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10
“신랑.”
“왜?”
“이제 이런 건 하지 말자.”
“안돼. 아직 해보고 싶은 게 많아.”
“적어도 서로 연애하는 내용으로 하면 안 될까? 왜 죄다 강간이야?”
“그럼 순애물로 하면 계속해줄 거야?”
“아, 씨발 말실수했다.”
“괜찮아 시에리한테도 시킬 거니까.”
“…..시에리를 대체 뭐로 만들고 싶어서 그래?”
“나만의 섹스퀸.”
“미친놈.”
“그래도 사랑하지?”
“존나 사랑해.”
이브가 내 볼을 콕 찌르며 덧붙였다.
“선배.”
“엘시. 그렇게 좋아요?”
“좋다.”
엘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녀의 목에는 내가 준 반지가 걸려있었다. 수인들 특유의 털이 북슬북슬하고 두툼한 손가락으로는 도저히 반지를 끼울 수 없는 듯했다.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을 보면서 아쉬워하기도 했지만, 반지를 목에 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듯했다.
나는 손을 뻗어서 엘시의 반지를 만졌다. 엘시는 내게 얼굴을 더 가까이 대서 내가 반지를 만지기 쉽게 해줬다. 내가 물었다.
“옷은 입어봤어요?”
“혼자서는 못 입는다. 단추가 너무 불편하다.”
엘시의 옷은 수인들의 손에 맞춘 것인지 단추 구멍이 아주 커서 엘시의 고양이 손으로도 단추를 여미기 쉬웠다. 하지만 아카데미 교복은 타 종족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빡빡한 마감을 자랑하기 때문에, 엘시의 조악한 손놀림으로 말끔하게 입는 건 불가능했다.
“나중에 시에리에게 도와달라고 하세요.”
“수녀에게? 알겠다.”
나는 반지를 만지던 손을 올려서 엘시의 턱을 매만졌다. 엘시는 기분 좋게 눈을 감으며 내 손에 얼굴을 올리고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꼬리가 아래위로 살랑살랑 움직였다. 나는 반지를 만지작거리는 걸 그만두고 오늘 날아온 문서들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편지가 한 통. 아힐데른 월간지가 한 통 와 있었다.
저번에 아힐데른 왕국에 갔을 때 싼값에 팔길래 한 통 보내달라고 했더니 진짜 보내준 것이었다. 엘시는 내가 자신에게 손을 떼자 불만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성직자. 오늘은 교미하지 않는 건가?”
“조금 이따가 할까요? 지금은 편지를 좀 읽어야 해서.”
편지는 무기명이었다. 어떻게 여기로 온 건지 알 수 없을만큼 겉봉에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다. 알 수 있는 건, 편지에서 오래된 양피지 같은 냄새가 난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겉봉의 냄새를 들이켜보고 상태창도 열어보았다.
[편지 –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다. 마력이 깃들어있다.]상태창으로도 이 편지가 위험한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듯했다. 나는 엘시에게 말했다.
“엘시. 잠시 일해야 하니까, 아래 내려가 있을래요? 가는 길에 소니아 야이반을 불러줘요.”
“알았다. 그런데 그게 누구지?”
“마법사요.”
“아.”
얘는 언제쯤 애들 이름을 다 외워줄까. 내가 엘시를 쳐다보자 엘시는 시선을 홱 피하고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다시 긴장한 상태로 조심스럽게 손을 풀었다. 세상이 워낙 위험하고, 내게 적이 많으니 편지에 무슨 수작이 있을지 몰랐다. 원래는 그냥 읽지 않고 태워버리려고 했는데, 무슨 재질로 만들어진 것인지 불에 타지도 않았다. 나는 편지를 다시 책상 위에 놓고 소야를 기다렸다.
탁탁 지팡이 짚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소야가 문에 몸을 기댄 채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아, 안녕하세요오, 영주님. 오, 오랜만이에요.”
“네. 소니아 야이반.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냈나요?”
“네. 저야 영주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 덕분에, 이렇게…….”
“다행이네요. 다리는, 제가 대충 알아봤는데. 부러진 채로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힐로는 치료가 안 되더라고요. 미안해요.”
“아, 아니에요. 영주님. 영주님이 저를 받아주신 것만 해도……. 그…….”
소야의 큰 가슴이 출렁출렁 흔들렸다. 그녀가 허리를 살짝 숙이면, 가슴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저 음란한 장신을 하루빨리 넘어뜨리고 싶었지만, 나는 샘솟는 욕구를 참아내야 했다. 마법사를 잘못 건드리면 여러모로 귀찮아졌다. 나는 편지를 소야 쪽으로 밀면서 말했다.
“편지가 왔는데, 좀 수상해서요.”
“수상하다?”
“네. 한 번 봐보시겠어요?”
불에 태울 수도 없고 찢어버리기도 찝찝하다면 마법사에게 맡기는 게 최선이었다. 소야는 편지를 조심스럽게 들고 손끝에 마나를 주입했다. 눈동자가 푸른 빛으로 물들더니, 머리카락과 그녀의 로켓 같은 가슴이 둥실 떠올랐다.
세상에, 가슴이 떠오른다고?
“후…….”
애드벌룬처럼 떠올라서 둥실둥실 흔들리는 가슴에 최면에 걸린 것일까. 나는 소야가 편지를 검사하는 시간이 너무 짧다고 느껴졌다. 그녀의 손끝에서 점멸하던 빛이 스러지고, 가슴이 다시 내려왔다. 내 시선이 가슴에 향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소야가 편지에 시선을 집중하며 말했다.
“음, 그렇게 큰 이상은 없네요. 그냥 보호 마법이 걸려있어요. 마력이 엄청난……. 이 편지의 주인이 엄청난 마법사인가 봐요.”
“보호 마법이라, 한 번 더 검사해보시겠어요?”
“네?”
“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아, 네.”
다시 가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집무실 책상 아래로 내 자지를 슬슬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음행을 눈치채지 못한 소야는 다시 편지를 내밀었다.
“네. 이상은 없고, 그냥 평범하게 열면 되실 거에요. ”
“아, 네. 네. 보호 마법이 걸려있다면서요?”
나는 얼굴색을 바꾸고 평온한 어조를 유지하며 소야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네. 그런데, 영주님 손에 닿은 시점에서 해제가 됐거든요. 영주님만 열어볼 수 있게끔 조치를 취한 마법인 것 같아요. 마법사 지인이 있으신가요?”
“마법사 지인? 아니요.”
누구지? 나는 편지 봉투를 조심스레 뜯었다. 소야의 설명처럼 편지를 열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개봉된 편지 – 누군가 뜯어서 개봉된 편지다.]“뭐야 씨발.”
“아, 왜 그러세요?”
“아니에요. 소니아 야이반. 이제 수고했어요. 다시 내려가서 편히 쉬세요.”
“아, 영주님.”
“왜 그러죠?”
내가 다시 소야를 쳐다보자 소야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수도……. 다녀오셨다면서요.”
“네.”
“혹시, 그……. 제 선물……. 도 사 오셨는지…….”
나는 난감했다. 소야한테 뭘 줘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말을 돌렸다.
“소니아 야이반. 마법사들은 뭘 좋아하나요? 수도에서 뭔가 좋은 선물을 사드리고 싶었는데, 마법사들이 뭘 좋아할지 몰라서 결국엔 고르지 못했어요. 마법사들은 민감하게 여기는 선물이 있었다고 들었거든요. 뭘 좋아해요? 마침 그것도 물어보고 싶었는데, 먼저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줘서 고마워요. 조금 늦은 선물이지만, 특별히 당신을 위해서 수도에서 주문할 테니까요.”
“아, 아, 아니에요! 마음만으로도 충분해요! 정말이에요! 저는……. 그……. 마음만으로도……. 마음만……. 헤헤……. 마음…….”
소야가 살짝 기분 나쁘게 웃으며 몸을 숙였다. 실실 웃는 모습이 조금 꺼림칙해서, 나는 일단 소야를 내려보내기로 했다. 무슨 선물을 사달라고 할지는 본인이 알아서 정할테니까. 내 기준에서 생각해봐도 교복이나 란제리를 지금 주는 건 조금 그랬다.
“그럼 소니아 야이반. 내려가서 선물에 대해 좀 고민해 보고 있으세요. 저는 편지를 읽어봐야 하니까요.”
“네, 에헤…….”
소야는 싱글벙글 웃으며 지팡이를 짚고 사라졌다. 저 절뚝거리는 다리도 고쳐야 할 텐데, 한번 불구가 된 상태로 붙어버린 다리는 힐로도 못 고친다고 하니 아쉬움이 앞섰다. 장애인이 미관상 흉측하다는 건 아니지만, 고문 후유증은 치료받는 게 맞으니까.
겉봉을 뜯자 안에는 노랗게 변색한 종이가 들어있었다. 변색된 종이가 아니라 원래 그 색깔일 수도 있었다. 코를 킁킁 대보니 약초와 양피지 냄새가 났다. 봉투를 탈탈 털어서 편지를 꺼내자, 봉투가 순식간에 불타서 사라졌다.
“씹!”
화들짝 놀란 나는 허공에 흩날리는 재를 버리고, 책상 위에 남은 양피지만 바라보았다. 뭐 하는 새끼길래 이딴 장난을 치는 거지?
양피지는 하트 모양으로 접혀있었다. 그 위에 몇 번 다시 접은 듯 약간의 실선 자국들이 남아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양피지를 펴내기 시작했다. 말끔하게 펴내자, 양피지는 언제 접혀있었냐는 듯이 빳빳하게 펼쳐졌다.
마치 비즈 공예를 박아놓은 것처럼 알록달록 예쁜 글씨가 양피지에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나는 첫 문장에서부터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북부는 네가 없어서 추워. 루시우스. 너도 나를 생각해주고 있니?]“아, 아티…….”
아티. 내 정신적 어머니이자, 모유가 나오기로 예정된 드래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