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01
“네. 누굴 찾으십니까?”
“벨릭스 카린 양을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만나게 해주시겠어요?”
“우리 카린 양 말씀입니까? 네. 알겠습니다.”
시종은 싹싹한 어투로 그렇게 말했다. 그는 벙거지에 새하얀 곱슬머리를 늘어트린 중년 사내였다. 구부정한 등은 항상 굽실대는 것인지 메트로놈처럼 들썩거렸고 걸음걸이는 혼자서 음악회 한가운데에 있는 듯이 들썩거렸다. 참 즐겁게 일을 하는 사내였다. 나는 그를 관찰하며 손가락을 똑딱거렸다.
시종은 면회실을 지키는 기사에게 다가갔다. 기사가 경례하자 그는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다시 웃는 얼굴로 다가와서 내게 물었다.
“기다리시는 동안 차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차, 좋죠. 어떤 게 있나요? 수도와는 동떨어진 곳에서 살다 보니 차 종류는 잘 몰라서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기 기사단은 커피와 홍차. 두 가지밖에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럼 홍차로 주세요.”
여기 커피는 내 입맛에 조금 썼다. 과자와 함께 먹기에는 좋았지만, 손님을 기다리며 먹기에는 좋지 않았다. 특히나 온화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 손님 앞에서는 더더욱 좋지 않았다. 나는 주문을 받아든 사내가 다시 커피를 들고 오는 것을 보았다. 커피를 타는 곳은 면회장 구석에 있었는 데, 기사들도 종종 애용하는 듯 커다란 덩치를 가진 갑옷들이 솥뚜껑만 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커피를 타는 모습이 보이곤 했다.
마치 소꿉놀이 컵으로 요리를 해보려는 성인 남성을 보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나는 광경이었다. 낑낑대며 차를 타는 기사 옆에서 그가 능숙한 솜씨로 차를 타서 건네주었다. 기사는 그를 보고 화들짝 놀라더니 고개를 꾸벅 숙이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내게 차를 건넸다. 나는 홍차의 향을 맡으며 그에게 대충 칭찬을 했다.
“차를 잘 타시는군요. 향이 아주 좋아요.”
“아이고, 과찬의 말씀을.”
그리고 그는 내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의 복장은 시종이라기엔 조금 화려했다. 수수하다면 수수했지만, 일개 시종이 입을만한 옷차림은 아니었다. 나는 뒤늦게 기사 주변을 달리는 다른 시종들을 확인했다. 그들은 기사단 내부 규정에 맞는 일종의 제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중년은 다른 기사들에게서 경례를 받고 있었다. 살살 걷는 몸의 골격이 예사롭지 않았고, 주변 기사들이 우리들을 힐끔거리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죠? 인제 보니, 여기 사람이 아니군요.”
“아이고, 여기 사람입니다. 무서운 오해를 하시는군요.”
“제가 누군지 알고 온 건가요?”
나는 내가 말하고도 과대망상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수도에 도착한 건 오늘이었다. 나는 공식적인 루트가 아닌 텔레포트를 활용해서 이곳에 온 참이었다.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미리 찾아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연입니다. 어디까지나 우연이었죠. 제 딸을 보러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이렇게 얼굴이 보이지 뭡니까? 그래서 한 번 이야기나 해볼까 하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딸? 아까도 비슷하게 귀에 거슬리는 말을 했던 것 같았다. 나는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우리 카린 양 말씀입니까? 네. 알겠습니다.”]
나는 눈썹을 까딱이고 남몰래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벨릭스 레이만
소속: 벨릭스 가문의 가주
레벨: 54
힘: 145
민첩: 100
지능: 100
운: 130
특성
냉정함
피해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모든 공격이 크리티컬이 됩니다
살육자
전투가 길어질수록 스텟이 상승합니다. 최대 50% 스텟이 상승합니다
장군
압도적인 전투능력은 적들에게 공포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피격데미지가 25% 감소합니다.
“벨릭스 가문의 가주시군요. 이거 미처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레이만은 내가 자신을 알아보자 더욱 더 크게 씩 웃었다. 그는 웃을 때 눈이 아주 둥글게 휘어졌기 때문에 하회탈 같은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싱글벙글 웃는 그는 내게 물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실제로 나는 이 새끼가 누군지 몰랐다. 내 예비 장인어른이라는 사실과 이름 말고는 그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기 사람’이라는 표현과 전투에 특화된 저 특성들로 미루어볼 때, 나는 이렇게 얼버무릴 수 있었다.
“맹장 벨릭스 레이만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경황이 없어 뒤늦게 떠올린 게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허허, 맹장이니 무엇이니 해도, 대륙을 지켜내신 용사님과 우리 페타 루시우스 영주님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일 뿐입니다. 저도 늙어서 옛날 같지 않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검이 무뎌져 가는 것 같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레이만은 나를 슬쩍 바라봤다. 그 눈빛에 묘한 살벌함이 담겨있었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나는 차를 마시며 물었다.
“그래서, 말을 건 연유는 무엇입니까? 차만 타주시려고 이렇게 제게 말을 걸진 않으셨을 텐데.”
“할 이야기야 많지 않겠습니까? 요즘 들어서, 우리 카린이 드물게도 남자 이야기를 하는 일이 잦습니다. 그 상대가 누군고 하니, 이 대륙을 주름잡는 영웅. 페타 루시우스 영주라고 한답니다. 일평생 남자는커녕 연애라는 항목에 대해서도 무지한 아이였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그렇게 환한 얼굴로 남자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처음 들었지요.”
“흥미롭군요. 제 이야기를 했다니. 무슨 이야기를 하던가요?”
레이만은 말했다.
“아주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더군요. 요전번에는 공원에서 같이 식사를 했다면서, 온종일 그 이야기를 반복했습니다. 저는 덕분에 루시우스 영주님이 들어가서 우리 딸과 어떤 대화를 했고, 어떤 메뉴를 먹었는지 다 알고 있지요.”
생각보다 훨씬 더 세세하게 설명해준 모양이었다. 그녀가 흥분한 얼굴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나 역시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레이만이게 말했다.
“정말 낯간지러운 이야기군요.”
“제 딸을 좋아하십니까?”
“아주 좋아합니다. 제 부인으로 삼고 싶을 정도지요.”
정확히 말하자면 불륜을 저지르고 싶었지만, 레이만이 먼저 나서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니 내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봤을 때 ‘아니요. 저는 카린 양이랑 불륜 행위를 하고 싶은 거지 건전한 관계로 나아가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정답이 아니었다.
“벨릭스 가문의 여식이 안방마님도 아니고 기껏해야 셋째 부인 정도로 전락한다니 슬프기 이를 데 없군요.”
이브, 시에리, 아티, 엘시, 에이에이, 소야, 라이카, 시오테르. 정확하게 따지자면 카린은 아홉 번째 부인이겠지만, 나는 이 또한 지적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웃는 얼굴로 맞장구를 쳤다.
“영웅은 원래 미인을 좋아하는 법이지요. 저는 부인들에게 단 한 번도 소홀한 적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요. 카린 양이 저와 결혼해준다면, 영웅의 아내로서 온갖 호사와 명예를 누릴 수 있을 겁니다.”
“허허…….”
레이만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이번에는 눈이 웃고 있지 않았다. 그의 눈초리는 나의 전신을 품평하듯이 훑어보고 있었다. 싸우기 전에 숙련된 싸움꾼들이 자주 내보이는 버릇이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비틀며 말했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듯한데.”
레이만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앞으로 쑥 내밀며 말했다.
“사실, 사람의 본성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처럼 칼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알고 있지요. 사람의 진정한 본성은 말이 아니라. 칼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입니다. 습관적으로 휘두르는 동세 하나, 무의식중에 상대를 향하는 눈초리 하나. 이 모든 것들에서 우리는 사람을 파악합니다. 페타 루시우스 영주.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예상이 가지 않습니까?”
“싸우자는 뜻이군요. 가볍게.”
강자에 대한 호승심에 대한 핑계에 딸이 끼어들어 간 듯했다. 레이만은 내가 알아먹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한번 크게 웃었다. 갑작스럽게 레이만이 웃어대자 주변 기사들이 화들짝 놀라서 일어났다. 나는 면회실의 출입문을 바라보며 살짝 눈을 찌푸렸다. 왜 카린은 오지 않는 걸까?
고민이 깊어가는 사이 대련장이 빠르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마치 싸울 것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기사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대련이다! 페타 루시우스 영주와 레이만 전 교관님의 대련!”
나는 군중들 틈에서 떠밀려 대련장 한복판으로 튀어나왔다. 내 무기를 작은 시종이 전해주었다. 레이만 역시 시종이 전해준 칼을 뽑아서 지팡이처럼 바닥에 콕 찍었다. 그 행동만으로도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벨릭스 레이만이라는 이름을 듣고 몰려든 신진 기사부터 중년의 굵직한 고위 기사단원들까지 모두 우리를 둘러싼 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야말로 불편한 침묵의 현장 한가운데서 나는 메이스를 들고 벨릭스 레이만을 바라봤다. 레이만은 칼을 아래로 늘어트린 채, 춤을 추는 듯한 그 걸음을 밟으며 몸을 움직였다.
“꼭 싸워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레이만 경. 크게 다치셔도 모릅니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이래 봬도 전쟁터에서 오래 구른 몸입니다.”
실제로 기사단원들이 서로 내기 거는 걸 엿들었을 때, 내 패배에 거는 기사들이 제법 많았다. 나는 그 사실에 기분이 나쁘면서도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지금 레이만의 몸놀림은 달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느렸다.
죽일 작정으로 때린다면 레이만은 바닥에 늘어트린 저 칼을 들지도 못하고 죽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럴 이유가 없었다. 레이만은 어쨌든 내 장인어른이었고, 장인어른의 체면을 살려주는 건 사위의 역할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지는 건 또 말이 안 됐다.
어떻게 하지?
심판을 자처한 덩치 큰 중년 기사가 레이만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나를 보며 다시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살살해주십시오.”
그는 레이만이 패배할 거라고 믿는 사람 같았다. 나도 레이만의 패배를 확신하고 있었다. 문제는 하나였다. 대체 얼마나 봐줘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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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레이만이 칼을 앞으로 척 세우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검신이 가늘게 흔들리며 기묘한 잔상을 만들고 있었다. 마치 검 끝으로 최면을 거는 듯이 전신이 흐느적거리며 그가 다가왔다. 지금껏 보여줬던 들썩거리는 발걸음은 이 검술을 위한 보법의 연습인 듯했다.
검 끝이 흔들리지만, 몸의 균형은 완벽했다. 몸을 흔들면서도, 항상 노리는 방향은 일정했으며, 손목은 언제든지 적을 파고들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걸음을 뻗었다.
나는 메이스를 허공에 한 번 휘두른 다음 레이만을 바라봤다. 레이만이 다가오는 모습이 너무 느릿해서 지루할 지경이었다. 이미 인간을 초월한 강자가 되어버린 내게 레이만의 검술은 잔재주처럼 느껴졌다. 신기하다고 느껴지지만 배울 가치는 없는 잔재주.
마치 뱀처럼 휘어진 검신이 갑작스럽게 힘을 되찾고 벌처럼 날카롭게 쏘아져 나갔다. 나는 고개를 살짝 틀어서 검을 피한 뒤 앞으로 걸었다. 레이만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나는 그리고 나서 살짝 뒷걸음질을 치며 겨우 피해낸 듯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오오!”
“과연 레이만 경! 눈으로 따라잡기 힘든 일격이었습니다!”
하지만 레이만은 사람들의 반응에 만족하지 못한 듯 나를 쳐다보며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나는 메이스를 휘둘러서 가볍게 검을 튕겨냈다. 힘을 전혀 주지 않았기 때문에 레이만은 내 메이스를 어떻게 받아칠 수 있었다. 그는 자존심이 조금 상한 듯했다.
나는 슬쩍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강하시군요.”
“제대로 하시지요. 영웅이라는 칭호가 울고 있습니다.”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겁니다. 제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여 주시니 이보다 영광스러운 일이 없군요.”
레이만이 다시 한번 걸음을 내밀었다. 새파란 칼날이 위협적으로 흔들렸다. 나는 칼끝에서 시선을 놓치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아, 아버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크고, 매우 당황한 듯한 목소리였다. 레이만의 걸음이 멈추었다. 관중들의 시선이 일제히 목소리를 향해 돌아섰다. 목소리만 들어도, 나는 그녀가 벨릭스 카린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기회였다.
“어엇?”
레이만의 몸이 공중에서 한 바퀴 빙글 돌았다. 그가 바닥에 엎어지는 것과 동시에 나는 메이스를 두 손으로 꼭 잡고 힘들어 죽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를 쳐다보며 최대한 눈짓을 하며 말했다.
“아, 승부가 났군요. 정말 대단한 실력이셨습니다.”
“버, 벌써 승부가 났다고?”
“난 보고 있었는데도 제대로 못 봤어!”
“아아, 다시 해주실 수는 없는 건가!”
기사들이 탄식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뜻하지 않게 결투를 방해한 카린이 입을 틀어막은 채 놀라고 있었다. 심판을 맡았던 기사가 레이만을 일으켜주고 말했다.
“결투의 승자는 페타 루시우스 영주입니다.”
그리고 그는 루시우스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기사들에게 외쳤다.
“뭐 하고 있나! 결투는 끝났다! 전부 제자리로 돌아가! 근무 시간을 엄수해라!”
밀물이 몰려오듯이 들어왔던 사람들은 썰물이 빠져나가듯이 사라졌다. 이곳에 남은 건 레이만과 카린. 그리고 나뿐이었다. 레이만은 숨을 푹 내쉬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카린이 조심스럽게 레이만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아, 아버지. 괜찮으신가요? 어째서 루시우스 영주님과…….”
“카린.”
“네, 아버지.”
“나는 이제 검을 손에서 놓을 때가 된 것 같구나.”
레이만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 다음 내게 고개를 꾸벅 숙여서 인사했다.
“제가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르겠군요.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카린은 얼떨떨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레이만이 카린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카린. 이 애비는 허락하마.”
“네? 대, 대체 무엇을 말씀입니까?”
“페타 가문과의 결혼 말이다.”
“아버지! 저 분은 아내가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