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65
절벽의 바위 틈새에서 라미아들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그들의 행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호기심과 두려움, 그리고 자신들의 여왕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쳐서 기습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브는 착잡한 표정으로 곡도를 뽑아 들었다. 셀루가 바닥에 내려온 뒤 다시금 나를 바라봤다.
나는 바닥에 르아를 눕히고 칼을 뽑아 들었다. 성검은 아니었다. 동네 대장간에서 빌려온 50 실버 짜리 싸구려 칼이었다. 르아는 말했다.
“결국, 이렇게 끝날 줄이야.”
나는 말 없이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어인들을 몰매 놓는 일 때문에 라미아 처형식을 보러온 인간들은 없었다. 원한은 비이성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라, 사람들은 직접 항구를 쓸어 담았던 어인 처형식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라미아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머리를 드러냈다.
날카로운 손톱을 자랑하며 우리를 위협하는 듯한 그 모습, 르아가 되레 위태로운 표정을 지으며 부하들을 다그쳤다.
“뭐 하는 거야! 얌전히 있어!”
나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라미아들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이브에게 말했다.
“이브, 주변을 좀 살펴줄래? 혹시 이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는지.”
“괜찮겠어? 라미아들이 저렇게 많은데?”
“근처에 돌아보고 있는지 없는지 확인만 해. 쫓아내진 말고, 있으면 내 쪽에 동그라미 하나만 그리고. 없으면 고개를 저어.”
이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끌고 온 수레를 구석에 대충 주차했다. 동시에 수레에 담긴 덩어리를 흘려서 풀숲 너머에 처박았다. 셀루가 내 옆에 찰싹 붙었고, 이브는 조심스럽게 곡도를 쥐고 고원을 내려갔다. 르아는 고원에 핀 보라색 꽃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말했다.
“하솜 꽃.”
“뭐?”
“이 꽃들 하솜꽃이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
르아가 꽃을 향해 천천히 기어가기 시작했다. 긴 꼬리가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지렁이 같았다. 바닥의 풀들을 뭉개고 매끄러운 비늘이 유려하게 빛났다. 라미아들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이브가 멀리서 동그라미를 그렸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다시 곡도를 쥐고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칼을 쥐고 기어가는 르아를 뒤집었다.
“자, 잠깐!”
르아가 당황한 얼굴로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내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화관……. 화관을 쓰게 해줘! 제발……. 나는…….”
나는 말 없이 칼을 역수로 쥐었다. 날카로운 칼끝이 새파랗게 빛을 발했다. 라미아들이 비명을 지르며 튀어나왔다. 때맞춰 다시 도착한 이브가 라미아 한 마리의 목을 잡고 바닥에 패대기쳤다. 동시에 튀어나간 셀루가 라미아 두 마리와 뒤엉켜서 바닥을 굴렸다.
“엄마!”
이브는 화들짝 놀라서 라미아들을 향해 뛰어갔다. 3마리 정도 남은 녀석들이 포기하지 않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발로 이들을 걷어차니 풀밭을 짓이기며 흙투성이가 되었다. 르아는 발버둥 치며 내게 소리를 질렀다.
“제발……! 제발! 살려줘, 죽고 싶지 않아……. 살려줘! 꽃이 이렇게 피었잖아. 화관을 써보고 싶었어. 아이들이랑 이 동산에서 뛰어놀고 싶었어, 그걸 못하게 만든 인간이 미웠어. 왜 우리를 속였지? 어째서 우리한테 그렇게 대한거지? 하프 엘프. 너는 답을 알고 있어?”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바닥에 쓰러진 라미아들이 신음하고 있었다. 셀루가 긁힌 상처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이브가 셀루에게 달려든 라미아들을 한 대 씩 쥐어박아서 기절시켰다. 바닥에 널브러진 라미아들을 굴비처럼 늘어놓기 시작했다. 축 늘어진 그녀들은 햇살 아래서 바라보면 영락없이 처참하게 살해된 듯했다.
르아의 눈동자에 물기가 어렸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신음을 흘렸다.
“죽고 싶지 않아.”
그리고 나는 검을 내려찍었다.
“꺄아아아악!”
르아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배를 꿰뚫은 검을 타고 핏방울이 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르아의 허리를 붙잡고 검으로 몸을 이리저리 휘젓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아파! 너무 아파!”
나는 이브에게 고갯짓했다. 이브는 그제야 뭔가 눈치챈 것 같았다. 이렇게 고통을 주는 건 내 방식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들으라는 듯 고의로 비명을 지르게 하고 있었다. 지켜보는 사람이 있는지에 대해 확인하는 것. 의도적일 만큼 고통을 주는 처형방식. 나는 그녀의 목을 내리눌렀다.
“커헉……. 컥…….”
르아의 배를 꿰뚫으며 끊어진 밧줄 탓에 그녀의 손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르아는 고개를 저으며 내게 말했다.
“아이들……. 살려줘…….”
르아의 손이 축 늘어졌다. 나는 칼을 뽑아내고 뒤처리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눈을 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한 번 쓰다듬고 고원에 땅을 파기 시작했다. 사방에 벌어진 핏자국이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쓰러진 라미아들은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죽여버릴 거야. 여왕님을, 여왕님을 죽인 죄. 너희의 죽음으로 갚아야 할 거야.””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이 라미아들이 100명 단위로 몰려온다고 해도 나는 죄다 두루치기로 만들어버릴 자신이 있었다. 다시 한번 르아의 맥을 확인했다.
구덩이가 내 생각보다 훨씬 깊게 파여서 만족스러웠다. 힘이 좋아지니 작업 속도도 굴착기 급이었다. 주변에 널린 흙무더기를 대충 밀어치웠다. 르아는 여전히 바닥에 누워있었다. 깊게 판 구덩이로 슬슬 발로 밀어 넣었다. 축 늘어진 몸체가 굴러떨어질 때, 툭 소리가 났다. 나는 편지를 품 안에서 꺼내서 르아의 가슴 위에 던졌다. 흙을 옅게 덮고 그 위에 뭘 세워야 할지 몰라서 고민했다. 묻힌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어서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고민이 됐다.
이브는 다시 반항할 낌새를 보이는 라미아들을 전부 묶어서 바닥에 뭉쳐놓았다. 꽃 모양으로 동굴에 묶어놓은 라미아들이 사방에서 꼬리를 흔들흔들 흔드는 모습을 보니, 꼭 문어 같았다. 이브에게 물었다.
“그 새끼 갔어?”
“간 거 같은데? 안 보여. 기척도 안 느껴지고.”
우리를 지켜보러 왔던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말이었다. 나는 묶어놓은 라미아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너네, 내가 풀어주면 조용히 살 거냐?”
“인간들을 다 죽일 거야!”
“여왕님을 죽인 원수! 반드시 복수할 거야!”
작위적일 만큼 격정적인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줄을 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나는 킥, 하고 비웃고 다가갔다. 내가 칼을 들고 다가가자 라미아들이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뭐야! 싫어! 하지마! 하지마아!”
“그러지마! 죽이지 말란 말이야! 나쁜 놈! 못됐어! 쓰레기!”
나는 그들의 외침을 무시하고 밧줄을 풀어줬다. 두려움에 덜덜 떨던 라미아들은 내가 밧줄을 풀어주자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다시 이브에게 물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거 확실하지?”
풀숲 쪽에서 셀루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라미아들은 몸을 움츠리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말했다.
“너희 여왕님 잘 지켜라.”
우리는 그렇게 어안이 벙벙한 라미아들을 두고 고원을 내려왔다. 라미아들은 서로 수군거리다가 무덤을 쳐다봤다. 이브가 물었다.
“저 새끼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난리 치면 어떻게 해?”
“그럼 돌아가서 죽이고 올까?”
“모르겠어.”
“돌아가면 바로 아힐데른에 편지 보낼 거야. 내가 사천왕 한 놈 죽였는데, 제대로 죽였는지 영 가늠이 안 간다고, 용사인 네가 가서 한 번 이 잡듯이 뒤지고 오라고. 살려주는 건 한 번이야. 알잖아? 라미아들은 머리가 좋아. 이만큼 했으면 나는 내 도리를 다한 거지.”
“그런가.”
멀리 영지 저편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인어섬에서 잔잔한 파도와 함께 쪽배가 실려 왔다. 해가 지는 가운데 영지에서는 사건의 종결을 알리는 잔치가 크게 벌어졌다. 이브도 셀루도 그 잔치 한가운데에 끼어서 술을 홀짝였다. 나는 술잔을 들고 고원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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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고원의 귀퉁이, 흙에 얕게 파묻힌 공간에서 한 여인의 손이 무덤을 뚫고 나왔다. 그녀는 라미아 여왕 르아. 아직도 욱신거리는 배를 어루만지며 주변을 훑어보고 있었다. 분명히 루시우스가 칼로 후벼 파 버린 배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허억…. 허억……. 뭐야? 뭐야?”
“여왕님!”
그녀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린 듯 고원 구석구석에서 작은 라미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르아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가슴 위에는 편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르아는 서둘러 편지를 펼쳐 읽었다.
[시체는 구석에, 배는 절벽 아래에.]라미아 하나가 구석에서 시체를 끌고 왔다. 라미아의 시체였다. 이번 습격 중간에 죽었던 시체가 분명했다. 멀리 마을에서는 캠프파이어가 벌어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꽁꽁 묶은 덩어리들을 불태우고 있었다. 르아는 이 사체가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죽인 거로 할 테니 조용히 떠나라는 뜻이었다. 르아는 말없이 무덤에 라미아의 시체를 집어넣고 다시 흙을 덮었다.
“멍청이. 진짜로 멍청이들이야.”
그녀는 투덜거리며 쪽지에 적힌 대로 절벽을 내려갔다. 다른 라미아들이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멀리 쪽배가 보였다. 해가 닿지 않는 해변에는 서늘한 공기가 휘돌았다. 르아는 해변에서 흐물거리는 배를 쳐다보며 다시 투덜거렸다.
“우리는 이렇게 숫자가 많은데, 어떻게 도망치라는 거야? 나 혼자 도망치라고? 진짜 바보야.”
그리고 해변에 파도가 쳤다. 찰싹.
쪽배의 갑판으로 손이 하나 튀어 올랐다. 창백한 손. 르아의 눈이 커졌다. 입을 꾹 다물고, 시선이 갈피를 잡지 못했다. 물살을 해치고 인어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었다. 하나같이 씩 웃고 있었다. 물살을 해치고 한 인어가 가까이 다가왔다.
앤. 르아도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앤은 르아의 손을 붙잡았다.
“가요. 우리 여왕님.”
“……바보들.”
르아는 훌쩍거렸다.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이젠 아무것도 상관없었다. 르아는 울음을 쏟아내며 앤을 꼭 끌어안았다.
“너희는 진짜 바보 멍청이들이야. 그렇게 내가 좋아?”
대천신교의 사제장 페타 루시우스가 서부 해안지대를 떠나간 이후, 영지에는 또 다른 손님이 찾아들었다. 보름 만에 새롭게 영지를 찾아든 손님은 용사 에이에이였다. 뜻하지 않은 용사의 방문에 당황한 영주는 버선발로 에이에이를 맞이했다.
에이에이는 시종일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더니, 영주의 환대에 이내 얼굴을 풀고 헤실헤실 웃으며 악수하였다. 영주는 마왕을 물리치고, 에반젤린 조사에 힘쓰고 있는 에이에이를 매우 존경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