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71
“저도 마부 씨랑 같이 다니는 게 참 좋아요.”
나긋나긋한 말투에 마부가 흠칫 놀라더니 헛기침을 했다. 살가운 목소리로 마부를 응원한 에이에이는 왕국 상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마부에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네. 용사님.”
상자에는 에리나를 위한 선물이 들어 있었다. 해안 도시에서 유행하는 물건인데, 조개를 장식하여 보석함처럼 만든 장식품이었다. 마지막으로 해안 도시에 갔을 때는 이브에게 강간당할 뻔했던 때라 경황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기념품을 챙길 수 있었다.
용사는 상자를 방에 두고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샐리나를 만나서 관련된 사항을 보고하는 게 먼저였다. 알현실에는 에이에이가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여왕이 기다리고 있었다. 에이에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근위병이 큰소리로 외쳤다.
“용사, 에이에이 입장합니다!”
“어서 오게. 에이에이.”
“여왕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페타 루시우스님이 부탁한 사천왕 르아의 행적 조사는 어떻게 됐지?”
님? 에이에이는 원래 샐리나가 루시우스에게 님을 붙였나 생각을 해봤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루시우스의 이름이 마치 부르면 저주받는 것이라도 되는 양 언급을 꺼리곤 했으니까. 에리나의 아이 친부가 루시우스라는 걸 안 이후, 샐리나는 페타 루시우스의 이름만 들으면 누가 알현실 바닥에 침이라도 뱉은 것처럼 인상을 구겼다.
“네. 무사히 마쳤습니다. 사천왕 르아의 무덤에 시체가 남아있는 것도 확인했고, 인근 산지를 전부 조사해서 라미아의 흔적이 사라졌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제 조사 소견으로는 사천왕 르아는 확실하게 페타 루시우스 손에 죽었습니다.”
“역시 우리 루시우스님답구나.”
“그……. 샐리나님?”
“왜 그러지?”
샐리나는 에이에이의 의아한 표정을 보고 되려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이에이는 대체 샐리나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 루시우스에게 ‘님’까지 붙여서 부르는지 궁금했다.
“왜 페타 루시우스 사제님에게 ‘님’자를 붙이시는지…….”
“내 마음이다. 달리 설명할 필요가 있느냐?”
“네, 알겠습니다.”
의외로 되돌아온 까칠한 반응에 에이에이는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에리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샐리나에게 대략적인 근황 보고를 마친 에이에이는 알현실을 벗어났다. 근위병이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외쳤다.
“용사 에이에이! 퇴장합니다!”
“항상 고생하시네요.”
에이에이의 말에도 근위병은 얼굴을 굳힌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이에이는 씩 웃어주고 에리나를 찾았다. 에리나는 육아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에이에이는 방에서 상자를 꺼내 들고 육아방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에이에이는 상자를 한 손에 든 채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에리나는 아기를 침대에 눕혀두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에이에이는 살며시 다가와서 에리나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에리나는 에이에이의 손길을 느끼며 몸을 옆으로 돌렸다.
“으음…….”
에이에이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에리나의 뒷머리를 쓰다듬고, 그녀의 볼을 콕콕 찔렀다. 에리나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는지, 고개를 이리저리 저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는 에이에이 쪽으로 엉덩이를 조금 더 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에리나. 나왔어. 일어나.”
에이에이는 그 모습이 아기 같다고 생각했다.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에리나를 깨웠다. 에리나는 그 말에 조금 놀란 듯 어깨를 떨더니 에리나의 볼을 찌르고 있는 에이에이의 손가락을 밀어내며 말했다.
“으음, 루시우스…….”
그 말에 에이에이는 웃는 얼굴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심장에 벼락이 내려친 듯 숨이 턱 막혔다.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답답했다. 그런 에이에이의 심정을 모르는 에리나는 잔인한 잠꼬대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안된다……. 오늘은 에이에이가……. 오는 날이다……. 으음…….”
에이에이는 들고 있던 상자를 툭 떨어트리고 말없이 방을 나갔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생전 처음 느끼는 오묘한 감정에 그녀는 뭐라고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에이에이는 계속해서 가빠지는 호흡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부부의 침실로 돌아와서 침대에 주저앉았다. 자꾸만 머릿속에서 에리나의 잠꼬대가 떠올랐다.
[으응, 루시우스……. 안된다. 오늘은 에이에이가 오는 날이다…….]마치 자신이 오기 전까지 줄기차게 섹스를 했다는 말 같이 들렸다. 에이에이는 루시우스가 그러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힐데른 왕국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아힐데른 시가지를 가로질러 와야 했는데 루시우스 같은 유명인이 그런 식으로 왕국에 들어오면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다.
“에리나…….”
에이에이는 눈물이 찔끔 흘러나오는 걸 느꼈다. 그녀는 눈물을 참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계속해서 눈물이 쏟아지는 걸 막을 방법은 없었다. 방에 있는 거울에 자신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 실연당한 여인이 울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이 용사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침대 옆 서랍장 위에는 에리나와 에이에이의 결혼식 장면을 그린 그림이 놓여 있었다. 에이에이는 그 그림을 들고 훌쩍이기 시작했다.
“에리나……. 제발…….”
역설적이게도, 루시우스가 올 리 없다는 가정은 에리나가 꿈속에서도 루시우스를 볼 만큼 그에게 빠져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에이에이는 그런 에리나를 보는 게 너무 마음 아팠다. 화가 나는 만큼 안타깝고, 또 서러웠다.
“흐흑….에리나……. 제발…….”
결혼식 사진 속의 에리나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에이에이는 턱시도를 입고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이때 두 사람은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림 속 에리나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에이에이가 속삭였다.
“제발……. 널 계속 사랑하고 싶어. 에리나……. 널 사랑할 수 있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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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에이. 돌아왔는데, 왜 찾아오지 않았……. 에이에이? 왜 이렇게 기운이 없느냐? 어디 아픈 것이냐?”
에리나가 방문을 열고 들어 왔을 때, 에이에이는 다소 기운 없는 얼굴로 침대 위에 주저앉아있었다. 에이에이는 멍하니 에리나를 쳐다봤다. 그녀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보이는 얼굴이 아니지 않으냐? 기다리고 있거라, 내가 의사를…….”
에이에이가 에리나의 손목을 붙잡았다. 에리나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에이에이를 바라봤다. 에이에이는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에리나. 잠시만 옆에 있어 줘. 그냥. 그냥 내 옆에 있어 줘.”
“이, 이렇게 말이냐?”
에리나는 조심스럽게 에이에이의 옆에 와서 앉았다. 에이에이는 쓰러지듯 에리나의 허벅지 위에 누웠다. 에리나는 에이에이의 머리를 쓸어주며 말했다.
“피곤했던 모양이구나.”
“조금.”
“고생하면 안 된다. 너는 내 남편이니까.”
“에리나.”
“왜 그러지?”
“날 사랑하지?”
“당연하다. 에이에이. 나는 널. 사랑하고 있다.”
“나도 그래.”
에이에이는 에리나의 허벅지를 쓸었다. 에리나의 무릎이 빨갛게 까져있는 걸 보며 그녀는 다시 중얼거렸다.
“나도 사랑해.”
위대한 존재를 만나기 위해선 그만큼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마차를 북부로 미리 한 번 왕복 시켜서 체크포인트를 찍을 필요가 있었고, 샐리나와 에리나를 데리고 3P를 한 번 할 필요가 있었으며 서부 해안지대의 던전을 답습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 모든 걸 완수하고 마차 앞에 서 있었다.
어제 인수인계를 끝마친 이브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왜 그래 이브.”
“뭔가 마음이 안 좋아.”
“왜. 드래곤 만난다니까 무서워? 내가 어떻게 될까 봐?”
“아니, 그냥……. 상대가 드래곤이라니까 그래. 드래곤들은 엄청 강하고, 또 폴리모프하면 엄청 매력적이라며, 그런 여자가 신랑한테 달라붙으면……. 나는 다리도 비늘투성이에, 인상도 사납고…….”
나는 이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이브. 누가 뭐래도 너는 내 첫째 부인이야. 알겠어?”
이브는 그 말에 입꼬리를 실룩샐룩 움직이다가 나를 꼭 끌어안았다. 나는 이브를 마주 안았다. 이브가 말했다.
“진짜지?”
“당연하지. 너는 펠라 빼고 다 잘하잖아.”
“…..미친놈이야 진짜.”
“그래도 사랑하지?”
“당연하지. 빨리 다녀와?”
“북부에서 선물 사 올게.”
“시에리랑 우리 엄마랑 엘시랑 소야랑 아이라랑…..”
“알았어. 다 사 와야지.”
나는 이브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고 마차에 탔다. 대략 열흘 정도만 시간을 투자하면 북부를 다녀올 수 있다니, 역시 문명은 발전할수록 좋았다.
“마부. 출발할게요.”
“네. 영주님.”
마부의 구수한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레버를 당겼다. 아티를 만나면 물어볼 게 많았다. 서부 해안의 던전이 대체 뭐 하는 곳인지 알아봐야 했고, 메이가의 잔을 해제할 방법이 있는지도 알아봐야 했다. 그리고 드워프 왕국에 있는 던전이 과연 뭐 하는 곳인지도 알 수 있어야 했다. 아티가 직접 알리오 페스타의 마차를 충전해줄 수 있을까? 이것도 물어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