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81
“저는 그럼 마차를 좀 청소하고 가겠습니다. 영주님. 고생하셨습니다.”
“네. 마부 고생하세요.”
나는 마부를 두고 저택을 돌았다. 저택 입구에 다다르니 문 앞을 쓸고 있던 시종이 어느새 나타난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 외쳤다.
“아이고! 영주님!”
“네. 영주에요. 그동안 잘 지냈죠? 이브는 뭐 하고 있어요?”
“아, 그…….”
분위기가 이상했다. 영지 내부에 이렇게 음울한 분위기가 돌았던 적이 있었나? 저번 대공 아들 살인 사건 이후로 이렇게 분위기가 암울했던 적이 없었다. 나는 시종에게 다시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아, 그게……. 제가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고, 페타 부인께 직접 여쭤보시는 게…….”
“씨발 무슨 일인데요. 그냥 말하라니까?”
내가 짜증을 내자 시종은 굴비처럼 꼿꼿하게 서서 외쳤다.
“아, 저, 정말! 어떻게 말씀드리기 그래서 그렇습니다! 이건, 그……. 아닌지라……!”
이렇게까지 말하면 정말 그런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저택 내부로 들어갔다. 저택 내부에는 시종들이 전부 우중충한 표정을 짓고 일하고 있었다. 뭘까? 대체 무슨 일일까? 이브가 월급 동결안이라도 발표한 걸까? 구조조정이라도 했나? 마침 아이라가 화분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이라. 오랜만에요.”
“아, 영주님! 돌아오셨나요.”
아이라는 나를 보자마자 씩 웃었지만, 웃는 만큼 빠른 속도로 우울함을 되찾았다. 대체 뭐지? 뭐가 문제지? 나는 아이라의 어깨를 감싸며 물었다.
“아이라. 그래서 무슨 일이 있나요? 오자마자 저택의 분위기가 좋지 않던데. 누가 보면 무슨 큰 사고라도 난 줄 알겠어요.”
아이라는 그 말에 입술을 깨물더니 조금 울먹이며 나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다시 고개를 돌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말씀드릴만한 사안이 아니라서……. 그, 이브 씨에게 직접 여쭤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뭐지? 씨발 대체 무슨 이야기지? 대체 뭔 일이 생긴 거지? 나는 다시 층을 올라갔다. 집무실에서는 서류를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일상적이고 평탄한 움직임. 소리만 듣고는 감정의 변화를 눈치챌 수 없었다. 나는 문을 열며 말했다.
“이브……. 어라?”
“아, 영주님.”
시에리였다. 시에리를 다시 만난 것도 반가웠기에 나는 일단 그녀를 꼭 끌어안아 주고 이마에 입도 맞춰줬다. 그녀는 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어물쩍거리며 내 인사를 받았다. 나는 시에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시에리. 왜 시에리가 여기서 일을 하고 있어요? 이브한테 인수인계했는데. 혹시 둘이 싸웠어요?”
시종들이 전부 이야기하기 꺼린 게 이거였나? 하지만 아닌 모양이었다. 시에리는 황급히 고개를 젓고 난감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 그……. 제가 이야기할 수 없는 사안인 것 같아요. 이브 씨에게 직접 들어보시는 게…….”
“이브는 어디 있는데요? 신랑이 왔는데 인사도 안 하다니 혼내줘야지.”
시에리는 그 말에 웃으면서도 눈은 서글펐다. 뭘까?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불안하니 되려 짜증이 날 정도였다. 대체 무슨 일이지? 나는 황급히 계단을 내려갔다. 시에리는 이브가 수영장에 있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대문을 나서서 수영장을 향해 걸어갔다. 수영장 가장자리에 이브가 쭈그려 앉아있었다. 그녀 옆에는 셀루가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브는 고개를 처박은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우는 게 분명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옆으로 갔다. 셀루가 나를 발견하더니 가볍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나는 이브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이브. 왜 그래?”
“신랑…….”
이브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붉게 충혈된 눈.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정말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서럽게 울 일이 뭐가 있을까? 나는 저도 모르게 놀라서 그녀를 꼭 안아줬다.
“왜 그래? 응? 누가 우리 이브 울렸어? 어? 왜 울어? 응 울면 안 돼. 이쁜 얼굴 다 흉 지잖아.”
“신랑……. 나, 나……. 흐흑…….”
이브가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나는 어깨너머로 셀루를 바라보며 눈짓했다. 하지만 그녀도 울적한 표정으로 고개만 젓고 수영장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뭐지? 대체 무슨 일이지? 왜 이브가 이렇게 울고 있는 거지? 내 의문에 대답해줄 사람은 이브밖에 없었다. 나는 이브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응. 그래그래. 괜찮아. 울지 말고. 응. 그래. 무슨 일이야?”
“그게, 그러니까……. 그……. 이번에 수도에서……. 흐흑……. 마법사랑…. 의사가 와서……. 흐윽……. 검사를 받았는데…….”
“검사? 무슨 검사?”
“흐흑……. 내가, 내가 불렀어……. 인어 혼혈은 가임기가 언제인지 궁금해서……. 불렀는데…….”
불안하다. 불안한 예감이 스쳤다.
“나, 나……. 불임이래…….”
“설명해봐요. 최대한 짧고, 이해하기 쉽게.”
내 앞에서 소야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이브의 신체검사 때 소야가 영지 측 인사로 함께 있었다고 하니 그녀에게 설명을 들어야 했다. 소야는 내 눈빛을 마주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이 지금 그녀가 가진 긴장감의 수치를 표기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다급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아, 네. 원래 인어는 난산 중에서도 좀 특이한 방식의 난산을 하는 데, 그……. 가임기에 섭취한 어류의 종류에 따라서 체내에서 알을 생성하는 구조거든요. 그래서 이제 마탑에서 13년 전 실험한 [인어가 섭취한 생물에 따른 태아의 상태 비교]라는 연구 논문을 보시면 이제 가임기 기간 상어 종류를 먹은 인어는 더 흉포하고 근육량이 많은 태아가 들어있는 알을 낳았고, 관상어 종류를 섭취한 인어의 태아는 아주 작고 무게도 가볍다는 결과가 있어요.”
“그럼 돼지고기를 먹으면 어떻게 되죠?”
돼지랑 인어가 섞인 게 나오나? 내 궁금증에 소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실제로 그 실험을 해본 분이 있었는데, 그 경우에는 따로 임신이 되지 않았다고 해요. 임신이 되는 것과 안되는 종류가 분명히 구분되는 거죠. 이제 학계에서는 인어들의 번식 방식에 대해, 보통은 체내에서 어떤 원리일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생선들의……. 이제 그 특성을 흡수하여 자식을 낳는다고 알고 있거든요.”
“그렇군요.”
복잡한 이야기니까 이에 대해 더 질문하지 않기로 했다. 이 세계의 상식으로 그렇다는데 내가 태클 걸 수 있는 게 없었다. 씨발 무성 생식을 하는 데 처먹은 생선의 종류에 따라서 새끼의 종류가 바뀐다고? 이 무슨 처녀 특화 적인 종족이지?
“그래서 보통은 인간과도 혼혈이란 건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거든요. 8년 전에 버클러 교수가 발표한 [인어와 인간 노예와의 교미 실험]이라는 논문을 보면 총 6마리의 인어를 확보하여 총 108번의 가임기 간의 교미 실험을 했으나 혼혈 출산에 성공한 사례가 한 번도 없어서, 인간과 인어 사이에 혼혈이 태어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라는 기록이 있어요.”
“이브는 그 희박한 확률을 뚫고 정말 어렵게 수정된 자식이라는 거군요.”
“네. 그래서, 이번에 왕국과 마탑에서 그……. 해당 이야기를 논문으로 쓰는 조건으로, 이제 무료로 해주겠다고 했는데…….”
“씨발 내 마누라가 불임이라는 이야기가 논문으로 나온다고요? 소야. 정신 나갔어요?”
“아, 그……. 지, 진정해주세요! 영주님! 그……. 이브 씨가 그렇게 요청하셨어요. 가급적이면 돈 안 들어가는 방향으로 검사를 받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마탑 측에서도 검사 비용을 전액 무료로 하는 대신 그걸 제안한 거예요!”
“왜 굳이? 영지에 돈이 모자란 것도 아닌데.”
“그게……. 돈을 쓰면 아무래도 결제 기록이 남으니까. 결과가 나오기 전에 영주님이 보시면 민망하다고…….”
확실히 내가 결제 기록을 봤을 때 의사나 마탑 호출 기록 같은 게 남아 있으면 당장 이브를 불렀겠지.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브로선 자기가 이런 걱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말하기 부끄러워하는 타입이었다. 나는 그녀가 이해가 가면서도 입맛이 썼다. 검사까지 받은 걸 보면 이미 계약서에 도장 꽝 찍고 마탑 새끼들은 논문 쓰러 가버렸을 텐데, 씨발 좆같네.
“그래서, 나 몰래 영지 사람들끼리 짜고 마탑 사람을 불러서 이브를 검사했다?”
“지, 진정해주세요. 영주님. 제가 이런 종류의 검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를 알거든요. 이쪽을 전문으로 검사하는 이제 여성 의사와 여성 마법사들이 따로 준비되어 있거든요. 왜냐면 이제 불임 문제로 검사를 받는 게, 이브 씨 같은 특이 케이스 뿐만 아니라 다른 귀족 부인들도 있으므로……. 왕궁 내에 전담반이 따로 있어요.”
“그런 건 별 신경 쓰지 않아요. 제가 지금 짜증이 나는 건 그런 걱정을 하면서 왜 제게는 말 한마디 안 했냐는 거죠. 저한테 말해줄 수 있었잖아요? 저는 이브가 후사를 책임져야 한다거나, 뭔가 대단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제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된다고요. 아내의 역할은 그런 거잖아요. 그냥 남편 옆에 있어 주는 거.”
“그……. 요즘 영주님이 바빠 보이신다고, 무조건 함구하라고 하셔서…….”
“쯧.”
의사가 여자니 남자니 같은 걱정 따윈 하지 않았다. 이 왕국도 제정신이 박혀있다면 귀족 부인들을 전담할만한 의사 제도를 만들어놓았을 테니까. 그보다는 내 걱정에 이브가 입을 꾹 다물었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말 한마디만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말했다.
“계속 설명해봐요. 그래서 왜 불임이래요?”
“그……. 이제 사람은 자궁이 있고, 인어들은 체내에서 자궁 비슷한 기능을 하는 다른 기관이 존재하거든요. 그런데 이브 씨는 그……. 그러니까 이브 씨는 상반신은 인간인데, 하반신은 인어도 인간도 아닌 그러니까 그런 느낌이잖아요?”
“그렇죠?”
소야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완곡한 표현을 찾고 있었으므로 나는 대충 긍정해주고 넘어갔다.
“그래서 그 자궁의 기능 자체가 망가진 상태래요. 그러니까……. 아이를 낳기에는 너무 인어와 닮아있고, 알을 낳기에는 몸이 인간과 닮아있어서 체내에서 알을 합성하는 기능이 없는 그런 상태인 거죠.”
“알도 낳을 수 없고, 아이도 만들 수 없다?”
“네…….”
소야가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머리가 아팠다. 대충 손짓을 하니 소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 제가 말렸어야 했는데 그…….”
“당신에겐 그런 권한 없잖아요. 소야. 헛소리하지 말고 나가봐요. 생각을 정리해야 하니까.”
“아, 네……. 그, 그렇지만…….”
“소야?”
“네. 알겠습니다…….”
소야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문을 열고 나갔다. 나는 나대로 머릿 속이 복잡했다. 사실 처음부터 이상하긴 했었다. 이브랑 그렇게 많이 섹스했는데 임신을 한 번도 못 했으니까. 일주일 만에 임신한 에리나나 드래곤 가임기에 한 방에 임신한 아티랑은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의혹만 품고 있는 것과 이렇게 사실이 땅땅 박힌 건 조금 다른 문제였다. 나는 책상을 탁탁 두드리다가 다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에게 화풀이하는 건 괜히 일만 늘어지게 만들 뿐이었다. 나는 다시 이브를 찾아가 봐야 했다.
“이브. 괜찮아요?”
이브를 겨우 달래서 아까 방에 집어넣은 참이었다. 그녀가 방에 있음을 알리는 듯 침대 이불자락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내 노크 소리에 반응하듯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매트리스를 건드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이 열렸다. 이브는 방에서도 울었는 지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그녀는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왜, 왜 그래?”
“이야기 좀 하자. 들어간다.”
“으, 응…….”
평소에 당당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는 침울해 있었고, 울적한 분위기가 방에도 감돌았다. 베개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사람 얼굴 모양으로 눈물 자국이 콕 찍혀있어서 방 안의 분위기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지금 꼭 희극의 한가운데에 떨어진 것 같았다.
응접용 의자에 앉자, 이브가 침대 가장자리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나는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