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27
“아, 지금부터 천천히 설명해줄게.”
아티는 웃으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그녀의 등 뒤로 푸른색 장막이 칠판처럼 넓게 펼쳐졌다. 아티는 그 위에 그림을 그려가며 자신들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4명의 봉인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 그리고 마계와 인간계의 경계를 완전히 단절하기 위해 에반젤린과 협력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그녀가 마법진의 이론으로 넘어가자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하던 엘시는 듣는 걸 포기하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그녀보다 더 열심히 아티의 마법진 강의를 듣고 있던 라이카는 눈이 팽팽 돈다며 머리를 식탁에 박았다.
셀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지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고, 소야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그녀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아티의 계획은 이런 결론을 맺었다.
“그래서, 우리 루시우스가, 수도에 있는 문을 통과해야 해.”
“……안전한 거 맞아?”
이브는 그렇게 물었다. 그녀는 무작정 반대하진 않았다. 대신 아티를 날카롭게 쏘아보며 그렇게 물었다. 아티는 이브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는 지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기울였다. 아티가 말했다.
“장담 못 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브는 의외로 이성적이었다. 엘시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서 고기를 우물우물 씹으며 이브와 아티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에이에이가 손을 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같이 가는 게…….”
“임신한 몸으로 어딜 가려고 해요. 용사님. 이번엔 제가 가야죠.”
임신한 용사는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짐이었다. 뱃속에 인질을 한 명 안고 싸우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브는 말했다.
“안전은 보장 못 한다고?”
“에반젤린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으니까. 경계를 끊어내는 점에선 아주 안전한 계획이지만, 루시우스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어.”
이건 내가 감수해야 할 문제였다. 에반젤린과 독대는 한없이 낮은 확률로 죽을 가능성이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에반젤린 데스빔을 맞아 죽을 수도 있었고, 괜히 나에게 원한을 가진 에반젤린이 잔인한 고문을 시도할 수도 있었다.
“괜찮아. 살아 돌아올 거니까.”
“…..그러다 죽으면, 난 무슨 심정일 것 같아?”
이브는 침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시에리가 내 손을 꼭 잡고 울먹이고 있었다. 셀루가 입을 다물고 다른 곳을 쳐다봤다. 엘시도 라이카도 내가 죽는다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일어났다. 소야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에이에이는 배를 쓸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짊어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 나는 이브에게 말했다.
“미안해.”
“…..병신, 사과하면 다 끝나는 줄 알아 진짜.”
하지만 가야 했다. 마계와 인간계를 단절시키지 않으면, 내가 지금까지 마족들을 따먹은 의미가 없었다. 받은 게 있으면 그만큼 돌려줘야 하는 법. 수천 년 동안 지켜온 처녀의 값은 그만큼 비쌌다.
“어쩔 수 없는 걸 알잖아. 이브. 네가 싫다고 말하면, 내가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랬어. 생각해봐. 수천 년이야. 수천 년 동안 이 세상을 여기 있는 아티랑 다른 마족들이 지켜준 거라고, 누군가는 이 사슬을 끊어줘야 해.”
“그게 왜 신랑이야? 그냥, 그냥 여기서 행복하게 지내면 되잖아. 어? 굳이 목숨까지 걸어야 해? 인제 와서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인데?”
“안 죽어. 약속할게.”
솔직히 말해서, 자신은 있었다. 에반젤린이 나를 만나려는 이유가 뭔진 몰라도, 그녀가 날 죽이지 않을 것 같다는 묘한 자신감이 있었다.
애초에 에반젤린이 날 죽이려고 마음먹었으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었다. 마탑 살인 사건 때 용병으로 장난질을 치는 대신, 에반젤린의 흔적을 쫓는 나를 직접 찾아와서 마법을 날렸으면 죽었으리라.
아직 시오테르의 수련을 받지 않았을 때, 그냥 나를 찾아와서 죽여버릴 수도 있었다. 내가 사천왕의 마지막을 죽인 시점에서, 하찮은 마법을 쓰지 말고 직접 와서 나를 죽일 수도 있었다.
죽일 기회는 너무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독대를 통해서 내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거라고 생각했다. 에반젤린의 속내를 모르는 아티가 ‘안전은 보장 못 한다.’고 말했지만 죽을 확률은 분명히 낮았다.
그러니까 아티도 이 계획을 밀어붙인 것이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에반젤린 역시, 처음 만났을 적 나보다는 훨씬 강한 마법사였으니까.
“괜찮아. 이브. 응? 절대 안 죽어. 내가 에반젤린 멱 따서 돌아올게. 나한테는 성검도 있잖아.”
이브는 그제야 조금 표정을 풀었다. 갑작스러운 부부싸움에 불안감을 잔뜩 드러내던 라이카가 숨을 푹 내쉬었다. 에이에이도 자기 배를 쓸면서 내게 말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당연하죠. 기다리세요. 금방 영웅의 아내로 만들어드릴 테니까.”
“그럼, 출발은 내일 바로 할 예정이야. 혹시 입구까지 따라가고 싶은 사람 있어?”
아티의 일방적인 출발 선언에 이브는 말없이 손을 번쩍 들었다. 뒤이어 엘시도 시에리도 손을 들었다. 그렇게 차례로 손을 들어서 에이에이와 셀루를 제외한 모두가 손을 들었다. 셀루가 말했다.
“수도에 내가 가면 시선을 끈다구.”
“괜찮아. 너보다 더 튀는 애들이 3명이나 있으니까.”
아티는 셀루를 보며 말했다. 보나 마나 다른 마족 멤버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헤흐, 그럼 가야지.”
셀루가 다시 손을 들었다. 에이에이는 배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남아있을게요. 애도 있고.”
나도 굳이 에이에이를 데리고 가고 싶진 않았다. 그녀가 마족들 옆에 있으면 애한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테니까. 에리나는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얼굴을 푹 숙인 모습에 나는 웃음을 참았다. 아티는 손을 든 사람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알겠어. 그럼, 내일 출발해야 하니까 대충 준비해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길어져서 점심시간이 다 끝나고 있었다. 나는 포크를 들고 말했다.
“밥부터 먹죠. 우리.”
모두 말없이 수저를 들었다. 아티는 자리를 찾다가 에리나 옆으로 가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에리나는 아티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웃어주는 게 무서워서 벌벌 떨며 식사를 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나는 다시 이브를 찾았다. 이브는 방에 침울하게 앉아서 자신의 사브르를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서 말했다.
“이브. 아직도 화났어?”
이브는 말없이 나를 꼭 끌어안았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이브가 말했다.
“신랑.”
“왜 그래?”
“나 아빠 없이 큰 거 알지?”
그녀는 마틸다는 자신과 똑같은 신세로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남편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도 이브같이 좋은 마누라를 두고 죽을 생각은 없었다. 몇 번이고 생을 거듭해도 다시 만나기 힘든 좋은 여자였으니까. 나는 이브의 머리를 쓸어서 넘겼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을 치우자, 그렁그렁한 눈망울이 보였다.
“내가 왜 너를 두고 죽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마누라를 두고 왜. 응?”
“정말로 내가 제일 예뻐?”
“당연하지.”
이브는 말없이 나를 끌어안았다. 내 배에 얼굴을 파묻고 등을 꼭 쥐었다. 옷자락이 구겨지는 게 느껴졌다. 그녀도 나를 말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 말려도 감정싸움이 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눈물을 그칠 때까지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에반젤린에 대한 살의를 불태웠다.
****
다음 날. 아티는 마당에 거대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수도로 갈 수 있는 직통 공간이동 마법진이었다. 소야는 마법진이 완성되는 걸 보고 방방 뛰며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알리오 페스타 이후로, 이런 마법진을 시도한 사람이 없었다고요!”
신나는 소야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고 이브가 주변을 살폈다. 엘시는 마법진을 그리는 그녀를 따라서 바닥에 선을 긋다가 라이카에게 끌려 나왔다.
“마법진은 방해하는 거 아닙니다.”
“알겠다.”
나는 내 방에 앉아서 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검은 오랫동안 창고에 박아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파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날에 손을 대면 베일 것 같았고, 무엇이든지 쿡 찌르면 구멍이 뚫릴 것 같았다. 살벌한 날을 쓸어보며 나는 오랜만에 상태창을 확인했다.
고대의 성검
남자만이 쥘 수 있는 고대의 무기입니다. 누가 사용했는지, 어떤 목적으로 사용했는지는 수수께끼나 성검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특성
정당한 대가
등 뒤에서 찌른 상대를 즉사시킵니다.
상대에게 깊이 10cm 이상의 상처를 내야 하며 인간에게만 적용됩니다.
정정당당한 승부
칼에서 맹독이 생성됩니다. 생성을 원하면 ‘승부’라고 외치면 됩니다.
독은 무색무취이며 닿은 상대는 30분 뒤 원인불명의 고열에 시달리다 사망합니다.
인간에게만 적용됩니다. 칼의 소유주가 죽을 위기에 처하면 독의 효과가 즉시 발동합니다.
확고한 충성심
자신의 주인, 상사, 친구, 연인, 가족, 부하를 공격했을 때 4배의 추가 데미지를 줍니다.
“씨발년. 어디 등만 한 번 보여봐라.”
수도의 방벽을 지키는 경비병들 앞에 눈에 띄는 훤칠한 미인이 줄을 서 있었다.
그녀는 머리 부근을 어색하게 만지며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귀족같은 행색은 아니었으나, 어떤 귀족보다 더 아름다웠고, 움직이는 행동은 다소 경망스러웠으나, 산만하지 않고 중심이 잡혀 있었다.
청색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있었는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주변을 둘러볼 때마다, 병사들은 심장이 요동치는 걸 느꼈다.
여인의 손에 길쭉한 방망이가 들려 있었다.
현대인이 봤다면 야구 배트, 혹은 도깨비 방망이라고 불렀을 법한 형태였다.
그녀는 방망이로 가볍게 바닥을 두드리며 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방망이로 바닥을 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마치 제 심장을 두들기는 듯한 불편한 진동을 느꼈다.
특히 그녀의 바로 뒤에서 마차를 타고 있던 올해 84살의 귀족은 정말로 심장이 쥐어짜이는 듯이 고통스러워 마차 의자에 기댄 채 헐떡거리고 있었다.
상황을 보다 못한 마부가 여인에게 말했다.
“거기 아가씨.”
“나?”
여인은 귀족 마차를 보고도 놀라는 안색 없이 자신을 가리키며 나? 라고만 물었다.
귀족 마차의 가문 문장을 알아본 병사들은 여자의 무식함에 놀라서 서로 수군거리고 있었다.
출입 수속을 맡고 있던 경비대장 역시 상황이 흥미롭게 돌아가자 구경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 방망이 좀 그만 쳐주시오. 우리 어르신이 심장이 안좋아서, 그렇게 그 옆에서 충격을 주면 놀라신다오.”
“아, 그래? 몰랐어. 미안해.”
마부는 여인이 참 예의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르신 앞에서 그가 대신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마부는 꾹꾹 눌러 참을 뿐이었다.
병사들은 여인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뭐하는 여자일까?
용병이라기엔 옷차림이 가벼웠고, 귀족 여식이라기엔 수행원 하나 없었다.
경비대장은 제 앞에 선 여인에게 말했다.
“누구십니까?”
“시오테르.”
시오테르는 그렇게 말하고 싱긋 웃어줬다.
상큼한 미소를 보고 경비대장은 홀린 듯이 입을 헤 벌렸다가 헛기침을 하며 정신을 다 잡았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소속을 정확히 대주셔야 합니다. 신분증을 주시지요.”
그녀가 미인인 것과 이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건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었다.
경비대장이 신분증을 요구하자, 시오테르는 당황한 얼굴로 자기 몸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개를 털며 말했다.
“아, 그런거 없는데. 맞다. 내 남편이 그 엄청 유명한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