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360
“광산도 많은데, 몇 개 양보한다고 어디 덧나오? 북부 대공이라는 자리도 본래, 그대의 분수에는 맞지 않는…….”
“북부 대공은 제가 원해서 맡은 적이 없는 자리였습니다만, 북부가 정상화되고 나니 모두가 거저 얹은 자리라고 저를 모함하고 계시는군요. 에스파 후작. 그대도 후임 내정자였는데, 본인이 거절하셨다지요? 배 아프시겠습니다. 한낱 계집도 쉽게 복구할 수 있는 알토란 같은 땅인 줄 알았다면, 그냥 본인이 직접 먹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셔서.”
에스파 후작은 헛기침하며 시선을 돌렸다. 바르바 후작이 대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협상이 없다면 전쟁뿐이오. 협상에서 얼마든지 조율할 수 있는 문제를 벌써 논하는 건 옳지 못하다고 봅니다.”
“제 의견을 미리 제시해두는 겁니다. 북부는 드워프들이 제게 직접 보수를 받고 파견 근로직으로 일하는 형태 외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드워프들의 출입을 받지 않을 겁니다. 협상장에서 이 점을 분명히 해주시면 감사하겠군요.”
바르바 후작은 혀를 찼다. 양쪽에서 자신을 쪼아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드워프들과 전쟁을 하면, 끝에는 인간들이 이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기고 난 다음에 얻는 게 없었다. 인간 왕국의 주요 철강 물품을 수입하던 공급처가 끊기고, 곡창지대였던 남부 지역이 전쟁으로 인해 쑥대밭이 될 것이며, 병사들은 더 죽어서 민심도 바닥을 칠 것이었다.
마탑주가 없으므로 저번처럼 마법사들을 규합해서 같이 싸울 수도 없었다. 게다가 수도에 생겨난 정체불명의 문 때문에 수도에 상시 주둔 병력을 마련해놓은 상태였다. 싸우면 이긴다. 하지만 그건 이겨도 이긴 게 아니었다.
이건 어찌 보면 전쟁 선포보다는 인질극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오테르. 우리 왔어요-.”
예정보다 하루가 늦은 시각에 우리는 숲에 도착했다. 지도상에 표시되는 마차의 위치나 익숙한 지형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곳이 우리가 수련 받던 장소임은 분명했지만, 시오테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에이에이는 미행이 오는 게 아닌가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았고, 나는 목소리를 높여서 시오테르를 다시 불렀다.
“미안해요. 시오테르. 이곳 사정을 모르다 보니, 좀 여러 군데 들러야 했거든요.”
지금 시오테르가 있는 숲속이 어떻게 됐는지를 알 수가 없으니 바로 올 수 없었다. 알리오 페스타의 마차를 썼는데 주변에 드워프 경비병들이라도 돌아다니고 있었으면 귀찮아졌으니까. 최소한 전후 상황을 알고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마탑에서부터 상황을 살피며 마차를 몰고 왔다.
내가 사과를 하고 에이에이도 계속해서 시오테르를 찾았다. 몇 번을 불렀을까. 산 전체에 울린 메아리가 돌아오듯, 숲의 그림자 속에서 시오테르가 훌쩍거리며 나타났다. 그녀는 마치 카멜레온이 보호색을 풀 듯이 어둠 속에서 스르륵 나타났다. 그녀는 무릎을 감싸 안은 채 돌 위에 앉아있었다.
“늦었어.”
그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건 결코 내가 겁쟁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는 볼을 무릎으로 꾹 누른 채 다시 말했다.
“또, 또 속은 줄 알았잖아. 흑……. 거, 걱정시키면 안 되잖아…….”
에이에이도 나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녀를 꼭 안아줬다. 양쪽에서 끌어안긴 그녀는 서러움이 복받쳤는지 다시 펑펑 울기 시작했다.
“흑흑……. 나, 나는……. 또, 또……. 속은 줄……. 알고……. 흐흑….흑…….”
“왜 속아요. 우리 못 믿어요? 친구잖아요. 친구. 자. 이리 와 봐요. 껴안아 봐요. 이렇게.”
“흐아아아아아앙!”
시오테르가 나를 와락 껴안았다. 가슴이 맞닿으면서 부드럽게 눌렸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그 감촉을 즐겼다. 에이에이가 시오테르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내 품에서 울던 그녀는 눈물을 닦아내고 에이에이의 가슴에 얼굴을 기댔다. 에이에이는 시오테르의 뿔에 찔리지 않게 살짝 고개를 틀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흑……. 이제, 이제 또 수련할 거지?”
“네. 수련은 할 건데, 일단 다시 한번 더 고향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시오테르. 지금 밖에 상황이 아주 좋지 않거든요.”
“밖에 상황이 좋지 않다고?”
“시오테르. 혹시 이 주변에서 마법사들을 본 적 있나요?”
“응? 마법사? 아니. 여기까지 온 사람은 없었어.”
시오테르가 고개를 저었다. 에이에이와 나는 눈을 마주했다. 역시 에보리가 마탑주를 죽여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시오테르를 꼭 끌어 안아주며 말했다.
“시오테르. 제가 영주 직위에 있는 사람인지라 현 상황에 대해 보고서를 써서 보낼 의무가 있어요. 무슨 말인지 알죠?”
시오테르는 영주나 보고서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우리가 다시 찾아온 이유는 수련을 받기 위해서였지만, 상황이 워낙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눈치를 살필 필요가 있었다. 우리가 수련 받는 동안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갈 것은 대비한 연락책을 갖추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핑계도 만들어놔야 했다. 혹시나 전쟁이 터지기라도 한다면 급히 돌아가야 했으니까.
우리 영지에는 성벽 따윈 없었다. 드워프들이 미쳐서 돌진한다면 이브나 엘시 같은 내 가족들은 무사히 살겠지만, 영지 자체가 박살이 날 것이다. 나는 이 사정을 시오테르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시오테르는 초조한 얼굴로 주변을 살피더니 내게 물었다.
“그러면 또 가는 거야? 날 두고?”
“가는 게 아니에요. 돌아오기 위한 준비를 하는 거죠.”
“정말이지? 또 돌아올 거지?”
시오테르의 손이 내 팔을 꾹 쥐었다. 뼈가 부러질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시오테르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시오테르는 에이에이까지 꼭 붙잡고 우리 둘에게 다시 한번 약속을 요구했다. 우리는 시오테르에게 손가락까지 걸어준 다음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시오테르는 우리랑 맞댄 손가락을 문지르며 헤실헤실 웃었다. 나는 마차를 끌고 와서 시오테르 앞에 놓았다. 시오테르는 우리가 마차를 끌고 오자 의아한 얼굴이었다. 나는 말했다.
“시오테르. 지금부터 열흘 뒤에, 우리가 다시 돌아올 거에요. 이 마차는 마력으로 작동하는 마차인데, 이 마차를 움직이려면 당신의 힘이 필요해요. 여기에 마력 좀 잠깐 충전해줄래요?”
“음……. 해본 적 없는데…….”
시오테르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더니 마차의 충전지에다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보랏빛 기운이 넘실넘실 흘러나와 마차를 감싸기 시작했다. 마차의 전지가 쭉쭉 차오르는 게 우리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기껏해야 30% 정도 차 있던 마차의 마력이 완전히 충전되기 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쾌재를 부르며 에이에이를 마차에 태웠다. 시오테르가 말했다.
“꼭 돌아와야 해?”
“당연하죠.”
나는 다시 한번 시오테르를 꼭 끌어안아 줬다. 시오테르는 내가 안아주자 내 등뼈에서 삐끄덕 소리가 날 정도로 꽉 부둥켜 안아주었다. 나는 시오테르에게 말했다.
“우린 친구잖아요.”
시오테르는 친구라는 말에 조금 고개를 갸웃거리고 떨떠름한 표정을 짓다가도, 다시 씩 웃으며 나를 껴안았다.
“맞아. 우린 친구야. 친구.”
내가 품에서 빠져나오자, 시오테르는 손으로 허공을 휘저으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리고 우중충한 표정을 지으며 팔로 제 몸을 쓸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레버를 붙잡으면서도, 마치 애완동물을 버리고 가는 것 같은 죄책감에 휩싸였다. 시오테르는 이내 다시 씩 웃더니 손을 저으며 말했다.
“꼭 와야 해?”
“알겠어요.”
에이에이는 조금 착잡한 얼굴로 나와 시오테르를 번갈아 바라봤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준비를 완벽하게 해둬야 수련할 수 있었으니까. 레버를 당기면, 우리는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영지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빠른 시기에 돌아온 우리를 보고 시종들도 이브도 매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돌아오자마자 이브에게 말했다.
“이브. 드워프 왕국에서 전쟁 준비를 하고 있거든?”
“전쟁 준비?”
갑작스러운 소식에 당황한 이브 옆에서 시에리가 화들짝 놀랐다. 셀루가 수영장에서 고개를 내밀고 나를 쳐다봤고, 마틸다는 불안한 얼굴로 여기저기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소야는 오늘도 공방에 박혀있는 듯했다. 나는 말했다.
“아마, 정말 최악의 경우에야 전쟁이 날것이라고 보긴 하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마탑 방면으로 병사 최대한 많이 배치하고 지금부터 목책 건설해놔. 병사들 기강 좀 잡고. 로빈은 어딨어?”
“로빈. 지금 기사들이랑 구보하러 나갔지.”
“돌아오면 로빈한테, 내가 한 말 그대로 전해. 그리고…….”
마침 로빈이 들어오고 있었다.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매를 뽐내는 로빈은 기사들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저택 대문으로 들어왔다. 로빈은 땀을 닦아내다가 내가 온 것을 보고 다급하게 내 쪽으로 와서 경례했다.
“영주님! 무사히 돌아오셨습니까?”
“로빈.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어요. 자세한 병력 통제 사항은 이브한테 전달해뒀으니까. 이브한테 듣고 그대로 행하고. 기사단도 3개 조로 나눠서 마탑 방면을 꾸준히 순찰하도록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로빈은 내 명령에 특별한 의문도 가지지 않고 바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이런 점에서 매우 편한 사내였다. 나는 그다음 이브와 같이 집무실을 올라갔다. 에이에이는 다시 짐을 풀면서 엘시와 셀루에게 드워프 왕국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이브는 내게 물었다.
“전쟁이라니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아마, 조금 있으면 수도에서도 관련해서 공문이 내려올 텐데……. 일단은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영지민들 불안하지 않게 되도록 시종들이랑 기사들 입단속 잘 시키고. 드워프 왕국이 자기들 처우에 좀 불만이 많나 봐.”
“좆같은 새끼들이네.”
이브는 짜증을 냈다.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뜻은 할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었다. 그녀가 짜증이 날만도 했다. 얼굴을 찌푸리던 이브는 조금 놀란 얼굴로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럼 마틸다는?”
“상황 봐서 다시 수도로 보내든가 해야지. 여긴 위험할 테니까.”
“……그러네.”
이브는 몹시 아쉬운 얼굴이었다. 나는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 다 드워프들이 좆같은 새끼들이라 그래.”
“아직 해주고 싶은 게 많은데.”
이브는 정말 아쉬운 기색이었다. 나는 그녀를 격려하기 위해 말을 덧붙였다.
“아직 확실한 건 없잖아. 일단 좀 기다려볼 만하니까. 남은 시간 동안 잘해줘. 외교 문제는 이제 우리 손을 떠난 문제잖아?”
“그래도…….”
이브는 말끝을 흐렸다. 나는 그녀를 한 번 꼭 끌어안아서 다시 달래주었다. 그리고 집무실로 올라가서 왕궁으로 보낼 편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편지 내용은 이랬다.
[시시각각 급변하는 현 시국 혼란에 힘이 부침을 느낍니다. 잠시 영주직을 제 부인인 페타 이브에게 맡기고 수행을 떠나고 오겠습니다.]“괜찮을까요? 이런 편지로?”
시에리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꼬우면 자기들이 어쩌겠어요.”
그리고 나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한 비상 연락망을 구상했다. 이제부터 수행에 들어가면 정말 5단계까지 받아볼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시오테르가 있는 숲에서는 급박한 소식을 바로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영지나 왕국에 큰일이 일어나도 모를 가능성이 컸다.
이럴 때 빠르게 복귀하기 위해서 비상 연락망은 필요했다. 내가 구상한 방식은 알리오 페스타의 마차를 이용한 비상 연락이었다. 시오테르의 힘으로 마차가 급속 충전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으니, 나와 에이에이가 마차를 타고 시오테르에게 돌아간 다음 시오테르가 마차를 급속 충전시켜서 마차만 돌려보낸다.
영지에서는 매 열흘 간격으로 마차에 현재 영지 소식을 담은 편지를 보낸다. 만일 그 소식을 받고 불안한 부분이 있다면 그 시점에서 바로 마차를 타고 돌아가고, 아니라면 계속 수행에 매진한다.
“괜찮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