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385
시오테르의 이야기가 나오자 다곤은 반가운 기색을 드러냈다. 나는 그녀에게 간단하게 시오테르의 근황을 설명해주었다. 드워프 왕국에게 속아서 마나를 쪽쪽 빨리고 있던 일, 그런 시오테르를 나와 에이에이가 구한 일. 그리고 드워프 왕국이 몰락하고 정권이 교체된 일. 내가 이야기를 하나 할 때 마다 다곤은 자신의 커다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감정을 표현했다.
시오테르를 처음 만난 부분에서 그녀는 눈을 크게 부라리며 분노를 표현했으며, 우리가 그녀를 구해주는 장면에서 정신적인 메시지를 통해 한숨을 보냈다. 이야기를 끝마쳤을 때 그녀는 한층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군. 그럼 네가 시오테르를 구해준 것인가. 드워프들은 아주 사악한 놈들인 것 같다.]
“몹시 나쁜 놈들이죠. 드워프들이 우리 다곤님이나 시오테르의 심성을 반만이라도 닮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러면 세상이 평화로웠을 텐데.”
내 말에 다곤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중심에 있는 커다란 눈을 제외하고, 몇몇 눈동자에 미심쩍은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곤은 말했다.
[그런가. 고맙다. 그런데…….]
다곤이 말끝을 흐렸다. 나는 그녀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고개를 기울였다. 다곤은 내게 눈을 내리깔며 물었다.
[그런데 왜 ‘시오테르’라고 부르지?]
“네?”
좆됐다. 나는 병신이 아니었다. 저번에 다곤이 내게 신랑 삼고 싶다고 말한 순간부터, 나는 그녀가 내게 어떤 호의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조금 전에 시오테르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내가 시오테르와 떡 치고 부인까지 삼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습관이란 게 이토록 무서웠다. 시오테르와 떡 치면서 그녀의 이름을 그냥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 보니 다곤 앞에서도 ‘시오테르’라고 부르는 실수를 범하고 만 것이다. 나는 어깨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별거 아닌 척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어……. 수련을 받다 보니 조금 친해져서요. 그래서, 그래서 그냥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죠.”
[나는?]
다곤의 그 한마디에 많은 것이 느껴졌다. 등에 식은땀이 죽 흘러내렸다. 데오르곤과 싸울 때도 느끼지 못했던 격렬한 긴장감과 공포가 내 몸을 조여들고 있었다. 나는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말했다.
“다, 다곤님에게 그렇게 부르면 불쾌해하실까 봐……. 제가 수련 기간에 시오테르 씨를 그냥 부르는 데에도 좀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결코, 다곤 님이 밉거나, 그 어색하게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다곤님이 선하고 멋진 분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나도 다곤이라고 불러줬으면 한다.]
“네. 다곤.”
[한 번 더.]
“네?”
다곤은 내가 이름을 부르자 그 거대한 몸체를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눈알들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그 눈알들에서 죽음의 광선이라도 나오는 게 아닐까 싶어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다곤은 내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하고 말했다.
[한 번 더 다곤이라고 불러줬으면 한다.]
“다, 다곤?”
다곤의 거구가 다시 한번 요동쳤다. 마치 폭탄을 삼킨 거대 괴수처럼 온몸을 크게 비틀면서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나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소음에 귀를 틀어막았다. 잠시 몸을 지진처럼 뒤흔들어대던 다곤이 다시 우뚝 솟은 채 내게 말했다.
다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 무심한 시선에 나는 다시 몸을 떨어야 했다. 하지만 두려운 티를 내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비명을 지르거나 도망쳐버리면 다곤의 소녀심에 상처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 나는 최대한 밝은 미소를 보여주며 말했다.
“왜, 왜 그러세요?”
[그래서, 무슨 일로 왔나.]
기분 탓일까. 어쩐지 다곤의 말투가 조금 따스해진 듯했다. 하지만 사실 텔레파시나 다름없는 전언으로 말하는 것이기에 어조의 차이는 없었다. 나는 말했다.
“다곤. 무기를 하나 받았으면 해서, 이렇게 왔어요.”
[무기를?]
“네. 저번에 주셨던 그, 영혼을 찢는 마검인가? 그걸 주셨으면 해서요.”
[이번엔 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이 근처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내가 해결해줄 수 있다.]
“미미르 씨를 구해야 하거든요.”
나는 이번에는 그녀가 오해하지 않도록 ‘씨’를 붙이기로 했다. 다곤은 미미르도 갇혔다는 이야기에 흥미를 보였다. 그녀는 거구를 앞으로 살짝 내밀고 내 앞에서 눈알을 떼도록 떼도록 굴렸다. 그리고 촉수들이 호수 변에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 상태로 내게 말했다.
[설명해라.]
나는 이번에 아힐데른에 관해 설명해야 했다. 다곤은 아힐데른에서 일어난 끔찍한 착취 행위에 분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갑작스럽게 잠수하여 사라졌다. 나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다시 물속에서 기포가 올라왔다. 다곤의 수많은 촉수가 먼저 솟아올랐다. 다곤은 마치 무기를 판매하는 노점상처럼 손에 무기를 가득 쥐고 있었다. 나는 당황한 얼굴로 다곤을 쳐다보았다.
[아주 강력한 무기들을 주겠다. 엘프들을 전부 없애버릴 수 있는 흉악한 무기들이다. 우선, 이 항아리에는 1만 년 산 마계 독사의 진액이 들어있다. 수원지에 이걸 한 방울만 풀면 그 물이 흐르는 땅 전체가 썩어들고, 땅 밑에서 언데드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아, 이 정도까지는 필요 없어요. 다곤. 마음은 고맙지만, 저는 영혼을 베는 마검 하나만 있으면 충분한 걸요.”
시작하자마자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흉악한 살인 병기를 집어 든 다곤을 말려야 했다. 그녀는 내가 말리지 않는다면 당장 아힐데른 방향으로 항아리를 던질 기세였다. 다곤은 내 만류에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다른 것도 많은 데, 정말 괜찮은가?]
“네. 복수는 미미르가 직접 해야 옳다고 생각해요.”
[알겠다. 우리들을 위해 이렇게 애써주다니 너는 정말 선량한 것 같다. 아티의 신랑으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감사해요. 다곤.”
다곤이라고 부르자 다시 한번 다곤이 진동 오나홀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그녀가 더한 요구를 하기 전에 그녀의 손에서 검을 받아들었다. 나는 검을 손에 집어 들자마자 미친듯한 비명이 울리는 걸 느꼈다.
“우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나는 슬쩍 검을 구석에 밀어놓았다. 검을 한 번 들면 비명 때문에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다. 나는 다곤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서 감사 인사를 했다.
“다곤. 매번 고마워요.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은혜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는 서로 이름으로 부르는 사이다.]
“항상 그렇게 제게 마음 써줘서 고마워요. 다곤.”
다곤의 몸이 다시 한번 꿈틀거렸다. 누군가 전기 충격을 가하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뒤트는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이게 다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일까? 나는 작별 인사를 하기 전에 궁금했던 것 하나를 물었다.
“참, 다곤. 이걸로 형체가 없는 영혼을 공격해도 타격이 먹히겠죠?”
[당연하다. 오히려 그런 상대들에게 더욱더 강한 고통을 준다.]
내 예상대로 극진 봉양검은 아힐데른에 사는 조상들의 극카운터인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의 확답을 듣고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다곤. 그럼 가볼게요.”
[잠깐.]
나는 이 ‘잠깐’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무섭게 들릴 수 있단 사실을 처음 알았다. 어깨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다곤이 내 등 뒤에서 물었다.
[또 와줄 건가?]
“당연하죠. 다곤.”
[기다리겠다.]
다곤은 말을 하다말고 호수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고민에 빠졌다. 여기서 다곤한테 선을 긋는 건 너무 미안한데, 암만 생각해도 다곤은 불가능했다. 눈알이 달렸다는 것 말고는 사람이랑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하다못해 저 거대한 육체에 미녀의 얼굴이라도 달려있었다면 어떻게든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녀에게 욕정을 느끼는 건 남탕에서 발기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마을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내 등에는 영혼을 베는 마검은 몇 겹이나 붕대로 감아서 나무로 만든 통에 담겨있었다. 이 정도로 신체와 떨어져 있으니 비명이 들리지 않았다.
“마부.”
“아이고 영주님. 벌써 오셨습니까? 뒤에 그건 뭡니까?”
마부는 어느새 마을 주민들과 친해져서 간단하게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에 충실한 사내답게 기다리는 동안 술은 마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내 등에 매달린 마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요? 아주 끝내주는 무기죠. 영지에 가서 알려줄게요.”
하늘을 보면 해가 지고 있었다. 밤 중에 굳이 마부를 고생시키는 건 좋지 않았다. 나는 마부에게 물었다.
“마부. 쉬었다 갈까요? 서부 지역에 왔는데 맥주 한잔 정도는 하고 가셔야죠.”
“아이고, 영주님. 배려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적당히 마시세요. 내일 아침에 일찍 나가야 하니까.”
나는 극진 봉양검을 방구석에 두고 잠이 들었다. 내일부터 열심히 달려서 다시 영지에 도착하면, 아힐데른도 이제 끝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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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로 돌아온 내게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모두 내가 등덜미에 매고 있는 검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 보였다. 나는 검 자루를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아주 무시무시한 비밀병기지. 영혼을 베는 마검.”
“아아, 다곤인가 뭔가가 주려고 했던 그 무기구나? 그 존나 시끄럽다던.”
이브는 용케도 다곤이 줬던 무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도 영혼을 베는 마검을 제법 인상 깊게 느꼈던 모양이었다. 나는 검 자루를 톡톡 건드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에이는 그런 걸 받아왔단 사실이 꺼림칙한지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는 마차에 타면서도 말했다.
“너무 위험한 무기를 쓰시는 것 아닌가요?”
“영혼을 공격하려면 이런 게 특효약이에요. 저도 조상님들을 베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죠. 마음이 아프네요.”
내 말에 에이에이가 손을 잡아주었다. 나는 그녀의 보드라우면서 굳은살이 박힌 손을 주물렀다. 에이에이는 내가 떡 주무르듯이 손을 만지작거리자 다시 슬쩍 손을 빼냈다. 이브가 마차 창문에 걸친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입을 한 번 맞췄다. 이제 내가 이빨에 긁혀도 다치지 않는다는 걸 아는 이브는 거침없이 혀를 빨고 입안을 휘저었다. 격렬한 키스 소리에 에이에이가 얼굴을 붉혔다.
“신랑. 잘 다녀와.”
이브가 입술을 닦으며 씩 웃었다. 나도 입을 닦으며 말했다.
“음란해라.”
“나만?”
이브의 질문에 나는 웃고 말았다. 시에리가 그사이에 이브 옆에 다가왔다. 그녀는 우리 둘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종종걸음으로 마차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내게 입술을 쭉 내밀고 눈을 감았다. 그녀와도 입술을 맞추고 보니 엘시도 소야도 발을 동동 구르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덕분에 작별 인사에 시간이 걸렸다.
셀루는 휠체어를 탄 채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창에서 손을 뻗은 채 그녀에게 말했다.
“셀루. 이리로 와요.”
“응? 난 됐어.”
“섭섭하게 이럴 거예요?”
셀루는 내 강요에 못 이겨서 휠체어를 끌고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셀루를 끌어안아서 위로 들어 올렸다. 내게 번쩍 들린 셀루가 꼬리를 파닥거렸다. 진하게 키스해준 다음 나는 입을 닦으며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 문을 열면 아이라가 서 있었다. 아이라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와도 한 번 키스를 해주었다.
매번 이런 식이면 출장 가기도 힘들 것 같았다. 나는 아이라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다시 마차에 올라탔다. 마부가 말했다.
“자,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마부는 부인한테 인사했나요?”
“아이고, 오기 전에 아주 잡아먹히고 나왔습니다. 죽는 줄 알았지요.”
“가족들한테 잘하세요. 헤어지면 못 보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에이에이가 나를 유심히 쳐다봤다. 나는 에이에이에게 물었다.
“왜 그래요?”
“아니요. 아니에요.”
마차는 아힐데른을 향해 바퀴를 굴렸다. 비탈길을 오가는 거친 움직임에 따라 의자가 톡톡 흔들렸다. 에이에이도 나도 이제 멀미를 할 정도로 나약한 인간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로의 몸을 지지대 삼아서 느긋하게 잠들었다.
잡목림이 빽빽이 우거지고 갈색에 이른 나뭇가지들에 생기가 돌아올 무렵이면, 정령들이 앞장서서 우리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아힐데른 전역에 흩뿌려진 마나를 먹고 사는 이 정령들은 자연체들이 마나를 흡수하여 만들어진 일종의 마법 생물들이었다.
정령들의 춤사위를 따라 홀린 듯이 마차를 움직였다. 더욱 빽빽하고 녹빛으로 빛나다 못해 푸른빛이 감도는 거대한 숲이 눈앞에 들어왔다. 아힐데른의 경비병들이 숲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괴상한 복장을 하고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페타 루시우스와 아힐데른의 부마 에이에이입니다.”
“아, 실례했습니다. 바로 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경비병은 쓸데없는 잡담 없이 바로 길을 열어주었다. 그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치 경계를 서고 있는데 예고 없이 군단장이 들이 닥친듯한 표정이었다. 에이에이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곳은 변하질 않네요.”
“그게 아힐데른의 좋은 점이죠.”
이 평화로운 숲에 내가 종말을 가져온다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에이에이도 이 숲의 모든 것이 무너진다고 생각하면 적응이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일단 왕국으로 갈게요. 우리 여왕님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한 번 더 들어야 하니까.”
왕국의 문 앞에서 근위병들이 소란을 부렸다. 에이에이와 나는 아힐데른 입장에서는 귀빈 중의 귀빈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사전 연락 없이 찾아온 우리들 때문에 병사들은 매우 놀란 것 같았다. 병사들뿐만 아니라 내부로 들어섰을 때 시종들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마주칠 때 고개 숙여 인사하랴 손님 맞을 준비를 하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연락을 하고 올걸 그랬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