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392
“하지만, 더 뭘 해주지도 않을 거야.”
그녀는 아힐데른에 15년의 유예기간을 줬다. 자신의 몸에서 마력 덩어리를 떼어내 대신 아힐데른과 연결하는 것으로 15년 동안은 어떤 조치 없이도 아힐데른의 숲이 유지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이후의 일은 자신이 알 바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아힐데른 내에서도 극소수의 엘프들이었다. 샐리나는 군말 없이 내 지시에 따라 아힐데른의 숲을 개간하고, 새롭게 옮겨갈 터전을 물색하고 있었다. 미미르를 다시 봉인할 방법이 없음을 깨달은 엘프 원로들도 그녀의 뜻에 따라서 개발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떠날 생각인가요? 아주 멀리?”
“진을 지킬 거야. 이 몸이 되니까 진의 구성이 더 확실하게 느껴져. 나는 멀리 떠날 수 없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어. 내가 멀리 가버리면, 진 바깥에서 어떤 큰 악몽이 닥쳐들 거야.”
게다가 그녀는 이 진도 그대로 지킬 예정이었다. 아티에게도 나에게도 매우 다행스러운 소식이었다. 이젠 미미르가 아닌 그녀에게 무엇인가 강요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말했다.
“고마워요. 그런 몸이 되어도 사람들을 지킬 생각을 해주다니.”
“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어. 그게 이런 식을 이뤄질 줄 몰랐네. 그래도, 아예 여기 머무르고 싶지는 않아. 여기는……. 너무 냄새나고 음습하잖아. 이 지긋지긋한 곳에 있으면 갇혀있던 시간이 계속 떠올라. 난 여기서 나갈 거야. 이 근처 뒷동산 정도가 내 운신 범위거든. 거기서 그냥 꽃밭이나 가꾸면서 살까 생각하고 있어.”
“잘 생각했어요. 이 장소에선 이젠 떠나가야죠. 너무 오랜 시간 이어진 악습이었어요. 그렇죠?”
나는 하늘을 바라봤다. 별처럼 반짝이던 조상들은 이젠 없었다. 한때는 이 미미르의 천장은 별처럼 밝은 빛이 새어 들어왔다고 했다. 하지만 수천 년이 지나 틀어막힌 천장에는 깜깜한 어둠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엘프 조상들은 지금도 마검 속에서 비명에 한 옥타브를 더하고 있었다.
“당신은 어떻게 할 생각이죠?”
그리고 이곳에는 알리오 페스타가 남아있었다. 그는 수척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오멜라스 애쉬의 호의로 아직 이 땅에 남아있는 영혼이었다. 알리오 페스타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이젠 나도 다른 이들을 따라야겠지. 너무 오랜 시간이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무기력하게 있었다. 그 검은 가져왔느냐? 페타 루시우스. 남들보다 조금 더 오래 살아있던 것만으로도 나는 족하다.”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텔레포트 마법의 선구자였지만, 갑작스럽게 모든 자료를 불태우고 자살했다죠? 당신은……. 알고 있었던 거죠? 미미르의 정체와 엡실론 메이가의 비밀을요.”
알리오 페스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다. 미미르 앞에서 자료들을 불태웠던 그는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 모든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죽고 만 것이리라.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내가 사실을 밝혔을 때, 그 사실이 가져올 파장을 감당할 수 없었어. 엡실론 메이가의 미발표기록문 사이에서, 오멜라스 애쉬가 쓴 일기를 발견했을 때 두 사람이 쓴 논문에서 이상할 정도로 비슷한 습관을 발견했을 때, 나는 이 모든 게 현실이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모든 게 사실이었다. 내가 아니라고 부정해도 증거가 차곡차곡 모여들고 있었다. 그게 겁이 나서 나는 전부 불태워버렸다. 그러고 살아갈 용기가 없어서 목숨을 끊었다.”
애쉬는 알리오 페스타를 훑어보았다. 이젠 인간이 아닌 그녀는 말없이 침묵할 때 더욱더 낯선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도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메이가의 잔의 약점을 가르쳐 주기도 했던 사내였다. 알리오 페스타는 말했다.
“내 자손들을 용서해줘서 고맙다.”
애쉬는 그를 뚱하게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메이가를 제외한다면, 당신이 제일 싫었어요. 매번 미미르의 도움을 구하고자 저놈들이 찾아왔을 때, 영혼들 틈에서 죄책감이 가득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는, 당신이 제일 싫었어.”
알리오 페스타는 입을 다물었다. 애쉬가 달려들었다. 금빛 잔상이 흐릿하게 그녀의 움직임을 따랐다. 알리오 페스타의 멱살을 잡고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금빛 얼굴이 바들바들 떨렸다.
“메이가의 멱살을 한 번 잡으니까 죄가 없어진 것 같아? 왜 혼자서 개운한 척을 하고 있어! 당신이 밝혔다면! 당신이 밝혔다면 다 끝났을지도 몰라! 거기서 끝났을 수도 있다고! 그런데 당신이 입을 다물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내게 미안하다는 사실이 그렇게 당당해? 저 사이코패스들 사이에서 죄책감을 느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워?”
애쉬는 알리오 페스타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페스타는 바닥을 뒹굴고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애쉬가 분노를 이기지 못해 이를 악문 상태로 말했다.
“당신을 오래 살려둔 이유는, 하나밖에 없어. 당신은 이 자리에 남아, 모든 거짓과 기만에 대한 경고문으로서 일하게 될 거야. 영원히. 고통받으면서.”
애쉬가 나를 쳐다봤다. 그녀의 눈은 마검을 원하고 있었다.
****
사건이 종결된 후. 미미르에 원로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그들은 ‘미미르’에게 숲에 대한 에너지 지원을 3년만 더 연장해달라고 부탁해볼 생각이었다. 지금 상태로 보았을 때 개간 사업이 다 끝나기 전에 아힐데른 전체가 말라죽을 가능성이 꽤 컸기 때문이었다.
수염을 기른 엘프 장로들이 무덤가에서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쪼그려 앉은 모습은 사뭇 볼만한 구경거리였다. 그들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며칠 사이에 눈에 띄게 낡고 누추해진 미미르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텁텁하게 막혀 오는 숨을 들이쉬고 불을 밝혔다. 멀리 미미르 최심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심에 누군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지하에 들어선 장로들은 그 비명을 확실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천천히 비명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섬뜩한 비명에 어깨를 움츠렸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사명감으로 이겨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비명의 정체를 확인한 장로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그곳에는 머리만 남은 사내의 영혼이 덩굴에 휘감긴 채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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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가벼웠다. 아힐데른에서의 간단한 임무를 마친 우리는 유유자적한 콧노래를 부르며 마차를 굴리고 있었다. 사실은 이대로 돌아가기 조금 아쉬웠지만, 현재 아힐데른이 매우 복잡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4p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마차 옆자리에서 내 흥얼거림을 듣고 있던 에이에이는 내게 물었다.
“그런데, 샐리나 여왕님에게 걸린 세뇌는 풀어주지 않으실 생각인가요?”
“풀어주면 자살할 거 같아서요.”
아티에게 부탁하면 금방 풀어주겠지만, 막상 일을 저지르고 나니 지금 상태에서 풀어주면 샐리나가 혀 깨물고 죽을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 딸이랑 보지를 비비는 사이가 된 데다가 손에는 조상님 모가지가 달린 지팡이를 들고 있으며 15년 이후 아힐데른이 망할 예정이다? 나 같으면 목매달았다.
“복잡하네요.”
에이에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물었다.
“뭐가요?”
“사람들을 구하는 게 전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 들어서 그게 선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디까지가 선일까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오멜라스 애쉬 씨가 자신의 정당한 분노를 표출하겠다면서 아힐데른 전체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저는 그걸 막아야 할까요? 아마 저는 막지 못했겠죠. 강함을 떠나서, 그냥 막지 못했을 거예요.”
에이에이는 내 가슴 위에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간질간질한 감각을 느끼며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기분 좋은 촉감이 전신에 퍼져나갔다. 에이에이는 내 가슴을 쓸며 말했다.
“하지만 아힐데른 사람들 모두에게 죄가 있나요? 있다면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죄가 있는 거죠? 누가 그걸 판단할까요? 만일 죄가 있다면, 그리고 오멜라스 애쉬가 그 죄를 전부 용서했다면, 아힐데른 사람들은 죄가 없는 게 되나요? 드워프 왕국이 무너지기 직전에도 계속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시오테르 씨가 왕국을 무너뜨리는 걸 제가 막을 수 없다고. 결국, 무너지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그런 위기를 제가 방임했던 건 사실이죠. 사제님. 머릿속이 복잡해요. 너무 복잡한데 말로 표현하긴 힘드네요.”
에이에이는 지금껏 많은 고민을 해왔던 듯했다. 용사라는 이름과 분노를 앞세운 마족들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그녀는 계속해서 고민한 듯했다.
“다 그렇게 사는 거예요. 용사님은 용사님이 좋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가면 돼요. 왜 정의의 심판자처럼 살려고 해요? 당신도 저도, 그냥 인간인데. 우리는 선과 악을 재단할 필요가 없어요. 상대에 맞춰 살아가야죠. 의무감에 목 매이면 그릇된 선택을 하기 마련이에요. 용사님. 마왕을 물리친 시점에서 당신의 임무는 끝난 거예요. 너무 얽매이지 마세요.”
에이에이가 나를 바라봤다. 눈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그 눈물은 가녀림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그녀가 지금껏 살아온 인생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었다. 에이에이는 물었다.
“그럼, 그러면 전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항상 누군가를 지킨다는 생각만 하고 살아왔어요. 용사가 아닌 제겐 뭐가 남죠?”
“제 여자라는 사실이 남죠.”
간단한 이야기였다. 에이에이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꼭 끌어안아 주며 물었다.
“용사님. 아이는 몇 명이 좋아요?”
“네? 아니, 그……. 아직 그런 건 생각도 안 해봤어요. 사제님의 아이를 낳는다니, 제가, 제가 엄마가 돼서 잘 할 수 있을까요?”
에이에이는 아이 이야기에 얼굴을 붉히며 횡설수설했다.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용사님만큼 좋은 사람이 엄마가 되면, 제 아이도 잘 자라겠죠.”
에이에이는 내 손이 엉덩이에 닿자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흔들며 내게 달라붙어 왔다. 그리고 내 체향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에리나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 아이는 에리나가 계속 키워야겠죠. 아쉽지만, 제가 그 아이를 데리고 가면 아힐데른 내부가 혼란스러워지잖아요. 우리가 자주 보러 갈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 아이도 크면 자기가 엄마가 둘이라는 상황에 좀 익숙해질 거에요.”
덧붙여서 페타 영지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엄마가 10명에 가깝다는 현실에 익숙해질 예정이었다. 에이에이는 그 모습을 상상하고 또 웃었다.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반죽처럼 주무르며 입을 맞춰 주었다. 진하게 키스를 한 다음,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다시 도로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지금 페타 영지 인근 도로를 가고 있었다. 내가 알리오 페스타의 마차 재설정을 잘못한 탓에 영지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로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느낌이 있어서 나는 에이에이와 함께 마차 여행을 만끽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지나는 페타 영지 경계 초소에서는 병사들이 군기가 바짝 들어간 채 서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영주님!”
그들은 나에게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나는 개선장군처럼 손을 흔들어준 다음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브가 이 병사들을 제대로 통제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내 싱글벙글한 미소를 보고 에이에이가 물었다.
“왜 갑자기 그렇게 웃으세요?”
“이브랑 결혼을 잘했다 싶어서요.”
“이브 씨가 정말 좋은 사람이긴 하죠.”
에이에이는 내 말에 동의했다. 나는 에이에이에게 말했다.
“좋은 사람이니까, 이번에 같이 침대에 들어가 보는 건 어때요?”
“네?”
에이에이가 당황해서 되물었다. 나는 그녀가 못 알아들은 것 같아서 다시 친절하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셋이서 하자고요. 옛날 생각나게.”
여기서 말하는 옛날은 에이에이가 납치당했을 시절 해상에서 싸웠던 전투를 의미하는 발언이었다. 그녀는 내 말을 이해했는지 헛웃음을 흘렸다.
“아, 그게……. 그러니까…….”
“왜 그래요? 시오테르 씨랑도 같이 했잖아요. 이브랑은 같이 못 하겠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 마음의 준비가…….”
“안될까요?”
나는 그녀의 허벅지 사이를 가볍게 쓸어주면서 물었다. 에이에이는 신음을 참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뜬 채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옷깃을 꼭 쥐었다.
“아, 알겠어요. 하면 되잖아요. 괴, 괴롭히지 마세요. 정말…….”
“고마워요.”
나는 그녀의 가슴을 살짝 모아쥐며 감사 인사를 했다. 에이에이는 다소곳한 자세로 앉아서 머리를 뒤로 넘겼다. 새삼스럽게도, 그녀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까지 완벽하게 여성스러운 모습이 되고 있었다.
멀리서 수레 하나가 천천히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나는 마차에서 고개를 내밀고 수레를 확인했다. 수레 안에는 병사 하나가 누워있었는데, 붕대를 미라처럼 온몸에 감은 채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나는 이 병사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에이에이는 다친 병사의 얼굴을 보고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나는 마차를 세우게 한 다음 병사에게 물었다.
“병사. 왜 다쳤죠?”
“아, 영주님. 충성……! 누워서 경례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억지로 일어나려고 했기 때문에 나는 손을 들어서 그를 말렸다. 병사는 내 손동작에 따라서 다시 바닥에 드러누웠다.
“아이고…….”
그리고 환부를 문지르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의 모습에 나는 대체 왜 이런 꼴이 됐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상황에 따라선 영지 내에 큰일이 났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병사. 그래서 왜 이 모양 이 꼴이 됐죠? 영지에 무슨 일이 생겼나요?”
“아, 아닙니다.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저는 이제 병사가 아닙니다.”
“병사가 아니다.”
“졸다가 부인께 걸려서, 매질을 당한 다음에……. 해고당했습니다. 이젠 다시는 병영 근처에도 오지 말라고…….”
“그런가요. 잘됐군요. 앞으론 자기 평소 생활에 맞는 직업을 고르도록 하세요.”
맨날 졸던 새끼라도 거슬렸는데, 이브가 큰일을 해주었다. 나는 속으로 이브를 칭찬하고, 겉으로는 병사를 비난했다. 병사는 머리를 긁적였다. 에이에이가 내 옆에 바짝 붙어서 병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병사를 본다기보다는 병사 옆에 있는 과일 바구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왜 그래요?”
“병사 씨. 그 바구니는 뭔가요?”
“이거 말씀입니까? 부인께서 요양하는 동안 먹으라고 챙겨주신 바구니입니다. 그, 이거 말고도 약간의 돈이랑 종자도 챙겨주셔서, 집에 돌아가면 몸조리하고 농사나 지을 생각입니다. 그…….”
병사는 말끝을 흐리다가 에이에이를 쳐다봤다. 에이에이는 멍하니 과일 바구니를 보고 있었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용사님?”
“아, 네?”
에이에이는 뒤늦게 잠에서 깬 사람처럼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다시 과일 바구니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 그렇군요. 힘내세요.”
“…..하나 드시겠습니까?”
병사가 누운 자세로 힘겹게 손을 뻗어서 바구니 속에 있던 사과를 들어 보였다. 에이에이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렇다고 병사 씨 물건을 빼 먹을 순 없잖아요!”
“용사님과 영주님은 저희 영지를 지켜주시는 훌륭한 분들입니다. 사과 하나 정도는 얼마든지…….”
“아, 그, 그럼 사양하지 않고…….”
에이에이는 평소와는 다르게 사과를 덥석 받아들었다. 나는 황당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부는 머리를 긁적이며 끌끌 웃고 있었다. 수레가 멀어지고, 에이에이는 사과를 한 입 메어 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사과가 먹고 싶더라고요.”
“그래요?”
에이에이는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사과를 우물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볼을 한 번 쿡 찌르고 물었다.
“그럼 가는 길에 사과를 좀 사 갈까요? 과일 행상이 하나 정도는 있을 텐데.”
“아, 정말요?”
에이에이는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