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316
“안녕하십니까. 페타 루시우스 영주님.”
영주님이란다. 나는 저절로 입꼬리가 축 올라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피식 웃고 나서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나는 말했다.
“네. 대천신교 본부의 성기사 및 고위 사제께서 어쩐 일로 이곳에 오셨나요?”
그리고 생글생글 웃으며 이 친구들을 살살 훑어보았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직접 왔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제 대천신교 사제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내하기 위해서 이 정도의 인원이 올 필요가 있을까? 굳이 구속 사슬과 수레까지 끌고 올 필요가 있을까? 사제가 입을 열었다.
“네. 페타 루시우스 영주님께서 직접 내신 사직서를 수리하여, 현시간 부로 페타 루시우스 영주님은 남부 사제장이 아니십니다. 따라서 남부 지역 대천신교 사제들에 대한 인사권 및 기부금에 대한 행정 명령을 더 집행하실 수 없으며, 금일부로 제게 해당 업무 사항에 대해 인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제장이라는 직위가 되기는 어려웠지만, 그만두는 건 말 한마디로 끝나는 일이었다. 대천신교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사직서를 수리해줬다. 너무 쉽게 잘려서 나는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평소에도 많이 아니꼬왔던 모양이었다.
“그렇군요. 그럼 지금 바로 인수인계 사항을 전해드릴까요? 마침 서류는 다 준비된 상태거든요.”
이 고위 사제가 새로 온 남부 사제장이었다. 앞으로 얼굴 볼일 없을 테니 지금 실컷 봐두기 위해 나는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사제장은 헛기침을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남부 사제장으로서의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인사 명령을 시행하고자 하는데…….”
“인사 명령이요?”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일까. 나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허리춤의 메이스를 매만졌다. 대천신교 성직자에게 이걸 사용할 날이 올 줄이야. 현 남부 사제장은 무뚝뚝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대천신교의 충실한 종인 페타 시에리 수녀에 대한 인사이동을 하고자 합니다. 오늘부로 그녀를 수도에 있는 대천신교 본부로 보내겠습니다.”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곱게 사표를 수리해준다 싶더니, 이런 꿍꿍이가 있었다. 인사권한은 남부 사제장에게 있었다. 따라서 남부 사제장 사직을 수리해준 다음 직위를 이어받을 사제를 보내서 페타 시에리를 인사이동 시킨다. 인사 명령에 영주는 간섭할 수 없으니까.
“제 부인을 인사이동 시킨다고요?”
“영주는 대천신교의 인사이동에 간섭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수녀와 영주가 결혼한 전례가 없기에, 해당 사항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으나, 상층부에서는 인사이동을 시키는 게 맞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는 뒤에 성기사들이 끌고 온 수레를 가리키며 물었다.
“언제부터 인사이동에 죄인을 가두는 수레와 수갑과 성기사들이 동원되었는지 모르겠네요. 대천신교 성직자들이 대놓고 거짓말을 하는 날이 오는군요?”
“거짓말이 아닙니다. 인사이동입니다.”
“경전에 대고 맹세하시죠. 페타 시에리는 인사이동만 될 것이며, 본부에서 수녀 직무를 맡아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 만일 페타 시에리 수녀가 악마라면, 본부에서 적절한 교화 조치를 진행하겠지요. 페타 루시우스 영주님. 현재 당신은 사제장 직위를 그만두셨고, 현재 민간의 영주 신분으로서 대천신교의 인사이동 조치를 방해하고 계십니다. 이는 저희 대천신교에 대한 큰 무례이자, 도전이며…….”
길고 긴 사제의 경고문구가 이어졌다. 나는 그 말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냈다. 진지하게 들을 가치가 없는 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제장의 일장 연설을 끊어내고 물었다.
“그래서. 결론은 시에리를 내놓으라는 말이군요. ‘인사이동’을 위해서.”
“네. 그렇습니다.”
“인사이동 뒤에 시에리가 죽을 거란 사실은 알고 있죠?”
“제가 아는 바 없습니다.”
“없다고 말하면 그 사실이 사라지나요? 대천신교 지도부는 모두 그런 마음으로 종교활동에 임하고 있나 보군요. 페타 시에리는 악마가 맞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독실한 대천신교의 신도기도 했으며 동부 평야 지대에 몸소 나가서 봉사 활동에 성심성의껏 참여한 수녀기도 했죠. 영지에 사는 그 누구도 시에리의 결점을 말할 순 없을 겁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한 사람이 살아온 일생보다는 그녀의 출신이 더 문제시하고 있군요.”
“……악마가 어찌 단순한 출생의 문제입니까? 악마를 용인하기 시작하면 세상은 악마투성이가 되고 말 겁니다. 페타 루시우스 영주님. 저희는 마지막으로 정중한 요청을 드리고자 온 것입니다. 페타 시에리 수녀를 넘기시기 바랍니다.”
“거절합니다. 페타 시에리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악마로서 살아온 적 없습니다. 제가 왕국 보고서에도 분명히 설명해 드렸을 텐데요. [에반젤린의 낙인]이라는 마법이 발동되어 시에리 본인도 모르고 있던 악마의 피가 깨어난 것뿐이라고 말이죠. 사제장님께서는 죄 없는 사람을 형장으로 모는 것에 일말의 죄책감도 없으신가요?”
“사람이 아니라, 악마입니다. 악마는 악마일 뿐이죠.”
“한때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사람답게 살기 위해 노력 중이죠. 제 아내 이브가 떠오르는군요. 인어 혼혈이던 제 아내는 항구 도시 에스타에서 여인들을 겁간하고 뱃사람들을 수십 명 살해한 흉악범이었죠. 법에 따라 사면받았고 대천신교에 의해 저와 결혼을 허가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어떤가요? 지금도 흉악범인가요? 동부 평야에서 일어난 사랑교도 토벌 작전에서 누구보다 선두에 서서 악마들을 토벌했고, 제가 왕국의 부름으로 출장을 나가면 누구보다 솔선수범하여 영지를 다스려주고 있습니다. 누구나 변할 수 있습니다.”
“경우가 다르지 않습니까! 악마들은 그 뼛속부터 사악한 놈들이란 말입니다! 악마를 옹호하시는 겁니까?”
“제 부인을 감싸는 겁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제 부인이고, 제 가족입니다.”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계시는군요. 이건 대천신교가 쌓아 올린 교리 자체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건……. 억!”
짝!
가볍게 팔을 움직여서 따귀를 내갈겼다. 한 대 사제장이 바닥을 뒹굴었다. 성기사들이 무기를 뽑고 사제장 주변에 섰다. 나는 손을 털면서 사제장을 내려다봤다. 그는 갑작스러운 손찌검에 당황한 듯 눈만 이리저리 굴리고 뭐라고 말은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메이스를 손에 집어 들고 허공에 한 번 가볍게 휘둘렀다. 성기사들은 그 기세에 눌려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사제장님 씨발 지금 이해를 못 하는 거 같은데, 악마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내 부인이라니까? 내가 그만둔다고 했잖아. 어? 그럼 알아먹어야 할 거 아니야. 내가 씨발 애미뒤진 인사이동해달라고 그만뒀겠어? 내가 그만두는 거로 너희 체면 살려줄 테니까 적당히 뭉개고 넘어가달라는 뜻이잖아.”
“사, 사제장님을 지켜라!”
성기사 한 명이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날아오는 플레일을 한 손으로 잡아내고 쇳덩이를 다시 기사의 얼굴에 쑤셔 박았다. 투구를 뚫은 쇳덩이 틈새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허수아비처럼 멈춰선 성기사가 바닥에 푹 꼬꾸라졌다. 사제장이 기겁하여 뒷걸음질 쳤다. 성기사들도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건 대천신교에 대한 도전으로…….”
“좆까 병신아. 도전은 니 애미한테 밥상머리에서 네가 하는 게 도전이지 씹새야.”
“이, 이이이익! 이 일은! 대천신교에서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왕국에 직접 항의해서! 이 일에 대해 확실한 처벌을 요구하고! 그리……! 어억!”
계속 시끄럽게 떠들길래 다시 한번 발길질을 했다. 내 발에 얻어맞은 사제장이 바닥을 데구르르 구르더니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성기사들이 사제장을 따라 달려 도망쳤다. 나는 병사들을 불러서 성기사 시체를 치우게 했다.
시체를 치운 뒤 나는 남부 사제장을 다시 부르기 위해 교회를 찾았다. 하지만 그곳에 사제장은 없었다. 인수인계니 어쩌니 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친 모양이었다. 나는 평화롭게 사건을 해결하길 바랐지만, 대천신교의 무례하고도 급진적인 행동이 비극을 불러오고 말았다. 이젠 결단을 내릴 때였다. 대략적인 계획은 짜여 있었다.
나는 영주의 권한으로 영지 사람들을 집합시켰다. 아울러 시에리도 불러들였다. 나는 영지 사람들이 전부 모인 걸 확인했다. 그들은 악마가 된 시에리를 보며 서로 수군거리거나 불안한 눈초리를 보였다. 시에리 본인도 자신의 악마적인 모습이 부끄러운 지 얼굴을 붉힌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저는 오늘부로 대천신교 사제장 직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저들끼리 떠들던 입이 멈추고 시선이 나를 향했다. 당혹스러운 감정이 고스란히 쏟아졌다. 나는 시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유는 하나. 대천신교에서 제 부인인 페타 시에리를 악마로 몰아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로빈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정숙!”
다시 사람들이 조용해진 것을 확인하고 나는 말을 이었다.
“여러분. 사람의 가치는 무엇으로 평가받는 것일까요? 겉모습? 출신? 구 델몬 영지의 외곽에서 부모님들의 사랑을 받고 자랐던 제 아내. 페타 시에리는, 영지인들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여성이었습니다. 대천신교 수녀로서 그 신실함은 교회 모두가 인정하는 바였고, 그 상냥함과 성실함은 영지 사람들에게서 기준점이 될 정도였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 부인이 되고 나서도 수녀의 위치에서 매일 매일 예배에 나섰던 페타 시에리는 영지의 모범이자 간판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녀는, 이번 동부 평야 사랑교 토벌 작전에도 직접 나서서! 사악한 악을 토벌하는 선두에 서서! 병사들을 지원하는 데 힘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저는 사실을 고백하려고 합니다! 시에리는 그 전투 틈에서, 아주 사악한 적들의 사악한 저주에 걸려서! 이런 악마적인 외형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쏟아졌다. 악마로 변한 시에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소문을 늘어놓던 사람들도, 입을 틀어막고 경악하고 있었다. 시에리는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지만, 내가 눈짓하자 다시 고개를 숙였다. 나는 외쳤다.
“여러분! 지금 대천신교에서는, 제 사랑스러운 아내에게 벌어진 이 내막을 알면서도! 그녀를 악마로 몰아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녀가 악마라니, 이걸 믿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군중들 틈에서 사복을 입은 기사 한 명이 소리쳤다. 내가 명령한 다른 기사도 목소리를 높였다.
“시에리 수녀님이 그럴 리 없습니다!”
물결이 일 듯, 사람들 사이에서도 동의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시에리 수녀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데!”
“글을 모르는 제게 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가 아플 때 제 아이들을 대신 보살펴주시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어려울 때 영주님께 직접 말씀드려주시기도 했습니다!”
“저는 마왕 토벌 때 며칠 밤을 새워서 병사들을 간호해주던 수녀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시에리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대천신교의 수녀들도, 목사들도 시에리를 지지하고자 목소리를 높였다.
“누구보다 모범적이었던 수녀입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저희는 시에리 수녀를 믿습니다!”
“맞습니다! 여러분! 자, 여러분의 힘을 보여줄 때입니다! 조만간 대천신교의 사악한 군단이 시에리 수녀를 처형하기 위해 이곳에 올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의 힘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알겠습니까? 힘을 모아서! 제 부인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말해주는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기사가 먼저 외칠 필요도 없었다. 사람들이 들끓고 있었다. 아직 연락할 곳이 많았다.
샐리나한테도 연락하고 로잘린 가문에도 연락하고, 북부 대공 에밀리아한테도 연락해야지.
내 목표는 전면전이 아니었다. 대천신교는 거대한 종교단체였지만 무력 집단이 아니었다. 내가 대천신교를 몰살시키면, 내게 역풍이 불었다. 내 목표는 하나, 왕국에서 중재하기 전에 대천신교에서 시에리 문제를 흐지부지 넘어가도록 사방에서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었다.
로잘린 바르바 후작과 북부 대공 에밀리아는 이런 압박용 키 카드였다. 로잘린 바르바 후작은 왕국의 재무 대신이었고, 북부 대공은 아인 침략에 의한 피해를 복구한 이후 대천신교에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내는 귀족 중 한 명이었다.
여기에 더해 아힐데른에도 편지를 보낼 생각이었다. 지금 당장은 대체 어떻게 해야 아힐데른이 이 문제에 끼어들 수 있을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지만, 정치질에 이골이 난 아힐데른 샐리나라면 이 문제에 대해서 적당한 방식으로 끼어들지 않을까?
나는 로잘린 바르바 후작에게 간단하게 편지를 쓴 다음 로잘린 유바 영애에게도 자필 편지를 부탁했다. 깐깐한 로잘린 바르바 후작이라도, 제 손녀한테는 꼼짝도 못 하는 인간이었으니 내 요청과 유바의 자필 편지가 함께한다면 분명 도와주리라. 편지를 챙긴 후, 나는 이번에는 아힐데른 샐리나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대천신교와 나 사이에 악마가 된 시에리 문제로 갈등이 생겼다. 어떻게 끼어들 방법을 찾아서 대천신교를 압박해줬으면 좋겠다. 다만, 정치적으로 불리하고, 명분이 없다 싶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다만 샐리나의 정치적인 입지를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반드시 하라고는 보내지 않았다. 편지를 다 보내고 난 뒤 나는 알리오 페스타의 마차를 찾았다. 에밀리아에게는 내가 직접 가서 부탁해야 했다. 그녀는 매우 섬세하고 귀찮은 사람이라서 편지로만 보내면 일 처리를 제대로 안 해줄 가능성이 있었다.
따라서 내가 직접 가서 몸을 바치며 부탁해야 했다. 아내를 위해 외간 여자에게 몸을 바치는 사제장이라니. 이거 NTR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