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19
나는 아티와 시장을 걷는 중에 그녀에게 어울리는 반지를 하나 찾을 수 있었다. 커다란 에메랄드를 정교하게 조각해낸 이 반지는, 아름다운 장미 모양으로 에메랄드를 오려내서 지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감탄사를 전해주게 했다. 상인은 이 에메랄드 반지를 자신이 파는 물건 중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 놓았으며, 유리로 만들어진 장식장을 자물쇠로 꽁꽁 잠가놓았다.
그는 자신의 걸작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남들이 행여나 이 반지에 손을 뻗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아티는 말했다.
“예쁜 반지네.”
“하나 끼워주고 싶어요. 아티의 손가락은 예쁘니까. 그 예쁜 손가락에 어울리는 반지가 있어야죠.”
“어머, 하지만 이런 건 필요 없어.”
하지만 아티는 고급스러운 반지도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그녀는 상인이 파는 더 작은 반지 한 쌍을 고르더니 내 손에 끼워주며 말했다.
“나는 너랑 같은 반지를 끼고 싶은걸? 저 반지는 짝이 없잖아.”
“아티.”
나는 아티를 보며 정말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살짝 눈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드워프 상인은 나와 아티의 포옹을 보고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행복한 커플이시군요. 반지는 바로 끼고 가실 겁니까?”
“네. 그냥 이대로 주세요.”
나는 반지 두 개를 상인에게 받아든 다음, 아티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잠시 주변을 살피고 생각했다. 여긴 아티에게 반지를 끼워줄 만한 장소가 아니라고. 나는 다시 그녀의 손을 붙잡은 다음 마차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 마을을 벗어나 드워프 왕국의 수도로 이동했다.
수도로 가는 길 내내 아티는 언제 내가 반지를 줄지 기대하는 얼굴로 내 손가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내 손가락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슬며시 내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만지려는 아티의 손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허벅지를 가볍게 토닥이며 그녀를 달랬다.
“아티. 진정해요.”
그리고 마차는 수도에 도착했다. 나는 아티를 공주님 안기로 안아 든 다음, 아티에게 말했다.
“아티. 투명해지는 마법 쓸 수 있나요?”
“응. 됐어.”
그녀는 내가 말하자마자 손을 튕기며 마법을 걸었다. 우리 주변을 둘러싼 얇은 마법 막을 느끼고 나는 단숨에 수도를 가로질러 달려갔다.
철갑옷과 살벌한 무기들로 무장한 기사단원이 갑작스럽게 스쳐 지나간 바람에 당황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판대에 옷을 잔뜩 깔아놓았던 상인들은 시장을 관통하는 돌풍에 화들짝 놀라서 옷들을 붙잡았다.
과일 행상들은 광고를 위해 걸어놨던 광고막이 뜯겨 날아가는 걸 보았고, 성벽을 지켜보던 병사들은 성벽 밑바닥에서부터 위로 거세게 솟구치는 바람을 느꼈다. 성벽을 타고 단숨에 올라가는 나를 아티가 대견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티를 꼭 끌어안고 드워프 왕국의 성 첨탑 꼭대기까지 올랐다.
아티는 내 행동이 귀엽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씩 웃으며 발코니에서 아티를 내려주었다. 드워프 왕국 성의 높은 발코니에 이르면, 왕국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아티는 자연스럽게 내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나는 아티의 가늘고 예쁜 손가락에 입을 맞춘 다음 반지를 끼워주었다. 아티가 눈물을 글썽이며 웃었다. 나는 아티의 손을 한 번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랑해요. 아티.”
“루시우스, 나 정말 행복해.”
아티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꼭 끌어안아 줬다. 나는 드워프 왕국의 공방들을 배경 삼아 그녀와 입을 맞췄다. 길고 진한 키스를 끝내고, 벅찬 얼굴의 그녀에게 나는 말했다.
“……다른 아내들한테 말하면 안 돼요?”
이건 왠지 소문나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으니까.
다음화 보기
아힐데른의 외곽을 빙 돌아가면 조금 떨어진 곳에 숲이 있었다. 아힐데른의 성소인 미미르의 바로 위편에 존재하는 이 숲 앞에 우리는 마차를 댔다. 숲은 외부인을 경계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우리가 나타나자마자 나뭇가지들이 저절로 솟아나서 가는 길을 막았고 숲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 누구야?”
“미미르. 우리야. 우리.”
아티는 여전히 오멜라스 애쉬를 미미르처럼 대했다. 미미르는 그녀의 발언을 듣고 질색을 하며 외쳤다.
“난 미미르가 아니야! 오멜라스 애쉬라고!”
“내가 너를 미미르라고 부르는 게 익숙한데, 네가 받아들이는 게 맞지 않겠니?”
아티는 그렇게 말하면서 길을 가로막은 나뭇가지들을 똑똑 부러트렸다. 단순히 시각적인 효과일 뿐 이 나뭇가지 벽에는 물리적인 방어력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아티의 뒤에 붙은 내가 그녀를 따라서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부러트리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순식간에 캠프파이어를 할 수 있을 만큼 수북한 삭정이가 아티와 내 손에 쌓였다. 아티는 손을 털며 말했다.
“그래서, 우릴 계속 여길 세워둘 거야? 너를 구해준 은인들인데?”
“…….들어와.”
미미르가 마지못해 우리의 출입을 허락했다. 아티는 그제야 숲 내부로 걸음을 옮겨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은 그림자가 가득한 숲 내부에는 소박한 오두막이 있었다.
처마에 달린 덩굴이 숲의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해 흔들렸다. 벽면에는 진짜 꽃과 이끼들이 복잡한 문양을 그리며 달라붙어 있었다. 어지러울 정도로 다채로운 색깔이 눈에 들어와서 나는 벽을 보다가 눈이 아팠다.
오두막 바깥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설치되어 있었다. 마치 편의점에서 볼 수 있을법한 거대한 양산 아래에 나무를 꼬아서 만든 테이블이 있었다. 미미르는 그곳에 앉아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양손을 움츠린 채 힐끔힐끔 우리를 곁눈질로 쳐다봤다.
“직접 만든 집인가요?”
“아니. 원래 여기 있던 집이야. 나 이전에 누가 쓰던 장소.”
미미르는 내 질문에 어깨를 흠칫 떨며 놀랐지만,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생각보다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서 나는 안도할 수 있었다. 아직도 예전에 내가 보지 살짝 만진 걸로 꽁해있으면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티는 웃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녀와 마주 앉았다. 미미르는 아티가 가까이 다가오자 매우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악물었다. 그리고 시선을 피하며 물었다.
“무, 무슨 일이야? 나, 나 여기 얌전히 있잖아. 어디 갈 생각도 없고, 그……. 결계도 계속 유지하고 있으니까 건드리지 말아줘. 여기서 혼자 연구만 하면서 살 거니까.”
“그건 좀 외롭겠네. 이런 면은 미미르랑 비슷한걸. 그때 그 아이도 참 까칠하고 정 없는 아이였지. 가장 비협조적이고, 말이 많았어.”
“……내가 원해서 몸을 차지한게 아니야.”
“너를 원망하려고 한 말은 아니야. 그래도, 그……. 나 같이 오래 사는 이들은 타인이 죽음을 실감하기가 힘들거든. 그것도 몇천 년 동안 나름대로 부대끼고 살았던 인연을, 이렇게 갑작스럽게 정리해야 한다니까 좀 어색하네.”
아티의 말에 미미르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문신이 마치 컴퓨터 부품처럼 독특한 빛을 냈다. 그녀는 아티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미안해. 너무 내 생각만 했나. 그……. 미미르 흉내 같은 건 내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종종 놀러 와도 돼. 그걸로 위로된다면.”
“참 착한 아이네.”
아티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서 미미르의 볼을 쓰다듬었다. 미미르는 고양이처럼 얼굴을 살짝 내밀고 그녀의 손이 움직이는 대로 비볐다. 아티는 흐뭇하게 웃으며 다시 손을 내렸다. 미미르는 자신이 볼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래서, 용건이 뭐야?”
“용건? 음……. 너. 혹시 여길 떠나면 갈 곳이 있니?”
“갈 곳? 없어. 난 몇천 년 전 사람이야. 내 가족도 집도 재산도 아무것도 없어.”
“그러면 여행이라도 갈 수 있다면 어떻게 생각해?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고 싶지 않아?”
“왜 자꾸 날 보내려는 거야? 결계를 지켜야 하는…….”
애쉬는 생각보다 눈치가 빨랐다. 그녀는 말을 하다 말고 눈을 찌푸리며 아티를 쳐다봤다. 저 눈치의 절반만 전생에 발휘했다면 메이가한테 당할 일은 없었을 텐데 한 번 당하고 나니까 눈치가 빨라진 모양이었다. 그녀는 아티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설마, 그……. 뭔가 방법을 찾은 거야?”
“그래. 방법을 찾았어. 우리가 이 결계에서 벗어나면서 마계와의 연결도 끊어버릴 방법.”
“뭔데? 대체 뭔데?”
애쉬가 테이블을 탁 후려치며 벌떡 일어났다. 자기희생적인 태도를 보이긴 했지만, 그녀 역시 나갈 수 있다면 나가는 게 좋은 게 분명했다. 아티도 나도 일이 쉽게 풀리는 게 기분이 좋아 씩 웃었다. 아티는 내게 눈웃음을 한 번 지어준 다음, 다시 애쉬에게 말했다.
“에반젤린이라고 알아?”
“에반젤린……. 알고 있어. 몹시 나쁜 여자라고, 예전에 미미르에서 장로들과 조상들이 회의할 때 몇 번 들었던 이름이야. 마계의 문을 열고 이 세상으로 악마들을 끌어들인 장본인이라지? 내가 그 고생을 하면서 막았던 마계의 문을 다시 열었다고.”
“그래, 그 에반젤린이 이젠 마계의 문을 다시 닫고 싶다고 협조를 요청했어.”
애쉬가 눈을 부릅뜨고 아티를 바라봤다. 유약해 보였던 그녀라기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한 박력이었다. 하지만 아티는 그녀의 매서운 눈빛에도 굴하지 않고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왜 그렇게 쳐다봐?”
“그 말을 믿는 거야? 속이는 게 분명하잖아.”
“속인다니, 일단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생각해주겠어? 잘못된 가능성이 없는 계획이야. 지금 에반젤린은 수도에 거대한 문을 설치한 상태로…….”
“안돼! 절대 안 돼! 에반젤린은 어떻게 믿어? 나는 못 믿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고. 그런데, 그런 위험한 도박 수에 모든 걸 걸겠다고? 너무, 너무 무모해.”
“무모하다고? 뭐가 무모해? 아직 계획을 제대로 들은 것도 아니잖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협조를 할지 알지도 못하면서, 벌써 무모하다고 말하는 건 조금 속상해. 미미르.”
“미미르가 아니라, 애쉬야. 오멜라스 애쉬.”
“뭐, 호칭은 상관이 없지. 아무튼,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는 우리는 결계에서 나갈 수 없어. 인간들을 지키고, 우리도 나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지금이니까.”
“그래도 무모해. 에반젤린 같은 쓰레기를 왜 믿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
“그래, 이야기가 평행선을 달리네. 일단 계획을 좀 들어보는 게 어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잖아? 들어보기만 하고, 네가 부작용을 점검해보는 거야. 네가 나로서는 반박할 수 없는 부작용이나 위험 요소를 찾아낸다면, 거기서 그만두도록 할게.”
“듣고 싶지 않아. 에반젤린이랑 엮여서 잘될 리 없으니까. 그럴듯한 계획이라면 나도 지금 당장 몇 개든 풀어놓을 수 있어. 진짜로 그 계획을 실천하느냐는 다른 문제잖아?”
“그래? 너는 생각보다 좀 더 많이……. 똑똑한가 보네? 네가 배웠던 지식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수천년동안, 결계를 지켜온 나보다, 더 많이 파악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렇지?”
아티가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차에 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끊었다. 조금만 더 이야기하면 싸움이 일어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티. 잠깐 쉬었다가 이야기할까요?”
분위기가 과열되었기 때문에 식힐 필요가 있었다. 아티는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애쉬를 낱낱이 훑어보더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러면, 네 의견은 반대라는 거구나?”
애쉬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우리 의견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녀의 반응은 어찌 보면 정상이었다. 그녀가 이 지경이 되어서 막아놓았던 마계의 문을 다시 열어젖힌 게 에반젤린이었으니까.
그녀에게 에반젤린은 당장 죽여도 시원치 않을 만큼 증오스러운 존재였다. 그녀의 증오를 풀지 않으면 이 계획은 성공적으로 이어질 수 없었다. 아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일단 알겠어. 미미르. 그러면, 내일 다시 와서 이야기해도 될까?”
“…..가끔 놀러 와.”
그녀는 매몰차고 강렬한 증오를 내뱉으면서도 결국 아티를 완전히 밀어내지 않았다. 아티는 씩 웃으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는 아티의 뒤를 따르며 애쉬에게 말했다.
“다음에 봐요.”
검은 숲의 나뭇가지들이 다시 켜켜이 쌓이며 길을 막았다. 다시 돌아봤을 때, 그곳에는 길이 끊긴 빽빽한 숲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다시 마차에 올라탄 아티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루시우스. 아무래도 평범한 방법으로는 안 될 것 같아. 반발이 있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심할 줄은 몰랐어. 어떻게 해야 저 아이가 에반젤린에 대한 증오를 이겨내고 우리 계획에 협조할 수 있을까?”
나라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애쉬의 성격도 미미르의 성격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티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를 보고 말했다.
“루시우스. 저 아이가 나가고 싶어서 할만한 다른 이유를 만들어주는 건 어떨까?”
“다른 이유요? 예를 들면?”
“음……. 그냥, 해본 생각인데, 마계에서 온 우리랑 루시우스 네가 전부 결혼을 했잖니? 그런데 미미르만 혼자 저렇게 내버려 두는 건 나쁜 짓 같아.”
벌써 하반신에 힘이 들어갔다. 이렇게 바람을 허용해준다고? 저 예쁜 금박 미녀랑? 아티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쿡쿡 웃으며 나를 한 번 꼭 끌어안아 줬다.
“그리고, 저 미미르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 사람의 말은 어느 정도 들어주지 않을까?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을까? 힘으로는 설득할 수 없어. 나는 밖에 나올 때 힘을 줄이는 데다가, 자칫 잘못해서 결계에 무리라도 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그러면, 어쩔 수 없네요. 미미르를 제가 꼬시는 수밖에.”
나는 헤벌쭉한 미소를 숨기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속내가 빤히 보이는 모습에 아티는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나 역시 씩 웃었다.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애쉬를 따먹어야 했다.
정말로, 어쩔 수 없이.
다음화 보기
이른 아침부터 검은 숲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새벽부터 깨어있던 애쉬는 주변 나무들의 시선을 빌려서, 상대가 누군지 확인했다. 페타 루시우스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자, 자신의 중요한 곳을 반죽처럼 주물러댄 추행범이었다. 오늘은 아티가 오지 않고 혼자 온 상태였다.
“문 좀 열어줄래요?”
대체 왜 혼자 온 걸까? 애쉬는 페타 루시우스를 향해 눈을 가늘게 뜨고 턱을 어루만졌다. 이 문을 열어줘야 할지 고민이 됐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망설이는 동안 건너편에서는 재촉하는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애쉬. 당신이 보고 싶어서 왔어요. 저를 여기 계속 세워둘 건가요?”
그녀는 그렇게 얼굴이 두껍지 못했다. 애처로운 루시우스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는 마음이 약해져서 손가락을 튕겼다. 숲이 팔을 벌리듯이 가지들을 펼쳤다. 루시우스는 허리를 편 상태로 애쉬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루시우스의 시선은 애쉬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오멜라스 애쉬는 그를 그렇게 신뢰하지 않았다. 미미르에서 보여줬던 그의 패륜적이고 변태적인 모습은 신뢰도를 깎아 먹기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미미르는 용사를 강간하고 싶다며 속마음을 뱉어내는 그 무자비한 모습과 자신이 에이에이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며 뻔뻔하게 거짓말하는 얼굴을 기억했다.
“들여보내 줘서 고마워요.”
“어, 응. 뭐……. 그, 드래곤은 안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