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378
“우아아아아아아아!”
다시 한번 데오르곤이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마지막 일격을 소모한 방망이가 가루로 변했다. 나는 손을 털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데오르곤은 등을 기괴하게 꺾은 채 쓰러져 있었다. 얼굴은 산맥 바닥에 처박혀 있었고, 사지는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죽인 건가? 나는 내가 정말 데오르곤을 죽인 게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나는 숨을 고른 다음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데오르곤.
살아있었다. 죽으면 상태창을 확인할 수 없었는데, 이 새끼는 아직 살아있었다. 나는 상태창을 확인하자마자 다시 한 번 메이스를 치켜들었다. 내가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바닥에 쓰러졌던 데오르곤이 총알처럼 뒤로 빠져나갔다. 내 방망이는 맥없이 허공을 갈랐다.
“우우우…..!”
데오르곤이 신음을 흘렸다. 그의 얼굴은 망가진 지 오래였다. 정수리와 뒤통수는 동그란 모양으로 움푹 파여 있었고, 눈 코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눈은 하얗게 뒤집혀서 제대로 시야를 확인하지도 못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나의 기척을 찾아 고개를 저으며 계속해서 거리를 벌렸다.
“건방진 인간 놈……!”
데오르곤은 충분히 거리를 벌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머리에 충격이 심해 보였다. 간헐적으로 한쪽 눈꺼풀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고 얼굴은 한쪽이 마비되어 제멋대로 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한 걸음 앞으로 움직였다. 내가 움직이는 것에 반응에서 데오르곤의 손에서 새빨간 에너지 탄이 튀어나갔다.
“씨발!”
쾅!
시오테르가 던졌던 돌들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에너지 구체가 산맥을 처박혀서 폭발했다. 데오르곤은 자신의 머리를 문지르며 소리를 질렀다.
“우오오오오! 건방진 놈! 성기만 작을 뿐만 아니라! 속도 좁아터졌구나! 내 너에게 그토록 잘해줬거늘, 나를 공격해! 게다가……. 게다가아아!!!”
데오르곤은 더욱 분노한 표정을 짓고 나를 쳐다봤다. 그가 화를 낼 때마다 눈코입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하지만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내가 조금만 걸음을 옮겨도 에너지 탄이 살벌한 기세로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주변을 빙빙 돌면서 그의 빈틈을 찾았으나, 조금이라도 다가가면 내게 마구잡이로 에너지 탄을 쏘아댔다. 그에게 체력 회복할 시간을 주어선 안 되는 내 입장에선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건방지게!!! 내 앞에서 네 이름에 드래곤을 붙이다니! 용납할 수 없다!”
데오르곤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다시 용 모습으로 변하려는 듯하여 나는 서둘러서 달려들었다. 데오르곤은 내 발소리를 파악하고 고개를 돌렸다. 데오르곤의 몸 주위에서 새빨간 기탄들이 무수히 날아들기 시작했다.
나는 시오테르의 수련을 떠올렸다. 기탄의 위력은 조약돌과 비교할 수도 없었지만, 속도는 비슷했다. 지금 내 머리 위에는 돌그릇도 없었다. 나는 피할 수 있었다. 메이스를 꼭 쥐고 있는 힘을 다 쏟아서 데오르곤을 향해 달려들었다.
“드래곤이란 곧! 우리의 종족임과 동시에 용언으로 ‘위대함’을 뜻하는 단어! 하찮은 인간이 쓸 단어가 아니다! 오로지 아티! 오로지 아루스! 그 단어는 나의 위대한 가족들을 위해서만 쓸 수 있단 말이다! 허명에 빠져서 단어를 남용하지 마라 인간이여!”
데오르곤의 허리를 타고 꼬리가 솟아났다. 거대한 꼬리가 기탄을 피하던 내 움직임을 쫓아서 나를 후려갈겼다. 옆구리를 정확하게 타격한 일격에 나는 대포알처럼 날아가 지면을 긁었다. 동시에 데오르곤도 무리하게 꼬리를 사용한 충격으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우아아아아아!!”
나는 기침을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갑옷 덕분에 충격은 덜했지만, 그래도 머리가 울렸다. 나는 허둥지둥 자세를 갖추고 후속타를 대비했지만, 용으로 변신한 데오르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엎드린 채 비명만 지르고 있었다.
그는 날아오르려고 했지만 날 수 없었다. 한 번 사용한 꼬리도 축 늘어져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조금 전에 등을 박살 내놨기 때문이었다. 그의 하반신은 축 늘어져서 앞발로만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날개는 자신의 몸을 덮는 피막에 불과했다. 데오르곤은 이를 드러내며 내게 소리를 질렀다.
“인간! 나를 죽이고 아티까지 죽일 생각이냐!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아티를 지킬 것이다!”
나는 굳이 그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트래쉬 토크를 할 만큼 여유롭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앞발만 휘적휘적 휘두르며 기탄을 난사할 뿐인데, 나는 도무지 데오르곤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멀리 있으면 기탄을 피하느라 힘을 소모하고, 가까이 다가가면 팔이 날아들었다. 갑옷이 없었거나 조금만 준비가 미비했으면 내가 저승으로 갔으리라.
접근할 수 없어서 짜증이 난 나는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를 쥐고 온 힘을 다해 던졌다. 데오르곤은 돌멩이를 날린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 방향으로 기탄이 날아들었다.
데오르곤은 황급히 기척을 찾다가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해법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 새끼. 머리에 가해진 충격으로 눈이 먼 탓에 내가 마나를 실어서 던지는 돌멩이랑 나를 구분하지 못했다.
“씨발 새끼. 어디 한 번 뒤져봐라.”
나는 바닥에 떨어진 돌을 주워 담은 다음. 돌 하나하나에 마나를 담고 전부 공중으로 흩뿌렸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앞으로 달려들었다. 데오르곤이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쳐들더니 사방으로 날아드는 돌멩이를 향해 기탄을 쏘아댔다.
그리고 뒤늦게 앞으로 파고드는 나를 발견하고 앞발을 쳐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더 빨랐다. 기탄을 쏘며 한눈을 판 틈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다. 데오르곤이 오른발을 내려치려는 순간, 나는 온 힘을 다해 몸으로 데오르곤의 몸을 들이받았다.
“우오오오옥!”
데오르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그는 더 밀려나지 않기 위해 양팔로 땅바닥을 붙잡았다. 나는 메이스를 들고 데오르곤이 자주 쓰던 오른팔을 후려갈겼다.
“끄아아아아아!”
데오르곤이 비명을 지르며 왼손으로 나를 후려갈겼다. 나는 다시 한번 튕겨 나가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주력으로 쓰는 오른팔이 상한 시점에서 그의 패배는 확정난 셈이었다. 그는 상처 입은 오른팔을 주물럭거리며 입에 에너지를 실어 모았다. 그리고 내가 있다고 생각되는 방향을 향해 다시 한번 브레스를 뿜어냈다.
“죽어라!!”
“씨, 씨발!”
새빨간 브레스가 허공을 내리 갈랐다. 거의 본능적인 감각으로 브레스를 피한 나를 욕지거리를 뱉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브레스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내가 다시 자세를 잡고 일어나는 찰나에 데오르곤이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커흑……. 콜록 콜록……!”
데오르곤이 입에서 새까만 피를 꾸역꾸역 토해내고 있었다. 그는 지금 생명을 불사르며 나와 싸우고 있었다. 나는 메이스를 들고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데오르곤이 성한 왼팔을 나를 향해 휘적휘적 휘둘렀지만, 공격 궤도가 뻔하다면 맞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의 오른편으로 돌아서 온 힘을 다해 메이스를 휘둘렀다.
깡!
강철같은 비늘이 산산조각나며 데오르곤의 목이 크게 흔들렸다. 마치 활어 시장에서 칼자루에 얻어맞은 생선처럼, 그는 몸을 크게 경련하며 괴로워했다.
“끄아아아아아아!”
그리고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나를 향해 왼팔을 내려갈겼다. 공중에서 자세를 잡지 못한 나는 그대로 왼팔에 두들겨 맞고 바닥에 내리꽂혔다.
쾅!
갑옷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잘해봐야 한 번이나 막을 수 있을까. 나는 아찔한 정신을 다잡고 황급히 후속타를 피해냈다. 내가 누웠던 자리에 다시 한번 앞발이 내리꽂혔다. 나는 누운 자세로 몸을 돌려서 데오르곤의 왼팔에 메이스를 후려갈겼다.
“어림없다!”
하지만 자세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 공격은 별 타격을 주지 못했다. 다시 한번 데오르곤이 왼팔을 들어 올려서 나를 향해 후려갈겼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리고 충격에 대비했다.
쾅!
정신이 아찔했다. 갑옷이 말 그대로 산산조각났다. 그 충격으로 나는 튕겨 나가 바깥으로 크게 굴렀다. 손아귀에 붙잡히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데오르곤은 박살 난 구덩이를 손으로 헤집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한번 내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들고 에너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나는 발끝에 힘을 주고 개구리처럼 다른 편 구석으로 크게 튀어나갔다.
“죽어라!”
데오르곤의 브레스가 다시 땅을 헤집었다. 이번에는 그의 고개가 내가 움직이는 궤적을 따라가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새빨간 불의 파도가 넘실대며 내게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계속해서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벌렸다.
“크아아악! 크헉….콜록….콜록……!”
내게 닿기 직전, 데오르곤이 돌연 기침을 하며 다시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사라진 브레스에 안도할 틈은 없었다.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온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데오르곤이 눈을 부릅뜨고 나에게 왼팔을 휘둘렀다. 나는 쓰고 있던 투구에 마나를 실어서 반대편 방향으로 집어 던졌다. 잠깐 당황한 데오르곤이 멈칫한 사이 이번에는 왼팔을 후려갈겼다.
깡!
“우아아아아아!”
데오르곤은 이제 사지가 다 박살 났다. 더 이상 팔로 제 몸을 지지하지 못하는 육중한 거구가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데오르곤은 숨을 헐떡거리며 어떻게든 이로 나를 물기 위해 머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양옆으로 정신없이 흔들리는 머리에 나는 다시 한번 메이스를 내리꽂았다.
깡!
“끄어어어어어어어!”
데오르곤의 몸이 움직임을 멈췄다. 쩍 벌어진 입 틈새로 피가 질질 흘러나왔다. 그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데오르곤은 더 움직일 수 없다는 걸. 나 역시 지쳐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데오르곤이 입을 열었다.
“아티……. 아루스…….”
나는 기가 차서 내뱉었다.
“병신아. 아루스는 네 친딸이 아니야.”
“….알고 있다.”
“뭐?”
데오르곤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그래도 내 딸이다.”
나는 메이스를 쥔 손에 힘을 풀었다. 바닥에 주저앉아서 숨을 돌렸다. 데오르곤이 커다란 입이 들썩거리다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숨을 내뱉으며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죽은 자의 상태창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씨발.”
나는 메이스를 집어 던지고 바닥에 쓰러졌다. 한 번에 긴장이 확 풀리니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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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는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위풍당당한 거체는 두들겨 맞아서 형편없이 찌그러져 있었고, 비늘의 틈새로 피가 새어 나왔다. 바닥에 생긴 피 웅덩이를 보고 아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법을 썼다. 핏방울이 땅밑에 스며드는 것을 보고 발을 내디디면 발끝이 질척거렸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레어에 있었다. 그녀의 허벅지 위에는 루시우스가 잠들어 있었다. 아티는 루시우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다시금 데오르곤을 쳐다봤다.
“네가 죽기를 바랐지만…….”
아티가 입을 열었다. 아티는 데오르곤을 죽이고 싶었지만, 데오르곤이 막상 죽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묘한 허무함이 가슴을 채웠다. 그녀는 눈을 감고 옛날을 떠올렸다. 아주 옛날에, 아티는 자유롭게 땅을 오갈 수 있었다. 마법진의 주인으로서 제 역할을 함과 동시에 세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아티 이게 무엇이지?”
“내 힘이야.”
그 때 데오르곤과 아티는 아티의 동굴에 서 있었다. 그들 앞에는 거대한 에너지 구체가 있었다. 데오르곤은 아티가 말하는 ‘내 힘’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몰라서 고개를 기울였다.
“내 힘?”
“말 그대로야 내 힘. 이번에 내가 다른 마족 애들이랑 힘을 합해서 마법진을 만들었다는 거 알지? 내가 저번에 이야기해줬잖아.”
“아아, 알고 있다.”
데오르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오늘도 알몸이었다. 아티는 그의 알몸 차림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너무 무례했고, 보기에도 좋지 않았으며 심지어 자지도 작았기 때문이었다. 2m에 달하는 거대한 육체 사이에는 솔방울보다 작은 번데기가 붙어있었다.
데오르곤은 그 작은 성기가 자랑이라는 듯 살랑살랑 흔들며 아티를 쳐다봤다. 아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보다, 옷 좀 입으면 안 될까? 아니면 차라리 용 모습이나 네가 좋아하는 도마뱀 모습으로 다니는 건 어때? 나 네가 그러고 다니는 거 정말 못 봐주겠어.”
“인간들은 이 ‘근육’이라는 걸 남성미의 상징으로 여긴다더군. 어떤가 아티. 나의 근육질 몸매에 반할 것 같나?”
“……아무튼, 내가 그래서 왜 이 힘을 따로 떼어놨냐면 마법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네 명이 전부 특정 위치에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하거든. 그런데 그러면 만일 마법진의 일부가 파괴되거나, 어떤 특수한 상황이 일어났을 때 대처할 방법이 없잖아? 그래서 이걸 만든 거야. 내가 내 힘의 절반 정도를 떼어내서 이곳에 붙잡아두면, 마법진은 내가 있다고 인식하니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지만.”
“…..그 말은 네가 힘의 절반을 소모한 상태로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로군.”
“그렇지? 그래도 걱정하지 마. 이 세상에서 날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다시피 하니까. 잠깐만, 그거 건드리지 마.”
데오르곤이 손을 뻗자 아티가 황급히 그를 말렸다.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데오르곤. 너 그거 손대면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지 몰라. 그러니까 그걸 손대면…….”
데오르곤은 아티의 말에 한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다시 물었다.
“아티. 이걸 손대면, 혹시 네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건가?”
“내 힘 그 자체를 반으로 나눈 거야. 무슨 말인지 알잖아? 그게 날아가면 내 힘의 절반이 날아가는 거니까, 당연히 나는 나갈 수 없어. 게다가 그걸 손댔다가 반발이라도 일어나면 너는……. 잠깐! 잠깐 데오르곤! 뭐 하는 거야!”
데오르곤은 아티의 설명을 듣다 말고 구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푸른빛 구체가 데오르곤의 온몸을 휘감더니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아티는 발을 구르다가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데오르곤의 몸을 둘러싼 빛이 점점 작아지더니, 완전히 데오르곤의 몸속에 흡수되는 걸 보고 아티는 눈을 찌푸렸다.
“데오르곤?”
“나는 괜찮다. 아티.”
아티는 제힘의 총량이 줄어든 걸 느꼈다. 데오르곤의 몸에 힘이 흘러넘치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아티가 말을 더듬었다. 그녀는 지금 데오르곤이 저지른 짓이 믿기지 않았다. 데오르곤은 아티의 힘 절반을 말 그대로 흡수해버린 상태였다.
“너, 너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
“걱정하지 마라. 아티. 내가 너를 지킬 테니까. 너는 이 자리에 이대로 있으면 된다. 나는 네가 귀찮고 위험한 일을 하게 놔둘 수 없다.”
아티는 데오르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지금 저지른 건 대형 사고였기 때문이었다. 아티가 화를 내며 말했다.
“멍청아, 이러면 난 아예 밖으로 못 나가잖아? 이 마법진은 ‘내’가 이 자리에 있어야만 가동한다고! 네가 내 힘을 흡수해서 이 자리에 있어 봐야 마법진은 발동 안해! 난 이제 나갈 방법이 없어졌다고. 알아?”
“걱정하지 마라 아티. 나는 네가 위험한 걸 눈뜨고 볼 수 없다. 네가 이 레어에 있으면, 내가 무엇이든지 다 해주겠다.”
“무책임한 소리하지 마. 제발. 데오르곤. 이런 식으로 날 가둬놓지 않아도, 내가 널 떠날 리 없잖아? 응?”
“걱정하지 마라. 아티. 너를 가두는 게 아니다. 너를 지키는 것이다.”
데오르곤의 그 발언은 아티에게 전혀 안심되지 않았다. 아티가 데오르곤에게 이 이상 화를 내지 않은 건, 그가 아티의 남편이기 때문이었으며 아티가 아직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아티는 다시 눈을 떴다. 그때 빠져나갔던 힘의 절반은 어느새 아티에게 되돌아와 있었다. 아티는 마치 남의 마력을 사용하는 것처럼 힘의 운용이 어색했다. 너무 오랜 세월 약화된 상태로 살아왔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강해진 힘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서 데오르곤의 머리를 툭 건드렸다.
“무엇이든지 다 해준다고 했었지. 데오르곤.”
하지만 데오르곤은 뭐든지 다 해주지 않았다. 그는 성관계와 애정 표현에서는 그 누구보다 보수적으로 구는 사내였다.
“데오르곤, 그……. 오늘은 시간 돼?”
“드래곤 성관계의 시간이 다가오지 않았다.”
데오르곤은 아티의 유혹을 항상 그런 식으로 뿌리쳤다. 그가 그녀와 엉겨 붙는 것은 천년에 한 번뿐이었다. 천년. 아티가 타인의 애정을 살결로 느낄 수 있는 게 천년에 단 한 번뿐이라는 뜻이었다. 데오르곤이 자신의 애정을 거부할 때마다 아티는 더없이 지독한 굴욕감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매력이 없는 건가? 인간 폼도 드래곤 폼도 아무 매력도 없는 여자라서 저렇게 나를 거부하는 건가? 아티의 마음은 데오르곤이 거절할 때마다 끝도 없이 침전해 들어갔다. 한창 혈기왕성했던 그녀에게 있어서 데오르곤의 냉대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