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38
내 동생은 내 등에 올라탄 채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이제 5살 정도의 어린아이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 번에 어른으로 돌아가 버리면 너무 수상하기 때문이라는 데, 두 달 사이에 갓난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도 매우 수상하다는 건 별로 상관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 우리 저택에 인제 와서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조련하고 싶다고 그게 마음대로 되나.”
“그래서, 계속 이대로 둘 거야? 오빠가 왕 하는 게 낫지 않아?”
“왕 하면 귀찮은데……. 저번에 에밀리아 대공이 나한테 그 이야기를 했었거든, 왕 하라고, 그때는 꽤 괜찮게 생각했는데, 다시 여기서 영주 일 시작하니까 할 마음이 싹 달아나네.”
빼앗으려면 언제든지 빼앗을 수 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서 뺏지 않는 것뿐. 왕좌는 우리에게 있어서 나뭇가지에 매달린 사과와 같은 존재였다. 언제든지 따먹을 수 있지만, 그냥 거기에 사과가 있는 게 낫기에 건드리지 않는 그런 존재.
“그런가……. 그래도 일 시키는 거 귀찮잖아.”
“네 일이나 잘해 이 년아. 너 우리 아티한테 제대로 사과는 했어?”
“아, 그게…….”
그때 아티는 모른 척하고 넘어가 줬지만, 그 뒤로 한 번도 저택으로 찾아온 적이 없었다. 내가 찾아갔을 때도, 내 근황이나 나에 대한 사랑만 이야기할 뿐 에반젤린에 관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동생은 내 말에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어떻게 봐. 우리 스승님 화내면 무서운데.”
“씨발년. 누굴 닮아서 대형 사고를 쳐대면서 지냈냐.”
“오빠.”
“요요, 입이 문제구나. 입이?”
“아! 아아! 아파! 아파! 아파아아!”
나는 동생의 쫀득한 볼을 꼬집고 쭉쭉 늘렸다. 동생은 조그마한 손을 휘두르면서 버둥거렸다. 나는 볼을 빙빙 돌리며 꼬집다가 다시 탁 소리가 나게 놓아주고 종이를 바라봤다. 이번에도 출장 명령이었다. 서부 해안에서 일어난 시위를 해결하라는 문구가 내 눈에 쏙 들어왔다.
“씨발 서부에는 병신들 밖에 안 사나? 왜 서부 해안 시위를 나보고 해결하라는 거지?”
최근 서부 해안가에는 문제가 많았다. 인어들이 사는 암초가 인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서 서부 해안에서 고기를 잡는 어민들의 활동반경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었다. 넓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으니 어민들은 아예 보호구역을 빙 둘러서 넓은 바다로 나가거나, 근처 바다에서 부족한 자원을 두고 각축을 벌여야 했다.
짐을 다 싼 나는 다시 이브의 방을 찾았다. 이브는 의자에 다리를 올린 채 칼을 손질하고 있었다. 다곤에게서 받았던 칼은 날이 갈수록 그 예리함이 더해져서 섬뜩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이브, 서부 해안가자. 가는 김에 앤이랑 르아도 얼굴 한 번씩 보고. 다곤도 보고.”
“어, 나도 가? 영지는?”
“영지는 시에리한테 맡겨야지. 저번에 수도 갈 때는 시에리 데리고 갔잖아.”
“아 빨리 말하지. 그럼 진작에 짐 쌌을 텐데. 조금만 기다려.”
“엄마 것도 챙겨. 셀루도 데리고 갈 거니까.”
“응. 알겠어.”
이브가 손질하던 칼을 다시 칼집에 꽂아 넣고 집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느긋하게 머리를 흔들며 수영장으로 내려갔다. 수영장에선 셀루가 햇살을 받으며 어시장 건어물처럼 늘어져 있었다. 나는 그녀가 바닥에 쭉 퍼진 걸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왜 거기서 그러고 있어요. 셀루.”
“심심해.”
“마침 잘됐네요. 셀루가 심심하지 않을만한 제안을 제가 들고 왔는데.”
셀루는 그 말에 고개를 슬쩍 들고 나를 쳐다봤다. 긴 머리카락이 셀루가 움직이는 것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나는 그녀의 옆에 쭈그려 앉아서 셀루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서부 해안에 한 번 갈까요?”
“응 서부 해안? 진짜로?”
셀루는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팔딱거리는 꼬리를 한 번 손바닥으로 가볍게 툭 때린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몸 닦고 마차에 탈 준비해요. 같이 가야지.”
“헤흐.”
셀루는 몸을 일으키더니 내 어깨 위로 뛰어올랐다. 그녀는 내게 망토처럼 매달려서 말했다.
“빨리 가자! 샤워실로!”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
“그럼, 시에리. 이번에 왕국에서 무슨 대신이 온다고 했었는데, 그것 좀 잘 부탁할게요.”
“대, 대신이요?”
시에리는 높은 사람이 온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서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짐가방을 들고 길을 나서던 이브는 시에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대신을 왜 무서워해. 우리 신랑이 훨씬 무서운데. 혹시 대신이 좆같은 요구하면 우리 신랑한테 이른다고 해.”
시에리는 이브의 말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몰라서 우물쭈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브는 시에리의 이 변치 않는 모습을 정말 재밌어했다.
“아하하하하하!”
마차를 출발선에 세워둔 다음, 나는 이브와 셀루를 먼저 태우고 나서 말했다.
“나 잠깐 우리 용사님한테 갔다 올게.”
“어, 그래. 다녀와.”
이브는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 셀루가 이브의 허벅지 위에 드러누웠다가 이브에게 볼을 꼬집혔다.
“에흐! 에! 에아!”
“우리 신랑 앉을 자리를 남겨놔야지 엄마. 어?”
“아어! 아어!”
******
흔들의자가 햇빛을 받으며 흔들리고 있었다. 용사 에이에이는 자신의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만삭인 그녀는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가벼운 운동 외에는 대외 활동을 최소로 하며 태교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소야가 만들어준 오르골이 작동하고 있었는데, 주기적으로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장치였다.
그녀는 그 장치를 옆에 두고 한가롭게 책을 읽고 있었다. 살짝 열려있는 문틈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웃으면서 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 사제님?”
에이에이는 책에 집중하고 있어서 내가 들어온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다. 그녀는 책을 덮어 무릎 위에 올리고 자신의 배를 쓸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출장 가신다고 들었는데, 아직 안 가셨어요?”
“우리 용사님 얼굴을 보고 가야죠.”
“또 낯간지러운 말씀을…….”
에이에이는 웃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귀가 빨갛게 물든 게 보였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쓸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배에 귀를 댔다. 꿈틀꿈틀. 그녀의 뱃속에서는 새 생명이 움직이고 있었다. 활기차게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숨을 돌렸다. 에이에이가 말했다.
“아빠야. 아빠.”
그녀는 ‘아빠’라고 말하면서도 그게 어색한 듯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당신은 엄마네요.”
“네. 그렇네요.”
에이에이는 웃으면서 다시 한번 배를 쓸었다.
“엄마.”
******
“성직자. 다음번에는 동부 평야 간다. 출장 때문에 결혼식 미뤄져서 한 번도 못 갔다.”
저택 정문으로 나서니, 엘시가 발을 구르며 내게 달라붙었다. 그녀의 말대로 저번 결혼식 이후, 계속 출장이 이어져서 엘시와 라이카의 부족 결혼식을 미뤘던 우리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엘시와 이마를 맞대 주었다. 엘시는 내 살 냄새를 킁킁 맡으며 꼭 끌어안았다. 내 등 뒤에서 라이카가 내 가슴을 꼭 끌어안았다. 라이카도 말했다.
“마림바 부족보단, 도그빌 먼저 가야 합니다. 저 나가고 나서 부족 사람들 분명히 저 걱정합니다.”
엘시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 말이 맞다. 도그빌 부족 먼저 가서 걱정하는 부족민들 걱정 덜어줘야 한다.”
“엣.”
라이카는 엘시가 양보하자, 되려 당황한 얼굴로 그녀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나를 더 세게 껴안으며 말했다.
“마, 마림바 부족 먼저 갑니다.”
재밌네. 나는 낄낄 웃으며 라이카를 한 번 쓰다듬어줬다. 마차에선 이브가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셀루 역시 헤실헤실 웃으며 마차의 레버를 톡톡 건드리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그럼 가볼까요?”
“응. 가자. 신랑.”
레버를 당기고 눈을 감았다 뜨면, 어느새 마차 안에는 바닷냄새가 흘러들어왔다. 서부 해안가의 경계면에 도착한 우리들은, 갑작스레 나타난 마차를 보고 당황한 병사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나는 왕이 보낸 공문을 들이대며 우리들이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파견된 사람들임을 알렸고, 병사들은 내 이름을 수군거리며 길을 안내했다.
“오랜만입니다. 페타 루시우스 영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