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57
방문이 닫히자 나는 용건을 물었다. 조금 전까지 나를 욕하던 그녀는 주변을 한 번 슥 둘러보았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오빠. 혹시 지구에 한 번 갈 생각 있어?”
“지구에?”
갑작스럽게 다시 나타난 동생은 너무도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 못 해서 되물었다.
“거기 시가지 아래쪽에 빈민 지구 말하는 거야?”
“아니 씨발 행성 지구. 우리가 살던 곳! 어?”
동생이 짜증을 냈다.
“아.”
그제야 나는 그녀가 말하는 ‘지구’가 어딘지 이해했다. 나와 내 동생이 옛날에 살던 그 행성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다음에 말했다.
“가고야 싶지. 편의점 사장 씨발 그 새끼 대가리 한번 깨야 하는 데.”
“그렇지? 오빠도 가고 싶지?”
그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나는 그녀가 어떤 ‘연구’를 한다고 틀어박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아티와 화해를 한 뒤, 아티와 어떤 종류의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도 기억났다.
그녀가 지구로 가고 싶냐고 물어본 이유를 나는 알 것 같았다.
“야, 너 씨발 설마 지금까지 안보였던 게…….”
“히-.”
동생은 브이 자를 그리며 씩 웃었다.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저녁. 나와 동생은 식당이 아니라 회의실로 가족들을 전부 불러모았다. 왕궁 생활이 맞지 않는다고 드워프 왕국으로 내려갔던 시오테르와 따로 살고 있던 아티, 그리고 여행을 떠났던 미미르까지 전부 불러모았다. 덕분에 지금 회의실은 그동안 못다 한 근황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는 말소리로 시끌벅적했다.
회의실에는 커다란 칠판이 하나 있었고, 그 앞에 나와 동생이 긴장한 얼굴로 서 있었다. 아티는 여유로운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고, 이브는 셀루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얌전히 앉아있었다. 마틸다는 셀루의 손을 꼭 붙잡고 소야의 무릎 위에 올라와 있었다.
엘시와 라이카는 미트 파이에 소고기를 넣어야 하는지 돼지고기를 넣어야 하는지를 두고 잡담 중이었다. 에이에이는 아이가 자는 요람을 흔들며 나를 보고 있었고, 그녀의 옆에는 에리나가 앉아있었다.
시에리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칠판을 보고 있었다. 시종장의 설명에 따르면, 여기 회의장에 있는 이 칠판은 300년 전 대천신교에서 왕국에 기증한 물품이라고 했다. 유물을 바라보는 시에리의 눈빛이 꼭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았다.
아이라는 주변을 둘러보고 어색하게 앉아있었다. 그런 그녀의 어색함을 풀어주려는 듯 카린이 살갑게 말을 걸었다. 카린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라는 아직도 이 왕국에 적응하지 못하는 듯했다. 일개 도둑이었던 자신이 왕궁에서 살게 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적응에 대한 문제는 결국 시간이 해결해주는 법이리라. 아이라를 저택에서 끌어낼 때도 정말 진땀을 뺐었으니까.
“자, 그럼 다 모였나요?”
내가 입을 열자 각자 잡담을 나누던 부인들이 전부 입을 다물고 나를 쳐다봤다. 사방에서 호기심 가득한 시선이 날아오자, 나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동생이 내 옆구리를 툭툭 치며 긴장을 풀어줬다. 나는 숨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부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어 말했다.
“오늘은 중대 발표가 있어서 이렇게 여러분을 모았습니다.”
동생과 나는 오늘, 우리가 지구 출신이라는 걸 밝힐 생각이었다. 너무 오랜 시간 숨겨와서 믿어주지 않을지도 몰랐지만,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지는 것보다는 있게 좋았다. 내가 입을 다물고 분위기를 살피자, 호기심이 더욱 커지는 게 느꼈다. 나는 내 아내들의 반응을 상상했다. 놀랄까? 지금까지 거짓말을 했단 사실에 충격받을까?
먼저 이 사실을 알게 된 아티는 워낙에 덤덤하게 내 말을 받아들였지만, 다른 아내들은 어떨까?
“여러분, 저는…….”
어떻게 말해야 하지? 옆에서 동생이 나를 응원해주고 있었다. 이브가 고개를 기울였다. 시에리는 드디어 대천신교 문장에서 시선을 떼고 나를 쳐다보았다. 에이에이가 요람을 흔들던 손도 멈춘 채 나를 보았다. 나는 말했다.
“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군중들 위에 폭탄을 터트린 기분이었다. 나는 내 말이 가져다줄 후폭풍을 기다렸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살짝 떴다. 이브가 묘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셀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신랑, 뭔 소리야? 죽었다고?”
“흐흡…..!”
아티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동생이 입 모양으로 이렇게 말했다.
병. 신.
나는 그제야 내가 말을 좀 이상하게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고개를 저은 다음 다시 말했다.
“아니, 저는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입니다. 지구라는 곳에서 왔어요.”
매우 미적지근한 리액션이 되돌아왔다. 그렇구나. 하면서 시큰둥하게 넘기는 이브, 다른 차원에서 온 터라, 고개만 대충 끄덕이고 넘어가 버리는 미미르와 시오테르와 다곤. 에이에이는 어딘지 모르게 이해하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소야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시에리는 의외로 덤덤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엘시와 라이카는 진지하게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나라 사람이라는 뜻인가?”
“‘세계’니까 다른 대륙입니다. 우리 루시우스 님은 다른 대륙에서 건너온 모험가입니다.”
“그런가. 역시 라이카는 똑똑하다.”
엘시는 라이카를 칭찬하며 납득했다. 라이카는 가슴을 쭉 펴고 우쭐한 얼굴을 했다. 그 모습에 셀루가 웃음을 참는 듯 입술을 악물었고 에리나가 라이카에게 말했다.
“라이카.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다른 세상이라는 말은 차원을 넘었다는 이야기다. 페타 루시우스는 다른 차원의 사람이다.”
“읏.”
라이카는 그 말에 삽시간에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엘시가 라이카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라이카. 걱정하지 마라. 누구나 틀리는 법이다. 나중에 틀린 걸 알아서 고치면 된다.”
“가, 감사합니다.”
이브가 못마땅한 시선으로 에리나를 쳐다보자 에리나는 흠칫 놀라서 고개를 홱 돌렸다. 상황이 이렇게 이어지니, 분위기가 산만해졌다. 나는 나름대로 중대 발표라고 생각했는데, 내 아내들에겐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사랑은 출신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녀들은 내가 어디 출신이든 항상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나는 다시 잡담 타임이 시작되는 틈을 타서 이브에게 다가가 물었다.
“되게 심드렁하네. 신랑이 외계인이라는 데, 안 신기해?”
“아니 뭐, 신기한가? 나는 신랑이 그런 거에 구애받는 사람인 줄 몰랐는데.”
이브는 덤덤했다. 생각해보면 덤덤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미 성적으로 보통 사람들과 다른 영역에 있는 인간이었으니까. 오히려 이브 입장에서 본다면, 지금까지 보여준 내 이상 성욕의 원인을 알게 된 셈이었다.
“근데 그 지구 사람들은 다 신랑 같아? 인어 좋아하고 그래?”
“당연하지.”
“지구 사람들을 왜 변태로 모는 거야. 오빠 같은 인간들은 지구에서는 배척받거든?”
동생은 내 헛소리에 태클을 걸었다. 에이에이가 말했다.
“저는 좀 놀랐어요. 다른 세상 사람이셨다니, 가끔 독특한 이야기를 하시는 것도 그 때문이었군요.”
“독특한 이야기라면?”
“그……. 모유 좋아하는 건, 거기 사람들도 다 그런 건가요?”
“당연하죠.”
“아니 씨발…….”
동생은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이에이는 배려와 존중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씩 웃어줬다. 소야가 말했다.
“그, 혹시 그 세상에도 마법이 있나요?”
“그건 이제 지금부터, 우리 동생이 설명해줄 거에요. 왜 지금 이 사실을 밝혔는지도 말해줄 거고요.”
내 소개를 받은 동생이 헛기침하며 앞으로 나왔다. 그녀가 허공에 선을 긋자 커다란 그림이 하나 떠올랐다. 동생과 아티가 협력해서 개발한 포탈을 설명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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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로 가는 포탈?”
셀루가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포탈의 작동 원리를 설명한 동생은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신뢰와 안정성 100%의 지구로 가는 포탈. 아티 언니랑 나랑 힘내서 만든 거야. 그래서, 나랑 오빠는 이걸로 잠깐 지구에 가보려고 하는데, 우리만 몰래 쓱 다녀오면 좀 그렇잖아? 나름대로, 이것도 어찌 보면 여행을 가는 건데. 그래서 가고 싶은 사람을 좀 선정해보려고 하거든.”
“거기 사람들 인어 좋아해?”
“어……. 우리 오빠 같은 방식으로 좋아하진 않아. 거긴 살아 움직이는 인어가 없거든.”
“싫어하진 않는단 거지?”
“그렇지? 좋아하긴 좋아해. 인어 싫다고 말하는 사람은 못 봤어.”
“헤흐, 그럼 갈래. 이브 너는?”
“엄마가 간다면 가야지. 엄마 혼자 가면 사고 치니까.”
이브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엘시도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수인은? 수인도 좋아하나?”
“당연히 좋아하죠. 지구 사람들은 고양이 귀랑 강아지 귀 달고 있는 여자에 아주 환장하거든요.”
“아니 오빠.”
“아니야?”