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36
불에 닿을 때마다 새까만 색으로 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글자들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계약서의 내용은 그야말로 끔찍함 그 자체였다.
“이런 악마 같은 새끼들!”
“드, 들어보거라! 내, 내 말을 들어보란 말이다. 루시우스!”
“좆까. 씨발 이딴 계약을 시도해?”
나는 샐리나의 눈앞에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샐리나의 얼굴을 계약서로 문대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바짝 붙이며 소리쳤다.
“씨발! 내가 좆으로 보여?”
– 페타 루시우스는 성욕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성불구자가 되며, 대천신교의 성직자로서 대천신교에 교리에 맞는 충실하고 바른 생활의 소유자가 된다. 또한, 에반젤린을 물리치는 데 힘쓴다. 또한, 이 방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이 방에서 대화만 했다’로 기억이 변경된다.
나를 고자로 만드는 데다가 바른 생활 사나이로 만들겠다니. [시계태엽 오렌지] 이후 이렇게 끔찍한 발상은 존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나는 샐리나의 멱살을 붙잡고 침대 위로 집어 던졌다.
“꺄아아아악!”
그리고 계약서를 찢어버렸다. 내 손에서 완전히 가루가 된 계약서를 뭉쳐서 잔불에 던져 완전히 재로 만들었다. 그 재까지 짓이겨버린 뒤에야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침대 위에 안착한 샐리나는 온몸에 긁힌 자국투성이였으며, 얼굴은 두려움으로 사색이 되어 있었다. 나는 말했다.
“씨발, 그냥 적당히 서로 말하지 맙시다~ 하면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딴 수작을 부리려고 해? 이거 세뇌하는 잔이지? 그렇지?”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세뇌라니! 그럴 리가 없지 않으냐? 우리가, 우리가 그런 외교적 부담을 무릅쓰고 어찌 그런 일을 하겠느냐! 자, 페타 루시우스……. 그냥, 그냥 돌아가도 좋다. 서명은 한 걸로 치겠으니……. 그냥 돌아가거라! 여기서 일어난 일은 문제 삼지 않겠다. 알겠느냐?”
“좆까. 이제 에리나는 좆됐어. 내가 다 까발리고 다닐 테니까.”
샐리나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렸다. 이렇게 기가 센 여자는 단순히 자기 목숨을 가지고 협박해선 듣지 않는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 이를테면 이런 정치적 부담을 안고서라도 지키고 싶은 딸을 빌미로 협박한다면 잘 먹힌다.
“루, 루시우스……? 자, 잘 생각해보거라. 그러면 너한테도 부담이 가지 않느냐. 응? 그냥, 그냥 돌아가거라. 바로 마차를 준비해주겠다.”
“나 세뇌하려 한 것도 까발리고 다닐 건데? 이 [메이가의 맹세]를 인간 왕국에 넘기고 씨발 나를 세뇌하려고 했다고 왕한테 말하면 누가 좆될까? 내가 이거 사용법 모를 거 같지?”
“어, 어떻게 그게 [메이가의 맹세]라는 걸…….”
내 손에는 이미 메이가의 맹세가 들려있었다. 비밀 통로에는 보안 장치가 되어 있었는 데, 여기에는 보안 장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서로 돌아가면서 마셔야 하는 잔인 이상, 이 잔은 누구나 손댈 수 있어야 했다. 샐리나가 덜덜 떨고 있었다.
완벽한 외통수다. 그녀가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나는 주변에 있던 책에서 아무 페이지를 뜯은 다음 종이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샐리나는 덜덜 떨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내가 쓴 글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아힐데른 샐리나(을)는 페타 루시우스(갑)의 노예가 된다.
그리고 그 종이와 펜을 샐리나에게 던졌다.
“서명해. 서명하지 않으면 대륙 전체가 에리나의 보지 색깔까지 알게 해주지.”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거라! 나는, 나는 아힐데른 가문의 여식이며, 이 아힐데른 왕국을 대표하는 여왕이니라! 그까짓 협박에 굴할 거 같으냐!”
아힐데른 샐리나는 앙칼진 목소리로 적의를 불태웠다. 하지만 그녀가 이러는 건 치기 어린 반항에 불과했다. 나는 그녀가 막아낼 수 없는 필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내가 이거 들고 나가서 떠들고 다녀도 되지? 에리나 이미지가 어디까지 씹창이 나는 지 한 번 볼까? 아힐데른 사람들한테 나를 세뇌하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또 어떻게 될까? 씨발 인간 왕국에 진짜 가지고 가봐?”
나는 메이가의 잔을 흔들며 다시 한번 그녀를 압박했다. 샐리나는 그 말에 다시 달팽이처럼 움츠러들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메이가의 잔으로 가볍게 톡톡 때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서명하시라고. 알았어? 응? 씨발 서명을 왜 안하지? 에리나가 무슨 체위를 좋아하는지 아힐데른 사람들한테 알려줘야겠네. 우리 인간 왕국 사람들의 딸감 1호가 에리나가 되게끔 내가 도색 서적을 만들어야겠네! 씨발 화가를 고용해서 춘화집도 만들어야겠어!”
“아, 아아…….”
샐리나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머리를 팽팽 굴리고 있는 게 보였지만, 어찌할 방도는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뭔가 하나를 포기해야 했다. 에리나를 포기하던지, 자기 자신을 포기하던지.
“씨발! 머리 굴리지 말고 서명하라고! 어!”
내가 윽박지르자 다시 한번 샐리나가 고개를 움츠리며 울상을 지었다. 그녀는 의외로 눈물이 많은 듯 얼굴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는 그녀의 머리채를 붙잡고 계약서에 다시 들이밀었다. 강한 폭력과 공포심. 이게 이성을 마비시키고 멍청한 결정을 하게 만드는 지름길이었다. 샐리나는 덜덜 떨면서 펜을 붙잡았다.
“서, 서명하마! 제발, 제발 내 딸은 건드리지 말아다오. 응?”
“봐서.”
내 말에 고개를 빠르게 끄덕인 샐리나가 서명을 시작했다. 빠른 필체로 자신의 이름을 적어내자,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종이를 받아들였다. 멋들어진 필체로 아힐데른 샐리나라고 적힌 이름 옆에 나는 페타 루시우스라고 적었다. 그리고 계약서 항목에 다른 것들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뭘 추가할까…….”
“자, 잠깐만! 뭘 더 추가하려고 하는 게냐! 노예가 되는 거로 충분하지 않으냐!”
“아닌데? 씨발 노예만 되는 거면 네가 좆같이 행동할 수 있으니까 다른 것도 추가해야지. 이런 건 세세하게 적어야 원래 부작용이 없어. 알잖아. 쌍년아.”
“아, 아아……!”
샐리나가 손을 뻗어서 계약서를 뺏으려고 했지만, 그녀의 미약한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이름: 샐리나
소속: 아힐데른의 여왕
레벨: 13
능력치
특성이 적용된 능력치입니다.
힘: 23 (-40)
민첩: 36 (-40)
지능: 60 (-40)
운: 15 (-40)
특성
지도자의 카리스마
그녀의 행정 능력은 타인을 압도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다루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왕
그녀는 아힐데른의 여왕입니다.
권력의 강함에 비례하여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권위를 잃으면 오히려 능력치가 떨어집니다.
엘프의 적응력
숲, 늪, 산, 평야에서 이동속도가 빨라집니다.
바다에서 패널티를 받습니다.
샐리나의 특성은 아주 쓸만했다. 하지만 지금 나와의 노예계약에 서명한 대가로 능력치가 곤두박질쳐서 전투원으로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이 정도 능력치라면 당장 평야에 나가서 수인들이랑 마주쳐도 죽었다. 나는 샐리나를 바라보며 문구를 더 추가하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아힐데른 에리나가 어마마마라고 부르면 멍! 하고 짖는다…….”
샐리나가 당황해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고 말겠다! 읍읍!”
“……자살하지 않는다.”
나는 그녀가 진짜 혀를 깨물려 들자 내 손을 집어넣어서 막았다. 샐리나의 치악력으로는 단련된 내 손을 씹는 게 불가능했다. 한참을 개껌을 씹는 강아지처럼 입질하던 샐리나는 결국 지쳐서 늘어졌다. 그녀가 내 손을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동안 나는 대체 무슨 문구를 더 추가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내 말에 절대복종하고, 내 말을 듣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
그 말에 샐리나가 기겁을 했다. 그녀는 이제 애달픈 목소리로 내 동정심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만둬! 그만두거라! 제발! 제발 그만두란 말이다! 이건, 이건 살인이나 다름없다! 내 정신을 바꿔서 대체 무엇을 만들려는 생각이더냐?”
나는 샐리나의 애통한 외침을 무시했다. 애초에 나를 착한 사람으로 바꾸려는 것도 같은 맥락 아니던가. 나를 제 취향으로 개조하려고 마음먹었다면, 본인도 개조될 각오를 했어야 맞았다. 나는 여기에 더해서 몇 가지를 더 추가하려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이것만으로도 조금 불쌍했으니까.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계약 사항은 전부 비밀이므로 남에게 발설하지 않는다.”
“그, 그만둬라……. 제발 그만두거라….! 차라리 죽여다오……! 내가 잘못했다! 제발…….”
샐리나는 이제 포기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그녀를 보고 씩 웃고, 메이가의 잔 속으로 계약서를 집어넣었다. 성수가 어떤 특별한 작용을 하는 것일까? 물이 번쩍 빛나더니 잔 위에 우리 두 사람의 이름이 새겨졌다.
‘페타 루시우스, 아힐데른 샐리나’
그 후 다른 이름들이 역순으로 반짝거리며 빛났는데 내가 아는 이름도 있었고 모르는 이름도 있었다.
“페타 시리우스? 뭐야. 우리 아버지 이름이 왜 여기 있지?”
메이가의 잔에는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아버지의 이름만 적혀있는 게 아니었다.
‘페타 시리우스, 페타 루시우스, 아힐데른 샐리나’
내 이름과 여왕의 이름도 같이 적혀있었다. 조금 전 계약과는 별개의 계약이었다. 내 몸의 전 주인인 페타 루시우스가 페타 시리우스와 여왕과 함께 모종의 계약을 했다는 뜻이었다. 나는 잔을 흔들면서 물었다.
“이거 뭐야? 씨발 내 아버지 이름이 왜 여깄지? 네 이름은 왜 또 왜 있고? 씨발 뭔 계약을 한 거야?”
“모른다! 나도 모르는 일이다! 계약에서 기억을 지워버렸다면 떠올릴 수 없다! 이건 사실이니 좀 참아주거라!”
샐리나도 당황해서 소리를 질렀다. 나는 이를 악물고 짜증을 냈다. 뭐지? 대체 무슨 계약을 한 거지? 애초에 페타 시리우스는 페타 루시우스가 태어나기 직전에 죽은 거 아니었나? 잔을 훑어보면 다른 정보가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잔에는 별다른 단서가 없었다. 그 위로 나열된 건 나도 모르는 이름들뿐이었다.
아니, 내가 아는 이름도 있었다.
‘오멜라스 애쉬, 앱실론 메이가’
앱실론 메이가. 나는 이 이름을 본 기억이 있었다. 미미르에 있는 선조 중 한 명이 바로 그녀였다. 이 메이가의 잔의 주인도 잔을 사용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미미르에게 있었으니, 나중에 한 번 가봐야 할 것 같았다. 메이가의 잔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나는 잔에 계약서가 완전히 녹아들어서 하얀색 쌀뜨물 같은 색깔로 변한 걸 확인했다. 먹기에는 좀 꺼림칙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 먹자.”
“끄읍! 끄흐흡! 으으읍! 읍!”
샐리나는 입을 꾹 다물고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잔에 담긴 성수를 쏟아버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녀가 매달려도 나는 고목처럼 굳건하게 설 뿐 그녀의 힘으로 나를 밀어낼 수 없었다. 샐리나는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열심히 저으며 먹지 않으려 애썼다.
“반항하지 말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