다.
“마부 무슨 일 있나요? 밤이라도 지샜어요? 왜 담요를 끌고 여기 있는 거예요. 객실에서 자지.”
“여, 여, 여, 영주님. 제가 어젯밤에 악마들의 행진을 본 것 같습니다.”
이건 또 무슨 신기한 개소리일까. 내가 친해졌다고 무리수를 두는 건가? 나는 시큰둥한 얼굴로 마부에게 부가 설명을 요구했다. 마부는 하루 만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고 숙취에 시달린 사람처럼 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부가 말했다.
“어, 어젯밤에 잠깐 잠이 안 와서 산책하려고 밖에 나왔는데, 어, 엄청난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뭔데요?”
“그건 말 그대로 지옥에서나 볼법한 광경이었습니다.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거대한 수레바퀴를 단 마차를 굴리며 가고 있었습니다. 그 수레바퀴에는 수많은 사람이 매달려 있었고, 그들은 미약한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에이, 말도 안 돼요. 꿈꿨겠죠.”
“정말입니다!”
나는 마부의 필사적인 심정에 공감하여서 그를 믿어주기로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믿지 않았다. 왕국 기사단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 이 세상에서 어떤 놈이 그런 짓을 하겠는가? 마부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였지만, 나는 출발을 재촉했다. 빨리 저택으로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델몬 영지에 들어섰을 때, 우리는 기괴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경비병들이 전부 바닥에 드러누워서 근무 태만을 하고 있었고 행인들이 지나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우리가 도착하고 나서야 경비병들이 자리에서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와서 목적과 신분을 물었다. 마부가 나를 대신해서 대답했다.
“페타 영지의 영주님이자 대천신교 남부 사제장이신 페타 루시우스 님이 타고 계십니다.”
“아이고, 그분?”
의욕 없던 경비대장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를 슬쩍 쳐다보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너희들! 빨리 나와서 인사드려! 사제장님이 오셨다!”
경비대장의 말에 경비병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내게 인사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고, 물었다.
“분위기가 어수선하군요. 델몬 영지에 무슨 일이 생겼나요?”
아마 지금쯤이면 카린이 도착해서 영지를 씹창냈을거라고는 예상했지만, 경비병들의 분위기를 보니 그냥 박살 난 게 아니라 영주의 가족이 떼 몰살이라도 당한 게 아닌가 싶었다. 굳이 내가 영주를 조져버렸다고 말할 필요는 없으므로 나는 사태를 모르는 척 물었다. 경비병이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왕국 기사단이 쳐들어와서, 우리 영주님을 체포해가셨습니다.”
“안타깝군요. 나름 인품이 좋은 분이라고 들었는데.”
“인품이 좋다니요. 그놈은 천하에 죽일 놈입니다. 그런 쓰레기를 지금까지 영주로 모셨다는 게 천추의 한입니다.”
그 이전에 영주로 군림하던 금발 태닝 뚱보 영주도 이렇게까지 증오받지 않았는데, 영주는 영지 내에서도 과도한 패악질을 저지른 모양이었다. 경비대장은 영주가 잘 죽었다며 이를 갈고 있었다. 그 내용을 알지 못하는 나는 안타까운 표정만 짓고 대충 공감했다.
“저런, 아무래도 사정이 있었나 보군요. 왕국 기사단의 칼은 틀린 적이 없지요. 그래서, 영주 분은 어떻게 됐나요?”
“말도 마십시오. 수도에서 내려오시는 길이면 보셨을 겁니다. 거대한 수레바퀴에, 영주부터 영주 가족. 그를 따르는 기사단들까지 전부 엮어서 재판장까지 굴려 보낸답니다. 우리 검문소를 통과해서 저는 그 광경을 생생하게 보았습죠. 힐을 걸어주느라 지친 사제들과 행복하게 웃고 있는 여기사님의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 와중에 수레바퀴에서는 계속해서 비명이 쏟아져나오고 있었죠. 지옥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히아아악!”
마부가 비명을 질렀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카린 미친년이 드디어 어떤 경지에 도달한 게 틀림없었다. 마부는 덜덜 떨면서 고개를 휘젓고 있었다. 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마부를 바라보다가 경비대장에게 말했다.
“그럼 수고하세요. 하지만 영주가 없다고 너무 나태한 모습을 보이진 마세요. 영주의 명령으로 지킨다지만, 경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영지를 지킬 수 없습니다. 영지는 당신 가족들이 사는 터전이기도 하잖아요?”
“명심하겠습니다.”
경비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마부에게 걸음을 재촉하게끔 했다. 어차피 남의 영지니 경계 상태에 대해 더 간섭하기도 귀찮았다. 영지에 다다를수록 내 목표는 교복 섹스에 가까워지고 있었으니까.
나는 벌써 화끈한 플레이가 하고 싶어서 몸이 달아있는 상태였다.
“후, 선배라고 부르게 해야지.”
“네?”
“아뇨. 계속 마차를 모세요. 마부.”
페타 영지의 경계면에 도달할 때까지 관찰한 결과 델몬 영지에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영지의 경비병들은 델몬 영지에서 일어난 소란에 대해 매우 궁금한 기색이었다. 그들은 내가 돌아오는 걸 보자마자 경례를 하고 델몬 영지에서 일어난 일에 관해 물었다.
“페타 부인께 여쭤보아도 딱히 대답을 해주지 않으셔서…….”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생각해봤을 때, 이번만큼은 이브가 아주 현명하게 대처했다고 볼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주 끔찍한 일이 있었어요. 그 정도만 알아두세요.”
“알겠습니다.”
경비병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저택은 바로 코 앞이었다. 나는 상자들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심호흡을 했다.
“영주님. 저택에 다 도착했습니다.”
내가 온다는 소식은 마차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영지에 당도한 모양이었다. 이브가 셀루를 끌어안은 채 대문에 서 있었다. 그 옆에는 시에리와 엘시, 로빈, 소야가 서 있었다. 내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시에리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서 오세요.”
나는 상자를 꺼내면서 말했다.
“시에리. 이브. 빨리 방으로 올라가서 씻고 기다려요.”
“네?”
“엉?”
“빨리.”
나는 재촉했다.
“……진짜로 가져왔네.”
이브는 실로 담백하기 짝이 없는 감상을 말했다. 내가 내민 상자에 입꼬리를 실룩샐룩 움직이며, 올게 왔다는 듯이 굴던 그녀는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게 교복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흥분을 가라앉혔다. 시에리 역시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게 교복이라는 사실에 맥이 빠진 얼굴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당연하죠.”
“이거 말고, 그……. 다른 건 없어?”
“다른 거? 아, 이거요?”
나는 다른 상자를 내밀었다. 시에리는 이브에게 건네지는 상자를 복잡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브 역시 시에리를 힐끔 바라보고, 다시 내게 물었다.
“내 것만 있어?”
이 상자 역시 반지라기에는 너무 큰 부피를 자랑하고 있었다. 경망스럽게 상자를 흔들어본 이브가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 들어있는 건 란제리였다.
“와…….”
이브가 입을 헤 벌리고 란제리를 들고 허공에 휘휘 흔들어 보였다. 이브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으니, 나는 놀리는 건 여기까지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반지는 내가 가져온 다른 가방 안에 들어있었다. 나는 이브와 시에리 이름이 적힌 상자를 꺼내서 두 사람에게 건네줬다.
“에이, 뭐, 뭔데?”
이브는 웃고 있으면서도 기쁘지 않은 척 작은 상자를 받아들였다. 시에리도 기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반지 상자를 받아들였다. 이브가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자, 반지가 반짝반짝 빚을 내고 있었다. 이브는 눈을 찌푸리고 안쪽에 적힌 문구를 읽어내려갔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거 알지? 이브…….”
이브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붉게 달아올랐다가 헛기침을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툴툴거렸다.
“나, 낯간지럽게……. 신랑. 그, 왜 갑자기 이런 걸 사주기로 한 거야?”
“그냥 생각이 나서?”
진실은 덮어둘 때 아름다운 법이다. 이 모든 일이 선물을 잘못 전달해준 나비효과라는 사실은 밝힐 필요도 없었고, 이해 가게 설명하는 것도 힘들었다. 이브는 내가 생각났다는 말에 반지를 꼭 쥐며 입꼬리를 실룩거렸다. 이브는 내 앞에서는 헤벌쭉 웃는 걸 자제하는 경향이 있었다.
“네가 제일 귀여워. 시에리……. 헤헤……. 감사드려요. 영주님.”
시에리도 반지를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이브는 시에리의 문구를 듣고 살짝 새침하게 입술을 비틀더니 다시 자기 반지를 바라보며 입을 움찔거렸다. 나는 다시 교복들을 들이밀며 말했다.
“그럼. 입어줄 거죠? 이거.”
“아니, 뭐. 신랑이 부탁하니까 입어주긴 할 건데……. 나 다리가 안 예뻐서 짧은 치마는 별로…….”
이브가 망설였다. 나는 그녀를 상자로 콕콕 찌르며 말했다.
“이브는 무엇을 해도 이뻐요.”
이브는 내 말에 더욱 당황해서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횡설수설했다. 그녀는 내가 아직 인수인계하지 않았다는 걸 떠올리고 이렇게 말했다.
“저기, 인수인계 해야 하지 않아?”
“특별한 일 있었어요?”
“아, 이번에 카린이 내려와서…….”
“제가 공문 보낸 일이잖아요. 다 알고 있어요. 인수인계보단 지금 이 상황이 제겐 더 중요하다고요. 이브. 시에리도 입어줄 거죠?”
“아, 네. 저도 지금 바로 갈아입을까요?”
시에리는 벌써 교복을 들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이브는 그 모습에 잠깐 멈칫하더니 교복을 들고 말했다.
“알았어. 바로 입을 건데, 그……. 나 다리 진짜 별로다? 치마랑 안 어울려.”
“맨날 보는 다리인데요. 뭐. 핥아줄 수도 있어요. 예쁘니까.”
“아니 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