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309
“너, 너! 혼자야? 우리 신랑은? 용사는?”
“모른다. 나도 헤어졌다. 인어랑 같이 있는 거 아니었나?”
이브는 혀를 차며 다시 회당을 돌아보았다.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루시우스는 무사한 건가? 이브는 칼을 꼭 쥐고 악마들과 회당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엘시가 물었다.
“인어. 어떻게 하지? 들어가서 도와줘야 하는 건가?”
이브는 손을 떨며 다시 한번 회당을 바라보았다. 만일 사랑교의 교주가 이겼다면 지금쯤 교주가 시체를 들고 나왔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 거로 보아, 이 악마들은 교주 최후의 수단일 확률이 높았다. 어디까지나 예상이었지만.
“우리는…….”
“어떻게 할 거냐 인어. 빨리 정해야 한다.”
엘시가 재촉했다. 하나둘 악마들이 피 냄새를 맡고 돌아보기 시작했다. 아직 기사단들과의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 악마들과 뒤늦게 회당 안쪽에서 튀어나온 악마들이 이브와 엘시에게 송곳니를 드러냈다. 엘시는 발을 동동 구르며 이브를 바라봤다.
악마 중 하나가 묵직한 팔을 휘두르며 이브에게 덮쳐들었다. 엘시가 이브에게 달려드는 악마를 잘게 조각내는 것과 동시에, 이브가 뒤에서 날아오는 악마들을 반으로 토막 냈다. 이브는 칼을 털며 말했다.
“….우리 목적은, 인명 피해를 줄이는 거였잖아. 그렇지?”
“….그렇다.”
“그럼 신랑을 믿어야지. 그렇지?”
엘시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브는 다시 한번 회당을 바라보고 악마들에게 달려들었다. 악마들의 후방에서, 이브와 엘시가 갑작스럽게 덮쳐 들어감에 따라 전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기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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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이 소란스럽네요.”
휴식시간. 시에리 옆에서 물을 홀짝이던 소야가 말했다. 시에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전쟁터가 소란스러워진다는 건 격전이 막바지에 치달았다는 뜻이었다. 막바지에 치달았다는 건 곧 있으면 결과가 나온다는 뜻이었고, 시에리와 소야가 루시우스와 마주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아, 영주님이 대체 뭐라고 하실지…….”
분명히 화내겠지. 소야는 벌써 앞날이 캄캄했다. 루시우스가 뭐라고 할지 예상이 됐기 때문이었다.
‘소야. 제가 시에리를 잘 보라고 했잖아요. 그렇죠? 근데 왜 시에리가 여기 있어요?’
“으으…….”
소야는 앓는 소리를 내며 옆을 쳐다봤다. 시에리의 얼굴이 창백했다. 소야는 내심 시에리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 걸까 고민하다가, 루시우스를 걱정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시에리 씨,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아……. 아…….”
하지만 시에리의 상태는 이상했다. 그녀는 사시나무처럼 몸을 파르르 떨며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에 새까만 핏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소야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그녀를 붙잡고 외쳤다.
“시, 시에리 씨?”
“아, 아으……. 아……. 아앗……! 으……!”
“시에리 씨. 왜 그러세요? 네?”
“무슨 일인가요?”
대천신교의 신부 중 한 명이 다가와서 시에리의 상태를 살폈다. 팔까지 삐죽 튀어나온 혈관과 거칠어진 숨소리. 대천신교의 신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녀의 발작에 식은땀을 흘릴 뿐이었다. 시에리는 깨질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내질렀다.
“아……. 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진정하세요! 여기! 사람을 좀……!”
신부가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옷을 붙잡은 순간, 시에리의 손이 신부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연약한 그녀라고는 믿을 수 없는 힘으로 신부를 하늘로 들어 올리더니 침대를 향해 집어 던졌다.
“우아아아악!”
천막을 무너뜨리며 신부가 바닥을 굴렀다. 황급히 소야가 마법을 쓴 덕분에 충격을 받지 않은 신부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시에리를 쳐다봤다. 시에리가 그녀의 팔을 꼭 붙잡고 말했다.
“시에리 씨? 왜 그러세요? 네? 네?”
“아……. 아아아악……! 아, 아파아……!”
시에리가 울먹거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동시에 그녀의 사제복의 등 부분이 울룩불룩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무엇인가 자라나는 것처럼 불쑥 튀어나온 형체는 마침내 옷을 찢어내며 제 형체를 드러냈다. 날카로운 뿔과, 얇은 피막. 그리고 흉흉한 검붉은 색 골격이 눈에 들어왔다. 흡사 박쥐 날개 같으면서 살벌한 기운을 품고 있는 그건 누가 봐도 악마의 날개였다.
주저앉은 신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악마다! 악마가 여기 있다!”
“마법사! 마법사를 불러라!”
소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동시에 시에리가 머리를 부여잡은 채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머릿속에서, 기억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기억이 꾸역꾸역 넘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되찾은 첫 번째 기억은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포대기에 둘러싸인 모습이었다. 눈앞에는 이상하게 생긴 농부가 그녀를 나무에 매달고 있었다. 마치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것처럼 예쁘게 매듭을 묶었던 농부는 씩 웃으며 나무 저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깜빡이며 시에리에게 손을 흔들더니 갑작스럽게 흐물흐물 흘러내리고는 이상한 형체로 변해 사라졌다.
“아이고 이게 무어야.”
“여보. 누가 아이를 버렸어요.”
그 다음으로 시에리의 눈앞에 나타난 건 그녀의 부모님이었다. 노부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시에리를 안아 들더니 우쭈쭈 소리를 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노파가 말했다.
“아이고, 애가 순하기도 해라. 낯선 사람을 보고도 안울구. 여보. 참 신기하지 않어요?”
그러면 노인이 근엄하게 주름진 얼굴을 실룩거리며 말했다.
“애가 이쁘게도 생깄네. 우리가 키웁시다.”
“영주님에게 말씀드려야 하지 않어요? 우리끼리 키우면 혼날지도 몰라요.”
“거 영주님한티 말해봐야 키우라는 소리밖에 더하겄소. 우리가 낳은셈 치믄 되지. 안근가?”
“허이고야, 망측하니 뭔 소리를 그리 해싸요. 알겠으니 어여 들어가입시다.”
시에리는 헛웃음을 흘렸다. 낳은 자식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지만, 우연히 버려진 자식이 아니었다. 생계로 버려진 자식도 아니었다. 누군가 계획적으로 자신을 키우도록 버린 것이었다. 여전히 머리는 지끈거리고 있었다. 시에리는 다시 머리를 움켜잡고 신음을 흘렸다. 7살 때 기억이 떠올랐다.
7살 때, 시에리는 마당에서 흙을 만지며 놀고 있었다. 노부부는 어린 시에리를 두고 농사를 지으러 간 참이었다. 시에리는 마당에 주저앉아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멀리서 가면을 쓴 여인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녀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며 쪼르르 집 안으로 달려갔다.
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뛰어들려는 찰나 시에리의 몸이 둥실 떠올라서 다시 여인의 앞으로 돌아왔다. 시에리와 눈을 마주한 여인은 가면을 올려서 얼굴을 보이며 말했다.
“넌 수녀가 될 거야.”
“네?”
시에리는 큰 눈을 깜빡거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여인은 시에리의 머리를 꾹꾹 누르며 다시 말했다.
“수녀가 될 거야. 그렇지?”
그녀가 머리를 누를 때마다 시에리는 몽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시에리는 조종당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여인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수녀가 되고 싶어요.”
“그래. 그리고 에반젤린 님의 말을 따라서 행동할 거야. 그렇지?”
“네…….”
“그리고 페타 루시우스 옆에 꼭 붙어 다닐 거야. 그렇지?”
“네…….”
그리고 여인이 사라지고, 시에리는 부모님에게 대뜸 수녀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었다. 그제야 시에리는 알 수 있었다. 수녀가 되는 것도 계획된 것이었다는 걸. 심지어 루시우스와 친해지는 것도 계획된 것이었다는 걸, 시에리는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그녀의 기억은 수련생 시절로 올라갔다.
“내 말 들려?”
“네? 네…….”
잠을 자던 시에리는 벌떡 일어나서 누군가의 부름에 응답했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지만 그녀는 목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그녀는 의연하고 조심스럽게 여자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경비병들이 툴툴거리면서 이야기하는 게 들려왔다.
“메이햄 사제장님은 이 밤에 왜 집합을 거신거람?”
“모르겠어. 새벽 연설을 하신다던데. 그 양반 너무 시끄러운 데 오늘 잠은 다 잤네.”
“아이고, 빨리 지방으로 내려가든지 해야지.”
시에리의 몸은 경비병을 피해 아주 조심스럽게, 남자 기숙사를 향해 움직였다. 그녀의 의식은 깨어있었지만, 몸은 제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래. 그렇게 저항하지 말고 내 힘에 몸을 맡겨. 알겠지? 내가 예전에 사고를 좀 많이 쳐서, 여기 교회 주변에 나를 경계하는 결계가 있거든. 부수고 가면 귀찮잖아?”
복도를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다. 메이햄 사제장이 병사들을 전부 끌고 연설을 했기 때문이었다. 시에리가 복도를 걷는 동안 에반젤린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계속 쫑알거리고 있었다.
“그래. 거기서 옆으로 가. 남자 기숙사 중에서 제일 어린 쪽. 그쪽으로. 그렇지.”
시에리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그녀가 말하는 대로 움직였다. 새근새근 잠든 숨소리가 가까워졌다. 여인은 시에리의 손을 억지로 움직이게 하더니 침대에 있는 어린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발 머리의 어떤 아이에게 멈춰 서서 그녀에게 삿대질하며 외쳤다.
“얘야! 얘라고! 빨리 데려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