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14
“다행이네. 에리나랑 결혼하지 않아서.”
“그렇죠. 결혼하라고 해도 할 생각 없어요.”
이브가 불안한 기색을 내비치며 나의 안색을 살폈다. 아이라는 펜을 놓고 기지개를 피더니 내게 말했다.
“아, 저 잠깐 물 좀 마시고 와도 될까요?”
민감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니 자리를 피하겠다는 뜻이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라는 콧노래를 부르며 문을 열고 나겠다. 이브는 아이라가 나가는 걸 확인하고, 다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말했다.
“아이라 같은 시종이 없어.”
이브는 내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회계 공부 서류를 덮고 내게 물었다.
“그래서, 정말 그 엘프 공주랑은 결혼 안 할 거야?”
“내가 왜 결혼해? 에리나랑 결혼하려면, 너랑은 이혼해야 하는데.”
엘프 왕국의 공주랑 결혼하면서 이브를 제 1 부인 으로 두는 건 말도 안된다. 그렇다고 이브를 제 3 부인으로 둔다고 타협할 수도 없었다. 엘프 왕국에서 그 타협안을 좋게 받아들일 리가 없었으니까. 엘프 여왕과 장로 모두 인어나 수인이라면 거품을 무는 족속들이니만큼 엘시도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하고, 이브랑 셀루도 바다로 보내게끔 만들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바다로 보낸다고 치면, 인간 왕국이랑 다시 이브의 처우 문제를 두고 또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야 하므로 나로서는 피하고 싶은 선택지였다.
“너도 그냥 엘프 왕국에서 부마로 사는 게 훨씬 좋지 않아?”
이브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브. 날 떠보는 거야? 지금 이 생활이 최고지. 엘프 왕국으로 가면 격식 차려서 신경 쓸 게 많은 데, 여기선 내 영지 내에서는 내가 왕이잖아. 엘프 왕국 부마가 되면 대천신교 사제장도 내려놔야 하는 데, 그거 월급이랑 기부금 받는 게 얼마나 좋은데.”
“아니, 떠보는 건 아니고. 그냥 물어봤지. 그래서, 그럼 어떻게 하게. 네 애라는 게 걸린 거 같은데. 저기서는 어떻게든 너랑 연락할 거 아니야. 애 아빠가 멀쩡히 살아있는데도 굳이 여자고 인간인 용사랑 결혼시킬 바에는 하프 엘프인 너랑 결혼시키고 싶을 것 같은데.”
“그게 문제가 복잡해.”
내가 생각해도 복잡한 문제였다. 에리나가 대체 엘프 왕국 사람들을 뭐라고 구슬려서 에이에이와 결혼을 성사시키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니 사실대로 말한 것 같지는 않았다. 에이에이를 남자라고 공언하려 한 시점에서 이건 에리나의 이미지를 위한 대대적인 사기극이었으니까.
차라리 처음부터 에리나가 몸을 헤프게 써서 남의 아이를 뱄다고 했으면, 에리나가 엘프 왕국 오나홀 소리를 들을지언정 이렇게 복잡해지지는 않았을 텐데, 엘프 여왕의 모성애가 이런 참사를 부른 것이었다.
“이대로 왕손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친자 논란에 휘말릴 거고, 친부가 따로 있다는 게 공개되면, 에이에이가 부마가 될 이유가 없거든. 그렇다고 갑자기 나랑 결혼시킨다고 치면, 에이에이의 입장이 난감해지지.”
진퇴양난. 다른 말로 하자면 어느 쪽을 선택해도 처맞는 가불기에 걸린 셈이었다. 엘프 여왕이 뻔뻔한 엘프라면 그냥 에이에이를 팽하고 나와 결혼을 시도하겠지만, 이조차도 내가 거부해버리면 쉽지 않았다. 어느 쪽을 함부로 시도하기 묘한 상황. 한 달이 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모습을 볼 때, 이 문제로 인한 회의가 길어진다고 예상할 수 있었다.
“영주님. 기사단장 로빈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들어오세요.”
심각한 이야기에 로빈이 끼어들었다. 이브는 다시 서류를 쭉 펴고 회계 처리에 몰두했고, 나는 나대로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로빈은 이브가 사무용 의자에 앉아있는 걸 보고 화들짝 놀라서 그녀에게 인사했다. 이브가 손짓으로 인사를 받고 나자 로빈이 다시 내게 경례하며 말했다.
“영주님. 왕국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그 말에 이브도 나도 로빈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이브는 드디어 올게 왔구나 싶은 표정이었지만, 나는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왕국? 어디 왕국이요? 아힐데른? 우리 왕국?”
“우리 왕국입니다.”
이브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시 펜을 들었다. 나는 고갯짓으로 말했다.
“읽어보세요.”
지금 깔린 서류가 많았기 때문에 책상 위에서 편지를 뜯기 싫었다. 내가 민원서류들을 훑어보고 있자, 로빈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제가 말입니까?”
“빨리요.”
“아, 네. 알겠습니다. 흠. 그, 편지 내용 그대로 읽으면 되겠습니까?”
“네.”
로빈이 헛기침을 한 번 하고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영주. 페타 루시우스에게 왕국은 고한다. 현재 동부 평야 지대에서 진행 중인 대대적인 사랑교 교인 토벌 작전 간에, 수인들과 마찰이 잦아 병력 편성에 난항을 겪고 있다. 짐이 들은바. 페타 루시우스 그대는 수인과 인어들과 교감하는 것을 즐기며, 그들의 생태에 익숙하다고 하니, 동부 평야 지대에 잔존하는 갈등과 부족들 설득에 있어 최전선에 나서줬으면 하는 바이다.”
“뭐라고요?”
내가 되묻자, 로빈이 다시 한번 편지를 읽어보더니 말했다.
“그, 영주님이 수인과 인어에 대한 전문가시니까. 동부 평야 지대에 한 번 오셔서 부족들을 설득해주셨으면 한답니다.”
“아하하하하! 전문가래!”
이브가 크게 웃었다. 전문가라는 표현이 그렇게 웃긴 모양이었다. 나는 또 출장을 가야 한다는 사실이 아주 귀찮았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말했다. 어쨌든 사랑교 문제는 내가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처리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로빈이 나가고 나자, 한창 웃던 이브가 웃음을 멈추고 투덜거렸다.
“씨발. 그런데 또 출장이야?”
“유능한 남편을 뒀으니까 어쩔 수 없지.”
“존나 멋있는데 존나 불편해. 거기다 위험하잖아. 수인들은 성격이 다 씹창나서 신랑이랑 마주치면 신랑을 엘프 육포로 만들어버리려고 할걸?”
“그러니까 엘시를 데리고 가야지.”
동부 평야 지대의 지리를 잘 알고, 수인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선 엘시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왕국에서는 내가 어떤 특수한 공감 능력을 발휘해서 엘시를 꼬셔서 데리고 다니는 줄 알지만, 내가 엘시를 꼬신 건 내 자지와 약간의 거짓말을 섞은 결과물이었다.
“엘시를?”
이브가 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물었다.
“왜?”
“아니, 그 조합으로 가도 괜찮나 싶어서.”
“엘시는 좋아할걸.”
“그거야 그렇지.”
이브는 뭐라고 말은 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듯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다시 서류에 집중했다. 나는 그런 이브가 하고 싶은 말이 뭐였는지 생각해봤으나,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서류 작업이 끝나고 나서, 나는 엘시를 호출했다. 내 호출 소리를 듣자마자 뛰어온 엘시는 내 책상 앞에 턱을 붙이고 앉아서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그녀는 꼬리도 살랑살랑 흔들며 책상 위에 올려둔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가져다 댔다.
나는 엘시의 장난을 받아주고자, 엘시의 손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엘시가 내 손길을 피하며 다시금 내 손등 위에 손을 올리려 했다. 그렇게 몇 차례 서로 손장난을 하다가, 내가 물었다.
“엘시. 제가 왜 불렀는지 알고 있어요?”
“교미하려고 부른 게 아닌가?”
오늘의 엘시도 건강미 넘치는 탄탄한 구릿빛 복근과, 매끈한 각선미를 자랑하고 있었다. 오늘 밤에 엘시와 교미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녀를 부른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나는 엘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엘시. 오랜만에 고향에 가지 않을래요?”
“고향?”
엘시는 내 말이 뜬금없었는지 앵무새처럼 내 말을 따라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녀의 코를 콕콕 누르며 말했다.
“내 고향이요. 저랑 같이.”
“고향에? 왜 가는 거지? 성직자도 이제 동부 평야에서 사는 건가?”
“아니요. 왕국의 일로 평야 지대에서 일을 좀 해야 하는 데, 그 일에 엘시의 도움이 꼭 필요하거든요.”
내가 손가락을 쏙 내밀자, 엘시가 혀로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핥기 시작했다. 얼굴을 살짝 붉히고 나를 올려다보는 모습에 나는 음심이 동했다. 빳빳하게 선 좆이 책상을 툭툭 건드렸다. 엘시는 내 손가락을 입안에 넣고, 이에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혀로 휘감았다. 간질간질한 감각이 손끝에서 내 팔을 따라 온 몸에 흘렀다.
“후…….”
“푸하.”
엘시가 손가락을 뱉어냈다. 타액이 실선으로 손끝부터 엘시의 입술을 이었다. 엘시의 촉촉한 입술을 살짝 벌리니 날카로운 이빨이 살짝 보였다가 사라졌다. 나는 그 손가락으로 다시 엘시의 볼을 쿡 찔렀다. 엘시는 내가 찌른 쪽의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내가 무슨 일을 도와줄 수 있지? 뭐든지 성직자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줄 수 있다.”
“사랑교 놈들을 조사하는데, 수인들의 반발이 거세다고 하네요. 무력 충돌이 줄어들도록 좀 설득을 같이 해줬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런 건 잘 모른다. 어쩌면 짐만 될 수도 있다.”
“상관없어요. 엘시가 도와주는데, 무슨 일이 있겠어요?”
“항상 나를 믿어주는 것. 고맙다고 생각한다.”
“저도 엘시 같은 사람이 저를 위해 봉사해주는 걸 참 고맙게 여기고 있어요.”
“그게 아니다.”
엘시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 강한 부정에 물었다.
“저를 위해 봉사해주는 게 아닌가요?”
“‘봉사’해주는 게 아니다.”
엘시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랑하고 있는 거다.”
낯간지러운 소리에 나는 웃고 말았다. 엘시는 내가 말없이 웃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뭉툭한 앞발로 나를 툭툭 때렸다. 나는 웃으면서 엘시의 공격을 맞아주다가, 그녀의 양팔을 붙잡았다. 엘시가 무방비한 얼굴을 들고 맹하게 나를 쳐다보는 그 순간, 나는 입을 맞추고 손을 놓아줬다.
“읏…….”
엘시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