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06
“금방 돌아올 겁니다.”
그의 말처럼 기사는 다시 문을 열고 나와서는 철창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기사에게 말했다.
“기사님. 임무 중에 고생하셨습니다. 자, 라이카 양. 응접실에서 우선 쉬고 계시지요.”
“네! 감사합니다!”
라이카는 활짝 열린 정문을 향해 달려갔다. 2층 창문에서 라이오닐 백작이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그가 라이카의 편지를 받을 때 만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수도에서 연달아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조카 라이오닐 제임스는 기사단을 그만두고 수도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의 형인 라이오닐 기사단장은 아들의 탈선에 충격을 받고 몸져누웠다. 라이오닐 백작은 그사이에 급변한 수도의 상황을 보고 머리가 아팠다. 지금 저 수인을 수도로 보내는 게 옳은 걸까?
라이오닐 본가로 저 수인이 가면 괜히 자신에게도 불똥이 튀는 게 아닐까? 그렇다고 그냥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 라이오닐은 정말로 찾아온 라이카와 급변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했다.
“집사. 저 라이카라는 수인이 누구의 아내랬지?”
“페타 루시우스의 아내라고 합니다.”
“그럼 그냥 바로 페타 영지로 보내버리면 안 되나?”
“본인은 일단 수도에 있는 그 밀라라는 수인을 만나는 것도 희망하는 듯해서…….”
라이오닐 백작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라이카가 페타 영지 직행이 아니라 수도를 거치길 원하는 이유에는 밀라 아줌마가 있었다.
“…..그러면 이렇게 하지. 라이오닐 본가로 보내지 말고. 로잘린 바르바 후작님께 보내도록 하지. 그분 손녀가 페타 영지에 며느리로 들어갔다지? 그쪽에서 어떻게 해줄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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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나무 만큼이나 커다란 키를 가진 노인은 단정하게 깎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목 같은 얼굴을 찌푸렸다. 미간에 깊게 팬 주름에 그림자가 짙게 끼어 있어서 주변을 걷는 하인들을 흠칫 놀라게 했다. 그의 손에는 작은 편지가 하나 들려 있었다. 다른 이들이 들었다면 충분할 만한 크기의 편지는 로잘린 바르바 후작의 손에서는 마치 종이학을 접는 종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조그마한 종이에 적힌 내용은 결코 대충 넘길 것이 아니었다.
[….. 이러한 수도의 현 상황으로 미루어 봤을 때, 페타 루시우스의 아내인 이 수인 아가씨가 라이오닐 저택에 지금 들어가는 건 여러모로 시선을 끌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남편을 만나고 싶다는 여인의 청을 무시할 수도 없는바.
로잘린 바르바 후작께 이번 일을 긴히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후작께서는 본디 페타 루시우스 영주와 혼약 관계를 맺고 있으며, 본가는 북부에 있으나 현재 수도에 있는 저택에 살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디 후작께서 저와 이 작은 수인을 불쌍히 여기시어 신변을 잠깐 보호해주시고, 결혼식에 맞춰서 밀라라는 수인과 만나게 해주실 수 있게 해주시길 빌겠습니다. 무례하고 갑작스러운 부탁 죄송합니다.]
“흠…….”
로잘린 바르바 후작이 굵은 목소리로 앓는 소리를 냈다. 그로서는 못 들어줄 것도 없는 부탁이었다. 페타 루시우스의 아내라면 자신과 아예 남이라고 할 수 없는 관계였고, 현 수도 상황에 비춰봤을 때 수인 여자가 라이오닐 저택에 또 들어가면 대체 무슨 구설수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그래. 그래서 이름이 뭐지?”
라이카는 이런 로잘린 바르바 후작의 속셈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녀로서는 정말 당황스러운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그녀가 생각한 제임스의 저택이 아니었다. 육중하고 거대한 철문에서부터 사람을 위압하는 이 건물의 복도에는 로잘린 가문의 옛 조상들이 형형한 안광을 내뿜으며 초상화 속에 잠들어 있었다.
라이카는 그 복도를 지날 때부터 강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로잘린 바르바 후작의 위압적인 풍모를 보고서는, 자신이 라이오닐 백작에게 속았다고 느낄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가 마주한 바르바 후작은 어딜 봐도 냉혹한 악당처럼 생겼기 때문이었다.
특히 수도로 한 번 후려치면 곰도 때려죽일 것 같은 거대한 손과 휘적휘적 움직이는 거대한 키가 그녀에게는 이야기책에 나오는 사악한 노예상인을 떠오르게 했다.
“아으으으…..!”
로잘린 바르바 후작은 그녀가 눈썹을 파르르 떨면서 고개를 움츠리자 고개를 기울였다. 라이오닐 백작이 이곳에 보내면서 따로 설명을 안 한 것일까? 그는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백작의 무신경함에 짜증을 내며 평소 손녀들에게만 들려주는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라이카 양이라고 했나?”
“네! 네! 라이카입니다!”
라이카는 군인처럼 자기 이름을 크게 외쳤다. 바르바 후작은 라이카의 경망스러운 대응에도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라이카에게 상황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라이카 양이 지금 오해를 하는 듯한데, 나는 수상한 사람이 아니다. 현재 수도 사정이 시끄러우므로 라이오닐 저택 대신 내 저택으로 오게 된 것뿐이다. 페타 루시우스 영주와는 아주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기도 했지. 내 딸이 그 가문으로 시집도 갔다. 알겠나. 나를 비롯한 이 저택 사람들은 너를 해치지 않는다. 라이카 양. 안심하고 있도록.”
“아, 네! 믿습니다.”
라이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르바 후작의 눈에는 여전히 라이카의 눈에 불신이 깃들어있는 게 보였지만, 더 설명해줄 방법이 없었다. ‘수인들이 또 라이오닐 저택에 들어가면 문제가 된다’는 식으로 적혀있는 라이오닐 백작의 편지를 보여주기도 애매했기 때문이었다.
“방으로 안내해줘라.”
바르바 후작은 손을 크게 휘둘러서 라이카를 방으로 보냈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바람 소리가 부웅부웅 들려왔다. 라이카는 오싹한 기분을 느끼며 시종을 따랐다. 저택은 전체적으로 음산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초상화들도 창백하고 깡마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시선은 하나같이 부리부리하고 강렬해서 흡사 이반 뇌제의 초상화를 옮겨다 그린 듯했다.
라이카에게 있어서는 이 건물 자체가 공포 그 자체였다. 하필이면 하늘도 흐릿했다. 동부 평야를 횡단할 때까지만 해도 맑았던 날씨는 수도에 들어서서는 저택의 분위기를 표현하듯이 음침했다.
“나, 날씨가 흐리니까 비가 올 겁니다. 밖에 빨래가 있던데 빨래 걷어야 합니다.”
하지만 시종은 아무런 대답 없이 무뚝뚝한 얼굴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라이카는 그의 무뚝뚝한 응대에 더더욱 몸을 움츠렸다. 귀족 저택의 시종들은 손님에 대한 말실수를 자제하기 위해 최대한 말을 줄인다는 것을 라이카는 몰랐다. 특히나 수인에게 어떤 발언이 무례한지 잘 모르기 때문에 잘 교육받은 시종들은 더더욱 말수가 적어진다는 것을 라이카는 알 방법이 없었다.
“이 방입니다.”
“아, 다행입니다. 말을 할 줄 압니다.”
라이카는 시종의 목소리가 들리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종은 그녀의 발언에 웃음을 참기 위해 입가를 실룩실룩 거리며 숨을 참았다. 그리고 방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입니다.”
“제가 혹시 귀가 안 들리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던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밖에, 비 올 겁니다. 빨래 걷어야 합니다.”
“참고하겠습니다.”
시종이 인사를 하자 그녀도 따라서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불타는 듯한 굴곡이 조각된 문 너머에는 호화로운 방이 있었다. 라이카는 갑작스럽게 떠안은 호사에 어리둥절한 얼굴로 방 안을 둘러 보았다.
로잘린 바르바 후작이 특별히 페타 루시우스의 아내를 위해 준비한 특실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오히려 불안감을 부추기는 요소일 뿐이었다.
“왜, 왜 이렇게 잘해줍니까?”
라이카는 당황스러워하며 시종에게 물었다. 시종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후작님의 분부십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식사도 내오겠습니다.”
“시, 식사……!”
라이카는 배가 고팠기 때문에 일단 식사라는 말에 다시 침대 위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배낭을 꼭 움켜쥐고 창밖을 살펴보았다. 이곳은 저택의 3층이었고, 창문은 꼭 잠겨있었다. 안에서 여는 방식의 창문이었는 데, 구조가 복잡하게 되어 있어서 라이카는 조금 기다렸다가 시종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잠시 뒤 시종이 커다란 수레와 함께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다채로운 음식들이 가득 실려 나왔다. 라이카는 되려 음식의 퀄리티와 양에 놀라서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음식을 손으로 콕 찔러보고 냄새도 맡아 보았다. 독이 들어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시종이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테이블에 포크와 접시를 세팅해드리겠습니다.”
“창문 좀 열어줍니다. 너무 덥습니다.”
“죄송합니다. 보안상의 이유로 밤에 창문은 열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너무 더우시다면, 저희가 다른 방을 안내해드릴 테니…….”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시종이 음식을 테이블에 양껏 차려두고 사라졌다. 라이카는 음식을 조심스럽게 한 입 집어 먹고, 입맛에 맞아서 정신없이 쓸어 먹었다. 오랜 시간 마차를 타고 움직였기 때문에 배가 많이 고팠던 그녀였다. 음식의 절반 정도를 해치우고 나서, 그녀는 숨을 푹 내쉬며 침대 위로 기분 좋게 누웠다.
배도 부르고, 피로도 적당히 쌓여서 이대로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자, 잠들면 안 됩니다!”
하지만 잠들기 직전에 그녀는 화들짝 놀라서 일어났다. 생각해보니까 너무 수상했기 때문이었다. 맛있는 음식도 주고, 방도 너무 호화로웠다. 잠도 솔솔 오는 편안한 침대도 있었다. 혹시 이대로 자신을 살찌워서 잡아먹으려는 게 아닐까? 그게 아니면 못된 노예상들이라서 나를 팔아먹기 전에 몸을 건강하게 만들려고 수를 쓰는 것일까?
그녀는 혼자서 의심을 하다가 애써 고개를 저었다. 라이오닐 백작이 자신을 팔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로잘린 바르바 후작은 너무 수상해 보였지만, 그래도 무턱대고 사람을 노예상으로 모는 건 나쁜 짓이었다. 라이카는 고개를 젓고 정신을 다잡았다.
바깥에 별이 빛나고 있었지만, 잠들 시간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로잘린 바르바 후작을 찾아 조심스레 걸어갔다. 그에게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듣고 오해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전 맡았던 바르바 후작의 체취를 따라 그녀는 건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코를 킁킁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면 유독 그의 체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방향이 있었다. 라이카는 발소리를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걸었다. 불이 꺼진 어두운 복도에 집무실만 환하게 빛이 빛나고 있었다. 집무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이카는 노크하려다가 이야기를 듣기 위해 문에 귀를 바짝 붙였다.
“…..그러니까 빨리 해치워버리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그럼, 언제가 좋겠나?”
“당장 내일이라도 연락을 넣겠습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까요. 적당히 인적 없는 곳으로 가서…….”
바르바 후작과 대화를 나누던 기사가 입을 다물었다. 바깥에서 인기척이 났기 때문이었다. 후작이 손을 내젓자 기사는 서둘러서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라이카가 부들부들 떨며 주저앉아 있었다. 기사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라이카 양. 무슨 일로 여기에…….”
“가, 가까이 오지 않습니다!”
라이카는 울먹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뒤로 폴짝 뛴 그녀는 기사를 보며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노예상! 범죄자! 나쁜 놈!”
그리고는 배낭을 꼭 쥐고 복도를 내달렸다. 바르바 후작이 빠르게 사태를 파악하고 외쳤다.
“데려와! 도망가게 해선 안 된다! 오해다! 거기서라!”
“역시 노예상이었습니다!”
라이카가 울먹거리면서 미친 듯이 복도를 달렸다. 마침 순찰하던 시종이 라이카를 알아보고 그녀를 잡기 위해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라이카는 눈을 번쩍 뜨더니, 바닥을 미끄러지며 몸을 낮추었다. 그녀를 잡으려던 시종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라이카는 몸을 낮춘 자세로 다시 한번 튀어 올라서 뛰기 시작했다. 시종이 돌아봤을 때, 이미 라이카는 복도 모퉁이를 돌아서 꼬리만 살랑거리고 있었다.
기사가 시종의 뒤에서 소리쳤다.
“쫓아! 저대로 도망치게 하면 큰일 난다!”
바르바 후작의 목소리도 들렸다.
“수도는 위험한 곳이다! 혹시라도 노예상한테 납치라도 당하면 루시우스 영주를 볼 낯이 없다! 어르고 달래서 어떻게든 데려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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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시간에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던 로잘린 바르바 후작은 늦은 시간에 찾아온 방문객에 눈을 찌푸렸다. 그는 자신이 일하고 있을 때 누가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찾아온 기사의 굳게 다문 입술과 심각한 표정을 보고 혼내는 것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무슨 일이지?”
바르바 후작의 질문에 기사가 입을 열었다.
“후작님의 결정에 토를 달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맡은 수인을 최대한 빨리 페타 영지로 돌려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최근에 귀족들 여론도 심상치 않고, 바르바 후작께서 저 수인을 결혼식장에 데리고 가면 엄청나게 주목을 끌게 되실 겁니다. 이건 제 의견입니다만, 그 밀라라는 수인과 만나는 게 꼭 결혼식장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내일 아침에 수인에게 상황을 한 번 더 설명해주고, 다른 곳으로 장소를 잡아서 간단하게 서로 만나게 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쁘지 않군.”
진지하게 듣고 있던 바르바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굳이 결혼식장에 수인을 데려가서 주목받을 필요가 없었다.
“아직 로잘린 가문에 수인이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빨리 해치워버리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그럼, 언제가 좋겠나?”
“당장 내일이라도 연락을 넣겠습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까요. 적당히 인적 없는 곳으로 가서…….”
그리고 그들은 라이카와 눈이 마주쳤다.
*****
“어디 있으십니까!”
“해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노예상이 아닙니다!”
라이카는 어둠 속에서 자신을 찾는 병사들을 보았다. 그녀가 갈만한 길목을 모두 틀어막은 병사들이 자신을 찾으며 안심할만한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라이카는 자신의 배낭을 꼭 끌어안고 이를 악물었다.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잘못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놈이 잘못이라고 했다. 라이카는 사람들을 피해 정신없이 내달렸다.
라이카는 저택을 지나 한참을 내달렸다. 사람들과 마주치면 시선을 끌 게 뻔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뒷골목과 인적 드문 길을 골라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횃불을 들고 돌아다니는 병사들이 보였다. 라이카는 순찰대원과 바르바 후작의 사람들을 구분할 수 없기에 그런 사람들이 보이면 일단 도망치기 바빴다.
골목과 골목을 복잡하게 통과하며 귀족가를 벗어난 라이카는 한적한 곳에서 시가를 태우며 투덜거리는 사람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씨발, 수인 중에 미인이라더니 저게 뭐야. 좆됐네. 대공님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냐?”
“존나 행복한 얼굴로 ‘참 미인이죠?’ 이러는 데 거기서 뭔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나더라. 이야. 그 양반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동부 평야에서 눈이 맞았다던데 거기서 환각제라도 빨았나?”
날씨에 맞지 않는 두꺼운 외투를 입은 사내들은 수인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라이카는 그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발을 살짝 내리누르며 천천히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담배를 피우면서 도란도란 잡담을 나누다가, 갑작스럽게 횃불을 든 사람들이 찾아오자 죄라도 지은 듯이 담배를 비벼껐다.
“뭐, 뭡니까?”
바르바 후작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행들은 전부 숨을 몰아쉬느라 바빴고 중심에 선 건장한 사내가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이쪽으로 온 수인을 보지 못했습니까? 검은 머리와 하얀 머리가 섞여 있는 개 수인인데…….”
“수인? 뭔 수인. 우린 그런 거 못 봤습니다. 당신들은 뭐요? 노예상? 요즘에 수인 매매는 불법인 거 모르나? 지금 시국이 어느 때인데, 염병……. 기사단 부르기 전에 꺼져!”
험악하게 찌푸린 눈빛을 보고 중심에 서 있던 건장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우리는, 노예상이 아니라 로잘린 바르바 후작 가문의 사람들입니다. 수인 쪽과 조금 오해가 있어서 그쪽이 도망치는 바람에 이렇게 찾고 있습니다. 나중에라도 혹시 보게 되면, 저희 가문 쪽으로 좀 인계를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아주 중요한 인물이니 꼭 부탁드립니다.”
사내의 정중한 태도에 일행은 누그러진 기색이었다. 라이카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조금 더 가까이 몸을 옮겼다. 잡동사니가 많아서 그녀의 작은 몸을 가리기 좋았다. 앞선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꺼림칙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