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31
조금씩 조금씩 그녀의 손동작이나 행동에서 여동생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가짜라면 알아낼 수 없는 것들, 여동생은 말을 할때 저렇게 부산스럽게 손을 움직이는 버릇이 있었다.
우아함을 가장하면서도 그 경박한 버릇은 버리지 못한 것인지, 그녀는 여전히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움직이며 나를 재촉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 따라서 자리에 앉았다.
에반젤린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드디어 만났네. 오빠. 보고 싶었어.”
나도 정말 보고 싶었다.
그녀가 내 여동생이라면, 정말로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조금전까지 죽여버리겠다고 벼르던 여자가 사실은 여동생이었다니, 누가 그걸 받아들이겠는가?
“왜, 왜 여기 있는거야? 어? 왜 마계의 문을 열었어? 기껏 좋은 세상 왔는데, 편하게 살았으면 됐잖아. 왜 마계의 문까지 열면서 이 사람 저사람 고생시킨거야?”
에반젤린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보랏빛 눈이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눈동자 너머에 있는 반짝거림은 묘한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오빠를 만나려고.”
“뭐?”
“나 때문에 고생만 했던 오빠, 이 세상에 불러와서 호강시켜주려고. 그래서 마계의 문을 열었어. 차원 연구는 마족들이 전문이니까. 그래서 마왕을 부른거야. 오빠 불러와서 행복하게 만들어주려고.”
“나 때문에 마왕을 불렀다고?”
“어땟어. 오빠? 여기 생활. 즐거웠어? 예쁜 여자도 많이 만나고, 부자도 됐잖아. 오빠 맨날 나한테 그렇게 이야기했잔아. 나 병만 나으면, 예쁜 여자 만나서 보란 듯이 잘 살거라고. 다 준비되어 있으니까, 나는 병만 나으면 된다고.”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았다.
인제 와서 죄책감 같은건 들지 않았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이 세상의 삶을 즐기고 있었으니까.
에반젤린이, 아니 내 동생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녀는 내 볼을 쓰다듬으며 아련한 눈빛으로 웃었다.
“불쌍한 우리 오빠. 못난 동생 만나서, 계속 고생만 하고. 힘들었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로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힘들다고 표하는건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을 뿐이었다.
정말로 힘들었다.
가끔은 동생의 목을 졸라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호흡기를 던져버리고, 모르는 척 눈을 감고 있으면 모든게 끝나지 않을까?
그런 구체적인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동생이라 하지 못했었다.
결국, 나 말고는 기댈 곳 없는 동생이기에, 나는 그 끈을 놓지 못했었다.
가슴 속에 울컥 차오르는게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그렇다고 8천년 동안, 지난 8천년 동안 나 데리고 올 방법만 찾아다닌 거야?”
“…응”
에반젤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지난 8천년 동안 온갖 오명을 뒤집어쓰면서도, 나를 끌고 오기 위해 계속 연구를 했던 것이다.
고통받는 인류도, 그 무엇도 그녀가 고려할 부분이 아니라는 듯이 그렇게, 계속.
“미친년. 그러다가 마왕이 이 나라 홀랑 다 먹어버리면 어쩌려고.”
“내가 몰래 여기 사람들 도와주고 있었으니까 괜찮아. 문제 없었어. 마왕이 부활할 위치를 내가 다 짚어줬거든.”
“…예언자”
용사는 예언자의 예언을 통해 마왕이 부활한다는 정보를 받고, 마왕을 물리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게임 어디에도 그 이후 예언자가 무엇인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표현된 적이 없었다.
에반젤린이 웃었다.
“오빠가 오려면, 이 세계의 균열이 망가져 있어야 했거든. 그래서 어쩔수 없이 유지했던거야. 그리고, 이제 유지할 필요가 없으니까 닫는 거고.”
“진작에 얼굴 좀 보여주지 그랬어. 응? 왜 그동안 꼭꼭 숨어 살았어?”
“…오빠가 내가 할 일을 대신 다 해주고 있어서?”
무슨 말인지 알것 같았다.
에반젤린이 마계 입구를 닫으려면 사천왕 4명과 교섭을 해야 했고, 마왕군도 쓸어버려야 했다.
그런데 내가 차근차근 그 일들을 다 해주고 있었으니 굳이 만나러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너는… 너는, 그럼 이제 이게 끝나면 어떻게 할거야?”
“어떻게 할거냐고?”
에반젤린이 다시 균열을 쳐다봤다.
진득한 기운이 커다란 균열을 틀어막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건너편에서 무엇인가 튀어나올 듯이 균열은 주기적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에반젤린이 손을 뻗어서 한줄 길게 내려긋자 하얀빛이 균열을 조금씩 가로막기 시작했다.
에반젤린이 말했다.
“모르겠어. 어떻게 할까? 오빠.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이제 이대로 살수는 없잔아. 내가 다시 나가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두려워할까? 오빠의 힘으로도 그건 막을수 없을거야. 게다가, 나는 아티 스승님한테도 죄를 지었는걸.”
“아티를 스승님이라 부르는구나.”
에반젤리은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좋은 분이셨어. 그분의 지식을 멋대로 사용한건 죄스러운 일이지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내가 대충 만든 불고기도 엄청 맛있게 드셔주셨고.”
아티가 해줬던 그 음식이 불고기였던가.
어쩐지 뭔가 익숙한 맛이 나면서도 아예 다르다 싶었다.
내 동생이 암만 대단하고 똑똑하더라도 내용물이 뭔지도 모르는 불고기 소스를 척척 만들어낼 리는 없었을테니까.
에반젤린의 등 뒤에서 결계가 여며지고 있었다.
하얗게 물든 경계는 본래의 배경과 위화감 없이 투명한 방벽을 이루었다.
에반젤린은 내게 손을 흔들었다.
“오빠. 그럼. 그… 잘있어.”
“뭘 잘 있어?”
“그, 그게… 그러니까 이제 오빠는 엄청 행복하고 잘사는데 나같이 그… 위험하고 논란 많은 인물이 같이 살면 괜히 힘들잖아. 가족 관계라는게 밝혀져도 그렇고, 애매하게 붙어 다니면서 오해사기도 그러니까… 그…”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아예 모르고 산다면 몰라고 이렇게 정체를 알았으면 우리 동생을 그냥 보낼 이유가 없었다.
내 동생은 내가 안고 간다.
날 이렇게까지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 동생을 외면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손에 쥔 성검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당장 에반젤린을 죽이라는 듯이 날뛰고 있었다.
나는 성검을 맨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동생은 내 움직임에 화들짝 놀라서 몸을 움츠렸다.
나는 말했다.
“왜 거짓말로 도망치려고 해? 죗값을 치러야지.”
“어?”
“너. 변신할줄 알지?”
“어, 응”
“아기로 변신할수 있냐?”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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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열린 마계의 문앞에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기사 벨릭스 카린은 창백한 얼굴로 갑작스럽게 열어버린 마계의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마계의 문으로 돌입하지 못하게, 이브를 포함한 페타 루시우스의 부인들이 살벌한 사기를 내뿜으며 대치 중이었다.
이미 한번 부딪혀서 병사들 몇명이 다친 뒤였다.
소야가 방어막을 펼치고, 이브와 엘시가 최전선에서 칼을 뽑아 들고 있었다.
그들의 등 뒤로 아힐데른의 전 공주인 아힐데른 에리나가 있었다.
병사들은 동부 전선에서 악마들을 상대로 학살극을 벌였던 이브와 엘시를 기억하고 있었다.
역전의 전사는 적이 될 때 그 무엇보다 무서운 법.
감히 달려들지 못하는 숨 막히는 대치 상황 속에서 누군가 빛 속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누군가 걸어 나옵니다!”
카린을 비롯한 지휘관들이 마계의 문을 바라보았다.
문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금발 머리의 적안.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는 전직 사제장 페타 루시우스였다.
그의 옷은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고 얼굴에는 피로가 감돌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작은 보자기 하나가 안겨 있었다.
페타 루시우스는 주변을 둘러보며 외쳤다.
“여러분! 이제 마계와의 지긋지긋한 인연이 끝났음을 선언합니다! 제가! 저 페타 루시우스가! 마계와 인간계의 관문을 열던 영웅! 에반젤린을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사악한 마녀는 신성한 성검으로 정화되어, 이제 이곳에는 한때 에반젤린이었던 어린아이만 남아 있습니다!”
루시우스가 손에 있던 보자기를 번쩍 들었다.
그곳에는 눈망울을 반짝이는 아기가 사람들을 바라보고 까르륵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