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55
영주는 다급하게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다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이브와 셀루를 돌아봤다. 이브가 말했다.
“우리가 그 인어들 잡으면 되지?”
“저는 몬스터들을 물리치는 쪽에 합류하고, 제 부인들이 인어를 잡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영주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기사들을 바라봤다. 이미 출발 준비를 마친 기사들이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며 우리를 보고 있었다. 영주가 말했다.
“인어들을 잡으려는 생각은 하지 말고, 어인들을 제거하는 데 집중해라! 여기! 이 인어는 목표가 아니니까. 공격하지 말도록!”
영주는 셀루의 얼굴을 한 번 확인시켜준 다음 기사들을 출발시켰다. 뒤이어 마부가 헐레벌떡 마차에 올라타더니 말을 몰았다. 출발하고 싶어서 안달이나 있던 말들이 속도를 높여 시골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셀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녀는 내 손을 꼭 붙잡고 물었다.
“범인이 인어면 어떻게 할 거야?”
“날 믿어.”
나는 셀루의 손을 쓰다듬어 주며 그렇게 말했다. 셀루는 그 말이 위안이 된 듯 씩 웃었다.
“헤흐.”
마차가 도착한 곳은 영지 외곽에 자리한 해안 도시였다. 하얀색으로 칠한 도시는 빨간 핏자국으로 너덜너덜해졌다. 이미 도시 내부에서 비명과 병장기 소리가 가득했다.
우리가 도시 외곽에서 마차를 세웠을 때, 피난민들이 이성을 잃고 도망치고 있었다. 우리는 무기를 챙겨서 앞으로 달려갔다. 도시 내부로 들어가니 이미 육중한 갑옷을 걸친 기사들이 방패와 칼을 사용해서 어인들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 몸의 내구도가 허약한 어인들은 기사들이 내리치는 한방 한방에 크게 반응하고 있었다. 나와 이브, 셀루는 바로 마차에서 내려서 각자 위치로 달려갔다.
나는 어인들의 육탄 공세에 밀리고 있는 기사들을 지원했다. 커다란 중식도를 휘두르며 기사의 머리를 찍어버리려 들던 어인은 내가 휘두른 메이스에 맞아서 곤죽이 됐다. 바닥에 널브러진 기사는 나를 보고 다급히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이놈들은 몸은 약해도 공격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기사도 삐끗하면 사망이었다.
“거기서 씨발년들아!”
멀리서 이브의 외침이 들렸다.
“끼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악!”
다른 한 편에서는 인어 한 마리가 바닥에 드러누운 채 팔딱거리고 있었다. 그녀 위에 올라탄 셀루가 인어의 배를 후벼 파며 외치고 있었다.
“너 뭐야? 너 뭐야? 너 왜 인어인 척 해? 어? 인어면 나를 모를 리가 없는 데? 너, 생김새도 좀 다르고, 지느러미도 다 붙인 거네? 너 뭐야? 어? 대답해. 대답 안 해?”
“까흑…꺼흐흑……. 끄흑…. 끄륵…….”
셀루의 손이 인어의 배를 완전히 꿰뚫고 내장을 헤집었다. 한참을 고통 속에 몸부림치던 인어가 피거품을 물고 절명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약간 섬뜩함을 느꼈다. 셀루는 피로 물든 자기 손을 털며 다시 주변을 둘러보며 납작 엎드렸다. 셀루의 손은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씨발, 진짜 인어가 아닌데?”
나는 어인 한 마리를 더 죽이며 중얼거렸다. 내가 합세하면서 어인들이 순식간에 죽어가기 시작했다. 양옆에서 방패를 든 기사들이 어인들을 구석으로 몰면, 오갈 데 없는 어인들은 우왕좌왕하다가 기사들이 내지르는 긴 창에 찔려서 고슴도치가 되어 죽었다.
가끔 방패를 밟고 도망치려는 놈들은 뒤에서 대기하던 석궁병에 의해 고슴도치가 됐다. 내 메이스에 곤죽이 된 놈들은 4마리. 기사단원들이 해치운 건 20마리가 넘었다. 깔끔했던 도시 정경에 녹색 오물이 뒤범벅되어 있었다. 명백한 승전임에도 도시에는 패배한 기운이 가득했다. 이미 해안가에는 사람들의 사체가 널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망치다가 짓밟혀 죽은 어린아이. 반쯤 씹힌 노인. 바닥에 주저앉은 채 상처 부위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영주도 기뻐하는 낯빛이 아니었다.
“이렇게 학습하기까지 많은 희생이 있었습니다. 쳐들어온다고 해도 해안가가 완전히 점령당하는 일은 이제 피할 수 있죠. 문제는 이놈들의 습격을 미연에 방지할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민간의 희생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원인을 찾아야 한다. 무엇이 원인이든지 그걸 찾아서 제거해야 했다. 그러지 못하면 이 끔찍한 비극은 계속 이어지리라. 나는 메이스를 털며 이브가 있던 쪽을 바라봤다. 이브와 셀루가 인어를 한 마리씩 잡아서 끌고 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인어 모녀의 등장에 두려운 낯빛이었지만, 영주의 불호령에 잠잠해졌다.
“두려워 마라! 아군이다! 길을 열어줘라!”
이브는 영주의 그런 반응에 조금 놀라서 살짝 뒷걸음질 쳤다. 셀루는 입을 꾹 다문 채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 손에 인어를, 아니 인어와 닮은 무엇인가를 한 마리씩 끌고 오고 있었다.
“신랑. 이 새끼들 인어 아닌데?”
이브는 한 마리를 우리 앞으로 집어 던졌다. 셀루도 동시에 집어 던졌지만, 셀루가 던진 건 내장이 다 파내진 시체였다. 셀루는 그 상태로 바닥에 주저앉아서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꾹 닫았다.
이브가 던진 인어는 몸을 축 늘어트린 채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 살려……. 주세요……. 살려…….”
“안 묶어도 돼?”
“신경 끊어놔서 못 움직여.”
그 말에 인어의 등판을 보니 칼자국이 나 있었다. 나는 인어처럼 보이는 그녀를 다시 한번 자세히 훑었다. 가까이서 보니까 확실하게 달랐다. 지느러미는 엉성하게 붙인 가짜였고, 몸통도 더 길었다. 셀루가 자기 상반신보다 조금 긴 정도였다면, 얘들은 그 두 배 정도의 길이였다. 뱀장어와 고등어 정도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거기다 이놈들은 하반신에 바늘이 없는 아랫배 부분이 존재했다. 이건 인어가 아니었다. 파충류 비슷한 무언가였다. 다행스럽게도 보지는 달려있었다. 나는 거기까지 관찰하고 나서 상태창을 열었다.
이름: 알리타
종족: 라미아
레벨: 23
능력치
힘: 0
민첩: 0
지능: 58
운: 13
특성
전신 마비
척추가 박살 났습니다.
움직일 수 없습니다. (힘 민첩 0 고정)
매혹
자신보다 지능 수치가 낮은 인간을 [매혹]할 수 있습니다.
잠복
자신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매혹]당한 상대를 공격할 때 1.8배의 데미지를 줍니다.
“라미아?”
이놈들. 인어가 아니었다. 라미아가 여기로 와서 인어 행세를 하는 중이었다. 나는 라미아라는 말에 잊어버리고 있었던 게임 속의 설정이 떠올랐다. 마왕의 사천왕. 도플갱어인 메아리치는 커틀러스, 슬라임인 흘러내리는 팔키오스, ‘처녀’ 서큐버스였던 매달리는 러비안. 그리고 라미아 종족의 여왕인 나태한 르아.
커틀러스는 지금 메이햄이라는 이름으로 사랑교를 운영 중이었다. 슬라임인 팔키오스와 ‘처녀’ 서큐버스 러비안은 에이에이의 손에 사망했다. 그리고 나태한 르아는 인어들한테 뒤진게 아니었다. 본인이 인어행세를 하고 있었다.
“라미아가 뭡니까? 종족입니까? 바다에서 만난 것도 인어가 아니라 라미아라는 놈들입니까?”
“그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의문점. 라미아는 헤엄을 못 쳤다. 그런데 바다에서 인어한테 습격당하는 인간들이 있었다. 즉, 인어와 라미아가 같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영주에게 물었다.
“라미아는 인어랑 비슷한 하나의 종족입니다.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인어나 수인 이외의 이종족은 들어본 바 없습니다.”
이거, 사안이 복잡해 보였다.
사천왕 나태한 르아. 그녀는 라미아 종족의 여왕으로, 인간들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원작에서 라미아 종족은 먼 옛날 고대시절부터 지하 밑바닥에서 생활하던 종족으로, 마왕이 부활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상으로 올라와 사람들을 학살하며 악명을 떨친다.
하지만 지금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선 라미아들이 지하에서 암약하다가 결국 올라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우리가 너무 빨리 마왕을 물리친 탓이었다. 덕분에 라미아라는 종족 자체가 이 땅에 알려지지 않았고, 그 덕분에 인어 흉내를 낸다는 괴악한 발상이 가능했던 것이지만.
나는 헐떡대며 침을 질질 흘리는 라미아를 내려다봤다. 한 놈은 라미아 껍데기가 되어서 해변에 놔 뒹굴고 있었고, 살아있는 한 놈도 척추가 박살 나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지만, 확실히 얼굴만은 예뻤다. 허리도 매끈하게 군살 하나 없었고, 잘 여문 보지 역시 탱탱하게 살이 올라있었다.
“이놈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영주가 물었다. 나라고 별수 없었다. 지금은 이 라미아를 따먹을 분위기가 아니었으니까. 셀루도 이브도 내가 말만 하면 바로 라미아를 회쳐버릴 기세였고, 양옆에 서 있는 기사들 역시 증오심이 타오르는 눈빛으로 라미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라미아는 생선가게에 전시된 생선과 같았다. 할딱거리면서 혀를 쭉 빼물고, 주변에는 고양이 같은 사나운 눈빛을 한 놈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나는 라미아에게 물었다.
“너희 본거지는 어디지?”
“주, 죽여주세요……. 제발…. 너무, 너무 아파…….”
라미아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처럼 헛소리를 반복했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다시 한번 질문했다.
“네 본거지는 어디지? 누가 이 일을 지시했지?”
“우, 우리 여왕님……. 르아님이…. 지시해서, 이, 인어들이라 힘을 합쳐서…….”
“인어들이랑 힘을 합쳐? 인어가 왜 라미아에 협력하지?”
“그, 그건……! 그러니까……! 그……!”
라미아는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메이스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왜 협력하냐니까?”
“아니, 그게……. 그…. 안 믿을 것 같은데……. 그…….”
라미아는 이상한 부분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다시 물었다.
“씨발 믿고 안 믿고는 내가 판단하는 문제 아니야? 그래서 본거지는 어딘데.”
“이, 인어섬이요. 인어들이 사는 인어섬.”
“인어들을 다 내쫓고 거기 사는 건가?”
“아, 아니에요. 인어들이랑 같이 살고 계세요. 우리 여왕님이 이제 그……. 인어들의 우두머리셔서…….”
이게 뭔 개소리지. 셀루도 이브도 서로 시선을 마주하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그녀들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궤변인 듯했다. 말을 마친 라미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끊어진 척추 틈에서 묽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 아아……. 안돼……. 어지러워……. 아, 여, 여왕님……. 죄송해요. 제가, 제가 꼭 꽃다발을…….”
깡!
이런 유언은 들어줄 가치가 없었다. 어차피 따먹지 못한다면 죽여버리는 게 깔끔하리라. 경쾌한 메이스 소리와 함께 라미아의 몸이 축 늘어졌다. 기사들은 본인들이 라미아를 죽이지 못해서 조금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내가 마무리한 것으로 나와 이브, 셀루가 영지의 편이라고 확실히 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