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54
어째선지, 그녀가 가자고 했건만 내가 끌고 가는 모양새가 된 것 같았다.
*****
다음 날 아침. 나는 최대한 빠르게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알리오 페스타의 마차 앞에 섰다. 내 동생은 새벽빛을 받아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마차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단정한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꼭 장례식장에 가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옷차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이쁘게 차려입었네.”
“당연하지. 스승님한테 가는 건데.”
“그렇게 존경했었어?”
나는 마차에 타면서 조금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동생은 머리를 쓸면서 내 눈을 피했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는 그냥, 그……. 마법의 달인인 드래곤이라서 의도적으로 접근했던 거였어. 그런 고차원적인 존재면 차원 이동 마법 같은 걸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까 엄청 친절하시고, 또 나한테 잘해주셨단 말이야.”
“그래서 짐으로 남았단 거구나.”
“차라리 처음부터 사과드렸으면 달라졌을까? 오빠. 어떻게 생각해?”
“난 모르겠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레버를 붙잡았다. 레버를 당기려는 순간, 내 동생은 내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잠깐만.”
“야야, 뜸 들이지 마.”
“아니, 그래도 잠깐만! 응? 심호흡 좀 하고.”
그리고 동생은 심호흡을 크게 몇 번 하더니 자기 가슴에 손을 올린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됐어. 가자.”
나는 레버를 당겼다. 눈을 감았다 뜨면, 마차 앞에 아루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동생은 창문 너머로 아루스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루스를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얘가 걔지. 오빠 딸.”
“어. 우리 이쁜 딸. 귀엽지?”
“이름이 뭐랬지?”
“아루스.”
“맞아. 아루스랬어. 맞아 맞아.”
그녀는 그제야 기억이 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 문을 열자마자 아루스는 동생을 보고 빳빳하게 굳었다가 배꼽 인사를 했다. 고개를 푹 숙인 그녀의 등을 나는 손으로 쓸어주었다.
“아루스. 안녕.”
그러면 아루스는 내 품에 쏙 들어가서 경계하는 눈초리로 동생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동생은 쓴웃음을 지으며 조금 뒤로 거리를 벌렸고, 아루스는 내게 물었다.
“아빠. 저 언니는 누구예요?”
“고모야 고모.”
“고모?”
“응. 아빠의 여동생이에요.”
“그래요? 안녕하세요. 고모. 아루스라고 합니다.”
아루스는 다시 한번 ‘고모’에게 인사를 건넸다. 동생은 여전히 고모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지만, 그래도 아루스의 애교 섞인 인사에 기분이 좋아진 듯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마차를 동굴 내에 있는 간이 주차장에 세워놓은 참이었다. 워낙 자주 오가는 나를 위해 아티가 특별히 동굴의 공간 하나를 주차장용으로 개조해둔 덕분이었다. 커다란 문이 오늘도 굳게 닫혀있었다. 나는 문 너머에서 아티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아티. 저 왔어요.”
내 부름에 따라 문이 우르릉 소리를 내며 열렸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문 너머에서 팔을 벌리고 걸어오던 아티는 내게 인사를 하려다가, 옆에 서 있는 동생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아루스가 아티의 품으로 쪼르르 달려가며 말했다.
“엄마! 아빠가 고모 데리고 왔어요!”
“어, 응. 그래. 고모구나. 아루스. 잠깐만 방에 들어가 있어 줄래? 어른들끼리 할 이야기가 있거든.”
이번에 아티가 말하는 ‘어른의 대화’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던 몸의 대화랑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갈 거란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내게 미소를 한 번 더 지어주었다. 나는 그 미소가 살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덜컹
아루스의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어찌도 이렇게 심장이 내려앉는 것처럼 들릴까. 아티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내게 물었다.
“루시우스. 나는 네가, 나를 사랑해주는 만큼 날 존중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짓이야?”
“아티?”
“왜 이런 걸 데리고 왔어? 내가, 그……. 직접 말을 하지 않아서 이해하지 못한 거야? 내가 화내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저걸 용서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티. 들어봐요. 화나는 거 알아요.”
동생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아티는 말을 하려다 말고 다시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내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가 이야기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동생에게 손짓했다. 동생은 병아리처럼 종종걸음을 치며 내 옆에 바짝 붙었다. 나는 그녀를 한 번 끌어안으며 말했다.
“아티 당신이 배신감을 느꼈단 사실도 알고, 내 동생이 못 할 짓 했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동생 덕분에 제가 여기 왔고, 덕분에 제가 아티랑 만났어요. 아티는 제가 동생을 배척했으면 하지만, 저는 그럴 수가 없어요. 제 동생이고, 저를 위해 살았던 동생이니까요.”
아티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에 깃들었던 분노가 조금은 가라앉은 게 느껴졌다. 나는 다시 이야기했다.
“아티. 저랑 제 동생은 다른 세상 출신이에요. 페타 루시우스의 몸에 제 동생이 제 영혼을 넣었죠. 그 덕분에 당신과 제가 여기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사랑스러운 딸인 아루스가 나올 수 있었어요. 아티. 그냥 제 동생을 용서해달라고는 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하지만 둘이 이야기라도 좀 해보는 게 어때요? 그냥, 그렇게 이야기라도 좀 해봤으면 좋겠어요. 부탁해요. 아티. 절 봐서라도, 한 번만 동생에게 기회를 줘요.”
아티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말했다.
“…..좀 충격적인 이야기네. 아예 다른 세상에서 왔다니. 지금까지 이야기 안 해준 게 좀 서운한걸.”
“조만간 해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이야기하게 될 줄 저도 몰랐어요. 아티, 그…….”
“알았어. 우리 루시우스의 부탁이니까. 태도 정도는 보겠어. 에반젤린. 따라오렴.”
아티의 손짓에 내 동생은 빵점 맞고 엄마에게 혼나러 가는 아이처럼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따라갔다. 나는 거실에 주저앉아서 숨을 푹 내쉬었다. 아티의 방문이 닫히고, 안에서 희미하게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방 너머의 소음이 잦아들었다가 다시 커졌다. 언쟁을 하는 듯이 말이 커졌다가 잦아들기도 했다.
마침내 말소리는 줄어들고, 방에는 침묵이 찾아왔다.
동생이 죽었나?
나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문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덜컹
방문이 벌컥 열렸다.
내 동생은 훌쩍훌쩍 울면서 걸어 나왔다. 아티는 조금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흐흡……. 흑……!”
“어떻게 됐어요?”
“뭐……. 그냥저냥 해결됐어.”
아티는 그렇게 말하며 안쓰러운 시선으로 내 동생을 바라봤다. 그녀는 내 동생을 달래주며 말했다.
“정말, 그만 울어. 그렇게 울고 있으면 옛날 생각이 나서 화를 낼 수가 없잖니.”
조명이 희미하게 빛나는 어두운 복도. 나는 초조한 기색이 만연한 얼굴로 의자에 주저앉아 있었다. 내 옆에는 시에리와 엘시가 있었다. 두 사람은 꽉 닫힌 방문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내게 격려의 말을 전해주고 있었다.
“괜찮을 거예요.”
“성직자. 괜찮을 거다. 아기 낳는 사람 많이 봤다. 죽는 사람 10명 중 한 명꼴이었다. 용사 안 죽는다.”
“엘시 씨. 그런 건 위로가 아니에요.”
시에리가 엘시의 불안한 언행을 정중하게 지적해주었다. 나는 손톱을 깨물며 엘시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아내의 출산을 지키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방 건너편에서 진통에 시달리는 에이에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만삭인 에이에이는 오늘 새벽부터 분만에 들어갔다.
방 너머에서는 희미하게 에이에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밖에 나갔다 왔던 이브가 궁정 요리사에게 받아온 아침 식사를 들고 나타났다. 간단한 샌드위치 4개. 이브는 말없이 샌드위치를 하나씩 우리에게 돌렸다. 나는 빵조각을 받아들고 이브에게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다른 애들은?”
“소야는 아침 일찍 학회 출근했고, 우리 엄마는 자고 있는데 깨우기 뭐해서 그냥 계속 자게 뒀어. 에리나는 안 오겠다던데. 너 동생은 어디 갔어?”
“글쎄, 요즘 들어서 안 보이네.”
아티와의 만남 이후 내 동생은 어딘가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았다. 본인 말로는 아주 끝내주는 계획이 있다고 하던데, 도통 내용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질 않으니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다곤이 있어서 다행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