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9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일단 되는대로 뱉어봤는데, 진짜로 그런 적이 있는 것인지 영주는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일단 빌기 시작했다. 역시 영주다운 눈치를 가진 놈이라 할 수 있었다. 용사가 나와 영주를 번갈아보다가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사제님?”
“이 자는 당신을 범하려 했습니다. 문 앞에 있던 걸 제가 발견했죠.”
그 말에 바짝 엎드려있던 영주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영주가 이상한 말을 하기 전에 나는 영주 대가리에 메이스를 박아넣었다.
“꾸엑!”
영주가 돼지가 죽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아니 뭉개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몰랐다. 영주는 머리가 몸통에 푹 파고들어가 꿀단지같은 모습으로 변했으니까. 나는 고깃덩이로 변해버린 영주를 냅두고 용사에게 다가갔다. 용사는 영주의 참단한 모습을 보며 내게 말했다.
“제 몸은 제가 지킬 수 있는데…… 감사합니다. 사제님.”
“이제 여인의 몸이지 않습니까. 조심하셔야죠.”
나는 내 얼굴에 튄 피를 닦아내며 그렇게 말했다. 용사는 여인의 몸이라는 그 말이 어색한지 헤헤하고 웃었다. 웃는 것도 제법 귀엽네.
살면서 이렇게 애도받지 못하는 죽음은 처음 보았다. 히틀러가 자살했을 때도 이 새끼보단 동정하는 사람이 많았을거다. 아무리 이유가 있다지만, 엄연히 남의 영지에서 영주를 때려죽인 이 극악무도한 상황.
영지의 기사단은 참치캔처럼 납작하게 찌그러진 영주를 매우 혐오스럽다는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영주가 죽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반가운 얼굴이었다. 고용인들도, 사건 경위를 조사하는 기사단장도 모두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그런 무도한 짓을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기사단장은 조사 중에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생각도 아닌 듯 했다. 증거도 용사의 증언도 없었지만, 기사단장은 그냥 그럴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새끼 평소에 뭔 짓을 하고 다닌거지? 이 정도면 내가 그냥 웃는게 기분나쁘다고 죽였어도 ‘그럼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라고 말하며 넘어가주지 않았을까 싶었다.
일을 이렇게 설렁설렁 처리해버리니 진작에 죽여버릴걸, 이라는 후회가 뒤늦게 몰려왔다. 용사는 처음으로 기사급 단위의 조사를 받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사는 최종적인 보고서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저희는 이 소식을 왕궁으로 보내야하기 때문에, 전송은 못해드릴 것 같습니다.”
영주가 어떤 사고로 인해 사망하고, 그 후계자가 없을경우 왕궁에서는 따로 영지가 없는 귀족을 골라서 영지를 양도한다. 나는 다음에 영주는 좀 멀쩡한 놈이길 바라며 그렇게 이웃 영지를 떠났다.
용사는 페타 영지에 다다를수록 긴장하고 있었다. 나 역시 대체 에리나가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놀랄까? 덤덤하게 반응할까? 페타 영지 경계면에 돌입하자, 순찰을 돌던 경비병이 빠르게 영지 대리인 아힐데른 에리나 공주에게 보고하기 위해 달려갔다.
그렇게 우리가 영지를 가로질러 저택에 도착할 무렵. 에리나 역시 저택 문을 박차고 우리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근 일주일 동안 보지못한 연인을 재회한다는 기쁨에 표정이 한 껏 풀어져 있었다. 울먹이는 새침한 표정으로 다짜고짜 용사를 끌어안은 그녀는 하소연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늦은게냐! 진짜… 진짜, 난 네가 어떻게 된 줄 알고… 마왕은? 마왕은 죽였겠지? 어디 다친데는 또 없고? 괜찮은 게지? 이제 나랑 같이 왕국으로 가야하는 데 어디 문제 있으면 가만 안둘테다… 그리고… 또….어라?”
한참동안 질문을 퍼부으며 붙어있던 에리나가 몸을 떼어내곤 눈을 일그러트렸다. 녹색 눈을 찡그리고 용사의 이곳저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용사가 어색하게 말했다.
“에, 에리나……그게……”
“누, 누구….?”
에리나는 뒤늦게 자신이 껴안은 게 처음보는 얼굴이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용사는 이 사태를 설명해야 했다. 내가 옆에서 거들었다.
“에리나 공주님. 이 쪽이 용사님이에요.”
“뭐? 무슨 개소리냐? 에이에이가 여자가 돼? 내가 바보로 보이나? 에이에이는? 어? 설마 죽은….건 아니겠지? 어?”
에리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최악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용사 에이에이는 패닉에 빠지려드는 에리나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에리나. 내가 에이에이야. 봐봐. 우리가 처음만날 때, 고블린 세마리와 오크 두마리가 너를 쫓고 있었잖아? 그 때 너는 화살이 떨어져서 몸을 빼고 있었고, 나는 숲길을 걸어가고 있었어.”
에이에이는 자신이 에리나를 구해줬을 때 이야기나 에리나와 에이에이만 알 수 밖에 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에리나는 처음에는 이상한 눈길로 에이에이를 쳐다보다가 차츰 그녀가 용사가 맞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한숨을 푹 쉰 그녀가 말했다.
“왜, 왜 이렇게 된거냐?”
“에리나 공주 당신이 줬던 약을 써야 했거든요.”
“그 약에 그딴 효과가 있다고?”
에리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었다. 아무래도 에리나도 모르고 줬던 것 같았다. 그나저나 진짜 용사 안주고 나한테 썼으면 좆될 뻔 했다는 걸 생각하니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에이에이가 에리나에게 물었다.
“에리나. 혹시 엘프 왕국에 원래대로 돌리는 약 같은 건 없어?”
“모른다. 우리 엄마는 알지도 모르는 데…. 아마 없을 거다. 여자를 남자로 만드는 약을 대체 누가 연구한다고.”
그게 맞다. 이 게임이 남성향 야겜이라는 건 고려해봤을 때, 남자를 여자로 변신시키는 약은 몰라도 여자가 남자로 변하는 좆같은 약이 존재할 가능성은 없었다. 에이에이는 그 말에 낙담한 표정이었다. 우리가 저택 앞에 서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멈춰선 채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영지 근황도 들어야 했고, 다시 인수인계도 받아야 했으니 나는 일단 저택에 들어가기로 했다.
저택 집무실에 와서, 에이에이는 여전히 고민에 빠져있었다. 인계된 서류를 보면 에리나는 정말 충실하게 일을 잘해줬다. 시에리는 평소처럼 회계 업무를 깔끔하게 처리하고 있었고, 아이라는 저택 안에 내가 들어오자마자 나를 껴안고 얼굴을 비벼댔다.
나는 아이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다시 심각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녀와 시에리를 내보냈다. 에리나가 말했다.
“페타 루시우스. 이건 아주 심각한 문제다. 마왕은 물리쳤지만, 내가 에이에이와 결혼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단 말이다.”
에이에이는 한참 동안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
“에리나. 잠깐 내 이야기를 들어주겠어?”
나도 에리나도 고개를 들고 용사를 쳐다봤다. 그가 뱉은 말에 에리나는 경악했다.
“무슨 말이냐 에이에이! 나를 버리겠단 것이냐?”
“그게 아니야. 에리나. 너는 엘프 왕국으로 돌아가서 남자로 돌아갈 방법을 찾고, 나는 여기 대륙을 떠돌면서 남자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 나도 에리나 너와 결혼하고 싶으니까.”
“그, 그런…..”
에리나는 에이에이와 또다시 떨어진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에 빠진 것 같았다. 에이에이가 다시 한 번 에리나를 설득했다.
“에리나. 우리 같이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자고 했잖아.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약이 있다면, 그 반대도 있을거라고 생각해.”
“그, 그래도…나는…나는 너와 떨어지면….. 네가 마왕을 잡으러 갔을 때 내가 얼마나 불안했는지 아느냐? 매일 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데 이제 또 기약 없는 이별을 하자고?”
“기약 없는 이별이 아니야 에리나. 난 너와 결혼하고 싶어. 하지만, 하지만 네가 공주로서 책임을 버리는 것도 원하지 않아.”
“에이에이…..”
확실히 후사는 중요한 문제다. 에이에이는 나를 바라보고 물었다.
“사제님. 혹시 저와 에리나가 이 영지에서 주기적으로 만나도 괜찮을까요?”
“손님으로 오시는 거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죠.”
내 허락에 에이에이는 다시 에리나에게 말했다.
“그럼 에리나. 3개월에 한 번씩. 우리 여기서 만나는 걸로 하자.”
엘프 왕국에서 공주랑 둘이 밀회를 즐길수는 없을테니까. 내 저택을 모텔처럼 이용하겠다는 뜻이었다. 물론 나는 그 꼴을 눈뜨고 볼 생각은 없었다. 에이에이가 덧붙였다.
“딱 1년. 1년만 이렇게 해보고 다음을 생각해보자.”
“….알겠다.”
에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수심은 누구나 눈치챌 수 있는 것이었다. 에이에이가 에리나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그럼… 가볼께.”
“뭐?”
에리나도 나도 당황한 얼굴로 에이에이를 쳐다보았다. 에이에이가 말했다.
“한시가 급하잖아. 나는 빨리 방법을 찾고 싶어.”
“그, 그래도 며칠만 있다가 가는게.”
“아니야. 그…. 나중에 보자.”
에이에이도 괜찮은 척 하지만 초조한게 분명했다. 빨리 남자의 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우를 범하고 있었다. 이런 고지식함은 여자를 다루는데에 좋지않다. 에이에이가 집무실 문을 열고 사라지자 에리나는 울적한 얼굴로 닫힌 방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리나는 말없이 서있다가 나에게 말했다.
“……며칠만 신세를 지겠다.”
“그러세요.”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답했다. 이거 각이 보인다. 내가 용사에게 칼침 맞을지도 모르지만, 각이 보였다는 말이었다.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에리나는 저택 왼편 마지막 방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녀는 에이에이가 여자가 되었다는 충격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누구지?”
“접니다. 루시우스.”
“…..들어와라.”
에리나는 수심에 가득차 있어도 여전히 예뻤다. 긴 금발머리와 영롱한 녹색 눈, 그리고 터질듯한 가슴과 그에 못지않게 탄력 있는 엉덩이. 남자의 음심을 자극하는 음란한 외모였다.
“무슨 일이지?”
“여전히 용사님과의 일로 걱정이 많으신 것 같던데요.”
“네가 상관할 바 아니지 않느냐?”
“아니요. 제게 괜찮은 생각이 있어서요.”
“괜찮은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