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52
마차는 알루 영지의 저택 앞에 도착했다. 저택 경비병은 내가 왕에게서 받은 친서를 내보이고 나서야 셀루와 이브를 통과시켜주었다. 셀루는 고민이 많았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이브에게 안겨있었다. 이브는 셀루를 꼭 끌어안고 주변 경비병들에게 으르렁댔다. 나는 이브를 만류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저택 1층에는 휠체어에 탄 바보가 하나 있었다. 침을 질질 흘리며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었는 데, 이름이 알루 테드라고 했다. 나는 우리를 안내하는 시종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구죠?”
“알루 테드 도련님이십니다. 요전번 왕국 무도회에서 감자 샐러드를 드시다가 백치가 되셨죠.”
“샐러드 때문에요? 세상에. 너무 끔찍하군요. 대천신교의 사제장의 이름으로 잠시 기도를 드리도록 하죠.”
나는 알루 테드의 앞날을 잠시 빌어준 다음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나아가며 나는 이브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역시 사람은 고기를 먹어야 해.”
“헤흐.”
셀루가 나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히죽히죽 웃는 폼이 뭔가 아는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안 그랬어요.”
“뭘?”
“뭐든 간에. 감자 샐러드 먹다가 저렇게 됐다잖아요.”
“음,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시종은 집무실 앞에 멈춰섰다. 복도는 고급스러운 카펫과 붉은색의 벽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치 소설 속에 나오는 뱀파이어의 저택이 아닌가 싶을 만큼 음침하고 어두컴컴한 분위기를 풍겼는데, 주변을 살펴보니 창문을 전부 닫아놓고 있었다. 시종이 노크하기 전에 나는 물었다.
“왜 창문을 다 닫아놨죠?”
“도련님이 저렇게 되신 이후, 영주님께서는 도련님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저택의 창문을 모두 닫으셨습니다.”
“안타깝군요.”
“그럼 영주님을 바로 만나시겠습니까?”
시종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종은 노크하며 말했다.
“놀라시면 안 됩니다.”
노크가 끝나자마자 문 너머에서 희미한 외침이 들렸다.
“뭐냐! 집사인가?”
“네. 영주님. 손님입니다.”
“손님이라니. 나는 손님을 부른 적 없다! 당장 꺼지라고 그래라! 도시는 박살이 났고, 하나뿐인 후계자도 정신이 나가버렸다. 100년을 이어온 가문이 나를 끝으로 무너지게 생겼단 말이다. 어차피 내가 죽으면 더 얻어먹을 것도 없을 텐데, 누가 나를 찾는단 말이냐?”
“왕국에서 인어들을 물리치기 위해 보내온 손님이라고 하십니다.”
“인어? 인어를 물리쳐? 어디, 그 왕국에서 유명한 교미 사제장이라도 불렀다는 게냐! 어! 인어들을 죄다 따먹어서 임신시키고! 그다음에 쫓아내려고! 어!”
이브는 빵 터지려는 걸 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번에는 셀루도 웃음을 참기 위해 입을 틀어막았다. 시종은 본인이 다 민망한지 화끈화끈 달아오르는 얼굴을 억누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희 영주님이 지금 많이 취하셔서……. 진심이 아니실 겁니다.”
“나도!! 차라리 인어나 따먹는 미치광이였으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거다! 어! 내 아내가 인어였으면, 차라리 그랬으면 일을 해결하기 쉬웠을 거다! 그래! 얼른 들어오라고 해라! 어떤 놈이 이 영지에 찾아왔는 지 얼굴 좀 보자!”
문이 열렸다. 영주가 눈을 살짝 들어 올려 나를 바라봤다. 나는 말했다.
“안녕하세요.”
씨발놈아.
알루 영주는 다행히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침묵을 지켰다. 그는 지금 머릿속에서 내 외모와 왕국에서 파견할 만한 인물들의 후보군을 대조해보고 있을 게 분명했다. 왕국에서 인어 문제를 해결할 전문가를 파견했는데, 그게 하프 엘프다. 그리고 이 왕국에서 하프 엘프 유명인사하면 ‘교미 사제장’ 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영주 앞에 있는 나는 교미 사제장이다.
“…… 실례했습니다.”
영주는 취한 와중에도 현명하게 책상에 머리를 박으며 사과했다. 모습을 보니 제법 거나하게 취한 듯해서 나는 한 번만 용서해주기로 했다. 영주 대가리까지 깨버리기엔 이 동네 민심이 너무 흉흉했다.
“취중에 한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건 소인배나 하는 짓이지요. 영주님께서는 낮부터 술에 절어서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고 계십니까? 영지의 일이 걱정이라면, 여기 완벽한 해결사가 왔으니 조금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영주의 시선은 셀루를 향하고 있었다. 뒤이어 이브의 비늘 덮인 발을 보았다. 신발을 신고 있었지만 비늘 덮인 발목은 여실히 드러났다. 영주는 취중에도 더듬더듬 입을 열어 물었다.
“저분들은…….”
“제 부인입니다.”
“아, 네…….”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시종이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아무래도 이야기의 진행은 내가 해야 할 듯싶었다. 나는 물었다.
“인어들의 습격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마을마다 인어들과 몬스터들의 습격으로 난립니다.”
“인어들과 몬스터라, 심각한 문제군요. 그런데, 몬스터요?”
나는 몬스터라는 말에 고개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마왕이 죽은 이후 대륙에 몬스터들은 자취를 감췄다. 그런데 몬스터가 남아있다고? 내 의아함을 눈치챘는 지 영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몬스터입니다. 인어들과 몬스터들이 바다에서 기어나와서 우리를 덮쳤습니다. 몬스터들, 그 놈들은 아주 끔찍하기 그지 없는 놈들이었죠. 툭 튀어나온 눈알과 튼실한 팔다리. 물고기한테 팔다리를 달아주면 그런 놈들이 됐을까요? 그놈들한테는 우리 영지의 기사단 말고는 대항할 수단이 없었습니다. 병사들은 학살당하고, 또 바다로 끌려갔죠.”
나는 셀루를 쳐다봤다. 셀루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 그런 거 몰라. 몬스터라니. 그런 놈들이랑은 친하게 지낼 일은 없어. 걔들은 인어도 뜯어 먹거든.”
“그래서 마왕이 부활했을 때도 만나는 족족 죽여버렸지.”
이브가 거들었다. 해양 몬스터라니. 대체 뭐지? 짚이는 게 너무 많아서 오히려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브도 셀루도 몬스터랑은 담을 쌓고 지냈다고 하니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기왕이면 보지 달린 여성형 몬스터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영주가 말했다.
“정말 끔찍한 일이었죠.”
“따로 특이한 점은 없었나요?”
내 질문에 영주는 얼굴을 찌푸렸다. 술 때문에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터질 듯이 부풀었다가 다시 조금 줄어들었다. 이브는 꺼림칙한 얼굴로 영주를 쳐다봤다. 영주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서랍을 열고 두꺼운 서류뭉치를 꺼내 들었다. 나는 시선을 돌려서 서류의 내용을 몰래 훔쳐봤다.
[인어 및 몬스터에 대한 습격 피해 현황]피해 보고서였다. 피해 증언을 참고하려는 듯했다. 나는 영주가 뒤적거리는 동안 다른 질문을 던졌다.
“세간에는 인어의 습격으로 알려져 있던데 마왕의 소멸 이후 사라졌던 몬스터들의 재등장이 더 충격적인 사실 아닌가요? 왜 인어의 습격만 알려졌는지 궁금하군요.”
“몬스터들이 최근에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몬스터들과 인어들 사이에 명백한 상하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상하 관계?”
“바다 위를 이동할 때, 몬스터들이 인어를 태우고 이동한다고 합니다.”
“굳이?”
“뭐 하려고?”
이브와 셀루가 동시에 되물었다. 영주는 둘을 바라보며 흠칫 놀라더니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모릅니다.”
영주의 말에 이브가 고개를 흔들며 물었다.
“아니 뭐 하려고 그런 짓을 해? 그냥 헤엄쳐서 가면 되잖아.”
“편하니까? 너도 배 타고 다녔잖아. 셀루도 그렇고.”
“그런가?”
“배 타는 게 편하긴 했지.”
셀루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브도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셀루가 말했다.
“하지만 습격하는 데 몬스터들을 타고 간다는 게 좀 이해가 안 되는 데. 그냥 잠수해서 가면 아무도 모르게 들이닥칠 수 있을 거 아니야. 그런데 굳이 그렇게 간다고? 게다가 몬스터를 타고 간다는 게 어떤 식이야? 대체 뭘 타고 가는 거야? 커다란 해마?”
“그러니까 인간 비슷하게 생긴 놈들인데…….”
영주는 펜을 들어서 종이의 하얀 구역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집중해서 영주가 그린 그림을 바라봤다.
“와 더럽게 못 그리네. 대체 뭐야 이게. 뭐 하는 몬스터야? 몬스터 맞아? 수영할 줄 아는 인간들 끌고 다니는 거 아니야?”
이브의 말에 셀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이 그림만 보고는 몬스터의 정체를 유추할 수 없어서 난감할 따름이었다. 작대기로 이뤄진 인간들이 작대기로 이뤄진 뻣뻣한 인어를 들고 가는 오묘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흡사 상여꾼 같기도 했고 가마꾼 같기도 했다. 영주는 그림을 가리키며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몬스터들이 인어를 물 위로 띄워서 우리한테 달려들었습니다. 그렇게 달려들고 나면 몬스터들이 먼저 인어를 육지로 던지고, 몬스터들이 각자 무기를 빼서 흩어집니다.”
“던진다고?”
이브는 셀루를 바라봤다. 입버릇처럼 말했던 인어 투척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셀루는 이브의 시선에 혀를 내밀고 얼굴을 찌푸렸다. 영주는 이브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해변으로 던지고, 그 다음 바로 무기를 꺼내듭니다.”
“왜 던지지? 주인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