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53
마틸다는 울적한 표정을 지으며 침울하게 말했다. 이브는 그 모습에 가슴이 괜히 뜨끔했는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마틸다는 원래 북부 대공의 밑에서 후원을 받던 후원 생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북부 대공은 상당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조금 전까지 준비해뒀던 ‘루비콘 대공이 비겁하게 칼에 독을 바르고 나와 1대1 승부를 겨뤘다가 잔인하게 죽은 썰’을 폐기하기로 했다. 대신 그의 명예를 추켜세워주기로 했다. 어차피 귀족 간 재판 내용은 결과를 제외하면 대외비로 남았으니까 마틸다가 자세한 내용을 알 리도 없었다.
“그래서 재판을 했는데, 재판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면…….”
“들었어요. 루비콘 대공께서 칼에 그……. 독을 바르고…….”
마틸다는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어린 그녀에게는 믿고 있던 루비콘 대공의 비참한 죽음이 현실로 와닿지 않는 듯했다. 나는 그녀의 기운을 북돋아 주고자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냐 아냐 그건 와전된 거야. 루비콘 대공이 쓰던 검이 워낙 오래된 검이고, 피가 많이 묻어있던 검이라, 그 때문에 중독 반응을 일으켜서 돌아가신 거야. 루비콘 대공 본인도 몰랐던 사실이지. 정말 나도 존경했던 분인데, 누가 그런 끔찍한 소문을 내서는……. 참 세상일이란 거 슬프지.”
“정말요? 그럼, 그……. 북부 대공께서는 비겁한 짓을 하지 않으신 건가요?”
“당연하지.”
하늘에 계신 루비콘 대공. 보고 있나요? 저는 지금 당신이 덮어쓴 부당한 누명을 풀어주고 있답니다.
“뜬소문이었군요. 다행이네요. 정말로…….”
내 발언에 마틸다는 정말 기쁜 듯했다. 나는 마틸다가 기뻐하는 얼굴을 보니 마음이 흐뭇해지는 걸 느꼈다. 이브는 이 주제로 이야기가 튀어나오자 말 수가 극도로 적어지더니 빵을 쿡쿡 찌르고 있었다. 마틸다는 이브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말했다.
“어쩔 수 없던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정말로요.”
“아, 뭐……. 그…….”
이브는 마틸다의 대응에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비콘 대공은 자신이 후원받는 아이가 이렇게 잘 성장했다는 걸 알면 기뻐하리라. 나는 언젠가 그의 무덤에 술 한잔을 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 왕실 국립묘지에 묻힐 예정이었던 루비콘 대공은 결투에서 드러난 부정으로 인해 북부에 묻혔다.
“그러면, 그 뒤론 용사 엄마랑은 언제 만나신 거예요?”
“어, 그다음에는 북부에서 만났지. 북부가 아인들 때문에 난리가 났었거든.”
“아인들은 결국 사제님이 해치우셨잖아요. 전 이 문제에 대해선 정말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에이에이는 커피를 끌어와서 한 모금 마시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에이에이는 아인 토벌에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었다. 나는 아티의 얼굴을 떠올리며 말했다.
“아티가 생각나네. 아티 엄마도 그때 처음 만났어.”
“아, 아티 엄마 알아요. 왜 요즘 안 오시는 거예요? 얼굴 뵙고 싶은데, 아루스랑도 놀고 싶고.”
그녀의 말에 내 여동생 에반젤린 씹 년이 고개를 획 돌리고 헛기침을 했다. 아티는 에반젤린에게 특별히 질책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아주 용서한 것도 아니라는 듯, 수도에 올 때면 내 얼굴만 보고 사라졌다. 내가 갈 때도 에반젤린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 않으려고 했다. 내 이야기가 어쩌다 동생 쪽으로 빠지려고 하면, 키스하거나 나를 꼭 끌어안아서 입을 막았다.
“어……. 나중에 이 문제에 관해서도 설명해줄 수 있을 거야. 지금은 좀 설명하기 곤란한 문제네. 아무튼, 아티랑 나랑 용사님은 그때 처음으로 다 같이 만났어. 그때 아티 엄마는 사악하고 잔인무도한 쓰레기 드래곤. 데오르곤에 의해 붙잡혀 있었거든.”
“데오르곤이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에요.”
데오르곤 이야기를 하니,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붉은 머리카락과 2M가 넘는 거구, 그리고 가운데에 덜렁거리는 존나 큰 거시기까지. 정말 생각만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비주얼이라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와 처음 만났을 때, 데오르곤은 에이에이와 나에게 섹스를 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단순한 협박을 했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각색해서 들려줘야 하지?
“북부를 멸망시키고자 아인들을 진두지휘했던 아주 사악한 드래곤이야. 이 드래곤은 남들을 괴롭히는 걸 아주 좋아했는데, 나와 에이에이는 거기 잡혀서…….”
“아, 아무 일도 없었어!”
에이에이가 얼굴을 붉힌 채 외쳤다. 마틸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에이에이를 쳐다봤다. 이브 옆에 있던 에리나가 동조했다.
“마, 맞다! 아무 일도 없었다!”
“어……. 그래요?”
때때로 억지는 논리적인 이야기보다 더 강렬한 설득력은 가졌다. 마틸다는 에이에이가 거의 울먹거리는 낯빛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고 외치니,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며 달래주기 시작했다.
“맞아요. 용사님. 거기선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렇죠?”
“네, 네! 그렇죠. 사제님. 네! 그, 그 사악한 데오르곤은, 그……. 아, 아무 일도 안 시켰다고요.”
“맞아요. 맞아요. 데오르곤은 아주 사악하고 못된 드래곤이었지만, 우리에게 아무 일도 시키지 않았어. 그냥 가둬뒀다가 잊어버렸는지도 몰라. 아주 그……. 쉽게 지겨워하는 스타일이었거든. 사실 우리를 가뒀을 때도 인간들을 납치해서 뭔가를 해보려다가 그냥 까먹었던 거 같아.”
“좀 멍청한 용이었네요.”
“그랬지. 아주 멍청한 용이었어. 그놈은 우리를 가두고 정말 아무것도 안 했기 때문에, 우리가 빠져나갈 수 있었거든.”
“그럼 아티 엄마는요? 아티 엄마는 그때 계속 갇혀있던 거에요?”
“어……. 맞아. 그때 아티랑 나랑 처음으로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너무 사악한 용한테 붙잡혀 있는 꼴을 보니까, 내가 다 마음이 아프더라고. 내 가슴 속에 있는 정의감이 그때 불타올랐지. 아티같이 착한 드래곤을 이런 사악한 데오르곤의 손아귀에서 구해줘야겠다. 그런 사명감 같은 게 타올랐어.”
“사명감…….”
마틸다는 감동한 얼굴로 그렇게 읊조렸다. 그녀는 생각보다 내 말을 더 잘 믿어주었다. 이브는 입꼬리를 실룩실룩 움직이다가 괜히 셀루의 볼을 꼬집었다. 셀루의 볼이 쭉 늘어났고 그녀는 팔을 바둥거리며 이브의 볼을 재차 잡아당겼다.
나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갇혀있는 아티와 독방에서 마주한 나.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나는 아티에게 구해주겠노라고 말한다. 아티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나를 꼭 끌어안아 준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에이에이가 매우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그랬던가요?”
“그랬어요. 다시 생각해보세요.”
어차피 아티는 여기 없었다. 나는 나중에 마틸다가 아티에게 이 이야기를 물어볼 때, 적당히 알아서 대답해주리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에이에이는 내 뻔뻔한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생각해보다가 말했다.
“아니, 뭔가 좀 다른…….”
“그래요? 그럼 이런 이야기는 어때요? 데오르곤에게 납치당한 용사와 사제 앞에 데오르곤이 침대를 던져주는 거예요.”
“와왁! 왁! 와아악!”
에이에이가 화들짝 놀라서 내 입을 틀어막았다. 마틸다는 아직 아티와 내 이야기를 들은 감동에 빠져서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똑똑하면 감수성도 풍부하다더니 우리 마틸다는 정말 뭐든지 다 잘하는 아이인 것 같았다. 에이에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제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그렇죠? 저 멋있었죠?”
“네. 그럼요.”
“그럼, 이야기는 여기까지 할까? 내일은 또 내일의 일을 해야 하잖니. 그렇지?”
나는 기지개를 켜면서 그렇게 말했다. 마틸다는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이브가 그녀를 달래주었다. 식사를 마친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동생은 나를 따라 재빨리 식당을 나서며 내게 말했다.
“오빠.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해.”
“무슨 일인데?”
내 동생이 드물게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대화를 요청했다. 나는 나가다 말고 벽에 기댄 채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평소의 여유로움 대신 절박한 긴장감이 그녀의 얼굴에 자리하고 있었다. 동생은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주변을 한 번 둘러본 다음 내 손을 잡고 아무도 없는 방으로 이끌었다.
방문을 닫자마자, 그녀는 밖에 아무도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나를 돌아봤다.
“그래서 뭔데?”
이 시점에서 나는 두 번째로 대체 무슨 일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동생은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오빠, 나 생각을 해봤는데. 이대로는 안 될 거 같아.”
“이대로 안 된다는 게 뭐가.”
“오빠. 생각해봐. 내 스승님. 오빠랑 결혼했는데, 나 때문에 오빠한테 잘 오지도 않고 있잖아. 저번에 해명하려고 했을 때도, 그냥 널 못 본 셈 치겠다면서 말도 안 들어주고. 오늘 오빠가 스승님 이야기했을 때 다시 생각해 봤는데, 역시 이대로는 안 될 거 같아. 나 때문에 오빠가 다른 가족들이랑 소원해지잖아. 나 스승님한테 사과하러 갈래.”
“너 그러다가 죽을걸.”
아티가 화나면 무섭다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몇 년간 부대끼며 살아왔던 내 동생이 그걸 모를 리도 없었다. 나는 아티와 내 동생이 부딪히는 걸 원하지 않았다. 아티가 지금 내 동생에게 화를 내거나, 이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는 건, 그녀가 내 가족이고, 내가 동생을 정말 아낀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그녀의 자비만으로 이루어진 일방적인 관계에서, 사과하러 간다는 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나는 그걸 알기 때문에 다시 한번 내 동생을 만류했다. 이번에 잘못되면 둘 중 하나는 죽을 것이고, 죽는 대상은 십중팔구 내 동생일 테니까.
“해야 해. 이대로 계속 불편하게 살 순 없잖아. 내가 다시 사과드려도, 내 얼굴을 보기 싫다면 내가 떠나있는 게 맞는 거 같고.”
하지만 그녀는 누구를 닮아서 그런지 고집이 아주 강했다. 내가 극구 말리더라도, 그녀는 반드시 아티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며 억지에 가까운 떼를 썼다. 동생이 어릴 때도 그랬었다. 그녀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무슨 짓을 해서든지 해야만 하는 성격이었다.
“어릴 때랑 어떻게 변한 게 없냐.”
동생은 그 말에 배시시 웃었다. 웃는 얼굴도 누굴 닮았는지 이렇게 밉살스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 말랑말랑한 볼이 쭉쭉 늘어났다. 동생은 내게 볼을 잡힌 채 내 손을 꼭 잡았다.
“같이 가줘. 오빠.”
“그래 이 년아. 가 보자. 니가 사과하러 가겠다는데, 내가 가봐야지.”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동생이 나를 살리고자 깽판을 쳤었다. 그 덕분에 내가 살아났고, 그 덕분에 가족을 만들었다. 그 덕분에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동생 덕분에 살고 있는데, 동생이 사과하러 가는 길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아티를 만날 준비를 서둘렀다. 방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시종장을 찾았다. 동생은 내가 갑작스럽게 일 처리를 서두르자 조금 당황한 얼굴이었다.
“시종장. 내일 일정이 어떻게 되죠?”
“잠깐만 오빠. 내일?”
“그럼 언제 가려고 했어? 내일 바로 가야지.”
“아니, 그래도, 그……. 알았어.”
그녀는 뭔가 말하려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서 있던 시종은 자기 수첩을 몇 번 팔랑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일 오전에 수도 시찰 행사가 있으시고, 이후 중신들과 만찬 및 친목회 행사, 이후에는 아카데미 연설 일정이 잡혀있습니다.”
“전부 뒤로 미루세요. 내일은 급한 일이 생겼으니, 그것부터 해결합니다. 아시겠어요?”
“예. 알겠습니다.”
시종장은 무덤덤한 얼굴로 내 명령에 따랐다. 쿨하게 일정을 넘겨버린 모습에 내 동생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정말로?”
“인제 와서 가지 않는다 어찌한다 하면 넌 좆되는 줄 알아. 알았어?”
“아,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