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47
이브는 내 말에 크게 웃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망토를 그녀에게 둘러주었다. 공주는 다리를 비비적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네, 네놈 지금……!”
“엘시. 감옥에 모셔다드려. 지금 감옥에 가면 다곤 있을 텐데, 다곤에게 독방으로 넣어달라고 해.”
“알겠다.”
내가 달려들려는 듯이 꿈틀거리던 그녀는 엘시에게 목덜미가 잡혀서 질질 끌려갔다. 나는 이브와 눈을 마주친 다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왕은 내가 공주를 곱게 보내주자 조금 안심한 어조로 말했다.
“네놈에게 그래도 양심이란게 남아 있구나. 그래, 내 목을 거둬가는 대신, 공주만은 제발 무사히 살려다오.”
“존나 따먹을 건데?”
“뭣?”
여기서 따먹기 싫었던 거지 공주는 반드시 따먹을 생각이었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았으니까. 왕이 다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소리를 질렀다.
“이 망할 놈! 짐승 같은 놈! 쓰레기 같은 놈! 지옥에 떨어질 놈!”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계속 보다 보니 왕의 반응도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를 보이지 않는 곳에 치우기 위해 밖에 있던 병사들을 불렀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말했다.
“전 폐하를 방에 곱게 모셔라.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철저하게 감시하고, 편지나 이상한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지 수시로 확인해라.”
“네! 알겠습니다!”
“이 노오오오오옴!”
왕이 다시 한번 괴성을 질렀다. 대전이 떠나가도록 큰소리를 지르며 왕은 자신의 방으로 끌려갔다. 사실, 아직 왕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생각해두지 않은 상황이었다. 죽이는 게 제일 편했지만, 그건 공주가 내게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일이었다.
상황은 빠르게 정리됐다. 아티와 애쉬가 피난처에 숨어있던 귀족들을 모조리 묶어서 데리고 왔고, 다곤이 바깥에서 민간인의 대피를 돕고 있던 기사단원들을 모조리 붙잡아서 감방에 처넣었다.
나는 이 중에서 내게 충성 맹세를 한 사람만 살려주는 대신, 생업이나 이전에 지지했던 정치적 문제로 이들을 차별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많은 수의 귀족들이 내 간절한 부탁을 이해해주고 나를 배려해주었고,
나를 따르지 않으려 했던 기사 3명과 귀족 4명은 전부 머리가 날아갔다.
국정 운영에 대해서는 기존에 있던 인원들을 그대로 사용하여 다시 운영하게끔 했다. 기존에 진행 중이었던 프로젝트나, 사업을 철회하지도 않았고, 말도 안 되는 사업을 새롭게 늘리지도 않았다.
현상 유지. 애초에 내 목적은 왕이 나를 귀찮게 건드리지 않는 것이었으니 다른 걸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옛말에 이르길 새롭게 뭔갈 시도하려면 반드시 탈이냐는 법이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바뀐 것들도 있었다.
내가 이 왕국의 왕이 되면서 페타 영지가 공석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로빈을 페타 영지의 영주로 임명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내 옆을 잘 지켜준 데다가 로잘린 유바 영애와 함께 여러모로 영지 실무를 잘 해나갔던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추가로 지금까지 내 호위병 임무를 맡아왔던 근위병들은 전부 내성 근무 직으로 보직을 바꾸고, 엘시만 호위병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엘시는 호위병이라는 명목으로 나랑 붙어 다니는 게 매우 좋은 듯 항상 꼬리를 살랑거렸다.
에이에이와 시에리, 에리나는 영지 영주를 로빈으로 바꾸는 것과 동시에 수도로 올려보냈다. 왕궁에는 내 아내들이 전부 들어가 살고도 남을 만큼 방이 많아서, 그녀들이 오는 데에도 문제가 없었다.
마틸다는 갑작스럽게 공주가 된 자신의 신분에 여러모로 적응하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의 호위를 위해서, 나는 내 아내나 내가 한 명씩 돌아가면서 그녀를 보호해주는 방편을 생각했지만, 내 동생은 이런 내 의견에 대해 질색을 하며 말했다.
“오빠. 그런 짓 하면 애 왕따 돼.”
“누가 우리 공주님을 괴롭혀.”
“마틸다도 썩 좋아하진 않을걸.”
“저번에 물어볼 땐 좋다던데.”
“그럼 씨발 면전에다가 물어보는 데 ‘싫어요. 좆같아요. 아빠.’ 이러겠어? 내가 따로 마법 걸어줄 테니까 그냥 오갈 때 마중만 나가는 거로 하자. 어차피 여기서 직장 가진 애는 오빠랑 엘시밖에 없잖아.”
그 밖에 다른 아내들은 백수였다. 소야는 왕궁에서만 찾을 수 있는 자료들을 이용해서 마법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고, 라이카는 수도에 와서 더욱 공부에 매진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위해 수도에서 이름난 가정교사들을 초빙해주었고, 하루가 다르게 라이카의 지식은 늘어만 갔다.
내 동생은 따로 연구할 게 있다며 자주 어딘가에 틀어박혔고, 아티는 수시로 나를 보러 오긴 했지만, 그래도 아루스의 육아를 우선시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루스를 여기로 데리고 오는 것도 괜찮지 않냐고 물었지만, 아티가 생각하기엔 아직 모자란 듯했다.
애쉬는 여행을 다녔다. 대륙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기행문을 쓰고 있다고도 말했다. 시오테르는 며칠 동안은 왕궁에서 살았지만, 답답하다며 뛰쳐나가 버렸다. 원래 자기가 살던 그 광산에 있을 테니 자주 찾아오라는 편지를 남긴 채였다.
다곤은, 지하감옥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느긋하게 지내고 있었다. 지하감옥의 음습한 습기가 자기 맘에 쏙 든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카린은, 아직 왕궁 지하감옥에 갇혀있었다. 그녀는 반란군의 수괴가 나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고, 내가 왕위를 찬탈했다는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내가 처음 지하감옥에 내려왔을 때, 그녀는 나를 바라보고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아, 아아…….”
그녀의 얼굴에는 절망과 배신감이 가득했다. 왕조에 충실했던 충신답게, 그녀는 내 반역을 이해하지 못했다. 호감도가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카린을 설득해서 반란을 일으키는 것보단 일단 반란을 일으키고 내 자지로 용서를 비는 게 더 쉬웠으니까.
“어, 어째서 이런 짓을 하신 겁니까. 루시우스 영주님.”
그녀는 여전히 내게 존칭을 써주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 묻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사슬로 묶인 두 팔을 쓸어주고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녀는 내 손길을 거부하진 않았다.
“어째서, 이러신 겁니까. 그토록 열심히 지켜오셨으면서, 어째서…….”
“미안해요. 카린. 어쩔 수 없었어요. 이해해줄 거라 믿어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은 이 나라의 영웅이었고, 빛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과……!”
“당신과?”
“이 나라를 지키며……. 함께……. 하고 싶다고…….”
카린이 울먹이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카린은 내 손길을 거부하기 위해 버둥거렸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째려봤다. 얼굴에는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실망했습니다. 루시우스 영주님. 제가 평생을 함께할 거라 믿었던 사람이, 이런……. 모두 제 잘못이겠지요. 애석하게도, 왕실 기사단에 속해있던 몸으로서,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혹시 회유하러 오신 거라면, 저는 거절하겠습니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았다. 매서운 눈빛 아래에 홍조가 있었고, 눈가에서 눈물이 똑 떨어졌다.
“이만 죽여주십시오. 영주님.”
어림도 없지.
“이렇게 완강하게 절 거부하시다니, 마음이 아프네요. 카린.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건 진심이에요.”
카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그녀는 구 왕국의 충신이었다. 나에 대한 애정만큼, 왕조에 대한 충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돌렸다.
“죄송합니다. 영주님. 저는, 저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군요. 당신을 존중해주겠어요.”
나는 그녀의 어깨를 훑다가 손을 떼어냈다. 카린은 슬픈 눈길로 나를 쳐다봤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왕국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겠습니다. 영주님. 함께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녀는 끝까지 기사다운 사람이었다. 왕국을 배신하고 새 왕조를 세운 나를 용서하진 못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만든 왕조 자체를 부정하거나 밀어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새롭게 세워진 왕국을 거부하고, 구 왕조와 함께 무덤으로 떨어질 생각이었다.
“네. 카린. 그럼 잠시만 쉬고 계세요. 저는 옆에 방에 들러야 하거든요.”
카린은 그 말에 고개를 기울였다. 내가 옆 방에 간다는 소리를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녀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옆방 문을 활짝 열었다. 독방에 갇혀있는 건 공주였다. 그녀는 롤빵 머리를 비비 꼬며 침대에 주저앉은 채, 나를 보자마자 숨을 헐떡이며 외쳤다.
“아아! 이 잔인한 남자 같으니! 드디어 나를 겁탈하러 온게구나! 분명, 나를 이 침대 위에 처박고, 개처럼 따먹겠지? 뒤치기 자세로 내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릴 생각이구나! 이 무례한 놈! 왕국의 공주에게 그런, 그런 천박한 짓을 하면……! 무사할 성싶더냐! 난 거부하겠다! 끝까지 저항하겠단 말이다!”
“자, 잠깐!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영주님!”
나는 옆 방으로 건너가려다가 다시 몸을 돌려서 카린을 쳐다봤다. 카린은 당황한 표정으로 옆방을 쳐다보며 물었다.
“여, 옆방에 계시는 건 설마…..”
“전 왕국의 공주. 알릭시아 영애입니다.”
“영주님. 설마……!”
“왜 그러시죠? 카린. 당신은 죽음을 선택했지만, 공주님께서는 살기를 바라셨어요. 누구나 살기 위해선 대가를 지급해야 하죠. 누가 공주님을 대신해서 대가를 치른다면 모르겠지만.”
“대가라니, 영주님. 그래도 제가 모셨던 공주님입니다. 한때 영주님께서 충성을 바쳤던 왕가의 자식을, 이런 식으로 대우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카린. 왕조가 바뀌면 옛사람들은 무덤으로 가야 해요. 그게 옛날부터 정해진 규칙이었죠. 만일 누군가 공주님을 대신해서 제게 몸을 바친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겠지만. 지금 제가 내린 결정은 이렇습니다.”
“대신해서…….”
카린이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나와 공주가 갇힌 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카린은 고지식했지만 멍청한 여자는 아니었다. 그녀는 내 말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카린이 입술을 깨물며 내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나오시는 겁니까?”
카린이 얼굴을 찌푸렸다. 매섭게 내려앉은 미간만 바라봐도 나는 발기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린이 여기서 모른 체한다면, 그녀는 공주가 내게 강간당하도록 내버려 두는 셈이었다. 내가 물었다.
“카린. 어떻게 할 건가요?”
그녀가 몸을 바칠 것인가? 여기서 그녀가 눈치를 못 채거나, 시간을 끈다면 내가 먼저 노골적인 제안을 던져볼 생각이었다. 카린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그녀는 내게 실망했지만, 여전히 나를 사랑했다. 내 왕조를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내 자지는 받아들일 준비가 된 여자였다.
“저는 영주님의 왕조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이건, 그러니까.”
카린은 앞뒤 설명 없이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이런 모습도 귀여웠다.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발을 쳐다보는 사이, 나는 철창의 문을 닫고 그녀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카린은 내 손길에 화들짝 놀라서 반항하려는 듯 몸을 움직여댔다.
“영주님! 무, 무슨……!”
“그럼, 공주님에게 갈까요?”
카린은 그 말에 조용해졌다. 대신 키스하려는 내 입술을 피하며 앙칼진 태도를 견지했다. 그리고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며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입꼬리를 비틀며 매서운 어조로 말했다.
“제 몸을 취할지언정, 제 마음만은 가질 수 없을 겁니다.”
“우으으으으읏!”
“영주님?”
“……옷 좀 갈아입고 시작하죠.”
씨발. 방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