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21
“날씨가 바뀔 때마다 옮긴다면, 엄청 자주 옮기는군요.”
“그렇게 까다롭게 옮기지는 않는다. 날씨가 바뀐다는 건 어디까지나 시기의 문제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숲 쪽으로 거처를 옮기고, 바람이 시원한 날에는 평야 중턱으로,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이면 강 근처로 옮긴다.”
“숲으로 옮긴다면 엘프들이랑은 충돌이 없었나요?”
“잦았다. 우리가 몰이 사냥을 하는 짐승들이 가끔 숲으로 빠져나갔는데, 이것 때문에 숲이 망가진다고 몇 번 싸움이 났었다.”
“누가 이겼나요?”
“모른다. 난 지금 여기 있으니까. 이번에 마을에 가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부족으로 다시 받아준다면 좋을 텐데.”
엘시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가득했다. 제임스는 엘시에 대해서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조금 전 내 따귀를 맞은 뒤로 줄곧 침묵을 지켰다. 우리는 한참을 걸어서 평야 깊숙이 들어왔다. 이곳은 평야라기보다는 황무지에 가까웠다. 황색으로 물든 땅 위에 마른 풀들이 가득했고, 저 멀리 푸른빛의 나무들이 각자 군집하여 자생하고 있었다.
엘시가 나무들이 모여있는 지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곳은 도그빌 부족들이 자주 오가는 곳이다.”
“도그빌 부족? 혹시 강아지 수인인가요?”
“그렇다. 개 수인들인데, 우리랑 제법 친분이 있다. 지금 시기면 아마 저 나무들 쪽에 자리 잡고 있을 텐데, 오늘 저녁은 저들에게 신세를 지겠다고 부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역시 엘시를 데리고 오길 잘했어요. 당신의 경험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되네요.”
엘시는 내 칭찬에 눈에 띄게 쑥스러워했다. 그녀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내게 몸을 기대왔다.
“별로……. 그리 대단한 건 아니다.”
“으엑…….”
뒤에서 제임스가 작은 소리로 헛구역질을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펜던트를 가슴 속에서 꺼내 안에 들어있는 그림을 한 번 바라보고 다시 숨을 돌렸다. 나는 엘시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무 싫어하지 마세요. 제임스. 당신도 이제 곧 수인을 좋아하게 될 테니까.”
“헛소리하지…….”
나는 다시 주먹을 들어 보였다.
“……마세요.”
제임스는 생긴 거와 다르게 폭력 앞에서 매우 솔직한 사나이였다. 나는 다시 주먹을 펴고 엘시의 지도를 따라서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엘시에게 다시 질문했다.
“엘시. 접경지역에서 이 정도밖에 안 떨어져 있다면 충돌할 일이 많을 텐데, 도그빌 부족의 사람들은 인간에게 적대적이진 않나요?”
“인간에겐 적대적이지 않다. 하지만…….”
엘시가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사랑교에도 호의적이다. 도그빌 부족들이 이곳 병사들과 충돌했을 때, 사랑교 사람들이 둘 사이에 뛰어들어서 젊은 부족민들이 많이 살았다. 그래서 거기 부족장은 사랑교를 엄청 좋아한다.”
그런 사정이 있었다면 어떻게 해보기 힘들었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설득하기 힘들겠네요.”
엘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는 여기서는 사랑교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성직자는 모르겠지만, 여기 있는 기사는 안 그래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서 사랑교 이야기까지 꺼내면 쫓아내려고 할 거다.”
“뭐야, 그럼 난 돌아가도 되나……. 요?”
제임스가 기회라는 듯이 득달같이 귀환 의사를 피력했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임스도 말만 그렇게 하고 실제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던 듯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고 잠자코 이해했다. 사실 해 질 녘이 될 때까지 평원을 가로질러 걸었기 때문에 제임스 혼자 돌아갈 수 없었다.
평원은 넓었고 제임스 혼자 돌아가기에는 너무 위험한 곳이었다. 우리는 엘시가 지시하는 방향을 따라서 나무들이 우거진 오아시스로 향했다.
도그빌 부족이 있는 곳은 오아시스라는 표현이 적당했다. 사막에 있는 오아시스가 사막 한가운데에 수목이 자라난 독특한 풍경을 자랑하는 것처럼. 그들이 머무는 곳은 황량하고 건조한 평야에서 유일하게 푸른 풀이 나는 공간이었다. 수인들 몇 명이 우리들이 다가오는 걸 확인하고 새총으로 돌을 쏘아댔다. 날카로운 기세로 날아든 돌이 총탄처럼 땅에 처박혔다. 나는 한걸음 뒤로 물러났고, 엘시는 귀를 쫑긋쫑긋 움직이며 앞으로 나섰다.
제임스는 바닥에 박힌 돌들을 바라보고 감탄했다.
“누구냐!”
“나다. 엘시. 마림바 부족의 엘시다.”
“엘시? 엘시가 누구지?”
“엘시가 누군지 아는 사람?”
“엘시가 뭐냐?”
나는 웃음이 나오는 걸 참으려고 입술을 꽉 물었다. 엘시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입을 열었다.
“아모리의 딸이다.”
“아아!”
“누군지 안다! 누군지 알고 있다! 그런데 뒤에 있는 놈들은 누구지? 왜 인간과 엘프를 데리고 왔지? 설마 저들에게 잡힌 건가?”
“잡히지 않았다.”
엘시는 다시 새총을 들어 올리는 걸 보고 다급하게 외쳤다. 엘시의 외침을 들은 수인들이 다시 새총을 내리고 엘시에게 물었다.
“그럼 어째서 같이 있나. 특히 저 뒤에 있는 기사는 왜 여기 있는 거지? 요즘 기사들 때문에 문제가 많으니 당장 돌려보내라. 우리는 기사와 대화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그냥 기사가 아니다! 그러니까, 그……. 수인을 아주 좋아하는 기사다! 결혼도 수인이랑 하고 싶다고 한다!”
“뭐라는 거야 지금…. 읍! 읍!”
당황한 제임스가 반박하려는 걸 입을 틀어막아서 막았다.
“씨발 그냥 그렇다고 해. 알았어?”
“읍…. 읍…! 푸……. 아, 예! 예! 그렇습니다!”
제임스는 짜증이 났는지 크게 소리쳤다. 제임스의 우렁찬 대답이 설득력을 가져다준 것일까. 오아시스 앞을 경계하던 수인 무리가 새총을 내려놓고 길을 열어주었다. 우리는 보초들을 따라 오아시스 내부로 진입했다.
“여기가 도그빌 부족의 마을이다.”
수인들의 마을은 생각보다 그 규모가 거대했다. 사람 열 명은 들어가서 잘 수 있을 법한 텐트가 사방에 어지러이 늘어서 있었고, 마을 내부에 오가는 사람들은 어느 도심지와 비교해봐도 바글바글한 정도였다. 우리가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건너편에서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수인 한 명이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엘시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도그빌 족장이다. 이름은 기억 안 난다.”
“인간, 엘프. 그리고 엘시. 왜 도그빌에 찾아왔나.”
“안녕하세요. 저는 대천신교의 사제장인 페타 루시우스입니다. 제 부인인 엘시의 고향 부족인 마림바 부족으로 향하던 길에, 시간이 늦어 부득이하게 들리게 되었습니다. 하룻밤 재워주실 수 있을까요?”
엘시의 제안에 따라, 나는 여기서 우리 목적을 밝히지 않기로 했다. 들은 바에 따르면 여기 도그빌의 족장은 사랑교를 신봉한다고 했으니까. 다짜고짜 설득할만한 수인이 아니었다.
“수인과 결혼? 허, 엘프치곤 신기하다. 엘시. 너도 신기하다. 어쩌다가 엘프랑 결혼했나.”
“나를 노예 신분에서 꺼내줬다.”
“노예 신분에서 꺼내주다니. 사랑교 사람인가?”
“대천신교 사람입니다.”
“그런가. 엘시의 남편이라면 우리 손님이다. 얘들아! 술통을 열어라!”
부족민들이 환호했다. 나는 생각했다. 어차피 마림바 부족을 설득하려면 오늘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 데, 여기서부터 제임스를 수인박이로 만들고 가면 좋지 않을까? 나는 눈에 불을 켜고 기뻐하는 수인들의 면면을 훑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여기서 누가 교미의 달인일까?
손님을 환영하기 위한 수인족의 축제는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나는 술병을 들고 이리저리 방황하며 교미의 달인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개 품종의 수인들이다 보니, 서로 애교가 많았으며, 춤을 추다가 더우면 혀를 쭉 내밀고 할딱거리며 꼬리를 흔들어댔다.
“생각해보니까, 얘들은 다 암캐네? 음탕한 새끼들.”
“응? 뭐라고 했지?”
“아니요. 수인들의 축제는 너무 좋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너무 그……. 제게는 자극적이라 눈 돌릴 것이 없을 정도군요.”
술에 거하게 취한 족장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들고 나를 쳐다봤다. 그의 옆에는 제임스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족장과 술을 먹고 있었다. 생각보다 분위기가 좋아 보여서, 바로 말을 얼버무린 나는 자리를 피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음탕한 암캐같이 남자들과 몸을 비비적대는 수인도 있었지만, 구석에서 조용히 술을 홀짝이고 있는 소심한 수인도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푸른 눈에 흑발과 백발이 섞인 개 수인에게 눈이 갔다.
“뭐해요?”
소심하게 양손으로 술을 홀짝이고 있는 개수인. 특이하게도 개수인들은 고양이 수인처럼 앞발이 동물 모양이 아니라 그냥 손이었다. 다만 털로 된 아대를 찬 것처럼 손목부터 전완근까지 윤기나는 털로 덮여있었다. 나는 그녀의 앞에 앉으며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라이카
종족: 도그빌 부족의 개수인
레벨: 23
호감도: 23
힘: 17
민첩: 36
지능: 18
운: 24
특성
평야의 추적자
초원에서 이동속도가 1.4배로 상승합니다.
새총의 명수
새총을 비롯한 투척 무기를 사용 시 명중률이 대폭 증가합니다.
불세출의 천재
매 레벨업마다, 지능 성장량에 보너스가 붙습니다.
뭐지 생각보다 스텟이 너무 좋은데. 나는 제임스에게 주는 계획은 취소하기로 했다. 얘는 내꺼다. 누가 뭐래도 내꺼다.
라이카는 대뜸 손님인 내가 자기 앞에 자리하자 당황한 듯 술잔을 달달 떨며 시선을 피했다. 나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며 엘시가 뭐 하고 있는지 찾았다. 엘시는 술을 좋아하는 건 아닌지, 다른 쪽 구석에서 아줌마 개수인과 고기를 뜯어먹고 있었다.
“오홍홍홍홍~ 많이 먹는 게 좋아용.”
뭐지 씨발. 저 아줌마. 엘시 옆에는 곰도 때려잡을 만한 덩치를 가진 거대한 아줌마가 매우 인간적인 말투를 구사하며 엘시에게 고기를 먹이고 있었다. 단순히 덩치만 큰 게 아니라, 골반부터 가슴까지 모든 게 거대했다. 마치 미국의 비만 클리닉 광고에 BEFORE 모델로 등장할 법한 체형을 가진 그녀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엘시가 살에 떠밀려서 휘청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