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46
“일어나지 마세요. 앞으로 한 식구가 될 사이인데, 그렇게 격식을 차리면 쓰나요.”
“아, 네……. 페타 이브 부인이시죠? 저희 그이에게 말은 많이 들었어요.”
“로빈 단장에게요?”
때마침 로빈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헤실헤실 웃는 얼굴로 찻잔과 주전자를 들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이브가 어이가 없다는 듯 쳐다보자, 로빈은 겸연쩍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로잘린 유바도 그런 로빈의 모습이 민망한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제, 제가 직접 탄 차가 먹고 싶다고 억지를 부렸어요.”
“……그렇군요.”
이브는 그녀의 필사적인 변명을 믿어주기로 했다. 로빈이 헛기침을 하고 주전자와 찻잔을 내려놓은 뒤 건너편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유바의 손등에 손을 올리고 쓰다듬기 시작했다. 이브는 유바에게 말했다.
“그래서, 우리 신랑이 저택을 따로 지어준다고 약조했다고 들었는데, 지금 출장 중이라 관련 예산이 전혀 편성이 안된 상태거든요. 그래서, 일단은 이 저택에서 잠시 머무르다가, 저택이 완공되면 이사하시는 방향으로 생각을 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브의 말에 로잘린 유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매우 유순하고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이브가 인어 혼혈의 특징인 비늘 다리와 날카로운 이빨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음에도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배려해주신다니 감사드려요. 사실, 아직 저택 건설이 안 됐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제가 우리 그이랑 함께 있고 싶어서 억지 부려서 왔거든요.”
“이야, 로빈 단장님 부럽네.”
이브가 빈정거리자 로빈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 그러니까! 저는 그!”
“그럼, 두 분이 이야기 나누세요. 방은 둘러보시고 원하시는 곳으로 정하시고요.”
이브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잉꼬부부의 모습을 보니 더더욱 루시우스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런 이브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뒤에서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후후, 로빈~.”
“후후. 우리 꽃돼지~.”
이브는 응접실 문을 닫으며 고민에 빠졌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일 처리를 시작해야 할 텐데, 대체 일이 얼마나 늘어날까? 그리고 새로 저택 시공에 들어가면 대체 예산이 얼마나 빠질까?
“나도 신랑이 애칭으로 불러주면 좋겠는데.”
이브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꽃돼지라는 말을 들으니 애칭이 듣고 싶어졌다.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라도 좋았다. 이브는 수영장 방면으로 문을 열고 나갔다. 셀루는 오늘도 여유롭게 물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부표나 나룻배같이 힘을 쭉 빼고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면, 이브는 자신도 모르게 수영장에 같이 뛰어들어서 여유를 즐기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엄마 뭐해?”
“누워있어.”
“보면 알아.”
이브는 셀루의 무신경한 대답에 저도 모르게 툴툴거렸다. 셀루는 몸을 돌려서 이브를 바라봤다. 짤랑짤랑 물장구 소리로 수영장에 파도가 일었다.
“힘든 일 있어?”
“요즘 일이 너무 많아.”
이브는 셀루가 내민 손을 잡아서 수영장 바깥으로 끌어당겼다. 셀루는 이브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말했다.
“그래도 행복해 보이는걸.”
“신랑이 돌아오면 칭찬해줄 테니까.”
“헤흐. 그런 거 좋아.”
“엄마도 칭찬해줘. 우리 딸 최고라고.”
“우리 딸 최고-.”
“와 성의 없어.”
이브는 셀루가 자신에게 찰싹 달라붙자 그녀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볼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주자 셀루가 말했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면 안 돼. 모두 널 걱정하고 있으니까.”
“난 무리 안해. 엄마. 그보다 엄마는 애칭 같은 거 듣고 싶은 적 없어?”
“애칭?”
“응. 내가 그러니까 신랑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애칭.”
이브는 그렇게 말하면서 볼을 붉혔다. 그녀로서는 익숙지 않은 토의였기 때문이었다. 셀루는 말없이 이브를 쳐다봤다. 미묘한 표정에 이브가 되려 당황해 물었다.
“왜, 왜 그래?”
“그러고 보니까. 그런 건 생각해 본 적 없는걸. 애칭이라니.”
“로빈은 로잘린 유바 영애한테 꽃돼지라고 부르더라고. 그런 식으로.”
“금붕어?”
“뭐야 그게.”
“비단잉어.”
“씁, 좋은 말이면서도 뭔가 이상한데. 엄마는 비단잉어라고 불리고 싶어?”
“헤흑, 그런 별명 끔찍해.”
“아 뭐야! 엄마도 싫으면서. 혼난다?”
셀루가 이브의 손짓을 피해서 수영장으로 도망쳤다. 이브는 셀루를 따라서 수영장으로 들어가려다가 멈칫했다. 지금은 일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옷을 적시면 귀찮았다. 셀루는 물속에서 이브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브는 수영장 위에 서 있었다.
그 순간, 이브는 묘한 상실감이 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어떤 선이 그어진 듯한 묘한 감각. 이브는 그 감정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혀를 차며 말했다.
“……이번만 봐주는 거야. 응?”
“헤흐.”
셀루가 씩 웃더니 물속으로 잠수했다. 이브는 잠잠해진 수면 위로 돌을 하나 던졌다. 돌은 물속에 잠겨서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이브는 셀루가 튀어나와서 왜 던지냐며 자신을 끌어당기길 바랐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평소처럼 물 위를 떠다니며 기분 좋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이브는. 어딘지 모르게 가슴을 꾹 죄어오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또 올게.”
“응.”
셀루가 말했다.
사건은 로잘린 유바 영애가 이브의 옆 방을 차지하면서 그 전조를 드러냈다. 이브는 그때까지만 해도, 옆 방의 소음이 숙면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주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로잘린 유바 영애가 처음 저택에서 살게 되고 이틀 동안은, 매우 조용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로빈은 유바와 연애를 하느라 직무에 소홀할지도 모른다며 저택 출입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다리는 사람의 무료함과 지루함을 잘 알고 있는 이브가 오히려 근무 시간이 없을 때는 좀 적극적으로 찾아가라고 권할 정도였다.
이브는 최근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조만간 머리카락이 빠지지나 않을까 사람들이 걱정할 만큼 머리를 쥐어뜯어 댔고, 얼굴은 점점 퀭해져서 죽을상을 띄고 있었다. 원래 하얗던 피부는 더욱 창백해져서 시체 낯빛이 되었고, 옆에서 같이 일하던 시에리는 일과 시간이 아니면 방구석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본래 영지를 맡았던 촌장이 3달 동안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은 덕분에, 무려 3달 치 민원이 한꺼번에 들어온 탓이었다. 이브는 이 중에서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민원들을 골라서 선별하고, 이를 위한 인원 배분 및 예산 산정을 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병력을 재편성하여 경계 구역에 있던 초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끔 했고 근무 구조도 새롭게 개편해야 했다.
게다가 전임 영주가 이끌던 기사단이 모조리 전멸한 관계로 기사단원들을 보충하던가, 아니면 위치를 옮겨야 했다. 이런 문제들로 고민을 하다 보면 해가 금방 떨어졌고, 이브는 다음 날 있을 근무를 위해서 일찍 잠들어야 했다.
기사단 역시 바쁜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일과해 비해 비교적 바빴을 뿐 여전히 여유로웠다. 기사단의 주 업무는 영지 순찰과 훈련인데, 순찰은 여전히 조를 짜서 이틀에 한 번꼴로 이루어졌고 훈련 강도는 변함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끓어오르는 로빈의 성욕을 억누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던 걸까? 어느 날 밤. 이브는 바로 옆 방에서 벌어지는 밀회 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아아, 죄송합니다. 유바 영애. 저는 더 참을 수가 없습니다……!”
“아앗……. 격렬하셔, 저를 이렇게 원하시다니. 너무 좋아요.”
“후우, 유바 영애…….”
“아흑…….”
“미친년들.”
이브는 그 날 신음으로 잠을 설쳐야 했다. 본인이 섹스할 때는 몰랐는데, 남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이만한 민폐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로잘린 유바 영애는 매우 만족한 얼굴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이브는 그녀에게 민망함을 전해주지 않기 위해 웃는 낯으로 대했다.
아침에는 기사단원들에게 새로운 순찰 루트를 했다. 이브는 아침에 모인 기사단원 중에 로빈이 없다는 걸 깨닫고 눈을 찌푸렸다.
“로빈 단장은?”
“오늘 휴가십니다.”
“씨발 새끼.”
어제 격렬하게 섹스하던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이브는 눈을 찌푸린 채 기사단원들을 조를 짜서 편성했다. 그러고 나면 위층으로 올라가서 다시 민원들을 처리해야 했다. 필수적인 민원들은 분류가 끝났으니, 이제 이 민원들에 산정되는 예산을 분배할 시간이었다. 시에리와 아이라가 계산기를 들고 회계 정리에 매달리면, 그 다음에 산출된 예산을 보고 이브가 진행할지 여부를 결정했다.
여기서 너무 예산이 많이 책정됐다는 판정이 나면 시에리와 아이라가 다시 계산을 시작했다. 그렇게 이브의 지옥같은 일과가 시작됐다. 점심에는 남은 예산과 현재 진행해야 하는 사업들을 견주면서 민원을 처리하고, 아침에는 기사단원들의 순찰 보고를 들었다. 저녁에는 병사들의 야간 보고 및 도적단 탐색 상황을 전해 들었고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들었다.
“아앗, 로빈님! 아아앗…! 아읏!”
“나의 꽃돼지. 당신을 안다니 너무 꿈만 같습니다.”
“아흑! 허윽! 앙! 아앙! 아아앙!”
“우오오오! 우오오오오옷! 우오오오옷! 우아아아아!”
“아아앙! 좋아! 좋아아아아! 더! 더! 제 이름을 불러줘요! 아아앙!”
“유바! 유바! 유바! 꾸아아아아악!!”
“이 씨발 좆같은 년들아!”
사실, 그녀는 최근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있었다. 매일 밤 로빈과 로잘린 유바의 격렬한 잠자리가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참다못한 이브가 벽을 후려치며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그 둘은 잠잠해졌다.
그렇게 밤에 잠을 설치고 낮에는 근무에 시달리는 지옥 같은 생활이 이어졌다.
“씨발.”
집무실에서 머리를 싸매고 있던 이브가 뱉은 외마디 비명에 모든 작업이 멈추었다. 서류를 보고 있던 아이라가 똑같이 퀭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이브는 시에리를 쳐다봤다. 시에리 역시 창백해진 얼굴로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주판을 두들기는 손끝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브는 그 손 모양을 보고 안쓰럽다는 듯 말했다.
“쉬고 와. 시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