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4
“그런데 이브가 아니라 인어를 데려오셨군요. 그 인어는 무슨…..“
인어가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잠깐 갈등했다. 생각해보면 앞으로 이브랑도 잘 지내야 했다. 그런데 그 엄마 인어를 팔아버리면 나랑 소통하려 들리없었다. 아무리 정당한 권리라지만 이브가 그런 논리적인 생각을 할리 없으니까. 가족의 죽음은 언제나 이성보다 감정이 우선하는 법이었다.
그것도 그냥 죽이는 게 아니라 박제해서 거리 랜드마크로 쓴다니, 이브가 알면 언제 나한테 칼을 꽂으려 들지 몰랐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본 결과 이브랑 이 인어를 둘 다 데리고 가는 게 맞다는 결론이 나왔다.
“아, 사건 증언을 위해 제가 조사차 데려온 인어입니다.”
그래, 이브나 여기 있는 인어가 인체 신비전으로 만들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큰 죄를 짓긴 했지만, 그래도 산채로 박제는 좀 선을 씨게 넘은 느낌이었다. 자기 엄마가 저딴 일을 당했다는 걸 알면 이브한테 자박꼼을 해도 나중에 칼들고 날 죽이러 올 수도 있었다.조합장은 손을 서로 마주비비며 내게 물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그럼 이브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이브는 현재 경비대 지하감옥에 쇠사슬을 몇겹이나 묶어서 가둬놓은 상태였다. 내가 잡았으니 그녀의 처우는 내가 결정할 수 있었다. 조합장은 한시라도 빨리 이 박제 도구를 써서 이브를 교역도시의 랜드마크로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난 표정이었다.
나는 헛기침을 한 뒤, 짐짓 종교인다운 목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모든 범죄자에게 반성은 아주 중요하죠. 들어보니 이브는 인간과 인어의 혼혈로, 그 출신부터가 노예 시장에서 시작하여 인간들에게 학대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브가 사람을 죽이고 여인들을 겁간한데에는 우리 사회의 책임도 있다는 것이죠.”
“그, 그 말씀은 혹시…..”
나는 대충 캐릭터 설정에 있던 이브 스토리를 설명했다. 조합장은 거기까지만 말해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충 이해한 듯 했다. 그는 안타까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그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내게 말했다.
“그, 그러면, 그러면 제 무고한 아내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무 이유없이 해적에게 납치당해 강간당한 제 아내는! 인어 사냥꾼들의 넋은! 해적을 토벌해서 보상을 챙기려던 모험가들은! 폐인이 된 여인들의 마음은 무엇으로 달래야 하는 겁니까!”
솔직히 내 알바 아니었다. 듣자하니 인어 잡아와서 생체실험을 해볼 정도 였으면 이브가 저모양 저꼴로 사람들 거세시키고 다닌데에 이 새끼 지분도 꽤 있는게 분명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것 참,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조합장님. 하지만 조합장님. 해적 이브는 교화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한평생을 살인과 박해, 그리고 차별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이런 사람을 사회로 다시 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종교가 나아가야 할 길이 아닐까요?
누구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종교인은 사랑받을 기회를 주기 위해 존재하구요.”
“영주님!”
조합장이 더 절박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조합장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범죄자를 도시에 넘기든, 내가 데려가서 따먹든 그건 내 권리였으니까. 심지어 지금 내가 조합장한테 데려온 이 인어도 엄연히 따지자면 내가 사냥해서 잡아온 내 소유물이었다.
“조합장님.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누구든 사회로 나가서 새 삶을 얻을 기회가 있다는 것이죠. 대천신교 남부 사제장 및, 이번 이브 포획 작전의 최고 수훈자로서 이브의 신병은 제가 인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선을 그었다. 여기까지 말해두면 제 아무리 조합장이 설친들 문제될 게 없었다. 인어는 꽁꽁 묶인 채 나를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헤흑.”
딸꾹질하는 건가?
용사 에이에이는 여자 선원들 몇명과 함께 도시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보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도 그 인사에 마주 손을 흔들어준다음 그녀에게 물었다.
“용사님. 어디로 가시나요? 이제 슬슬 엘프 왕국으로 가보시는 건…..”
“아, 확실히 에리나를 보러 가야하지만, 지금은 이 일이 더 급해서요.”
“이 일이라 하시면….”
나는 여자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선원들은 아직도 이브에게서 자신들이 벗어났다는 사실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용사는 이 여인들을 고향에 직접 데려다주려는 생각인 듯 했다.
그녀들은 벌벌 떨며 용사와 나, 그리고 내가 묶어두고 있는 인어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선원 중 하나가 손가락으로 인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저 인어 꼭 죽여버려야 돼요! 진짜 미친년이라고요! 저, 저 년이 내 남편 뒤지는 거 보면서 막 히죽대고….. 도망치려고 하는 선원들은 끝까지 헤엄쳐서 죽여버리고…..”
인어가 고개를 살짝 비틀더니 그 선원을 빤히 쳐다봤다. 그 시선에 선원이 비명을 지르며 용사 뒤로 숨었다. 용사가 선원을 가려주며 인어에게 말했다.
“당신의 죄는 반성하고 있나요?”
“헤흐….너는 반성하고 있어?”
인어가 혀를 쭉 내밀며 용사에게 물었다. 용사도 선원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용사가 되물었다.
“뭘 반성한다는 거죠?”
“헤흐….인어 사냥꾼들이 내 아이들을 죽였어. 다들 노예로 팔려가고 먹잇감으로 팔려가고, 다 죽어버린다고, 가끔씩 인어 해골이 내가 살던 섬으로 떠내려올 때도 있었어. 우리도 너네랑 똑같이 지능을 가진 존재인데, 왜 이딴 식으로 구는거야? 내가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겠어? 내가 맨정신으로 살아갈수가 있을 거 같아? 내가 항구로 와서 제발 저희를 죽이지 말아주세요. 라고 말했으면 너네가 날 살려뒀을까? 인어섬의 우두머리라고 목을 잘라버렸겠지.”
“그,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인어 매매한 것도 아니고….. 난 그냥 여행가던 길이었다고! 니 미친 딸한테 잡혀서 씨발 좆같은 일만 하기전까진 그냥 여행가는 길이었어!”
“그게 그렇게 억울해?”
인어가 다시 물었다. 선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그래! 억울하다 이 좆같은 년아!”
“헤흐….근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네 말대로. 우리가 먼저 인간을 공격한게 아니었는데. 우리는 그냥 평화롭게 살던 인어였는데, 너네도 신경쓰지 않았잖아. 너도 그냥 네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여. 불행은 원래 예고없이 닥치는 법이잖아. 넌 그냥 폭풍을 만난거야.”
“무슨….”
“폭풍. 응? 필연적인 폭풍을 만난거라고. 누구나 위험한 뱃길에 오르면 폭풍을 만나게 되어 있잖아. 인간들이 언제까지 이 땅을 지배할 수 있을 것 같아? 이종족을 노예 취급하면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아? 엘프랑 인간, 그리고 드워프 셋이서만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 같아? 에반젤린이 옳았어. 차라리 그녀가 말한대로 했어야 했는데.”
“뭐라고요?”
방금 인어의 입에서 이상한 이름이 튀어나온 것 같았다. 인어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물었다.
“왜? 뭐가 궁금해?”
“에반젤린? 방금 에반젤린이라 그랬어요?”
“맞아. 에반젤린. 인어섬에 왔던 마법사 이름이야. 자기 이름을 에반젤린이라 그랬어. 우리 인어들을 다른 거주지로 옮겨줬지. 힘을 줄테니까 이 도시를 쓸어버리자고 했는데, 거절했어. 그런건 끝이 없거든. 솔직히 이게 더 재밌기도 했고.”
심각한 주제로 넘어오자 용사는 의아한 표정을 했다. 그 때 용사는 사경을 헤매느라 에반젤린이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했다. 나는 덕분에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 다음에 다시 만나죠. 사제님.”
“잘가세요 용사님.”
나는 용사에게 손을 흔들었다. 인어는 물을 달라며 수레에 벌렁 드러누웠다.
나는 이 인어를 보면서 생각에 빠졌다. 내게 인어를 데리고 가야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었다. 에반젤린이란 이름이 다시 한 번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은 것 같았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영지의 공기는 상쾌했다. 나는 경계면을 통과하자마자 숨을 크게 들이쉬며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내 뒤에는 커다란 철창에 갇힌 이브와 수조에 담긴 채 콧노래를 부르는 인어가 있었다.
내가 조합장한테 끌고갈 때까지만 해도 입을 꾹 다물고 필요한 말만 하던 그녀는 알고 보니 제법 수다스럽고 유쾌한 성격을 가진 인어였다.
“엄마 뭐가 그렇게 즐거워?”
“헤흐, 나들이 가는 것 같잖아.”
“씨발, 엄마. 지금 저 미친 새끼가 우리 데리고 뭔 짓을 할질 모르는 데 즐겁다고?”
“괜찮아 괜찮아. 미친 짓은 우리도 많이 했는데. 나는 죽어도 상관없어.”
이브의 얼굴에는 새파란 멍이 들어있었다. 내가 교역 도시를 출발하자마자 수레를 부수고 탈출하려 했었기 때문이었다. 바다 속에선 이브가 여포일지 몰라도 땅 위에선 내가 왕이었다. 나는 반항하는 이브의 얼굴에 주먹을 한대 먹여주고 다시 수레에 집어넣었다.
이브는 게임 속 이벤트 보스라는 걸 반영하듯이 몸이 엄청 튼튼해서, 불과 며칠 전에 배에 구멍이 뚫리고 머리가 깨졌다는 걸 상상하기 힘들만큼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배를 만지거나 머리가 지끈거린다며 투덜대는 걸 보면 후유증은 있어보였지만.
이브는 지금도 얼굴을 문지르며 내게 욕을 퍼붓고 있었다. 나는 굳이 그 욕설에 대꾸하지 않았다. 옆에선 인어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한평생 바다에서 사는 인어에게 산길은 대단히 재밌는 구경거리인듯 했다.
“너, 그런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우릴 데려가는거냐?”
이브는 얼굴도 문지르다 말고 내게 물었다. 제일 선두에서 말을 타고가던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교화를 위해서죠.”
“지랄하네. 내가 교화되면 누가 받아주는데, 우리 엄마가 교화하면 사람들이 안잡아가냐? 이래서 종교쟁이 새끼들은 안돼.”
“그리고 개인적으로 알아보고 싶은 것도 많구요.”
내가 궁금한 건 에반젤린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내 궁금증을 어떤 방향으로 해석한 건지 이브는 나와 인어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씨발, 변태 새끼. 성직자란 새끼가 어떻게 인어한테 박을 생각을 하지?”
“난 좋은 거 같은데….헤흐.”
“엄마. 제발 조용히 하라니까?”
마을 입구에 들어설 때 부터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영주님이 돌아왔다는 외침과 함께 나를 보기 위해 뛰쳐나온 사람들은 내 뒤에 끌려오는 두 명의 여인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한 명은 얼굴에 새파랗게 멍이든 미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수조에 담긴 인어였으니까.
인어는 손을 흔들면서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사람들은 인어의 그런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고 시선을 피했다.
“그러고 보니까 당신 이름이 뭐죠?”
이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태창에 대한 귀찮은 설명을 피하려면 이렇게 간소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인어는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이름을 알려줬다.
“셀루.”
“좋아요. 셀루. 일단 임시로 그 수조를 당신의 거처로 삼을거에요.우리 영지는 내륙에 있는데, 근처에 호수도 없거든요. 옆 영지에 수원지가 있긴한데 당신을 거기 보내줄 수도 없구요.”
“헤흐 대접좋네. 이브가 말하기론 다른 곳에선 인어들한테 물 한모금 안줘서 다 탈진시킨다던데.”
“대천신교는 교화를 위해 찾아온 신도를 내팽개치지 않습니다.”
“지랄하네 진짜.”
이브가 다시 한 번 어깃장을 놓았다. 저 지경으로 도발을 해대는 걸 보니 나에게 맞고 싶다는 뜻임이 분명했지만, 나는 일단 참아주기로 했다. 오늘은 이브한테 시간을 쏟기에는 할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영지 저택에 들어서서 말에서 내렸다. 벨릭스 카린이 저택 정문에서 부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용사와 내 안위를 심히 걱정하는 표정으로 나와 일행을 훑어보았다. ‘영주 대리인’이기 때문에 갑옷을 입고다닐 필요가 없는데도 항상 갑옷을 입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공주 기사의 표본이라 할만 했다. 공주는 아니지만.
“그간 괜찮으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