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54
드레스에 초록 피가 한가득 튀었다. 어인은 반격할 수 있어 보였음에도 셀루를 공격하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또 한 마리를 붙잡아서 어죽으로 만들어줬다. 바닥에는 초록색 피가 흥건했다. 피보다는 젤리나 폐오일에 가까운 그 질감에 나는 슬쩍 거리를 벌렸다. 셀루는 찝찝함을 드러내며 말했다.
“이래서 옷이 불편해.”
뒤를 보니 이브가 칼을 닦아내며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이브 주변에는 어인들이 숙련된 솜씨로 해체되어 있었다. 마치 과학실의 해부 단면도를 보는 듯한 깔끔함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멋지네.”
“얘네 써는 맛이 좀 없는 데? 엄청 물렁물렁해.”
“그래도 조심해. 힘은 강한 거 같더라.”
“아예 공격도 안 하던데?”
“씨발 나는 죽이려고 달려들던데.”
어인 새끼들이 남녀차별을 하는 건가? 나는 투덜거리며 메이스를 털었다. 피가 찐득찐득해서 털어도 털어도 제대로 닦이지 않았다. 이브도 칼을 닦으며 의아한 듯 말했다.
“그러게. 여기 결딴난 거 보면 공격성이 없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왜 나한테는 안 달려들었지?”
셀루는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브를 슬쩍 쳐다봤다. 그리고 휠체어 바퀴를 끌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아직 참사 현장에서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어인들이 달려들자마자 재빨리 구석으로 피해있었던 시종이 다시 걸어왔다.
“괜찮으십니까?”
“네. 그런데, 이놈들. 그냥 몬스터라기에는 너무 강하군요.”
상태창으로 ‘소환된 몬스터’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지만, 구체적인 정체는 알 수 없었다. 시종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주 흉포한 놈들이죠. 영지 기사단도 애먹는 놈들인데, 정말 강하십니다.”
“이런 식으로 말도 못 하는 놈을 썰어봐야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만나야 하는 건 일단 그 ‘인어’ 들인데, 이번에는 나타나지 않았군요.”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 있는 어인 몇 마리가 끝인 모양이었다. 사방이 조용했고 사람들은 참사가 끝났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말했다.
“이브나 셀루에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뭔가 조건이 있는 모양인데…….”
셀루가 입을 열었다.
“인어.”
“뭐야 엄마. 엘시 흉내야?”
“우리가 인어라서 공격을 안 한 거야.”
셀루의 말에 이브는 농담을 그만뒀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어인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인어랑 비슷한 냄새가 나는 데, 생김새가 다르니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던 게 분명했다. 셀루가 머리를 때리고 있어도 반항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 있었다. 시종이 감탄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달리 셀루의 표정은 우울하기만 했다.
“엄마…….”
“설마 몬스터랑 손을 잡았다니. 대체 누구지? 누가 우두머리로 있는 거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셀루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불안감을 표출했다. 나는 죽은 어인들의 시체를 뒤적거리며, 뭔가 흔적이 남아있는지 확인했다. 죽은 어인들은 인간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 놈들도 있었고, 아닌 놈들도 있었다. 나는 인간 가죽을 뒤집어 쓴 놈들을 중점으로 확인했다.
“반지랑……. 이상한 가죽 띠. 뭐 이런 그거밖에 없네요. 시종. 이 반지의 주인을 찾을 수 있나요?”
시종은 반지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실종자의 반지일 겁니다. 이미 몇 차례 어인들에게서 노획한 물품을 유족에게 인계한 역사가 있습니다.”
“유족에게? 실종자들을 말하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이 몬스터들은 실종자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가죽을 뒤집어쓰고 나타납니다. 그래서 행간에서는 이 몬스터들이 실종자들이 변한 모습이라는 소문이 돌곤 합니다만, 저번에 한 마리 잡아서 해부해본 결과 이놈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아니, 애초에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닙니다. 영지 마법사도 아예 사는 세계가 다른 생물이라고 말하더군요.”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변한 모습도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가죽을 군데군데 붙이고 다닌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뭔가 알 것 같은데, 감이 잡히질 않았다.
“인신 공양을 통한 소환의 가능성은 없나요?”
“저희도 일단 그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인어들이 그런 주술적 체계를 가졌는지……. 그러니까, 그 인어들은 마법에는 능통하지 못하다는 속설이 있지 않습니까?”
시종이 이브와 셀루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이브는 시큰둥한 어투로 말했다.
“우린 마법 몰라. 그렇지?”
“맞아. 인어들은 마법 안 써. 마나 비슷한 것도 다루지 않는다고.”
“그럼 누군가 인어들에게 협력해서 인신 공양을 돕고 있다는 뜻이군요.”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휠체어에 탄 셀루의 치마 사이로 보이는 꼬리와 이브의 비늘 덮인 종아리를 보며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여론이 악화하기 전에 자리를 피해야 했다. 나는 시종을 재촉하여 다시 영지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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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했습니다.”
술에서 깬 영주가 깔끔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이브는 셀루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셀루는 이미 옷을 벗어둔 상태였다. 나는 휠체어를 밀며 말했다.
“이거 되게 좋은 거 같은데 하나 주문 제작할 수 있을까요? 제 부인이 돌아다니기 편하게요.”
“이번 습격 문제만 해결해주신다면 금칠까지 해서 드리겠습니다.”
술에서 깬 영주는 사건 해결에 강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하지만 셀루와 이브는 인어가 사건의 주체라는 걸 알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인어들이 인간들을 인신 공양한다는 정황이 파악된 이상, 그녀들로서는 쉽게 나설 수 없는 게 분명했다.
“알아내신 건 있으십니까?”
“아직은 전부 추측의 영역입니다. 누군가 인어들을 꼬드겨서 사악한 주술을 시도하고 있다는 정황이 있습니다.”
“인어들을 꼬드겼다라, 제가 알고 있는 인어들은 그리 멍청한 존재들이 아니었습니다만…….”
“그렇게 똑똑한 줄 잘 알면서 왜 인어 사냥을 안 막으셨을까. 똑똑한 물고기는 죽을 때 무슨 소리 내는지 궁금했나? 보복이 들어올 줄 몰랐나 보지?”
이브는 영주의 말에 빈정거렸다. 영주는 이브의 말에 굳이 반박하지 않고 헛기침을 했다. 나도 이 부분에 대해 분명히 이야기할 필요성을 느꼈다.
“사건 해결에는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지만, 아직 알아낸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어들이 정말 사건의 범인인지도 알 수 없고요. 인어들도 이용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단은 조금 더 사건을 파헤쳐봐야 겠습니다.”
“인어들이 사술을 사용햇다고 밝혀지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 질문에 이브와 셀루가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셀루의 눈빛이 떨리고 있었다. 영주 역시 올곧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어미를 잃은 고아가 수백이고, 저 부둣가에서 남편을 잃은 과부들이 수백입니다. 인어 사냥꾼들이 인어들을 죽였으니, 너희들의 가족이 죽은 것도 똑같이 생각하라. 그렇게 위로할 수는 없습니다. 민심에는 피가 필요합니다.”
이 주제로 계속 이야기하면 내가 밀렸다. 죽은 가족들을 생각해보라는 말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나는 주제를 돌렸다.
“……아직 확정 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인어들이 사술을 썼다는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만일, 증거가 있으면 어쩌시겠습니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죠.”
영주는 침묵을 지켰다. 나도 영주와 눈을 마주했다. 묘한 눈빛 교환을 하고 나서, 영주는 지도를 펼쳤다.
“일단 저희가 지금까지의 습격을 토대로 만든 정보입니다.”
알루 영지는 우리와 다르게 서부 해안의 주요 도시들을 전부 소유하고 있었다. 거대한 지도 여기저기에 학생 때 내 시험지처럼 x 표시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무수한 숫자에 혀를 찼다. 이브와 셀루도 지도에 그려진 x자에 놀랄 지경이었다. 해안지대 대부분은 초토화되어 있었고, 해수욕장이나 낚시터 같은 곳은 폐쇄된 지 오래였다.
“이미 해안가에서 장사하던 상인들은 대부분 파산했고, 무역상들은 대부분 거점을 옮겼습니다. 그래도 아직 습격당하지 않은 곳이 꽤 있습니다만 이곳들도 항로가 끊겨서 한계치에 다다랐습니다.”
“습격에는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십니까?”
“봉화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봉화가 울리면 보초가 확인하고 기사단을 호출하는 종을 울립니다. 그럼 2교대로 운행되는 기사단원들이 즉시 해당 마을로 출동합니다.”
“놈들은 밤에도 습격하나요?”
“밤눈이 어두운지 밤에 습격한 적은 없었습니다. 항상 낮에, 몬스터들과 인어들이 해안지대를 습격해서 인간들을 죽이고, 또 끌고 갑니다. 인어들은 바로 산으로 기어 올라갑니다.”
“산을 간다니 이해가 안 되네.”
“나도 그래.”
몇 번을 들어도 이해가 안 되는지 셀루와 이브가 속닥거렸다. 나는 다시 물었다.
“습격에는 패턴이 있나요?”
“지금까지 저희가 습격 주기를 조사해본 결과. 조금 전 영주님이 만난 것 같은 어인 몇 마리가 등장하는 정도의 습격은 극히 이례적이고, 보통은 만조 때 아직 습격하지 않은 해안 중 하나를 골라서 몬스터 20마리 정도와 인어 다섯 마리로 이루어진 부대가 쳐들어옵니다.”
여기 영지민들이라고 놀고만 있던 건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어인들과 인어들의 습격 주기와 패턴을 파악하고 있었다. 영주는 뒤 이어서 인어들의 전략을 설명했다.
“주로 몬스터들을 돌격시켜서 인간들의 주의를 끌고 인어들은 뒤에서 명령을 내리는 구조입니다. 그러다가 기사단이 도착해서 몬스터들을 밀어붙이면, 인어들이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산으로 말이죠.”
“네. 속도가 아주 빠른 데다가 몬스터들의 반항이 매우 거세기 때문에 도망치는 인어를 잡은 적이 없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수상했다. 이거 뭐 하는 새끼들이지? 인어는 맞나? 물속이 아니라 산으로 도망치는 인어라니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들리는 말에 따르면 도망치는 속도도 아주 빨랐다. 이걸 인어라고 봐야 되나?
“직접 보고 싶어.”
셀루가 말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이건 직접 봐야 판단이 가능할 것 같았다. 산으로 도망치는 인어는 대체 어떻게 도망치는 거지?
“그러면…….”
영주가 이야기를 꺼내려는 그 순간이었다.
땡- 땡- 땡-
“습격! 습격이다!”
종이 울렸다. 보초의 찢어질 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주는 일어나는 와중에도 셀루에게 입힐 외투를 하나 던져줬다. 이브가 셀루에게 옷을 입힌 후 뛰기 시작했다. 이미 기사단원들이 말을 이끌고 출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영주는 자신의 마부에게 손짓하며 외쳤다.
“마부! 당장 마차를 준비해라! 우리도 기사단원들과 같이 간다! 기사들은 우리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출발해라! 그리고, 어떻게 하실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