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11
“아이고, 또 부인이 생기셨군요.”
“가족은 많을수록 좋잖아요. 그렇죠? 마부도 저번에 쌍둥이 아빠가 됐다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어고고, 알고 계셨습니까? 네. 어쩌다 보니까 쌍둥이 아빠가 됐습니다. 저는 제가 이제 힘이 없는 줄 알았는데. 아랫도리가 아주 팔팔하더군요. 마누라가 어찌나 타박하던지. 영주님. 앞으로 어디 갈 일 있으면 계속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선물은 샀어요?”
“아, 선물! 아……. 그게…….”
마부가 말을 하다말고 입을 다물고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이 새끼 딱 보니까 안 샀구나.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마부에게 돈을 던져줬다.
“가서 빨리 이쁜 거로 하나 사세요. 출발할 때까지 여유 있으니까. 최대한 빨리. 알겠어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영주님 제가 얼른 뛰어가서 사 오겠습니다!”
마부가 헐레벌떡 뛰어가고 나자 엘시가 나한테 물었다.
“성직자는 선물 안 사가는 건가?”
“선물은 됐고……. 아 씨발.”
나는 등줄기에 오싹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엘시가 물었다.
“왜 그러나.”
“아니. 아니에요. 아무것도”
마틸다한테 얼굴을 비춰야 하는 데 잊어버릴 뻔했다. 얼굴이 서늘함과 민망함으로 가득 차서 붉게 물들었다가 다시 하얗게 질렸다. 지금이라도 기억해냈으니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나는 마차에 엘시와 라이카를 태웠다. 엘시가 물었다.
“성직자는 안타나?”
“먼저 돌아가 있어요. 저는, 이거 검을 돌려주러 서부에 좀 다녀와야 해서.”
“같이 가겠다.”
“위험해서 안 돼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라이카는 서부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서부에 검을 돌려준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이게 아주 비싼 검인데, 주인에게 제가 빌렸거든요. 오늘 돌려주러 가려고요. 먼저 마부랑 셋이서 같이 영지로 돌아가 있으세요. 저는 검만 돌려주고 천천히 돌아올 테니까.”
“성직자. 또 아내 만든다. 어디 갈 때마다 여자가 한 명씩 늘었다.”
엘시가 미간을 살짝 좁히며 말했다.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에이, 엘시. 제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요? 아니에요.”
“저번에 수도 갔을 때도 그 기사랑 결혼 약속했다고 했다. 수상하다.”
다행스럽게도 다곤에겐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그녀는 내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지만, 그래도 아티 친구인데 별일 있겠어? 마침 마부가 땀을 뻘뻘 흘리며 상자 하나를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서두를 필요는 없었는데, 정말 필사적으로 뛰어오는 게 보여서 나는 웃음이 났다.
“마부. 그럼 자리에 앉으세요. 이렇게 셋만 돌아갈 거니까.”
나는 검을 집어 들고 말했다. 마부가 물었다.
“영주님은 안 돌아가십니까?”
“검 돌려주러 간다고만 말하면 대충 이브가 알아먹을 거예요. 금방 돌아올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도 전해주고요.”
“아, 네. 알겠습니다.”
라이카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나를 바라봤다.
“또 헤어집니까?”
그녀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나는 그녀의 입술에 쪽 입을 맞춰주고 말했다.
“금방 다시 만날 거에요. 라이카. 사랑해요.”
라이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엘시도 내게 다가와서 입을 쪽 맞췄다. 그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성직자. 금방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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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의 아카데미는 오늘 벌어진 결혼식으로 인해 아주 소란스러웠다. 승리감에 고취된 학생들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현수막을 흔들거나 아카데미 대문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소란을 일으키는 이들을 피해서 조용히 면회실로 걸음을 옮겼다. 내 호출을 받고 부리나케 달려온 마틸다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만 있는 걸 보고 살짝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틸다. 설마 이브가 같이 안 왔다고 서운해하는 거니? 아빠는 슬퍼요.”
“아, 아니에요. 그런 거. 그, 그보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얼굴 보러 왔지. 우리 딸 잘 지내나. 이브가 이번에 사정이 생겨서 수도로 못 올라왔거든. 요즘 아카데미 생활은 어때?”
“뭐, 그냥저냥 이에요. 너무 힘들지도 않고, 너무 어렵지도 않고, 월반해서 공부가 엄청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언니들도 엄청 친절하게 대해줘서 좋았고요.”
“그래? 뭐 필요한 건 없고?”
“음……. 없는 것 같아요. 아카데미에서 필요한 건 다 준비해주거든요. 제가, 그……. 장학생이라서 그런지.”
마틸다는 스스로를 장학생이라고 부르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자신을 칭찬하는 일은 언제나 낯간지러운 법이었다. 옆을 보면 다른 학생들도 부모와 간단하게 면회 시간을 보냈다.
“우리 딸이 여간 똑똑해야 아빠가 아빠로서 생색을 낼 텐데. 아쉽네.”
“이렇게 찾아와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운걸요. 항상, 감사드리고 있어요. 엄마는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다들 잘 지내고 있지. 이브가 너 보고 싶다고 되게 아쉬워했어. 이번에 나도 결혼식 때문에 온건데, 이브랑은 별 관련 없는 사람이었거든.”
“아, 제임스 씨 결혼식…….”
마틸다의 얼굴이 일순간 어두워졌다가 다시 그늘을 걷어냈다. 그녀의 첫사랑이던 제임스는 수인 보지의 쫄깃함을 알게 된 이후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고 말았다. 마틸다에겐 아주 큰 상처였으리라.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제임스 결혼식은 가봤니?”
“안 가봤어요. 들리는 말에 따르면, 엄청 화려하고 크게 했다던데……. 모르겠어요. 머릿속이 복잡하기도 하고.”
“사람은 다 자기 인연을 찾아서 가는 거야. 누가 막을 수 없는 거지.”
“그렇겠죠? 제게도 언젠가 그런 인연이 또 오겠죠?”
“당연하지. 마틸다 너는 아주 매력적이고 귀여운 아이니까. 반드시 인연이 찾아올 거야.”
나는 마틸다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내가 의자에서 일어난 순간 그녀는 우리가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쉬운 듯 작은 탄성을 흘렸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자, 그럼 같이 저녁이라도 먹고 헤어질까?”
“좋아요.”
아카데미 학생의 외출은 가족 동반하에 2시간 이내로만 가능했다. 마틸다는 나와 함께 나간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는 카린과 함께 갔던 식당을 떠올리며 말했다.
“이 주변에 아주 끝내주는 기사식당이 있거든. 거기로 가자.”
“기사 식당이요?”
“기사들이 많이 가서 기사 식당.”
나는 이 세상에 이 농담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게 살짝 슬펐다. 마틸다는 내가 농담을 말하는 건지 진지하게 말하는 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내 말에서 유머 포인트를 이해하려고 노력해보기 시작했다.
“예, 손님 두 분!”
통상적인 레스토랑보다는 조금 더 시끄럽고, 그렇다고 천박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아닌 중간 지점의 식당에 접어든 우리는 손을 꼭 잡고 2층에 있는 테이블로 안내받았다. 2층에는 지친 기사들이 늦은 점심을 먹으며 하루를 달래고 있었는 데, 그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도 있었다.
한창 다른 기사들과 업무 관련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던 그녀는 카린이었다. 스파게티를 돌돌 말아서 입에 넣던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반응을 보고 기사단장이라도 오는 줄 안 다른 병사들도 벌떡 일어나서 내 쪽을 바라보고는, 다시 김샌 표정으로 자리에 앉으며 카린에게 말했다.
“아, 단장님이라도 오신 줄 알았습니다.”
“애인 사랑은 알아줘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마틸다는 나와 카린의 조우를 보고 어안이 벙벙한 기색이었다. 마틸다는 내 손을 꼭 잡고 불안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이 묻는 말은 명확했다. 나는 그녀가 자신의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의문을 명문화하기 전에 답했다.
“왕국 기사단의 벨릭스 카린 기사님이셔. 네 엄마 중 한 분이시란다.”
“…..와.”
마틸다는 감탄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린은 카린대로 내가 데려온 어린 마틸다를 보고 조금 혼란스러운 듯했다. 그녀는 말했다.
“루시우스 영주님. 지금 이 상황은 대체…….”
“앉아서 식사하세요. 카린. 이쪽은 제 딸이에요. 오늘 제임스의 결혼식 참관도 할 겸 왔다가 오랜만에 딸 얼굴 보려고 왔어요.”
“아, 네…….”
그녀는 딸이라고 하자 묘하게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안도는 어색함을 벗겨내지는 못해서 카린과 마틸다는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카린은 저도 모르게 혀로 입술을 핥다가 스파게티 소스가 묻은 걸 알아차리고 냅킨을 꺼내 입을 닦기 시작했다. 나는 이대로 놔두면 제대로 밥도 먹지 못할 것 같아서 카린에게 말했다.
“계속 식사하세요. 기사가 굶으면 안 되잖아요.”
“아, 네.”
카린이 다시 자리에 앉아서 식사했다. 그녀와도 데이트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지금 근무 중이었다. 근무 중인 기사를 내 마음대로 쓸 수는 없는 법. 나는 그녀와의 데이트는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고, 오늘은 마틸다에게 온전히 시간을 쏟아붓기로 했다.
마틸다는 카린과 만난 여파로 잠시 식당 자체를 어색해하다가 식당에서 건네준 어린이용 메뉴를 보고 툴툴거리며 말했다.
“저는 이런 걸 좋아하는 나이가 아닌데.”
이 식당의 어린이용 메뉴는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아기자기한 곰돌이 모양의 쿠키와 알록달록 꽃들이 달린 컵과 빨대를 주는 귀여운 메뉴였다. 주메뉴는 포크커틀릿이었는 데 대체 무슨 재주를 부린 건지 꽃 모양으로 만들어놓은 게 인상적이었다. 뭐지? 어떻게 한 거지?
“…..그래도 맛있어요.”
마틸다는 불평불만을 접어두고 고기를 썰어 넣기 시작했다. 나는 웃음이 나오는 걸 참고 그녀가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식사를 마친 우리가 밖으로 나왔을 때, 카린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짧은 거리라도 나와 같이 가고 싶은 듯했다. 다른 기사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카린을 기다려주고 있었다. 카린이 내게 물었다.
“아, 아카데미 방향으로 가시지 않습니까? 마침 저희 순찰 루트도 그쪽인데, 가는 길에 저희가 그……. 호위해 드리겠습니다.”
속이 뻔히 보이는 소리였다. 기사단원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며 카린을 보고 있었다. 마틸다는 아직 카린이 어색해서 우물쭈물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고마워요. 카린. 기사단원이 호위해준다니, 믿음직하군요.”
“당연한 일입니다.”
“오늘은 야간 근무인가요?”
“네. 오늘 제가 근무 대타를 서야 해서, 야간까지 근무하게 됐습니다. 영주님께서는 언제 돌아가십니까?”
“아쉽게도, 오늘 돌아가려고 했어요. 저녁에 시간 있으면 간단하게 차라도 한잔하려고 했는데, 아쉽네요.”
“괜찮습니다. 그……. 언제든지 만날 수 있으니까, 그……. 참을 수 있습니다.”
카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녀의 모습에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집에 아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알리오 페스타의 마차가 없는 이상 서둘러서 귀환해야 했으며, 나는 서부에서 다곤을 만나 검까지 돌려줘야 했다.
카린은 어디로 도망가지 않으니 이렇게 간단하게 얼굴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좋았다.
“그렇군요. 어느새 다 왔네요. 카린. 오늘 감사했어요.”
“가, 감사하다니요. 당연한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럼, 저와 기사단은 먼저 가보겠습니다.”
“네. 카린. 고마워요.”
“……뭔가 대단해요.”
나와 카린의 인사를 보고 있던 마틸다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대단한가? 그녀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나는 분명 대단했다. 마틸다와는 아카데미 입구에서 헤어졌다. 그녀는 입구에서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나도 인사를 하며 말했다.
“우리 딸. 가서 괴롭히는 사람 있으면 아빠한테 말하고. 알겠지?”
“네-.”
마틸다는 활기찬 목소리로 나에게 다시 한번 대답한 뒤 아카데미 대문 너머로 사라졌다. 대문 앞에는 아직도 제임스의 결혼식을 축하하며 춤추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 이제 서부로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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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로 가는 마차를 수배하기 위해 나는 발품을 팔았다. 나 대신 발품을 팔 하인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음번에는 수행원을 데리고 와야 하나? 나는 속으로 짜증을 내며 인근 마부 협회를 돌아다니며 서부 중반에서 나를 내려줄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수도는 그 자체로도 이동 수요가 많아서 수도에서 외부로 나가는 장거리 마차 운행은 잘 하지 않는 편이었다. 이런 사정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결국 웃돈을 주고 마부를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 짜증을 내며 계약서에 서명한 나와는 다르게, 단숨에 이틀 치 일당을 벌어들인 마부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자, 그럼 바로 가시겠습니까.”
“네. 바로 가죠. 최대한 빨리 가도록 하세요.”
나는 한숨을 푹 쉬고 바깥을 바라봤다. 이런 데서 쓸데없는 돈을 쓴 게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바르바 후작한테 마차를 빌리면 되지 않았나? 그런 현명한 생각이 뇌리에 스쳤을 때, 마차는 이미 수도의 성문을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